[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2024년 2월 28일 파리에서 열린 더 로우(The Row)의 가을·겨울 컬렉션 발표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정확하고도 절제된 요청문구가 관심을 끌었다. “경험하는 동안 어떤 콘텐츠도 촬영하거나 공유하지 말아 달라(We kindly ask that you refrain from capturing or sharing any content during your experience)”는 안내였다. 대신 좌석에는 일본제 메모장과 펜이 놓였다. 패션쇼가 끝나기도 전부터 앞줄의 수직 영상, 셀러브리티의 착장, 런웨이 클로즈업이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채우는 시대다. 그런데 더 로우는 ‘모두가 갖고있는 휴대전화로 촬영하지말고, SNS에 공유도 하지말라'는 요청을 했다. 이 짧은 요청과 카메라 대신 필기구를 건네며 패션계의 오래된 유통 질서를 뒤집었다. ‘디지털 디톡스’의 미담이라기보다, 럭셔리 브랜드가 이미지 공개의 주도권과 희소성의 문법을 다시 확보하려 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물론 행사 직후에도 컬렉션은 완전히 비밀로 남지 않았다. 더 로우의 2024년 가을 컬렉션은 이후 공식 채널과 주요 패션 아카이브에 공개됐고, 보그 런웨이와 WWD 역시 해당 시즌 전체 룩을 제공했다. 따라서 이 사례가 ‘사진 없는 패션쇼’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정확한 명칭은 ‘참석자의 현장 촬영과 실시간 공유를 제한한 패션쇼’다. 사진 대신 '아날로그 상징' 메모장을 건넨 더 로우…패션쇼의 ‘첫 화면’을 누가 가질 것인가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주자 패션브랜드 더 로우(The Row)가 쇼 참석자에게 촬영과 콘텐츠 공유를 삼가 달라고 요청하고 메모장을 제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후 더 로우의 퍼포먼스에 대해 “사진으로 기록하지 말고, 저장도 하지 말고 현재를 그냥 느끼고 경험하며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라”는 해석이 나왔다. 패션쇼에서 메모장은 낯선 물건이 아니다. 편집자와 바이어는 오래전부터 쇼장에 앉아 룩 번호, 실루엣, 소재, 색상, 스타일보다는 실제 구매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 경쟁 브랜드와의 차별점을 빠르게 기록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전 런웨이의 관찰은 눈과 손의 작업이었다. 더 로우가 메모장을 건넨 장면이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이 오래된 업무 관행을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브랜드 경험의 일부로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제공하는 기록은 즉각적이고 복제 가능하며 외부로 전송된다. 반면 손글씨 메모는 느리고 개인적이며 불완전하다. 누군가는 “회색 양복, 비대칭적인 긴 실루엣, 묵직한 울 소재”라고 남겼을 것이고, 누군가는 옷보다 공간의 정적과 앞줄의 긴장을 적었을 것이다. 하나의 쇼가 수백 개의 서로 다른 문장으로 분화되는 구조다. 더 로우의 메모장은 단지 ‘휴대전화 대신 준 선물’이 아니었다. 브랜드가 관객에게 요구한 것은 기록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록의 매체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디지털 이미지는 대체로 동일한 장면을 대량 복제하지만, 필기는 각자의 어휘와 기억을 개입시킨다. 사진이 프레임을 남긴다면, 메모는 해석을 남긴다. 즉 패션쇼가 끝나기도 전에 앞줄의 영상이 SNS를 채우는 시대에, 더 로우는 참석자의 손에 쥘 도구를 바꿨다. 카메라를 들어 바깥에 보여주기보다 눈앞의 옷을 보고 자기 언어로 남기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손글씨 기록은 패션 전문 관객에게는 익숙하고 유용한 도구일 수 있지만, 쇼장 밖 대중에게는 접근 경로 하나가 닫히는 일이기도 하다. 초대받은 편집자·바이어·셀러브리티만 현장을 보았고, 대다수 소비자는 그들의 말과 뒤늦게 풀린 공식 이미지에 의존해야 했다. 촬영 제한이 ‘옷에 집중하게 하는 장치’인 동시에, 패션의 문턱을 다시 높이는 장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48시간 안에 87%가 터지는 패션위크 더 로우의 선택이 유난히 주목받은 이유는 패션업계의 유통 방식과 정면으로 어긋났기 때문이다. 패션위크는 이미 거대한 실시간 콘텐츠 산업이 된 상황이다. 패션쇼는 런웨이를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쇼 직후 수십 시간 동안 벌어지는 플랫폼 전쟁에 가깝다. 패션·뷰티 데이터 업체 론치메트릭스(Launchmetrics)의 집계를 인용한 해외 매체 엔비미디어에 따르면, 더 로우의 쇼가 포함된 2024 가을·겨울 파리 패션위크의 미디어 임팩트 가치(MIV)는 4억2550만 달러였다. 이 지표에서 인스타그램이 차지한 비중은 49%, 틱톡은 12%였다. 행사 관련 가치의 87%는 행사 종료 후 48시간 안에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남들이 몇 시간 안에 더 많은 장면을 퍼뜨리려 할 때 더 로우는 그 속도를 늦췄다. 그러나 SNS를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니다. 촬영 자제를 요청한 안내문 자체가 곧 온라인에 공유됐고, ‘사진이 없는 패션쇼’는 사진 못지않게 화제가 됐다. 더 로우의 행보는 노출을 포기했다기보다, 옷을 누가 언제 어떤 이미지로 처음 보여줄지 통제하려는 선택으로 해석가능하다. 보그 비즈니스는 "즉각적인 게시를 막은 더 로우의 요청이 컬렉션 공개 시점과 이미지를 브랜드가 다시 주도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면서 "즉각적인 관객 영상이 사라진 빈자리는 공식 룩북, 브랜드가 선택한 사진가의 이미지, 정제된 패션 매체의 리뷰가 메우게 됐다"고 분석했다. ‘조용한 럭셔리’의 가장 시끄러운 역설 더 로우는 메리케이트·애슐리 올슨 자매가 2006년 창립한 브랜드다.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고급 소재, 절제된 색, 느슨하고 정교한 재단,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로 인지도를 쌓아 왔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유행어로는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와 자주 연결된다. 그런데 ‘조용한 럭셔리’의 가장 역설적인 힘은 조용히 머무르지 않는 데 있다. 더 로우가 실시간 이미지를 줄이자, 인터넷은 오히려 “무엇을 보여줬기에 보여주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들끓었다. 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쇼의 이미지가 아니라 쇼의 부재를 소비한 셈이다. 이는 희소성의 고전적 작동 방식과 닮아 있다. 누구나 즉시 볼 수 있는 이미지보다, 일부만 먼저 봤다는 사실이 욕망의 대상이 되는 구조다. 명품은 단순히 고가 제품을 파는 산업이 아니라, 접근의 순서와 거리, 기다림의 감각까지 상품화해 온 산업이다. 더 로우는 이 쇼에서 옷뿐 아니라 ‘먼저 보지 못하는 경험’까지 브랜드의 일부로 만들었다. 하지만 역설은 남는다. 비공개를 지향한 행위가 가장 큰 공개 화제가 됐다. 촬영하지 말라는 초대 문구는 소셜미디어에 공유됐고, 누군가가 남긴 현장 주변 사진과 참석자들의 암시적인 게시물은 오히려 브랜드의 신비감을 확대했다. 노출을 완전히 거부한 것이 아니라, 노출의 대상을 런웨이 룩에서 ‘룩을 숨긴 브랜드의 태도’로 옮긴 셈이다. 사진은 기억을 빼앗나, 집중을 돕나 더 로우의 쇼를 둘러싼 논쟁은 곧바로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진을 찍으면 우리는 경험을 덜 기억하는가. 아니면 사진을 찍기 때문에 더 주의 깊게 보는가. 심리학자 린다 A. 헨켈(Linda A. Henkel)은 2014년 학술지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박물관 관람 실험에서 이른바 ‘사진 촬영 기억 손상 효과(photo-taking impairment effect)’를 보고했다. 참가자들이 전시물을 통째로 촬영했을 때는, 사진을 찍지 않고 관찰한 경우보다 대상 자체와 세부 특징, 전시장 내 위치를 덜 기억했다. 그러나 이 연구의 핵심은 “사진을 찍으면 기억력이 반드시 나빠진다”는 결론을 말하는게 아니다. 참가자가 작품 전체가 아니라 특정 세부를 확대해 촬영했을 때는 기억 저하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촬영 대상으로 삼지 않은 다른 특징에 대한 기억도 손상되지 않았다. 사진 촬영 자체보다, 무엇을 얼마나 의식적으로 보고 기록하는지가 기억을 좌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 방향의 연구도 있다. 크리스틴 디얼(Kristin Diehl), 갈 자우버먼(Gal Zauberman), 알릭산드라 바라시(Alixandra Barasch) 연구진은 2016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현장 실험 3건과 실험실 실험 6건, 모두 9개 실험을 통해 사진 촬영이 긍정적 경험의 즐거움을 높일 수 있다고 제시했다. 연구진은 촬영이 대상에 대한 시선의 체류 시간과 주의를 늘려 경험 몰입을 키울 때 즐거움도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연구 역시 ‘사진은 언제나 좋다’는 결론은 아니다. 경험 자체가 이미 매우 몰입적인 경우에는 촬영이 즐거움을 더 높이지 않았고, 촬영 장비나 행위가 경험을 방해할 정도로 번거로울 때도 긍정적 효과는 사라졌다. 부정적 장면을 촬영하면 오히려 부정적 감정이 커질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두 연구를 함께 놓고 보면 결론은 단순하다. 카메라가 경험을 망친다고 일반화할 수도, 카메라가 몰입을 높인다고 일반화할 수도 없다. 무심코 전체 장면을 저장하는 촬영은 기억의 외주화로 작동할 수 있지만, 세부를 골라 관찰하는 촬영은 오히려 주의를 집중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더 로우 쇼에서 메모장이 사진보다 더 ‘깊은 경험’을 보장했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그날의 메모는 관객의 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배치했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바네사 프리드먼의 반론, 그리고 열린 패션의 문제 더 로우의 선택에 모두가 동의한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패션 디렉터이자 평론가인 바네사 프리드먼은 당시 엑스(X·옛 트위터)에 초대 문구를 공유하면서, 사진을 찍는 일이 자신이 보는 옷을 충분히 숙고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판단은 자신이 할 일이라는 취지의 반응을 남겼다. 그 반론은 패션쇼가 단순한 ‘몰입형 문화 행사’가 아니라는 현실을 환기한다. 바이어에게 사진과 영상은 쇼가 끝난 뒤 구매 판단을 다시 검토하는 실무 자료가 된다. 편집자에게는 실루엣과 스타일링, 움직임을 재확인하는 취재 기록이다. 일반 소비자에게 관객이 찍은 영상은 브랜드가 통제한 공식 이미지와 다른 질감, 런웨이의 실제 동선과 옷감의 흔들림, 현장의 반응을 볼 수 있는 창구다. 패션의 디지털화는 분명 여러 문제를 낳았다. 쇼가 시작되기도 전에 화면을 든 관객이 시야를 가리고, 브랜드가 공들여 만든 서사보다 몇 초짜리 영상의 바이럴성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면도 흔해졌다. 반면 스마트폰은 과거 초청장과 업계 인맥에 의해 닫혀 있던 패션위크를 세계의 소비자에게 부분적으로나마 열어 놓았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도 서울, 방콕, 라고스, 상파울루에서 파리와 밀라노의 쇼를 거의 동시에 볼 수 있게 됐다. 더 로우의 선택은 이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 한편에는 현장성, 집중, 창작물의 맥락, 브랜드의 편집권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접근성, 소비자의 관람권, 다양한 시선, 디지털 시대의 개방성이 있다. 패션쇼가 ‘누구나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인지, 여전히 ‘초대받은 사람만 먼저 경험하는 의식’으로 남을 것인지의 문제다. '더 로우'가 지킨 것은 침묵이 아니라 순서 더 로우의 2024년 2월 28일 파리 쇼가 남긴 핵심은 ‘사진은 나쁘고 메모는 좋다’는 도덕적 명제가 아니다. 브랜드가 선택한 것은 이미지의 철회가 아니라 공개 순서의 재설계였다. 먼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옷을 보고, 그들이 손으로 기록하고,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브랜드가 준비한 이미지와 룩북이 세상에 나오는 방식이다. 누구나 10초 안에 복제하고 유통할 수 있는 스마트폰 시대에, 더 로우는 기다림과 결핍을 브랜드 경험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디지털 화제가 됐다. 더 로우가 한 말은 “촬영하거나 콘텐츠를 공유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고, 현장에 놓인 것은 일본제 메모장과 펜이었다. 그 위에 ‘현재를 느껴라’, ‘사람들과 대화하라’, ‘사진보다 기억을 믿어라’ 같은 문장은 브랜드의 공식 메시지가 아니라 관찰자와 독자의 해석인 셈이다. 결국 패션쇼의 첫 화면을 누가 갖는가. 더 로우는 그날, 관객의 스마트폰이 아니라 브랜드의 시간표가 답하도록 만들었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1970년 10월 6일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은 만 56세가 됐다. 대중의 시선은 대개 삼성가, 호텔과 패션, 또는 이미 종결된 개인사에 오래 머문다. 그러나 삼성가 장녀라는 출발점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2010년 12월 대표이사 취임 이후 16년째 호텔신라를 이끌며, ‘상속자’보다 ‘경영자’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해 왔다는 점이다. 호텔과 면세점은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운영의 연속으로 완성되는 산업이다. 객실 하나의 침구·음식·조명·보안·청소, 공항 면세점의 재고·환율·수수료, 그리고 지역 식당의 주방까지 수천개의 접점이 한 사람의 ‘서비스 경험’을 만든다. 이부진 사장의 공식석상 패션 역시 ‘재계 패셔니스타’의 화제성보다, 불확실한 관광·면세 산업을 이끄는 CEO가 자신의 권위와 기업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번역하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의 옷차림은 대체로 절제된 색, 구조적 실루엣,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가방, 그리고 한두 개의 금속성 액세서리로 완성된다. 확인되지 않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비공개 일상, 가족 구성원의 신상을 배제하고, 공시·국내외 언론·정부 자료에서 검증되는 사실만으로 이부진 사장을 읽어봤다. 생일의 날짜를 운명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10월 6일이 1889년 파리 물랭루즈가 문을 연 날이라는 우연은, 숙박·음식·공연·쇼핑이 한 도시의 기억을 만드는 환대 산업의 본질을 되짚게 한다. 1. 호텔보다 ‘복지재단’에서 먼저 시작, 서비스의 출발점은 사람 이부진 사장의 이력에서 가장 덜 소비되는 장면은 첫 직장이 호텔이 아니라 삼성복지재단이었다는 사실이다. 대원외고와 연세대학교 아동학과를 졸업한 뒤 1995년 삼성복지재단 기획지원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삼성전자 전략기획팀을 거쳐 2001년 8월 호텔신라로 옮겼다. 2010년 12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으므로, 기업 입사부터 CEO까지 걸린 시간은 15년이었다. 2026년 3월 주주총회에서는 사내이사 재선임으로 6연임에 성공했다. 이를 ‘아동학 전공이 곧 호텔 경영의 비법’이라는 식으로 과장할 일도 아니다. 다만 호텔의 본질이 객실이라는 물리적 자산만이 아니라, 낯선 사람의 불안과 기대를 줄이고 체류의 리듬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복지·보육의 출발은 흥미롭다. 환대는 친절한 표정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시간을 예측하고 안전·청결·동선을 조직하는 시스템이다. 이 사장의 경력은 그 시스템의 첫 언어가 재무가 아니라 사람·조직·생활환경이었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2. 삼성가의 장녀에서 장충동의 경영자로 '우뚝' 이부진 사장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삼성전자나 삼성물산의 중심부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서비스업의 성격이 강한 호텔신라에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2001년 호텔신라 기획부에서 시작해 경영전략담당 상무·전무를 거쳐 2010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대표 취임 이후만 계산해도 올해로 16년째다. 이 선택은 삼성가의 권력 배치를 읽는 하나의 창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아파트 건설처럼 압도적 규모의 산업이 아니라, 면세·호텔·레저라는 ‘사람의 흐름’을 다루는 사업에서 자신의 경영 경력을 완성했다. 면세점은 환율, 중국 소비, 항공 노선, 지정학, 공항 임대료 등 외부 변수에 크게 좌우된다. 호텔은 브랜드·객실·식음료·행사·고객 경험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제조업의 지배자가 아니라, 도시의 소비와 이동을 관리하는 경영자라는 점에서 이부진의 리더십은 삼성 내부에서도 결이 다르다. 호텔신라의 매출은 2002년 4157억원, 2009년 1조2132억원으로 증가했고,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은 4조683억원을 기록했다. 이 숫자를 한 사람의 성과로 환원할 수는 없다. 면세시장 성장과 관광객 흐름, 삼성그룹 브랜드, 임직원과 협력사의 역량, 환율·공항 임대료 등 외부 변수가 함께 작동한 결과다. 다만 1995년 삼성복지재단 입사에서 시작해 호텔신라 대표이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약 31년(복지재단 6년–호텔신라 9년–CEO 16년)의 경력은, 삼성의 후계라는 명사보다 경력·경험의 축적이라는 동사가 더 적절한 이력임을 보여준다. 3. 호텔에서 먼저 들어간 곳은 로비가 아니라 BOH 2001년의 한 장면은 이부진 사장의 경영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2001년 호텔신라에 합류한 뒤 고객을 직접 만나는 프런트오피스(FOH)보다, 음식물 잔반 처리와 쓰레기 분리수거 등을 담당하는 백오브하우스(BOH)부터 살폈다. 이후 부서별 업무 매뉴얼 정비까지 독려했다. 이 일화의 진짜 포인트는 ‘재벌가 자녀가 현장을 둘러봤다’는 미담이 아니다. 호텔에서 고객이 보는 로비의 광택은 고객이 보지 못하는 주방·세탁·구매·폐기·보안의 정밀함에 의해 결정된다는 산업의 구조다. 서비스의 품질은 무대 앞의 친절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뒤편의 낭비가 줄고, 일이 표준화되며, 직원이 문제를 발견해 고칠 수 있을 때 비로소 반복 가능한 경험이 된다. 호텔산업은 흔히 백조의 우아함에 비유된다. 로비의 샹들리에와 정갈한 객실, 미소 띤 직원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장면은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백조를 닮았다. 그러나 그 우아함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는 객실 청소와 침구 교체, 식음료 준비, 시설·안전 관리, 예약 수요 예측, 인력 운용이 24시간 쉼 없이 돌아간다. 고객에게는 ‘완벽한 휴식’으로 기억되는 하룻밤을 만들기 위해, 호텔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백조처럼 발을 젓는다. 화려한 환대산업의 본질은 결국, 드러나지 않는 노동과 운영의 정교함이 쌓아 올린 물밑의 경쟁력에 있다. 고급스러운 로비와 친절한 서비스는 호텔의 얼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인력과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치열한 운영의 시간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을 먼저 살폈다’는 태도를 추측해보건대, 이부진 리더십의 핵심은 사치의 연출보다 운영의 미학에서 비결을 찾은 셈이다. 4. ‘작은 이건희’라는 별명, 그러나 다른 방식의 승계 해외 언론과 국내 재계가 이부진 사장에게 붙인 별명은 ‘리틀 이건희’다. 이는 단순히 외모나 혈연을 뜻하지 않는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제조업의 품질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을 앞세웠다면, 이부진 사장은 서비스업에서 ‘절제된 프리미엄’을 구축해 왔다. 포브스는 이 사장을 호텔신라의 사장 겸 CEO이자 한국 면세사업자의 경영자로 소개하며,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가운데 90위로 선정했다. 또 국내 여성 최고경영자(CEO) 온라인 브랜드지수에서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1위를 차지했다. 2위에서 5위는 김정수 삼양식품 회장, 정유경 신세계 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김유진 한샘 대표로 나타났다. 이어 김선희 매일유업 부회장, 정신아 카카오 대표, 이선정 CJ올리브영 대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호텔은 잠을 파는 사업이 아니라 시간을 편집하는 사업이다. 면세점은 물건을 파는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국가간 가격 차이와 이동의 욕망을 거래하는 공간이다. 이부진 사장은 이 두 사업을 통해 삼성의 기술·제조 중심 이미지를 ‘환대(hospitality)’와 ‘럭셔리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해 왔다. 삼성가 세 남매 중 이재용 회장이 반도체·전자라는 산업적 심장부를 이끈다면, 이부진 사장은 관광·유통·문화 소비의 접점에서 삼성 브랜드의 감각적 얼굴을 맡아온 셈이다. 재벌의 권력은 주식에서 나오지만, 대중이 체감하는 권위는 공간과 서비스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5. 검정 수트와 ‘로고 없는 가방’…이부진의 패션경영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공식석상 패션은 뉴스의 주변부에서 작동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의 메시지와 맞물린 하나의 비언어적 언어가 됐다. 화려한 로고와 과장된 장식으로 부를 과시하는 방식보다, 검정·흰색·회색·네이비 등 절제된 색채, 몸의 선을 정돈하는 테일러드 재킷, 그리고 서류가방처럼 구조적인 토트백을 반복적으로 선택해 왔다. 패션이 개인의 취향을 넘어 ‘기업의 얼굴’이 되는 지점이다. 특히 호텔신라 정기 주주총회는 이부진식 드레스코드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무대다. 주주총회는 경영진이 투자자·주주·시장 앞에서 실적과 전략, 책임을 설명하는 자리다. 그래서 CEO의 복장은 사적인 멋보다 신뢰·통제·책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부진 사장은 최근 몇 년간 이 공식의 장에서 색과 소재, 가방의 형태를 달리하면서도 공통된 코드를 유지했다. 그것은 ‘과시하지 않는 고급스러움’과 ‘권위를 포기하지 않는 여성성’이다. 2024년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 사장은 영국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의 흰색 재킷과 팬츠를 착용했다. 흰색 수트는 보수적인 한국 재계의 주총 복장 문법에서 다소 이례적이지만, 재킷 왼쪽 가슴의 자수 장식과 각 잡힌 구조는 가벼움보다 결단과 새 출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 사장은 2020년과 2022년 주총에서도 알렉산더 맥퀸 제품을 착용했다. 흰색이 ‘전환’과 ‘재정비’의 색이었다면, 2025년과 2026년의 연속된 올블랙은 더 무거운 경영 환경을 시각화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2025년 제52기 주총에서 이 사장은 돌체앤가바나의 검정 더블브레스트 코트를 착용했다. 검정 롱부츠와 은색 귀걸이, 알라이아 벨트로 마무리한 스타일은 화려함보다는 긴장과 절제를 앞세웠다. 검정은 경영 위기나 불확실성이 짙은 시기에 CEO가 선택하는 가장 강력한 색이다. 복장의 색이 경영 실적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시장과 주주가 모인 자리에서 검정은 신중함, 위기의식, 통제, 책임감을 함축한다. 2026년 제53기 주총에서도 이부진 사장은 다시 검정을 택했다. 구찌 울 블렌드 재킷과 슬랙스, 발렌티노의 레이스 시스루 블라우스, 에르메스 ‘365 PM’ 토트백 조합이었다. 이날 착장 구성은 1400만원 안팎이라는 추산도 나왔다. 그러나 이 차림의 핵심은 가격표가 아니라 형태다. 에르메스 ‘365 PM’은 부드러운 숄더백이나 로고 플레이가 강한 핸드백이 아니라, 각진 가죽과 H 버클을 활용한 브리프케이스형 토트다. 손에 쥐는 방식, 문서 가방을 연상시키는 수직적 구조, 검정 가죽의 질감은 주총이라는 업무 공간에서 ‘소유자’가 아니라 ‘책임 경영자’의 인상을 만든다. 이 가방은 여성 CEO가 공식석상에서 흔히 요구받는 이중 과제, 즉 세련됨을 유지하면서도 가볍게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에 대한 하나의 해답처럼 보인다. 이부진 사장의 가방 선택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고가 제품과 비교적 낮은 가격대 제품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그는 에르메스·모이나트·디올 같은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뿐 아니라 파투, 폴렌, 데스트리처럼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덜 익숙하거나 가격대가 낮은 브랜드 제품도 착용해 왔다. 2023년 ‘2023~2024 한국 방문의 해’ 관광 전략회의에서는 프랑스 브랜드 파투의 검정색 ‘르 파투 백’을 든 모습이 주목받았다. 이 제품은 로고보다 반달형 실루엣과 둥근 곡선이 부각되는 디자인으로, 보도 이후 품절 현상이 언급될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2023년 다른 공식석상에서는 프랑스 브랜드 데스트리의 공예적 디테일이 들어간 토트백을 선택했다. 2026년 1월 아들의 휘문고 졸업식에는 프랑스 브랜드 폴렌의 검정 ‘누메로 운’ 토트를 든 것으로 알려졌다. 송아지 가죽의 곡선과 주름 장식이 특징인 이 가방은 약 70만원대다. 롱 코트와 검정 장갑, 검정 가방을 조합한 차림은 사적 행사에서도 ‘무채색·구조적 형태·절제된 장식’이라는 그만의 문법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호텔과 면세를 경영하는 CEO로서, 이부진은 가격보다 브랜드의 서사·소재·형태·희소성을 읽는 소비자에 가깝다. 에르메스 버킨처럼 즉각적으로 부를 상징하는 가방을 들 때도 있지만, 공식석상에서는 대체로 브랜드 로고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구조적 가방을 고른다. 모이나트의 가브리엘 클러치 역시 M자형 잠금장치가 특징이지만, 대형 로고 대신 소재와 잠금 구조가 정체성을 만든다. 이 제품은 500만~600만원대의 ‘조용한 럭셔리’ 가방으로 회자됐다. 이는 호텔신라가 판매하는 럭셔리의 속성과도 닮아 있다. 럭셔리는 반드시 가장 비싼 물건을 뜻하지 않는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재료를 썼는지,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가 가격 이상으로 중요해지는 소비 문법이다. 이부진의 가방은 이 문법을 몸소 보여주는 동시에, 호텔신라가 다루는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살아 있는 쇼윈도’ 역할을 한다. 6. 액세서리는 한 점, 그러나 권위는 분명하게…올드머니 룩에서 조용한 럭셔리로 이부진 사장의 액세서리는 대개 많이 착용하지 않는다. 대신 벨트 버클, 브로치, 시계, 귀걸이 가운데 하나를 명확한 포인트로 사용한다. 2023년 주총에서는 블랙 재킷과 스커트에 금색 벨트, 시계, 귀걸이를 더해 검정과 금색의 대비를 만들었다. 당시 상의는 구찌의 울·실크 재킷으로 알려졌고, 금속 장식이 권위와 격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2025년에는 블랙 코트에 알라이아 벨트와 은색 귀걸이를 택했다. 2026년 한국 그랜드 세일 개막식에서는 영국 브랜드 에르뎀의 플라워 아플리케 테일러드 회색 롱 코트에 대형 검정 플라워 브로치를 달았다. 그의 액세서리는 ‘보석’보다는 ‘구조’를 강조한다. 크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나 다층 목걸이보다, 금속 버클, 시계, 단정한 귀걸이, 입체적인 브로치를 택한다. 몸을 장식하는 장신구라기보다, 수트의 선과 비율을 완성하는 건축적 장치에 가깝다. 이는 이부진 패션이 부드러운 페미닌 룩보다 테일러링과 구조적 균형에 무게를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부진 사장의 스타일을 ‘올드머니 룩’으로 부르는 표현은 편리하지만 불완전하다. 올드머니 룩은 흔히 오래된 부, 세습된 취향, 로고 없는 고가 제품을 묶는 인터넷 유행어로 쓰인다. 그러나 이부진의 공식석상 패션을 그 말로만 설명하면, 옷이 수행하는 공적 역할을 놓치게 된다. 그의 스타일은 사생활을 과시하지 않는 대신, 공식 무대에서는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즉, 친근한 인플루언서형 CEO도 아니고 전통적인 남성 총수의 어두운 정장 복제판도 아니다. 그는 수트의 형식성과 여성복의 디테일, 최고급 브랜드와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브랜드, 검정의 권위와 레이스의 섬세함을 교차시킨다. 이부진의 패션은 그래서 ‘보여주기 위한 사치’라기보다, 노출을 통제하는 방식의 '경영 커뮤니케이션'에 가깝다. 호텔신라의 로비가 고객에게 첫인상을 설계하듯, 그의 재킷과 가방, 벨트와 브로치는 주주·고객·언론·관광업계에 보내는 첫 번째 문장이다. 말은 적지만, 차림은 매번 기업이 처한 시간과 자신이 맡은 책임의 무게를 설명한다. 럭셔리는 과잉 노출보다 선택적 노출에서 힘을 얻는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상품보다, 쉽게 볼 수 없는 공간과 경험이 더 높은 상징 가치를 갖는다. 이부진 사장이 운영하는 호텔신라와 면세점의 사업 구조 역시 이 원리와 닿아 있다. 고가 브랜드의 판매는 상품 자체만이 아니라, 접근권·장소성·환대·희소성의 판매다. 7. ‘드림메이커’의 1300명과 ‘맛있는 제주’의 26개 식당, 환대를 밖으로 전파 호텔의 서비스 역량은 호텔 안에만 머물면 프리미엄의 장식이 되기 쉽다. 반대로 조리·제과·응대·위생·운영의 기술을 지역사회에 옮기면 생활의 인프라가 된다. 호텔신라의 ‘드림메이커’는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사례다. 2014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2019년 기준 누적 수료생 약 1,300명을 배출했다. 당시 전년도 수료생 160명 가운데 조리·제과 자격증 취득자는 56%, 취업 또는 대학 진학 성과를 낸 비율은 72%였다. 호텔산업이 제공한 ‘재능기부’라는 추상어를 자격증·진학·취업이라는 결과지표로 바꾸려 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교육 기회의 격차를 단숨에 해소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호텔의 전문성이 청소년의 직업 경로에 연결될 수 있다는 가설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의 ‘맛있는 제주 만들기’도 같은 방향을 향한다. 2014년부터 26개 식당을 재개장했고, 참여 식당의 평균 매출이 기존 대비 약 5배 증가했다. 조리법·위생·인테리어·메뉴·사후점검을 묶어 영세 식당의 자립을 지원하는 방식은, 고급 호텔의 서비스가 지역의 작은 식당에 주입과 번역을 넘어 진정한 상생이자 동행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좋은 서비스는 가격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혼자 설 수 있게 돕는 기술이 될 때 더 오래 남는다. 8. ‘신라’라는 이름의 돌봄책임…한옥호텔에 담긴 ‘한국적 럭셔리’ 실험 호텔신라의 ‘신라’는 역사적 왕조의 이름을 브랜드로 사용하는 선택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이름을 얼마나 화려하게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그 이름을 문화유산의 현장에 얼마나 책임 있게 돌려주느냐다. 호텔신라는 국가유산청과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을 맺고 서울성곽(사적 제10호)과 제주 대정향교(제주도유형문화재 제4호)에서 환경정화·시설 점검 활동을 했다. 이 활동만으로 기업의 문화적 책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텔업이 장소의 역사, 지역 주민, 관광객의 체류 경험을 함께 상품화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문화재 돌봄은 주변 사업이 아니라 본업의 연장선에 가깝다. ‘신라’가 과거의 이미지를 빌리는 이름에 머물지 않고, 성곽과 향교의 현재를 관리하는 이름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이부진 사장 개인을 넘어 한국의 럭셔리·관광 기업 전체에 적용된다. 이부진 사장의 장기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부지의 한옥호텔 구상이다. 공사를 2030년 말까지 보류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최소 5년 이상 더 멈춰 선 장기 표류 사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옥을 호텔화한다’는 단순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다. 전통을 박물관 유리관 안에 보존하는 대신, 희소성과 문화적 경험을 숙박·식사·행사·관광이라는 현대적 소비 경험 속에 재배치하는 시도다. 특히 한옥호텔 구상은 이부진식 경영의 특징을 보여준다. 반도체 공장처럼 수율을 높이는 사업이 아니라, 전통의 수익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한국 호텔산업이 오랫동안 반복해 온 ‘서구식 5성급 호텔의 복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의미도 갖는다. 장충동이라는 장소성, 남산의 경관, 신라라는 브랜드의 역사성을 하나의 고급 체험으로 엮으려 한 점에서다. 이부진의 경영은 제품 혁신보다 ‘맥락 혁신’에 가깝다. 9. 10월 6일의 물랭루즈, 환대는 ‘객실’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판다 에펠탑이 세워지던 1889년 10월 6일 물랭루즈가 파리에 문을 열었다. 19세기 말 귀족·부르주아·예술가·보헤미안이 뒤섞이던 도시 오락문화의 현장이었고, 공연예술과 패션, 관광산업이 결합한 초기 대중문화 비즈니스의 상징이다. 즉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붉은 풍차가 돌아가는 곳, 물랭루즈는 단순한 유흥업소가 아니라 19세기 말 벨 에포크의 욕망과 예술, 대중오락이 교차했던 문화산업의 원형이다. 프렌치 캉캉의 현란한 발차기와 툴루즈로트레크의 포스터는 이곳을 한 세기가 넘도록 ‘파리의 밤’ 그 자체로 남게 했다. 이 우연은 호텔신라가 처한 질문을 선명하게 한다. 고객은 방 하나, 화장품 한 병, 식사 한 끼를 각각 구매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이 도시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산다. 그래서 호텔 경영은 부동산 운영만이 아니며, 면세점 운영은 유통만이 아니다. 문화·안전·식음·지역경제·노동의 감각을 한 번의 체류 경험으로 결합하는 일이다. 10월 6일은 세계사적으로도 ‘이미지와 권력’이 자주 교차하는 날짜다. 1927년 10월 6일 뉴욕에서는 영화 《재즈 싱어》가 개봉했다. 이 작품은 동기화 음향 기술을 활용한 초기 장편 유성영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무성영화 시대에서 ‘말하는 화면’의 시대로 넘어가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호텔신라 사장의 생일과 유성영화의 탄생일이 겹친다는 사실은 묘한 비유를 허용한다. 이부진 사장은 직접 말하기보다 이미지와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영자다. 공항 면세점, 장충동의 호텔 로비, 국빈급 행사, 한복과 정장, 공식석상의 절제된 태도는 모두 기업 메시지의 일부가 됐다. 그에게 경영은 말보다 ‘연출된 경험’을 통해 작동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10. 삼성 상속녀 넘어 ‘환대와 공간 설계자’ 이부진 사장의 10월 6일을 둘러싼 진짜 흥밋거리는 사적 장면의 빈틈이 아니다. 복지재단에서 시작해 15년 만에 CEO가 된 이력, BOH를 바라본 운영의 시선, 그리고 1300명·26개 식당·성곽과 향교로 이어지는 서비스의 외연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환대의 권위는 가장 비싼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보이지 않는 곳까지 책임질 때 생긴다. 그의 삶은 ‘삼성가 장녀’라는 출생의 서사, 여성 CEO로서의 상징성, 호텔·면세 사업의 불확실성, 한국적 럭셔리의 실험이 한꺼번에 겹쳐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모든 층위를 관통하는 핵심은 하나다. 이부진은 기술을 발명하는 CEO가 아니라, 사람의 이동과 체류, 소비와 기억이 만나는 공간을 설계하는 CEO라는 점이다. 10월 6일, 유성영화가 세상에 등장한 날의 은유를 빌리면 이부진의 경영은 목소리보다 장면으로 말해 왔다. 장충동의 호텔, 공항의 면세점, 한옥 프로젝트, 그리고 손익계산서의 숫자들. 그 장면들이 앞으로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상속받은 이름’이 아니라 ‘운영해 낸 공간’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의 선택은, 이미 삼성가의 다른 경영 문법과는 다른 길을 만들고 있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큰 삼각형과 작은 삼각형, 원 하나가 화면을 오갈 뿐인데 사람들은 사랑과 질투, 추격과 탈출의 드라마를 읽어냈다. 1944년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와 마리안 지멜의 실험은 인간이 세계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누가 왜 무엇을 했는가’라는 이야기의 틀로 해석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사실 같은 허구를 대량 생산하는 시대, 이야기를 만드는 기술만큼이나 그 이야기를 의심하고 출처를 추적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야기가 만든 8번의 대혁명 케빈 애슈턴의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김하현 옮김, 생각의힘)는 인간 문명의 진보를 ‘이야기를 더 멀리, 더 많이, 더 오래 전달하게 한 도구의 역사’로 읽는다. ‘사물인터넷(IoT)’이라는 말을 대중화한 기술 저술가 애슈턴은 이야기의 혁신을 ▲모닥불 ▲이미지 ▲문자 ▲인쇄 ▲전기 ▲디지털 비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마트폰으로 구분한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수와 이야기를 받을 수 있는 청중의 수가 함께 늘어났다는 것이 그의 핵심 명제다. 이 책 역시 “8번의 위대한 스토리텔링 혁명”을 추적한 작업으로 규정한다. 첫 번째 무대는 모닥불이다. 불빛 주변에 모인 인류는 사냥의 실패와 성공, 위험한 동물, 낯선 지형, 집단의 규칙을 말로 공유했다. 이야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생존 정보를 압축해 다음 세대에 넘기는 저장장치였다. 누가 위험한 포식자를 만났는지, 어느 계절에 어떤 열매가 열리는지, 어느 사람을 믿어야 하는지에 관한 기억이 ‘이야기’의 형식을 얻으면서 집단의 공통 지식이 됐다. 이미지는 두 번째 전환점이다. 동굴 벽화와 상징은 화자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장면을 남겼다. 문자와 인쇄술은 여기에 시간과 거리의 장벽을 허무는 힘을 더했다. 특히 인쇄는 이야기를 필사본과 구술의 제한에서 꺼내 대량 복제 가능한 상품으로 바꿨다. 신문·소설·교과서·전단은 같은 이야기를 낯선 사람들 사이에 동시다발적으로 퍼뜨렸고, 국경과 계급을 가로지르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전기와 방송은 이야기에 속도와 현장성을 부여했다. 전신, 전화,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은 사건과 전달 사이의 간격을 대폭 줄였다. 이후 디지털 비트는 이야기를 복제해도 원본이 닳지 않고, 전 세계로 거의 즉시 배포할 수 있는 정보 단위로 바꿨다. SNS와 스마트폰은 이 변화를 한 단계 더 밀어붙였다. 이야기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있던 출판사·방송국·편집국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만인이 만인에게 말하는’ 구조가 현실이 됐다. 이 전환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2026년 디지털뉴스리포트에 따르면 48개 시장 평균에서 소셜미디어와 동영상 네트워크를 뉴스 경로로 이용한다는 응답은 54%로, 언론사 자체 웹사이트·앱 이용률 51%를 처음 앞질렀다. 페이스북을 뉴스에 이용한다는 응답은 43%, 유튜브는 34%, 인스타그램은 26%, 틱톡은 20%였다. 뇌는 왜 빈칸을 이야기로 채우나 하이더와 지멜의 논문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압축해 보여주는 고전적 장면이다. 연구진은 세 집단의 참가자에게 약 2분 30초 분량의 영상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큰 삼각형·작은 삼각형·원, 그리고 문처럼 열리고 닫히는 사각형만 등장했다. 첫 번째 집단 34명 가운데 도형의 움직임을 거의 전적으로 기하학적으로 묘사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나머지는 도형의 움직임을 살아 있는 존재, 주로 사람의 행동으로 해석했다. 특히 ‘두 삼각형이 왜 싸웠는가’를 묻자 36명 중 18명, 즉 50%는 원을 여성으로 보고 두 삼각형이 그를 두고 다투는 사랑의 삼각관계라고 설명했다. 큰 삼각형을 공격적·호전적·지배적인 존재로 평가한 응답자는 35명으로 97%에 달했고, 원을 여성적 존재라고 본 응답자는 22명, 61%였다. 원이 사각형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싸움을 피해 숨는다’고 해석한 사람은 33명, 92%였다. 이 실험의 핵심은 ‘사람들이 도형을 잘못 봤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은 움직임의 선후관계와 방향, 반복을 보자마자 원인과 의도, 등장인물의 성격, 갈등의 구조를 구성한다는 데 있다. 큰 삼각형이 작은 삼각형을 밀어내는 장면은 충돌이 아니라 폭력으로, 뒤따르는 장면은 단순한 동선이 아니라 추격으로, 함께 움직이는 원과 작은 삼각형은 관계와 연대로 읽힌다. 인간의 지각은 무작위 사건을 그대로 두기보다, 원인과 결과가 연결된 서사로 조직하는 쪽을 택한다. 바로 이 능력이 문명을 만들었다. 낯선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고, 공동체의 규범을 공유하며, 과거 경험을 압축해 전달하는 데 이야기는 압도적으로 효율적이었다. 다만 같은 능력은 위험도 품고 있다.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사건에도 의도와 악역을 배치하고,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영웅·배신자·음모의 서사로 단순화하려는 충동이 생기기 때문이다. AI가 만든 ‘그럴듯함’의 함정 생성형 AI는 애슈턴이 말한 여덟 번째 혁명의 연장선이자, 이야기의 신뢰 기반을 시험하는 새 변수가 됐다. AI는 문장뿐 아니라 사진·음성·영상까지 짧은 시간에 생성하고, 이용자별 반응에 맞춰 서사를 변주한다. 과거에는 이야기의 유통이 어려웠다면, 지금은 사실과 허구를 가르는 비용이 더 커지고 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2026년 조사에서 AI 챗봇을 뉴스 목적으로 쓰는 비율은 전년 7%에서 10%로 증가했다. 한국에서는 이 비율이 14%로, 전년 대비 두 배로 늘었다. 다만 전 세계 응답자가 AI 챗봇의 뉴스 답변을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20%로,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 37%보다 17%포인트 낮았다. 불안의 크기도 작지 않다. 같은 조사에서 온라인상의 가짜뉴스를 우려한다는 응답은 평균 62%로 전년보다 4%포인트 올랐다. 반면 뉴스 신뢰도는 48개 시장 가운데 29곳에서 하락했고, 전체 평균은 37%로 2015년 측정을 시작한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기술 자체보다 인간의 인지적 취약성이다. AI가 위험한 이유는 거짓을 완벽하게 만들어서만이 아니다. 인간이 원래부터 빈칸을 메우고, 사건들 사이에 동기를 부여하며, 인물과 갈등이 선명한 설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실의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매끄럽고 감정적으로 강하면 설득력이 생긴다. 하이더와 지멜의 도형들은 80여 년 전 이 취약성을 이미 드러냈다. ‘잘 쓰는 능력’보다 ‘속지 않는 능력’ 이야기 경쟁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서사 능력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가 강력한 만큼, 이를 검증하는 절차를 이야기 소비의 습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사실’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이 이야기는 누구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가 ▲핵심 주장에 원자료·원문·공식 통계가 실제로 연결되는가 ▲감정적으로 강한 장면과 인용이 전체 맥락을 대표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특히 AI가 요약하거나 재구성한 정보는 원 출처까지 거슬러 올라가 확인해야 한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서도 AI 챗봇으로 뉴스를 접하는 이용자 중 원문 출처를 ‘항상 또는 자주’ 클릭해 확인한다는 비율은 42%였다. 한국 응답자의 경우 그 비율은 56%로 조사 대상 시장 가운데 높은 편이었다. 이는 AI 요약을 최종 정보가 아니라 탐색의 출발점으로 쓰려는 이용 행태로 읽을 수 있다. 애슈턴의 책이 던지는 결론은 단순하다. 인간은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 모닥불 앞의 구전에서 스마트폰 화면의 숏폼 영상까지, 이야기는 늘 더 빠르고 더 넓게 퍼지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하지만 기술이 이야기의 생산과 유통을 민주화할수록 진실의 권위가 자동으로 민주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독자에게 필요한 문해력은 ‘잘 만든 이야기’를 알아보는 감각을 넘어, 그 이야기의 빈칸과 출처, 누락된 반대 증거까지 확인하는 습관이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10월 첫째 월요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주거의 날(World Habitat Day)’이다. 도시는 누구를 위해 설계돼야 하는지, 인간에게 안전하고 적절한 집이란 무엇인지, 고층 아파트와 스마트시티가 만든 공간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40도 아래로 내려가고, 일부 지역에서는 영하 50도에 이르는 몽골 대초원에도 ‘적정 주거’에 대한 오래된 답이 있다. 목재 골조 위에 양털 펠트를 덮은 둥근 집, 게르다. 유엔해비타트는 2026년 세계 주거의 날의 화두로 ‘모두를 위한 적정 주거(Adequate Housing for All)’를 제시했다. 이는 집을 단순한 건물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안전·건강·에너지·공기·돌봄·존엄을 보장하는 삶의 기반으로 보자는 제안이다. 게르는 바로 이 질문의 가장 극적인 사례다. 이동 가능한 펠트 주거는 초원의 바람과 한파에 적응한 지혜였지만, 오늘날 석탄 난방과 실내외 미세먼지, 낮은 단열 성능이라는 현실적 한계도 동시에 안고 있다.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뉴스스페이스는 영하 50도의 겨울을 건너온 몽골 게르를 통해 다시 묻는다. 인간을 지키는 집은 얼마나 두꺼운 벽을 가져야 하는가. 혹은 집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벽의 성능만이 아니라, 꺼져가는 불씨를 살피는 손길과 계절의 위험을 피해 움직이는 지혜, 서로를 안쪽으로 들이는 공동체의 질서에 있는 것은 아닐까. 영하 50도, 초원은 집을 시험했다 몽골의 겨울은 ‘춥다’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륙성 기후와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권에 놓인 몽골에서는 일부 지역의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내려갈 수 있다. 2023년 말부터 이어진 2023~2024년 겨울에도 장기간 영하 40도 이하의 추위가 이어졌고, 폭설·빙설·한파가 결합한 재난성 혹한인 ‘조드(dzud)’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유엔의 몽골 조드 대응계획에 따르면 2024년 2월 기준 몽골 21개 주 가운데 81%에 해당하는 지역이 조드 또는 조드 위험 상태에 놓였다. 이런 극한의 몽골 초원 추위속에서 양털 펠트와 둥근 골조, 남향 출입구, 중앙 화로, 계절별 이동, 가족의 야간 불 관리가 결합해 만든 생활 시스템이 바로 게르다. 이 전통 주거양식은 몽골 민족의 적응력과 동시에 연료·환기·실내공기라는 혹독한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 게르를 단순히 ‘몽골식 텐트’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몽골어로 ‘게르(гэр)’는 본래 ‘집’ 혹은 ‘가정’을 뜻한다. 유목민에게 게르는 잠시 머무는 천막이 아니라, 가축·가족·노동·신앙·환대의 규칙을 한 몸에 담은 이동 가능한 생활 단위다. 유네스코는 게르를 목재 격자벽, 지붕살, 천장 고리, 펠트와 천으로 덮고 끈으로 조여 만든 원형 구조로 설명하며, 가볍고 접을 수 있어 유목 생활에 적합한 주거라고 평가했다. 몽골 게르 제작기술과 관련 관습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그러나 ‘영하 50도를 견디는 집’이라는 문장도 절반만 맞다. 게르는 한파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고성능 단열주택이 아니라, 제한된 재료와 이동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열을 만들고, 바람을 피하고, 습기를 관리하고, 가족 구성원의 위치와 행동까지 조절해 추위를 버텨낸 집이었다. 다시 말해 게르의 핵심은 두꺼운 벽 하나가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유목의 운영 기술이었다. 둥근 집은 바람과 싸우지 않는다 게르의 첫 번째 생존 기술은 ‘둥글다’는 데 있다. 평평한 벽과 뾰족한 모서리는 바람의 압력을 한곳에 받지만, 원형 외피와 낮은 돔형 지붕은 바람이 구조물 주변을 따라 흘러가도록 한다. 초원의 강풍을 정면에서 막아 세우기보다, 바람이 표면을 스쳐 지나가게 만드는 방식이다. 목재 격자벽인 ‘하나(khana)’를 원형으로 펼치고, 중심의 천장 고리인 ‘토노(toono)’에서 방사형 지붕살을 내려 연결하는 구조는 하중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하는 효과도 낸다. 출입문은 전통적으로 남쪽 또는 남동쪽을 향한다. 이는 북쪽과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차고 강한 바람을 피하고, 낮 동안의 햇빛을 최대한 받아들이기 위한 기후 적응 설계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게르의 문이 대체로 남쪽을 향하고, 북쪽 공간은 제단이나 존경받는 손님·연장자를 위한 자리로 기능했다고 설명한다. 이 배치는 단순한 방향 감각이 아니라, 열·빛·위계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질서다. 게르 중앙에는 난방과 조리를 담당하는 난로가 놓인다. 문 반대편인 북쪽의 ‘호이모르(khoimor)’는 가장 명예로운 자리로, 가족의 제단·사진·귀중품을 놓거나 어른과 손님을 모시는 공간이 된다. 동쪽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생활·조리 공간, 서쪽은 남성의 도구·안장·마구 등을 두는 공간으로 구분돼 왔다. 따라서 “외풍이 덜 드는 안쪽에 어르신을 먼저 모셨다”는 서사는 큰 틀에서 문화적 사실과 부합한다. 다만 이를 현대적 열역학의 정밀 측정 결과처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북쪽이 가장 존귀한 장소였다는 점은 여러 문화·민속 자료에서 확인되지만, 그 자리가 모든 게르에서 항상 가장 따뜻했다는 정량 연구 근거는 제한적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북쪽 자리는 출입문에서 멀고 사회적으로 가장 보호받는 위치였으며, 공간의 위계가 한파 속 돌봄의 질서와 연결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펠트는 방패였지만, 완벽한 벽은 아니었다 게르의 외피는 주로 양털을 압축해 만든 펠트, 방수·방풍용 천, 끈으로 구성된다. 펠트는 섬유 사이에 공기를 품어 열의 이동을 늦추는 재료다. 겨울에는 펠트 층을 늘리고, 여름에는 덮개를 줄이거나 벽 하단을 들어 올려 통풍을 확보한다. 즉 게르는 계절에 따라 외피를 조정하는 ‘가변형 주택’이었다. 하지만 펠트가 있다고 해서 게르가 고단열 주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은행이 울란바토르 게르 지역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게르의 약 3분의 2는 벽과 지붕 모두에 이중 펠트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벽이나 지붕 한쪽에만 이중 펠트를 사용했다. 이 수치는 게르 주민들이 혹한기에 펠트 층을 늘려 열손실을 줄이려 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전통 게르는 틈새바람과 열손실에 취약하다. 세계은행의 난방 조사 보고서는 펠트·목재 골조·단순 천 외피로 구성된 게르가 열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기 어렵고, 외부 공기의 침입에 따른 열손실이 패널형 아파트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펠트는 습기를 먹으면 성능이 떨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로 인해 교체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게르의 겨울은 결국 화로의 열에 크게 의존했다. 난로는 중앙에서 조리와 난방을 동시에 담당하고, 굴뚝은 천장 고리 부근으로 빠져나간다. 밤에 불이 꺼지면 실내 온도는 빠르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벽에 일어나 불씨를 살피고 연료를 더하는 행위는 낭만적 풍경이기 전에, 생존을 좌우하는 노동이었다. 말린 배설물, 연료가 된 초원 나무가 희소한 초원에서 연료는 숲이 아니라 가축에서 나왔다. 소·양·염소·야크·낙타 등의 배설물을 말린 ‘아르갈(argal)’은 전통적으로 난방과 취사에 쓰였다. 이는 버려지는 유기물을 다시 에너지로 전환한 순환경제의 사례로 볼 수 있다. 가축은 이동·식량·의복의 원료일 뿐 아니라, 겨울의 불을 지키는 연료 체계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를 이상화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울란바토르 외곽 게르 지구에서는 전통 연료보다 석탄과 목재에 의존하는 가구가 많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몽골 수도 인구의 절반가량이 게르에 거주하며, 겨울철 난방을 위해 원탄을 태우는 것이 11월부터 4월까지 대기오염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미세먼지 농도는 WHO 권고치의 8~14배 수준까지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실내 공기 역시 문제다. 2018년 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에 실린 현장 측정 연구는 울란바토르의 석탄 난방 게르 60곳을 조사해, 겨울철 실내 초미세먼지(PM2.5) 24시간 평균이 236.1±112.1㎍/㎥였다고 보고했다. 전통 난로 사용 게르는 평균 203.9±195.1㎍/㎥, 이른바 개량 난로 사용 게르는 257.5±204.4㎍/㎥로 측정됐다. 30분 평균은 최고 797.2㎍/㎥까지 치솟았다. 이는 게르가 ‘따뜻함’과 ‘깨끗한 공기’를 동시에 확보하기 어려운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천장 고리인 토노는 빛을 들이고 연기를 빼내며 공기를 순환시키는 장치다. 그러나 환기구를 열면 열도 빠져나가고, 닫으면 연기와 습기가 머문다. 혹한의 주거는 언제나 열 보존과 환기 사이의 줄다리기였다. 게르의 작은 천장 창은 낭만적인 하늘의 프레임이면서 동시에, 연기 배출과 호흡을 위한 생명선이었다. 최근 연구는 해법의 방향도 보여준다. 2023년 센서 기반 실내공기 연구는 단열을 보강한 게르에서 PM2.5가 17.5% 감소했고, 단열과 석탄·전기 병용 시 19.1%, 난방과 조리를 모두 전기로 전환한 경우 48%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다만 전기만 사용한 경우에도 측정된 실내 PM2.5는 WHO 권고 수준보다 6.4배 높았다. 단열 보강, 청정 에너지, 도시 외부 대기질 개선이 동시에 필요한 이유다. 게르를 따뜻하게 한 것은 이동이었다 게르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건축 자체보다 ‘움직일 수 있음’에 있다. 유목은 기후와 목초의 변화를 읽고, 봄·여름·가을·겨울의 목초지를 달리 쓰며, 가축과 함께 생활권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한 장소에 고정된 벽을 두껍게 세우는 대신, 계절마다 바람을 덜 맞는 곳, 물과 풀을 구할 수 있는 곳, 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곳을 찾아 이동했다. 유엔개발계획(UNDP) 관련 자료는 몽골 유목 가구가 봄·여름·가을·겨울 캠프를 구분해 활용해 왔으며, 온화한 해에도 한 가구가 15~20회, 경우에 따라 20회 이상 이동할 수 있다고 기록한다. 이는 관광 콘텐츠에서 흔히 말하는 ‘연 2~4회 이동’보다 훨씬 세분화된 이동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동 횟수는 지역·가축 구성·가구 노동력·기상 조건에 따라 다르므로, 특정 숫자를 몽골 유목민 전체의 평균처럼 쓰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이동은 단순한 생활양식이 아니라 위험 분산 전략이다. 겨울의 조드는 깊은 눈이나 얼음층이 풀을 덮어 가축이 먹이를 먹지 못하게 하는 재난이다. 2023~2024년 조드 기간에는 2024년 3월 기준으로 가축 폐사가 520만 마리에 이르렀고, 몽골 국토의 80% 이상이 두꺼운 눈으로 덮였다는 유엔 자료가 나왔다. 게르를 해체하고 옮길 수 있다는 것은 단지 편리함이 아니라,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적응 자산이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게르는 ‘가난한 천막’이 아니라,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 경량성·수리성·해체성·계절 적응성을 결합한 이동식 인프라다. 현대 건축이 최근 들어 강조하는 모듈러, 순환자재, 저탄소 재료, 가변형 공간, 기후 적응 설계의 상당 부분을 유목민은 오랜 시간 일상의 기술로 실천해 왔다. 불씨를 지키는 집, 관계를 지키는 집 게르의 둥근 형태는 물리적으로는 바람을 흘려보내는 구조이고, 문화적으로는 공동체를 한 중심으로 모으는 구조다. 중앙의 불은 난방 장치이면서 조리대이고, 가족의 일과가 모이는 생활 중심이며, 손님을 맞는 환대의 시작점이다. 불을 관리하는 사람의 노동, 젖은 펠트를 말리고 낡은 덮개를 갈아 끼우는 손길, 가축 배설물을 모아 말리는 시간, 바람을 피할 겨울 캠프를 택하는 판단이 한데 모여 겨울을 버틴다. 그래서 “게르는 따뜻했다”는 문장은 건축 재료만의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즉 "게르는 충분히 따뜻한 벽을 가진 집이기보다, 열을 만들어내고 잃지 않으려는 가족의 노동, 환경에 맞춰 이동하는 유목의 리듬, 그리고 공간에 배치된 돌봄의 질서가 있을 때 비로소 견딜 만한 집"이 정확한 표현이다. 오늘날 게르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태운 석탄이 공기를 오염시키고 건강을 위협한다면, 전통을 보존한다는 것은 옛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전통의 본질인 적응력과 공동체성은 살리되, 단열·전기 난방·청정에너지·환기 기술을 결합해 ‘더 건강하게 겨울을 건너는 게르’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알베르 카뮈는 “한겨울의 한가운데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굴복하지 않는 여름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썼다. 초원의 게르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비슷하다. 영하 50도의 겨울을 이긴 것은 완벽한 벽이 아니었다.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리고, 바람을 피해 길을 바꾸고, 가장 약한 이를 안쪽에 앉히며, 서로의 체온과 노동을 나눈 사람들이었다. 게르는 그 마음과 기술을 담아낸 둥근 그릇이었다.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농심 창업주 고(故) 신춘호 회장의 손자이자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농심 부사장이 9월 13일 서울 장충동 서울신라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농심의 대표 제품인 '신라면'을 들고 웨딩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심 오너가 3세인 신상열 농심 부사장이 SK텔레콤 인공지능 전환(AX)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는 문모 씨와 결혼했다. 신부의 아버지는 문유석 전 부장판사 겸 작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작가는 1997년 판사로 임용돼 약 23년간 법관으로 근무한 뒤 2020년 법원을 떠났으며, 법조 경험을 바탕으로 에세이 《판사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소설 《미스 함무라비》 등을 냈다. 이후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tvN 《악마판사》의 극본을 쓰고 디즈니+ 《비질란테》에는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이번 결혼을 두고 ‘재계 혼맥 공식에서 벗어난 결혼’이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업계에 따르면 신 부사장의 결혼식은 13일 오후 6시부터 서울신라호텔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양가 가족과 친지, 지인을 비롯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등 일부 재계 인사들만 참석했다. 가족관계인 고 신춘호 농심 창업주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오뚜기가 함태호 명예회장 서거 10주기를 맞아 9월 11일 경기도 안양시 함태호홀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 이번 추모식은 오뚜기를 창업해 국내 식품산업 발전을 이끈 함태호 명예회장의 삶과 발자취를 돌아보고, 평생 강조해 온 품질제일주의와 식생활 향상을 위한 사명감, 나눔의 정신 등 창업자의 경영철학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함태호 명예회장은 1930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6·25전쟁 당시 자원입대해 군 복무를 마친 뒤 식품산업을 통해 국민의 삶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품었다. 이후 식품원료 제조업체에서 경영 경험을 쌓고 1969년 오뚜기의 전신인 풍림상사를 설립했다. 같은 해 ‘오뚜기 카레’를 시작으로 스프, 케챂, 마요네스, 식초 등 다양한 식품을 잇따라 선보였으며, 이후 ‘오뚜기 3분 카레’로 대표되는 즉석식품을 통해 국내 식문화 발전을 이끌었다. 함 명예회장은 “우리는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경영 전반에서 ‘품질’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동시에 식품의 질을 높여 나라 발전에 기여한다는 ‘식품보국(食品輔國)’의 정신과 함께 “기업은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KAIST가 배충식 총장 체제 출범과 함께 AI를 교육·연구·창업·행정·에너지 인프라 전반에 관통시키는 ‘AI 네이티브 캠퍼스’ 전환을 본격화한다. 핵심은 단순한 AI 교과 확대가 아니라, 전 과목의 AI 활용 원칙부터 산학 공동연구, 신입생 창업교육, 행정 자동화, 글로벌 공동연구까지 대학의 작동 방식을 재설계하는 데 있다. KAIST는 8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이 강한 글로벌 혁신 선도대학(Fundamentals First, Innovation Forward)’ 비전을 실행하기 위한 5대 혁신 전략, 이른바 ‘Beyond Series’의 세부 과제를 공개했다. Beyond AI·Beyond Laboratory·Beyond Barriers·Beyond Carbon·Beyond KAIST를 중심축으로 교육과 연구, 창업, 제도, 캠퍼스, 국제화를 동시에 개편하겠다는 구상이다. AI 교육, ‘활용’ 넘어 설계 역량으로 이번 로드맵의 가장 큰 특징은 AI를 컴퓨터공학이나 인공지능 전공자의 전문영역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갖춰야 할 공통 언어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KAIST는 모든 교과목을 AI 활용 정도와 교육 목적에 따라 3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덴마크 프리미엄 매트리스 브랜드 ‘템퍼(TEMPUR)’는 템퍼코리아 신임 대표이사로 박성희 대표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박성희 대표는 글로벌 소비재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로, 디아지오, 월트디즈니컴퍼니, 테일러메이드, 리복, 아디다스 등 유수의 기업을 거쳤다. 특히 아디다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스포츠 사업부를 담당하며 성과를 이끌었으며, 혼마골프 코리아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다양한 리더십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박성희 대표는 "템퍼의 철학은 좋은 제품을 넘어 최고의 수면 환경을 제안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 소비자들이 템퍼를 통해 진정한 휴식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브랜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LG CNS가 7~10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리는 '2026 퍼스트 글로벌 챌린지(FIRST Global Challenge)'에 공식 후원사로 참가한다. 퍼스트 글로벌 챌린지는 미국 비영리재단 퍼스트 글로벌이 2017년부터 진행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청소년 국제 로봇 대회다. 올해는 190여 개 국가 청소년 대표팀이 참가해 산불 예방·대응을 위한 로봇 설계·제작 역량을 겨룬다. 이번 행사에서 LG CNS는 글로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IT 교육 사회공헌 프로그램 'AI지니어스' 기반의 체험 부스를 운영한다. 청소년들은 자율주행 로봇 교구를 직접 코딩해 주행시키며, LG CNS의 글로벌 사업을 체험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한국 미션에서는 로봇 기반의 물류 설비 작동, 미국에서는 양품 수거해 피킹 로봇으로 전달하는 공정, 싱가포르에서는 보안 인증을 거쳐 송금하는 스마트금융, 그리스에서는 카드 태깅으로 버스를 출발시키는 스마트교통을 체험한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AI가 만든 이미지 아닌가요?” 거대한 붉은 태양이 겨울나무의 잔가지 사이에 정교하게 끼어들고, 검은 실루엣의 줄기와 가지가 태양 표면 위에 혈관처럼 퍼져 있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나무가 해를 둥근 관 속에 가두거나, 태양을 열매처럼 매달아 둔 장면에 가깝다. 지나치게 정확한 대칭과 비현실적인 색감 탓에 온라인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이미지라는 의심도 뒤따랐다. 하지만 SNS를 통해 확산된 이 이미지는 스위스 사진가 토비아스 메세를리(Tobias Messerli)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메세를리는 스위스 베른 인근의 우치겐(Utzigen) 부근에서 나무와 태양의 일직선 배치를 탐색한 뒤, 나무에서 약 1.5km 떨어진 지점에 카메라를 세우고 장망원 렌즈로 촬영했다. 이 거리와 장초점 촬영이야말로, 실제 크기보다 훨씬 거대한 태양이 나무의 수관 안에 꽉 찬 것처럼 보이게 만든 핵심 조건이다. 촬영 날짜, 정확한 촬영 지점 좌표, 원본 파일의 EXIF 메타데이터, 사용 카메라와 렌즈의 공식 확인값은 현재 공개 검색 결과만으로는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과거 같은 구도의 ‘Sun Tree’ 이미지와 관련해 니콘 D5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에버랜드가 세계 코끼리의 날(8월 12일)을 맞아 로스트밸리의 아시아코끼리 3마리에게 특식을 제공하고 관람객 참여 행사를 시작했다. 다만 멸종위기종 보전이라는 캠페인의 무게는 이벤트의 화제성보다 야생 개체군 회복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성과 지표에 달려 있다. [지구칼럼] '코끼리' 어디까지 아시나요?…하얀 코끼리·상상·엘리펀트 워크·유예·장례식·사슬 증후군·도자기 상점 특식과 인형 찾기, ‘보전 메시지’의 출발점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에버랜드는 12일 세계 코끼리의 날을 맞아 로스트밸리에서 생활하는 아시아코끼리 코식이, 하티, 우다라에게 과일과 얼음 등을 활용한 특식을 제공했다. 오는 17일까지 탐험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숨겨진 코끼리 인형을 찾아 촬영한 뒤 보전 메시지와 함께 네이버 카페에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인형을 제공하는 고객 참여 행사도 진행한다. 세계 코끼리의 날은 매년 8월 12일 코끼리 밀렵, 상아 불법거래, 서식지 훼손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제정된 국제 캠페인이다. 그러나 ‘코끼리 보호’라는 구호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상징성에 있지 않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아시아코끼리를 멸종위기(Enda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도심 골목과 지방 소도시를 가리지 않고, 간판은 오늘도 묵묵히 장사를 돕는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좁혀보면, 그 간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유머 감각과 언어 감수성, 그리고 생존 본능을 드러내는 ‘거리의 텍스트’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정직하게 웃긴 상호부터 아슬아슬한 언어유희, 저작권 의식을 비껴간 캐릭터 활용까지, 2020년대 한국 골목 상권의 초상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고기집·닭발집·샤브샤브…말장난이 곧 마케팅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식당 간판들이다. “내동 생고기”라는 고깃집은 동네 지명을 정직하게 차용했을 뿐인데, 자칫 “내 동생 고기”로 읽히는 중의성을 품고 있어,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두 번 잡아끈다. 비슷한 결의 장난기는 “이런 씨 볼닭발”에서 극대화된다.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욕설의 리듬을 비켜가며, ‘씨’와 ‘볼’ 사이에 닭발을 끼워 넣어 합법적 언어유희로 승화시킨 셈이다. 샤브샤브 집 “쿵따리 샤브샤브”는 1990년대 인기 트로트 ‘쿵따리 샤바라’를 연상시키며, 세대 공감형 상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음악적 기억을 호출하는 이름 하나로, 가게는 단순 외식 공간을 넘어 ‘향수의 장소’가 된다. “계돼지”라는 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