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미국 LA에서 시작된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 ‘에레혼(Erewhon)’이 전 세계 유통업계와 마트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식료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소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한 에레혼의 성공 전략과 그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에레혼(Erewhon)은 무엇인가
에레혼(Erewhon)은 1966년 일본계 이민자 미치오 쿠시(Michio Kushi)와 아벨린 쿠시(Aveline Kushi) 부부가 보스턴에서 설립한 유기농 식품점에서 출발했다. 브랜드명은 영국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의 소설 『Erewhon』에서 따왔는데, 이는 ‘Nowhere(어디에도 없음)’를 거꾸로 배열한 단어로,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지향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현재 에레혼은 캘리포니아주 LA를 중심으로 10개 매장을 운영하며, 미국 내에서 가장 프리미엄한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으로 자리잡았다. 매장당 평균 매출은 1억7000만 달러(2023년 기준)로, 이는 미국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의 4배에 달하는 평당 매출을 기록하는 수준이다.

에레혼의 비즈니스 모델과 차별화전략…초프리미엄 전략과 브랜드경험 공간
에레혼의 가장 큰 특징은 ‘초고가 프리미엄 전략’이다. 매장에서는 물 한 병에 25달러, 스무디 한 잔에 20달러 등 일반 마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의 제품들이 판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장은 늘 인파로 북적이고, 주요 제품은 품절 사태를 빚는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브랜드 경험’에 대한 철저한 전략이 있다. 에레혼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건강·웰빙·윤리·지속가능성 등 현대 소비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매장 경험에 녹여냈다.
매장 내에는 영양사 상담, 토닉바, 비건 화장품, 친환경 패키징 등 다양한 체험 요소가 마련되어 있다. 고객간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하는 매장 구조와 친절한 직원 배치도 충성도 높은 커뮤니티 형성에 일조한다.
셀럽 마케팅과 인플루언서 협업
에레혼 성공의 또 다른 핵심은 ‘셀럽 마케팅’과 ‘인플루언서 협업’이다. 할리우드 스타와 인플루언서들이 에레혼 매장에서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 일종의 문화가 됐다.
특히 헤일리 비버(Hailey Bieber) 등 유명 인플루언서와 협업해 출시한 ‘스타 스무디’는 월 4만잔 이상 판매되는 등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해당 스타(인플루언서)의 스무디가 많이 팔릴수록 해당 원작자에게 더 많은 수익을 셰어하는 비즈니스모델도 진행하고 있다.
헤일리 비버는 저스틴 비버의 와이프이며, 켄달 제너의 절친으로 더욱 유명세를 얻었다. 이들 금수저 모델들과 어울려 다니며 막강한 인스타그램 파워를 얻게 되었다.
알렉 볼드윈, 대니얼, 윌리엄, 스티븐 4형제가 헐리우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볼드윈 패밀리 중 막내인 스티븐 볼드윈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케냐 데오다토는 브라질 음악의 전설 에위미르 데오다토의 딸로 외가 또한 친가 못지않게 쟁쟁한 집안이다.
이러한 SNS 바이럴 마케팅은 젊은 세대의 유입을 견인하며, 에레혼을 ‘힙스터의 성지’로 만들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에서는 ‘에레혼 인증샷’이 끊임없이 업로드되고 있다.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의 진화
에레혼은 단순히 유기농 식품을 파는 마트가 아니라,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경험공간'으로 진화했다. 에레혼은 최근 자체 의류 컬렉션까지 출시하며, 슈퍼마켓을 넘어 ‘디자이너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와의 협업, LA 로컬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 등은 에레혼을 단순 유통업체가 아닌,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처럼 에레혼은 식료품점이 ‘문화적 공간’이자 ‘커뮤니티 허브’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객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건강·가치관·사회적 지위를 소비한다는 점에서 기존 마트와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한국 유통업계에 던진 화두
에레혼의 성공은 국내외 유통업계에 다양한 시사점을 던진다.
경험의 계급화와 초프리미엄 전략이다. 단순한 가격경쟁에서 벗어나, ‘경험의 계급화’를 통해 부유층과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초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했다. 또 폭발적인 SNS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과 인플루언서 협업이 젊은 세대의 유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역 특화와 로컬리티를 강조한 점도 성공요인이다. LA라는 지역성과 로컬 식재료, 건강식, 지속가능성을 강조해 차별화에 성공했다. 또 매장 내외에서 고객간 네트워킹과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며, 브랜드 충성도를 극대화했다.
가격과 가치의 역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극단적으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과 ‘셀럽의 선택’이라는 상징적 가치를 소비하는 현상이 흥미롭다.

사회·문화적 의미와 흥미로운 포인트
유토피아적 이상과 현실의 접점을 뜻하는 에레혼은 ‘Nowhere’의 반어적 의미처럼, 현실에서는 쉽게 찾기 힘든 완벽한 건강·윤리·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을 소비자 경험에 녹여냈다.
극단적으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과 ‘셀럽의 선택’이라는 상징적 가치를 소비하는 현상은 유통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또한, 한때 지역 슈퍼마켓에 불과했던 에레혼이 패션쇼, 글로벌 브랜드 협업 등으로 문화적 아이콘이 된 점은 유통업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에레혼은 단순한 식료품점이 아니라, ‘경험·문화·가치’를 파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초프리미엄 전략, 인플루언서 마케팅, 커뮤니티 구축 등은 기존 유통업계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혁신적 시도다. 국내외 유통·마트업계가 에레혼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기업 에레혼 벤치마킹…신세계 마켓, 마켓컬리, 시몬스
한국에서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마켓, 마켓컬리, 초록마을 등에서 에레혼식 전략의 일부가 구현되고 있다. 초프리미엄 식품관, 맞춤형 VIP 서비스, 인플루언서 마케팅 등은 분명 에레혼의 성공 방정식을 한국 시장에 맞게 변주한 결과다.
다만, 에레혼이 보여준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경험의 극대화’, ‘셀럽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한 브랜드 아이콘화’ 등은 아직 국내 유통업계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향후 국내 유통업계가 에레혼의 모델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한국적 맥락에 맞게 발전시킬지 주목된다.
특히 시몬스의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등 소셜라이징 팝업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 소비층인 MZ세대를 중심으로 두터운 팬덤을 구축하려는 시도도 에레혼과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브랜드 스토리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대신, MZ세대의 눈높이와 관심사에 맞춰 그들이 흥미롭게 여기는 요소를 친근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