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서울에서 가장 비싼 주거지의 상징이 된 압구정동은 한명회(1415~1487)의 정자 이름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오늘의 동호대교 남단에 자리했던 그 정자는 처음부터 강남에 있지 않았다. 조선 전기 기록과 서울역사박물관의 여의도 조사에 따르면, 한명회의 첫 압구정은 마포 서쪽·양화진 북쪽의 ‘화도(火島)’, 곧 지금의 여의도 일대에 있었다. 이후 1476년 한명회는 정자를 동호(東湖)가 내려다보이는 강남 언덕으로 옮겼다. 한명회가 왜 여의도에서 동호로 정자를 옮겼는지를 직접 밝힌 동시대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동호 남쪽 언덕은 한강 물길과 저자도, 도성 주변 산세를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풍광과 접근성, 그리고 당대 권문세가의 한강변 별서 문화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동의 경로는 단순한 별장 이전이 아니다. 여의도에서 동호로, 조선의 권력 중심 가까이에서 한강 동부의 명승으로, 그리고 ‘갈매기와 친한다’는 은거의 언어에서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권력의 무대로 옮겨간 이야기다. 압구정은 자연 속에 숨으려 했던 정자가 아니라, 한명회가 자신의 퇴장과 영향력을 동시에 연출한 정치적 공간에 가까웠다. “여의도에 솟은 언덕”이라는 원사료 압구정의 여의도 기원은 최근의 흥미 위주 설화가 아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20년 발간한 『여의도, 방송과 금융의 중심지』 조사와 후속 전시를 통해 “현재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었던 것으로 잘 알려진 압구정은 처음에는 여의도에 있었다”고 정리했다. 박물관은 김수온의 「압구정기」와 서거정의 「압구정부」를 여의도 시기 압구정을 보여 주는 핵심 기록으로 제시한다. 특히 김수온의 「압구정기」는 위치를 꽤 구체적으로 적는다. 왕도에서 남쪽으로 약 5리, 양화진 북쪽과 마포 서쪽에 “언덕 하나가 우뚝 솟아” 있고 강물이 둘러싼 곳, 세상에서 화도라 부르던 자리라는 것이다. 화도는 잉화도·여화도 등으로도 불렸고, 오늘날 여의도에 비정된다. 정자는 원래 황폐한 목초지와 방목지였던 이 언덕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 기록을 따르면 첫 압구정의 정확한 필지는 현재의 행정지도로 특정하기 어렵다. 여의도는 한강의 퇴적과 제방·매립·도시개발을 거치며 지형이 크게 달라졌고, 1968년 윤중제 공사 이후 현대적 섬의 윤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63빌딩 자리"라는 가설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현존 문헌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첫 정자가 마포의 서쪽, 양화진의 북쪽, 한강에 둘러싸인 화도 언덕에 있었다는 점은 사료가 가리키는 가장 신뢰도 높은 좌표다. 여의도는 오늘날 국회·한국거래소·방송국·63빌딩의 섬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가축을 기르던 섬으로도 기록된다. 한명회의 첫 압구정은 지금의 정치·금융·방송 중심지에 들어서기 훨씬 전, 국가의 주변부이자 강변의 비생산적 여백으로 취급되던 모래섬·목장 지대에 세워졌던 셈이다. 1476년, ‘은거’가 동호의 권력 무대로 한명회가 압구정을 여의도에서 두모포 건너 강남 언덕, 즉 동호 조망권으로 옮긴 시점은 1476년(성종 7)으로 정리된다. 이곳은 오늘날 동호대교 인근, 현대아파트 단지 72·74동 일대이며, 현재는 정자 자체가 사라지고 표석만 남아 있다. 동호의 새 압구정은 풍광만을 위한 선택으로 보기 어렵다. 높은 언덕에서 저자도와 한강을 내려다보고, 강 건너 뚝섬과 살곶이벌, 멀리 삼각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장소였다. 겸재 정선의 「압구정도」가 전하는 것도 바로 이 지형이다. 높은 언덕 위에 난간을 두른 비교적 큰 정자, 한강과 산세를 배경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건축물이다. 압구정이라는 이름도 흥미롭다. ‘친할 압(狎)’과 ‘갈매기 구(鷗)’를 써서, 벼슬을 버리고 강촌에 묻혀 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명나라 한림학사 예겸이 한명회의 요청을 받고 이름과 기문을 지어줬다는 전승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름의 윤리와 정자의 실제 기능은 서로 충돌했다. 새 압구정은 은퇴자의 소박한 초가가 아니라 조선과 명나라의 고위 인사가 주목하는 외교·사교의 무대였다. 중국 사신들은 압구정 방문과 연회를 원했고, 한명회는 이를 접대하는 과정에서 국가 시설과 장막까지 요청했다. 한명회가 “신의 정자는 본래 좁다”며 정자 옆 평탄한 터에 큰 장막을 설치해 달라고 청하자, 성종은 제천정에서 연회를 열라고 하며 사실상 거절했다. 이 장면은 매우 현대적이다. 개인 소유의 고급 한강 조망 공간이 외빈 접대와 권력 과시의 장소가 되고, 그 행사 비용과 시설 지원을 공적 시스템에 요구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정자는 사유재산이지만, 그 운영은 공적 권위와 자원을 빌려야 완성되는 구조였다. 갈매기와 권력의 역설 “갈매기와 벗한다”는 말은 동아시아 문학에서 기심(機心), 즉 계산과 권모를 버린 사람만이 자연과 친해질 수 있다는 은거의 상징이다. 김수온의 글에도 한명회는 갈매기를 두고 천지와 강해를 집으로 삼고, 풍월을 생애로 삼는 한가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이상은 한명회의 정치 이력과 너무 선명하게 대비된다. 한명회는 1453년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 1등이 됐고, 단종 복위운동을 진압한 뒤 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두 딸은 예종의 장순왕후와 성종의 공혜왕후가 됐으며, 성종 즉위 뒤에는 원상으로 국정을 결재했다. 그의 정점은 개인적 풍류와 공적 권력이 거의 구분되지 않는 지점이었다. 성종 7년 실록에는 한명회가 성종에게 친정을 돌려주는 문제에 개입하고, 조정이 그의 위세를 두려워한다는 취지의 유자광 상소가 남아 있다. 상소는 한명회를 성종의 장인이자 중시되는 신하라고 지목하면서, 그 권세 때문에 조정 인사들이 비판을 피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당시의 한명회가 이미 “자연으로 돌아간 원로”라기보다, 왕권 이양과 조정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한 실세였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압구정은 한명회의 겸양이 아니라 자기 이미지 관리의 장치로 읽을 수 있다. 권력자는 종종 “이제 떠나겠다”는 언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극대화한다. 한명회의 경우에도 은거의 이름을 붙인 정자가 조선과 명나라의 시인·사신·관료가 모이는 명소가 되었고, 성종이 직접 시를 내릴 만큼 국가적 이벤트가 됐다. 은퇴는 권력의 반대말이 아니라, 권력을 미학적으로 재포장하는 방식이 될 수 있었다. 정자가 남긴 것은 동네 이름뿐인가 한명회는 1487년 사망한 뒤, 1504년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의 폐출·사사 과정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를 당했다. 한때 왕조의 핵심을 움직였던 공신이 죽은 뒤에도 정치적 단죄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1506년 중종반정 뒤에는 연산군 때의 처분이 번복돼 관작과 명예가 회복됐다. 이를 사료에서는 신원으로 표현한다. 한 인물의 사후 평가마저 정권교체에 따라 뒤집힌 셈이다. 압구정 역시 같은 운명을 겪었다. 조선 말 박영효의 소유였던 정자는 갑신정변 실패 뒤 훼철된 것으로 전한다. 이후 1970년대 말 영동개발과 현대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정자 터도 사라졌고, 현재는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의 표석만 남았고, ‘압구정’이라는 이름만이 부동산·소비·한강 조망·재건축의 브랜드로 살아남았다. 오늘의 압구정은 조선시대 정자의 물리적 흔적보다 그 이름이 만들어낸 상징자본이 훨씬 큰 곳이다. 2025년 말 기준 부동산R114 집계에서 압구정동 재건축 아파트의 3.3㎡당 평균 매매가격은 1억4068만원으로 제시됐고, 2026년 7월에는 신현대 12차 전용 182㎡가 112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압구정은 이제 ‘갈매기와 친한 정자’가 아니라, 한강 조망과 희소성, 재건축 기대를 화폐로 환산하는 도시의 최상단에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한명회의 압구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소는 여의도에서 동호로, 정자에서 아파트 단지로, 권신의 별서에서 초고가 자산으로 바뀌었지만 구조는 낯설지 않다. 한강의 경관을 선점하고, 그 경관을 지위와 영향력의 언어로 바꾸며, 사적인 소유와 공적인 상징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압구정의 진짜 질문은 “한명회가 왜 여의도에서 동호로 옮겼나”에만 있지 않다. 갈매기와 벗하겠다는 사람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을 선택했을 때, 그 풍경은 자연이 아니라 권력이 된다. 여의도의 첫 압구정과 오늘의 압구정동 사이에는 약 550년의 시간이 놓여 있지만, 한강을 바라보는 인간의 욕망은 놀랄 만큼 같은 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분명 영어인데 한국말처럼 들린다.” 팝송의 한 구절이 엉뚱한 한국어 문장으로 꽂히거나, 게임 속 일본어 대사가 배우 이름과 일상어의 조합처럼 들리는 경험은 단순한 청각 실수가 아니다. 이처럼 외국어인데 낯선 말이 아니라 ‘내 언어의 문장’으로 들리는 현상을 언어학에서는 이를 몬더그린(mondegreen), 더 정확히는 외국어를 모국어의 소리 체계로 재해석하는 ‘언어 간 몬더그린(cross-linguistic mondegreen)’이라 부른다. 귀가 틀린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소리를 만난 뇌가 가장 그럴듯한 의미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다. 몬더그린은 “가사를 잘못 들었다”는 가벼운 농담의 소재를 넘어, 인간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기억·기대·언어 습관을 통해 구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은 인지 실험이다. 외국어가 한국어처럼 들리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언어를 듣는 동시에 자기 언어의 경계와 상상력을 듣고 있는 셈이다. 풀밭에 누운 백작과 ‘몬더그린 부인’ 용어의 출발 자체가 오청(誤聽)의 산물이다. 미국 작가 실비아 라이트는 1954년 하퍼스 매거진에 실은 글에서 스코틀랜드 발라드 「The Bonny Earl of Moray」의 구절을 어린 시절 잘못 들은 기억을 소개했다. 원래 가사는 “They have slain the Earl o’ Moray / And laid him on the green”, 즉 “그들은 모레이 백작을 죽여 풀밭에 눕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라이트의 귀에는 “They have slain the Earl o’ Moray / And Lady Mondegreen”, 곧 “모레이 백작과 몬더그린 부인을 죽였다”로 들렸다. 존재하지 않던 비극적 여인 ‘레이디 몬더그린’이 탄생했고, 그 이름이 이후 ‘의미 있는 다른 문장으로 잘못 듣는 현상’의 고유명사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오독이 무작위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laid him on the green”이라는 연속된 소리는 청자에게 낯선 문법 구조보다 “Lady Mondegreen”이라는 고유명사처럼 더 자연스럽게 조직됐다. 소리는 물리적으로 귀에 들어오지만, 단어와 문장은 뇌가 구성한다. 몬더그린은 청각이 단순 녹음기가 아니라 예측 장치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뇌는 빈 소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말소리는 원래 경계가 희미하다. 실제 대화에서 단어 사이에는 공백이 들리지 않고, 앞뒤 음이 서로 영향을 주는 연음과 동화가 발생한다. 노래에서는 여기에 멜로디, 박자, 고음, 반주, 리버브, 가수의 발성까지 겹친다. 청자는 파편화된 음향 신호를 받아 “무슨 말일 법한가”를 추론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두 경로가 작동한다. 하나는 소리에서 음소와 단어를 추출하는 상향식 처리이고, 다른 하나는 청자의 어휘, 기억, 문화적 맥락, 예상 문장을 동원하는 하향식 처리다. 외국어를 들을 때는 상향식 단서가 부족해지므로, 뇌는 모국어 어휘와 음운 규칙을 더 강하게 동원한다. 낯선 소리가 한국어 음절의 리듬과 익숙한 단어 조각에 맞아떨어질 경우, 뇌는 그 빈칸을 즉시 ‘한국어 문장’으로 메운다. 독일어 모국어 화자 23명을 대상으로 영어·독일어 노래 클립을 들려준 실험은 이 현상을 수치로 확인했다. 같은 언어 안에서 가사를 다르게 듣는 경우는 전체 시행의 평균 42.6%, 외국어 가사가 모국어처럼 들리는 언어 간 오청은 평균 33.5%에서 나타났다. 다만 곡과 청자에 따른 편차는 매우 컸다. 언어 간 오청은 자극별로 4.4%에서 82.6%, 개인별로 9.8%에서 85.4%까지 벌어졌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지만, 어떤 음성·어떤 언어 경험·어떤 기대를 지녔는가에 따라 빈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특히 대체 가사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경우 언어 간 오청 발생률은 74.0%였고, 처음 접한 대체 가사에서는 30.0%였다. 한 번 “그렇게 들린다”는 자막이나 밈을 본 뒤에는 원래 가사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시각 정보와 사회적 공유가 귀의 해석을 재교육하는 것이다. 노래는 왜 말보다 쉽게 흐려지는가 노래는 몬더그린의 최적 환경이다. 말은 의미 전달을 위해 발음과 억양을 조절하지만, 노래는 음정·호흡·리듬·음색·감정 표현이라는 음악적 요구를 함께 충족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모음은 길게 늘어나고, 자음은 약화되며, 음절 경계는 박자 속으로 녹아든다. 음악가와 청취자 143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익숙한 언어로 된 노랫말을 이해하는 능력을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61.1%였지만 낯선 언어에서는 16.8%에 그쳤다. 응답자들은 가사 명료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발음·조음, 반주와 보컬의 음량 균형, 공연장 음향, 청자의 주의력과 청력, 장르 등을 꼽았다. 총 851개의 응답 단위 가운데 연주자 관련 요인이 34%, 환경 요인이 29%, 청자 요인이 24%를 차지했다. 가사를 못 알아듣는 일은 단지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리의 생산·전달·수용 조건 전체가 얽혀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고음은 문제를 더 키운다. 중국어 노랫말의 명료도를 조사한 한 연구에서 음악 훈련을 받은 청취자의 평균 단어 식별 점수는 84.9%였지만, 음높이가 가장 높은 조건에서는 67.1%까지 낮아졌다. 음악 훈련이 없는 집단은 평균 77.4%, 최고 음높이 조건에서는 57.5%를 기록했다. 노래에서 음이 높아질수록 모음 구별이 어려워지고, 듣는 이는 더 많은 빈칸을 자신의 언어와 상식으로 채우게 된다. ‘류승룡 기모찌’와 밈의 사회적 청각 한국 인터넷 문화에서 몬더그린은 개인의 착청으로 끝나지 않는다. 짧은 영상, 자막, 댓글, 패러디가 결합하면서 하나의 공유 가능한 농담과 밈이 된다. 대표적으로 게임 「오버워치」의 일본어 대사 “류진노 켄오 쿠라에(용신의 검을 받아라)”가 “류승룡 기모찌”처럼 들린다는 사례는 음성의 유사성에 배우 이름, 일본어에 대한 대중적 친숙성, 게임 이용자의 반복 청취가 더해져 확산됐다. K팝도 국경을 넘으면 반대 방향의 몬더그린을 만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후렴 “오빤 강남스타일”이 영어권 이용자 사이에서 “open condom style”로 들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오청은 원곡의 풍자적 맥락과는 무관하지만, 발음의 덩어리를 영어 화자가 자기 언어의 어휘로 분절하면서 생긴다. 노래의 세계적 유통은 한 언어의 가사를 다른 언어권 청자가 재작사하는 거대한 집단 실험이기도 하다. 일본에는 이를 가리키는 고유한 문화어가 있다. ‘헛귀’ 또는 ‘잘못 들음’이라는 뜻의 소라미미(空耳)다. 일본 TV 프로그램 「소라미미 아워」는 시청자가 외국 노래를 일본어처럼 잘못 들은 가사를 보내면 이를 코믹 영상으로 재현하는 형식으로 오랫동안 대중화했다. 연구진이 이 프로그램에서 추출한 영어-일본어 몬더그린 60건, 음운 변화 1,079건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변화는 영어 소리를 일본어에 있는 소리로 바꾸는 ‘음성 대치’ 479건이었다. 외국어가 모국어처럼 들리는 과정은 즉흥적 농담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모국어의 음운 규칙이 질서 있게 작동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오류가 아니라 ‘창조적 번역’ 몬더그린을 단순히 오류라고만 규정하면 핵심을 놓친다. 그것은 듣기 실패인 동시에 뜻 만들기의 성공이다. 청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다. 자기 언어가 허용하는 음절, 자신이 이미 아는 낱말, 순간의 감정과 문화적 기억을 조합해 새 문장을 만든다. 원문에는 없던 ‘몬더그린 부인’이 탄생한 것처럼, 청취자는 빈 음향에 인물을 넣고 사건을 만들며 서사를 부여한다. 낯선 소리가 익숙한 문장으로 갑자기 응결할 때, 청자는 해독의 쾌감과 엉뚱한 의미가 주는 웃음을 동시에 경험한다. 철학적으로 보면 몬더그린은 우리가 세계를 ‘듣는’ 방식이 곧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음성 신호의 완전한 진실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제한된 감각 자료 위에 가장 그럴듯한 의미를 얹는 존재다. 그래서 같은 소리를 들어도 누군가는 원래 가사를 듣고, 누군가는 한국어 문장을 듣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잊지 못할 농담을 듣는다. 문화적으로도 몬더그린은 번역되지 않은 세계가 대중에게 들어오는 방식이다. 외국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는 결핍처럼 보이지만, 그 틈에서 패러디와 밈, 새로운 유행어와 공동체적 웃음이 생긴다. 다만 이 즐거움은 원문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노래의 정치적·사회적 맥락이 외국어 오청 밈에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건강한 몬더그린 문화는 “이렇게 들려서 웃기다”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 가사는 무엇이며 왜 이런 소리가 났는가”까지 되묻는 문화다. 외국어가 한국어처럼 들릴 때, 귀가 속은 것은 아니다. 낯선 소리를 자기 언어의 집으로 잠시 들여보낸 것이다. 몬더그린은 그 짧은 입주 과정에서 태어나는, 가장 인간적이고도 창조적인 청각의 오해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케냐 나이로비에서 한때 최소 4만명이 해외 대학생의 과제를 대신 쓰며 생계를 꾸리던 에세이 대필 시장이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 이후 사실상 붕괴했다. 다만 이를 단순히 ‘부정행위 산업의 소멸’로만 볼 수는 없다. 영어·인터넷·고학력 청년을 결합해 성장한 케냐의 온라인 긱 이코노미가 AI의 가장 초기이자 직접적인 대체 압력을 받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nytimes, reuters, bostonglobe, aiweekly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대학생의 에세이를 대신 써주던 케냐의 ‘그림자 작가(shadow scholar)’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한때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만 최소 4만명이 해외 학생의 과제와 논문을 대필하며 돈을 벌었지만, 2022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주문과 단가가 급락하면서 산업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케냐인들은 대학 에세이를 써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AI가 등장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어 능력과 저렴한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번성했던 케냐의 대학 과제 대필 산업이 불과 수년 만에 급격히 위축됐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2020년대 초반 전성기에는 나이로비에서만 적어도 4만명이 해외 학생의 숙제·리포트·에세이를 대신 작성하고 대가를 받았던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이 시장은 케냐의 고용 현실과 맞물려 성장했다. 영어가 공용어 중 하나인 데다 대학 졸업자를 중심으로 미국·영국식 학술 글쓰기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적지 않았고, 현지 임금보다 높은 달러화·파운드화 수입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 챗GPT는 대필 작가보다 훨씬 싸고, 빠르며, 거래 기록을 남기지 않는 대체재가 됐다. NYT가 인터뷰한 테레시오스 분디는 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2011년 케냐 농촌에서 나이로비로 올라와 대학에 진학한 뒤 에세이 대필 일을 시작했다. 공중보건학 학위를 취득한 뒤에도 전공 직업 대신 대필을 택했고, 과제 한 건당 40~70달러를 받았다. 그는 12년 동안 2,500편이 넘는 에세이를 작성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챗GPT가 출시된 뒤 시장의 계산법이 달라졌다. NYT는 해외 대학생들이 “챗GPT가 할 수 있는데 왜 케냐 프리랜서에게 돈을 내는가”라는 단순한 경제적 판단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대필 주문은 감소했고, 건당 단가는 내려갔으며, 기존 운영자들은 사업을 접기 시작했다. 전성기에 대필 작가 100명을 고용했던 리처드 에실라바는 결국 사업을 폐업했다. 소득 하락 폭도 뚜렷하다. 과거 월 900~1,200달러를 벌던 케냐 대필 작가들은 현재 월 500~800달러 수준을 받는다고 호소한다. 단순 비교로도 월소득이 약 33~56% 줄어든 셈이다. 수요 감소가 단가 하락과 경쟁 심화를 동시에 불러온 결과다. ‘불법 대필’ 이상의 충격 케냐의 에세이 대필 시장은 대학의 학업 윤리 측면에서 분명 문제가 있는 산업이었다. 타인의 과제물을 대신 제출하는 계약형 부정행위(contract cheating)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시장 관점에서는 AI가 비교적 고숙련에 속하는 지식노동까지 빠르게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대필 작가는 단순히 문장을 입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생이 제시한 주제를 해석하고, 자료를 찾고, 논지를 구성하고, 인용 형식에 맞춰 글을 작성해야 했다. 영어 작문 역량과 일정 수준의 전공 지식, 마감 관리 능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생성형 AI는 이 업무의 핵심 산출물인 ‘그럴듯한 문장과 논리 구조’를 단 몇 분 만에 만들어내며 인간 노동의 가격 우위를 무너뜨렸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5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고용의 약 25%가 생성형 AI에 어느 정도 노출된 직종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ILO는 이것이 곧바로 대량 해고를 뜻하지는 않으며, 대부분 직업은 소멸보다 업무 재편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사무·행정·문서처리 직군은 자동화 노출도가 가장 높은 분야로 분류됐다. 케냐 대필 시장은 ILO의 경고가 현실화한 극단적 사례에 가깝다. 특히 온라인으로 거래되고, 결과물이 디지털 문서이며, 업무 과정이 표준화돼 있고, 고객이 품질보다 가격·속도·익명성을 중시하는 일일수록 AI가 인간을 빠르게 대체할 유인이 커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2.5%에서 16.1%”…프리랜서 업무까지 침투한 AI AI의 영향은 에세이 대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녹취 전사, 초벌 번역, 데이터 입력, 기본 문서 작성, 콘텐츠 요약, 단순 디자인, 코딩 보조 등 반복성과 디지털화 수준이 높은 원격 업무가 우선 충격권에 들어가고 있다. Scale AI와 비영리 연구기관 CAIS(Center for AI Safety)가 개발한 ‘원격노동지수(Remote Labor Index·RLI)’는 AI 에이전트가 실제 유료 프리랜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이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측정한다. 2025년 10월 초기 평가에서 최고 성능 AI 에이전트의 성공률은 240개 프로젝트 가운데 2.5%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AI가 복잡한 원격 프리랜서 일을 완전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2026년 7월 공개된 업데이트에서는 선두 모델의 성공률이 16.1%로 상승했다. 약 8개월 만에 6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RLI의 과제 범위는 웹 애플리케이션, 데이터 분석, 그래픽 디자인, 영상·애니메이션, 3D 설계 등 실제 플랫폼에서 거래된 프로젝트로 구성돼 있어, 단순 벤치마크보다 현실의 디지털 외주 일감과 가깝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케냐 정부의 디지털 일자리 전략에도 ‘빨간불’ 케냐 정부는 청년 고용난의 돌파구로 디지털 경제와 글로벌 아웃소싱 산업을 적극 육성해왔다. 케냐 정부는 2026년 5월 ‘케냐 청년을 위한 디지털 아웃소싱 일자리(Digital Outsourcing Jobs for Kenya’s Youth)’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이 프로그램은 시장 수요에 맞는 디지털 기술을 가르치고, 청년을 글로벌 아웃소싱 및 온라인 일자리와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기존의 ‘아지라 디지털(Ajira Digital)’과 ‘지투메 디지털 허브(Jitume Digital Hubs)’ 정책을 확장하는 성격이다. 문제는 케냐가 육성하려는 디지털 아웃소싱의 상당 부분이 AI가 먼저 공략하는 업무와 겹친다는 점이다. 고객 상담, 자료 입력, 기본 번역, 전사, 문서 정리, 콘텐츠 초안 작성, 백오피스 처리 같은 업무는 비교적 빠르게 AI 보조 또는 자동화 대상이 될 수 있다. 저임금·영어 구사 능력·원격 접속을 경쟁력으로 삼는 기존 아웃소싱 모델이 AI와 직접 경쟁하게 된 셈이다. 케냐의 고용 여건은 이 같은 변화에 더욱 취약하다. 케냐고용주연합(FKE) 통계를 인용한 현지 보도에 따르면 2025년 케냐 경제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약 82만2,100개였지만, 이 가운데 비공식 부문 일자리가 약 71만6,800개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대적·정규 부문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약 10만5,300개에 그쳤다. 케냐 대학교육위원회(CUE)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서는 2024년 기준 정규직을 찾는 대학 졸업자가 12만3,928명, 기술직업교육훈련(TVET) 졸업자가 16만2,757명으로 집계됐다. 디지털 플랫폼 일자리가 청년층에 매력적인 탈출구로 여겨진 배경이다. ‘AI 탐지 회피’로 이동한 작가들 산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전직 대필 작가들은 AI가 작성한 에세이를 사람이 쓴 것처럼 고치고, AI 탐지 도구에 걸리지 않도록 문체를 다듬는 일을 하고 있다. AI가 기존 업무를 없애는 동시에 ‘AI 결과물의 인간화’라는 새로운 틈새 수요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안정적인 전환 경로라 보기 어렵다. 대학과 교육기관이 AI 탐지 기술을 고도화하고 평가 방식을 바꾸면 이 시장도 다시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AI 탐지기는 오탐 가능성과 신뢰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탐지 회피형 교정 시장 자체가 교육 윤리와 검증 기술 간의 소모전으로 흐를 우려도 있다. 일부 인력은 데이터 라벨링과 AI 학습 보조 업무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이 분야는 대체로 저단가·단기 계약 성격이 강하고, 작업 발주량이 플랫폼과 글로벌 AI 기업의 투자 사이클에 크게 좌우된다는 한계가 있다. 즉, ‘AI에 밀려난 노동자’가 ‘AI를 학습시키는 저임금 노동자’로 이동하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핵심은 ‘직업 소멸’보다 ‘교섭력 붕괴’ 케냐 사례가 보여주는 더 큰 위험은 AI가 모든 직업을 한순간에 없앤다는 데 있지 않다. AI가 특정 업무의 최저 가격을 사실상 0에 가깝게 낮추면서, 해당 업무를 하던 노동자의 협상력과 단가를 먼저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에세이 대필 작가들은 챗GPT 등장 직후 전원이 실직한 것이 아니다. 일부는 더 낮은 단가로 일을 이어갔고, 일부는 AI 초안의 교정·재작성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주문 감소와 공급 과잉, AI라는 무료 또는 저가 대체재의 등장으로 과거와 같은 수입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졌다. 직업의 명목상 존속과 생계형 일자리의 존속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케냐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히 청년에게 디지털 기술을 가르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고부가가치 업무, 예컨대 산업 특화형 BPO, 복합적 고객 대응, 현지 맥락을 요하는 콘텐츠·조사 업무, 품질보증, AI 결과물 검증, 데이터 거버넌스, 사이버보안, 전문지식 기반 서비스로 직업훈련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NYT가 포착한 나이로비의 대필 산업 붕괴는 부정행위를 돕던 음지 산업의 퇴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글로벌 디지털 노동시장에서 가장 먼저 경쟁력을 잃는 집단이 반드시 단순 육체노동자가 아니라, 표준화 가능한 언어·문서·지식 작업을 하던 고학력 프리랜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어를 잘하고, 인터넷에 연결돼 있으며, 학위를 갖고 있다’는 조건만으로는 더 이상 디지털 생계를 보장받기 어려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비가 내린 직후 공기 속에 번지는 특유의 흙내음은, 엄밀히 말해 빗물 자체의 냄새가 아니다. 건조한 기간 토양과 암석 표면에 축적된 식물성 기름, 토양 미생물이 만든 휘발성 물질, 그리고 빗방울이 땅을 때리며 만들어내는 미세 에어로졸이 결합해 완성되는 후각의 사건이다. 그 중심에 있는 분자가 바로 ‘지오스민(geosmin)’이다. 지오스민은 그리스어로 땅을 뜻하는 ‘geo’와 냄새를 뜻하는 ‘osme’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화학식은 12 22 인 세스퀴테르펜 계열 휘발성 유기화합물로, 축축한 흙의 향뿐 아니라 붉은 비트의 흙맛, 일부 민물고기의 흙내, 물에서 나는 곰팡이·흙 냄새에도 관여한다. 인간은 이 물질을 극도로 낮은 농도에서도 포착한다. 다만 “인간이 1조분의 5를 감지한다”는 널리 유통되는 표현은 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단순화된 문장이다. 실험 조건과 매질, 개인별 후각 차이에 따라 역치는 달라진다. 최근 연구 검토에서는 물속 지오스민의 인간 후각 역치가 대체로 리터당 4~10나노그램(ng/L), 즉 피코몰 농도 범위로 제시됐다. 이는 물 1리터에 수 나노그램밖에 없는 농도이며, 최근 검토 논문은 이를 약 “올림픽 규격 수영장 200개 분량의 물에 티스푼 하나를 푼 것”에 비유했다. 빗방울이 만드는 ‘향기의 발사대’ ‘비 냄새’의 과학적 이름은 페트리코르(petrichor)다. 이 단어는 호주의 연구자 이사벨 조이 베어(Isabel Joy Bear)와 리처드 G. 토머스(Richard G. Thomas)가 1964년 3월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제시했다. 그들은 건조한 기간 식물이 분비한 기름 성분이 점토질 토양과 다공성 암석 표면에 흡착됐다가, 비나 습기에 노출되면서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현상을 기술했다. ‘돌’을 뜻하는 그리스어 ‘petra’와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혈관을 흐르는 액체를 뜻하는 ‘ichor’를 결합한 말이다. 하지만 페트리코르는 지오스민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향을 하나의 악기 소리가 아니라 여러 성분이 겹친 오케스트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오존 냄새는 때에 따라 비가 오기 전이나 뇌우 직후 감지될 수 있으나, 마른 흙에 비가 처음 내릴 때 느껴지는 전형적 페트리코르와는 구별해야 한다. 201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고속카메라 관찰을 통해 빗방울이 다공성 토양 표면에 충돌할 때의 물리적 과정을 포착했다. 빗방울이 토양에 닿는 순간 그 아래에 작은 공기방울들이 갇히고, 이 기포는 물방울 내부를 통과해 표면으로 올라온 뒤 터진다. 그 순간 토양 표면의 화학물질과 미생물, 미세 입자를 담은 에어로졸이 공기 중으로 방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이 향기 성분뿐 아니라 토양의 미생물·화학물질 이동에도 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비의 세기’와 ‘토양의 상태’다. 보슬비나 적당한 강도의 비가 오랫동안 메마른 다공성 토양에 떨어질 때, 공기방울 생성과 에어로졸 분산이 활발해질 수 있다. 반대로 이미 충분히 젖은 땅이나 거센 폭우에서는 첫비 뒤의 흙내가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질 수 있다. 따라서 “비가 많이 올수록 비 냄새가 강하다”는 직관은 항상 맞지 않는다. MIT 연구는 특히 토양의 다공성, 표면 조건, 물방울 충돌 속도가 에어로졸 방출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흙냄새 한 분자의 생존전략 지오스민은 단순한 ‘자연의 방향제’가 아니다. 미생물이 자신의 생애주기와 번식 전략에 연결해 내보내는 화학 신호일 수 있다. Streptomyces coelicolor를 대상으로 한 생합성 연구에 따르면 지오스민은 파르네실 이인산(FPP)을 출발물질로 하며, 하나의 이기능성 효소가 중간체인 저마크라디에놀 등을 거쳐 지오스민 형성을 촉진한다. 이 과정에는 마그네슘 이온이 관여하며, 미생물이 만든 효소가 탄소 골격을 재배열하는 복잡한 반응이 포함된다. 사람에게 지오스민은 장마철 창문을 열었을 때의 향수, 고향의 텃밭, 첫비의 기억을 소환하는 냄새일 수 있다. 그러나 미생물의 시점에서는 ‘토양 속에 포자를 퍼뜨릴 운반자를 호출하는 신호’에 가깝다. 인간이 시적으로 해석하는 냄새가 다른 생물에게는 생존·번식의 언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페트리코르는 인간 중심의 자연 감상이 아니라, 토양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통신망을 후각으로 우연히 엿듣는 경험이다. 비가 땅에 떨어지는 몇 초 사이 토양 표면에서는 물리학이 작동한다. 기포가 생기고 터지며 미세 에어로졸을 쏘아 올린다. 그 에어로졸에는 화학이 실린다. 그리고 그 화학에는 미생물의 생태 전략이 기록돼 있다. 인간은 그 복합 신호를 ‘비 냄새’라는 감정의 언어로 번역한다. ‘향수’와 ‘경보’ 사이의 냄새 지오스민은 문화적으로는 낭만의 냄새지만, 산업적으로는 관리 대상이다. 수돗물·저수지·양식장·식품에서는 아주 낮은 농도에도 소비자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관리 관점에서 지오스민은 독성 여부와 별개로 신뢰의 문제를 낳는다. 소비자는 수질검사표의 수치보다 먼저 코로 이상을 감지하고, 그 감각은 종종 ‘물이 안전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비 냄새는 그래서 한 가지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건조한 땅이 물을 만났다는 기상학적 신호이고, 미생물이 만든 분자가 공기 중으로 이탈하는 화학적 사건이며, 토양 절지동물의 이동을 자극하는 생태적 메시지다. 동시에 도시의 인간에게는 아스팔트와 화단, 학교 운동장과 골목, 어린 시절의 계절감을 불러오는 문화적 기억 장치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KAIST가 배충식 총장 체제 출범과 함께 AI를 교육·연구·창업·행정·에너지 인프라 전반에 관통시키는 ‘AI 네이티브 캠퍼스’ 전환을 본격화한다. 핵심은 단순한 AI 교과 확대가 아니라, 전 과목의 AI 활용 원칙부터 산학 공동연구, 신입생 창업교육, 행정 자동화, 글로벌 공동연구까지 대학의 작동 방식을 재설계하는 데 있다. KAIST는 8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이 강한 글로벌 혁신 선도대학(Fundamentals First, Innovation Forward)’ 비전을 실행하기 위한 5대 혁신 전략, 이른바 ‘Beyond Series’의 세부 과제를 공개했다. Beyond AI·Beyond Laboratory·Beyond Barriers·Beyond Carbon·Beyond KAIST를 중심축으로 교육과 연구, 창업, 제도, 캠퍼스, 국제화를 동시에 개편하겠다는 구상이다. AI 교육, ‘활용’ 넘어 설계 역량으로 이번 로드맵의 가장 큰 특징은 AI를 컴퓨터공학이나 인공지능 전공자의 전문영역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갖춰야 할 공통 언어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KAIST는 모든 교과목을 AI 활용 정도와 교육 목적에 따라 3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덴마크 프리미엄 매트리스 브랜드 ‘템퍼(TEMPUR)’는 템퍼코리아 신임 대표이사로 박성희 대표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박성희 대표는 글로벌 소비재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로, 디아지오, 월트디즈니컴퍼니, 테일러메이드, 리복, 아디다스 등 유수의 기업을 거쳤다. 특히 아디다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스포츠 사업부를 담당하며 성과를 이끌었으며, 혼마골프 코리아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다양한 리더십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박성희 대표는 "템퍼의 철학은 좋은 제품을 넘어 최고의 수면 환경을 제안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 소비자들이 템퍼를 통해 진정한 휴식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브랜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동원그룹∙한국투자금융지주 창업자인 김재철 명예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비롯된 ‘KAIST 김재철AI대학원’ 판교 연구동이 26일 착공했다. ‘KAIST 김재철AI대학원’ 판교 연구동은 KAIST(총장 이광형)가 총 예산 542억원을 투입해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건립하는 AI 대학원이다. 대지 6,000㎡에 연면적 1만8,185㎡ 규모로 지어지는 ‘KAIST 김재철AI대학원’은 지하 1층·지상 8층으로 구성된 연구동에 AI 분야 융합연구실과 강의실 등을 갖추게 된다. 오는 2028년 2월에 준공될 예정이다. 이번 ‘KAIST 김재철AI대학원’에는 10MW(메가와트)급의 도심형 AI데이터센터가 설치된다. 이와 함께 피지컬 AI, 휴머노이드 등을 연구할 수 있는 로봇 실험실도 갖출 계획이다. 각 층에 마련된 개방형 공간에서는 기상예측, 신약개발 등 과학 AI와 헬스케어 AI, 제조 AI 등 ‘KAIST 김재철AI대학원’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연구한다. 시민 참여를 위한 체험공간도 마련된다. AI의 역사를 한 눈에 아우르는 AI 전시관과 갤러리, 시네마 공간을 기획해 신기술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공감대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번 대학원 건
[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오태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이 2026년 2월 2일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신임 우주항공청장으로 임명되며, 한국 우주산업의 행정·정책 전문가가 새 수장 자리에 앉았다. 30년 공직 경력의 정통 관료인 오 청장은 누리호 2·3차 발사 성공을 주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민간 중심 뉴스페이스 생태계 육성을 앞당길 전망이다. 경력과 업적 요약 오태석 청장은 1991년 행정고시 35회 합격 후 과학기술 분야에서 장관 비서관,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기획국장,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조정관 및 제1차관을 두루 역임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영국 서섹스대 기술경영 석사 출신으로, 2022년 과기정통부 1차관 재임 시 누리호 발사 관리위원장으로 2차·3차 발사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우주 개발 정책을 총괄했다. 지난해 4월부터 KISTEP 원장으로 국가 R&D 예산 효율화와 미래 기술 발굴에 주력, 민간 R&D 투자(국가 전체 R&D의 76.4%) 상위 5개사 편중 문제를 지적하며 산업 스케일업을 강조했다. 우주항공청 예산 확대 배경 우주항공청의 2026년 총 예산은 1조1201억원으로, 2025년 9649억원 대비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에버랜드가 세계 코끼리의 날(8월 12일)을 맞아 로스트밸리의 아시아코끼리 3마리에게 특식을 제공하고 관람객 참여 행사를 시작했다. 다만 멸종위기종 보전이라는 캠페인의 무게는 이벤트의 화제성보다 야생 개체군 회복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성과 지표에 달려 있다. [지구칼럼] '코끼리' 어디까지 아시나요?…하얀 코끼리·상상·엘리펀트 워크·유예·장례식·사슬 증후군·도자기 상점 특식과 인형 찾기, ‘보전 메시지’의 출발점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에버랜드는 12일 세계 코끼리의 날을 맞아 로스트밸리에서 생활하는 아시아코끼리 코식이, 하티, 우다라에게 과일과 얼음 등을 활용한 특식을 제공했다. 오는 17일까지 탐험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숨겨진 코끼리 인형을 찾아 촬영한 뒤 보전 메시지와 함께 네이버 카페에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인형을 제공하는 고객 참여 행사도 진행한다. 세계 코끼리의 날은 매년 8월 12일 코끼리 밀렵, 상아 불법거래, 서식지 훼손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제정된 국제 캠페인이다. 그러나 ‘코끼리 보호’라는 구호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상징성에 있지 않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아시아코끼리를 멸종위기(Enda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도심 골목과 지방 소도시를 가리지 않고, 간판은 오늘도 묵묵히 장사를 돕는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좁혀보면, 그 간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유머 감각과 언어 감수성, 그리고 생존 본능을 드러내는 ‘거리의 텍스트’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정직하게 웃긴 상호부터 아슬아슬한 언어유희, 저작권 의식을 비껴간 캐릭터 활용까지, 2020년대 한국 골목 상권의 초상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고기집·닭발집·샤브샤브…말장난이 곧 마케팅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식당 간판들이다. “내동 생고기”라는 고깃집은 동네 지명을 정직하게 차용했을 뿐인데, 자칫 “내 동생 고기”로 읽히는 중의성을 품고 있어,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두 번 잡아끈다. 비슷한 결의 장난기는 “이런 씨 볼닭발”에서 극대화된다.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욕설의 리듬을 비켜가며, ‘씨’와 ‘볼’ 사이에 닭발을 끼워 넣어 합법적 언어유희로 승화시킨 셈이다. 샤브샤브 집 “쿵따리 샤브샤브”는 1990년대 인기 트로트 ‘쿵따리 샤바라’를 연상시키며, 세대 공감형 상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음악적 기억을 호출하는 이름 하나로, 가게는 단순 외식 공간을 넘어 ‘향수의 장소’가 된다. “계돼지”라는 닭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한 카페의 내부, 한쪽에서는 누군가 페인트칠을 하고 있고, 맞은편에서는 평범하게 커피와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언뜻 엉뚱해 보이지만, 이 풍경은 바쁜 일상 속 유쾌한 단면을 생생히 보여준다. 카페 한켠에서는 작업복을 입은 남성이 바닥에 페인트 도구를 늘어놓은 채 묵묵히 벽을 손질한다. 그의 주변은 정돈되지 않은 채, 의자와 탁자들도 이리저리 치워진 모습이다. 반대로 맞은편에서는 비즈니스 미팅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 네 명이 모여 앉아, 진지하게 서류를 확인하며 차를 마시고 있다. 공간은 하나이지만, ‘일’과 ‘쉼’이 물리적으로 동시에 얽혀 있다. 우리는 흔히 작업장과 휴식 공간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카페는 두 영역의 경계를 의외로 부드럽게 허무는 모습이다. 한편에서는 리모델링을 위한 페인트칠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평소처럼 삶의 대화와 만남이 이어진다. ‘불편’과 ‘평온’, ‘새로움’과 ‘익숙함’이 한 프레임에 담긴 셈이다. 이런 장면은 일상적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다층적 의미를 던진다. 누군가에겐 급박한 손길이 필요했던 페인트칠이, 다른 이에겐 일상과 비즈니스의 아늑한 쉼터로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