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대장주’ SK하이닉스가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충격 보고서’ 한 장에 크게 흔들렸다.
7월 17일 SK하이닉스 주가는 8.95% 떨어진 26만9500원에 거래를 마감, 올 들어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그 배경에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공세에 따른 HBM 공급과잉, 그리고 가격 하락 우려가 있다.
"HBM 가격, 이젠 내리막…어떤 시나리오에서도 하락 불가피"
골드만삭스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는 HBM 시장의 내년 판도에 큰 도전을 던졌다. 핵심 내용은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증설로 2025년 HBM 평균 판매가격(ASP)은 전년 대비 10% 하락(GB당 13.1달러→11.9달러)을 기록하고, 삼성전자가 조기에 엔비디아 납품을 시작할 경우 일부 제품(HBM3E 12단 기준) 가격은 최대 35%까지 급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HBM 공급량은 39억8000만GB로, 수요(37억6000만GB)를 상회한다. 2027년에도 공급(53억7000만GB)이 수요(52억5000만GB)를 넘어서 공급과잉은 지속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 ‘독주 종료’ 신호탄…영업이익 전망도 급하향
골드만삭스는 SK하이닉스의 2025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증권사 평균 대비 19% 낮춘 36조5690억원으로 제시했다. 투자 의견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했다. 반사이익 기대감에 이날 삼성전자는 3.09% 상승하며 흐름이 엇갈렸다.
왜 이런 변화가?…삼성·마이크론 추격 가속, 엔비디아 ‘저가 압박’
시장 판도를 흔드는 요인은 ▲삼성전자의 HBM 제품이 엔비디아 품질검증 통과 여부(최근 삼성 HBM3E 8단 일부 통과, 12단 제품은 미확인), ▲마이크론의 HBM 생산능력 확대(2025년까지 하이닉스의 70% 수준 추월, 월 6만장 증산, 대만·미국 등 글로벌 증설), ▲엔비디아가 마이크론과 삼성을 ‘지렛대’로 하이닉스에 가격 인하를 요구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실제 마이크론은 HBM 시장점유율을 2024년 5.1%에서 2025년 20%대로 급등시킬 태세다. SK하이닉스(2024년 52.5%), 삼성전자(42.4%)의 양강 구도에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론은 올 1분기 D램시장(Micron 25%)에서 삼성전자(34%)와의 격차도 크게 좁혔다.

HBM 시장 폭발적 성장
2025년 글로벌 HBM 시장 규모는 마이크론, JP모건, 트렌드포스 등 주요 기관들의 전망치를 종합할 때 300억 달러에서 최대 467억 달러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와 이미 실적 발표에 나선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에 따르면, HBM 시장은 2033년 13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는 등 초고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5년 HBM 연간 성장률을 70%로 추산했으며, HBM이 전체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8년 30%를 상회할 것이라 전망했다. 2025년 HBM 시장 매출액은 약 21~35억 달러로 추정된다. 트렌드포스 역시 2025년 HBM 시장이 전체 D램 시장의 30%를 넘어서며, 2024~2025년 HBM 수요 증가율이 100%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또한 "2025년 HBM 시장이 전년대비 86% 성장하는 등, 초고성장이 전망된다"며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언급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역시 공급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AI 혁신'이 HBM 수요 폭발 견인
AI·빅테크 기업들은 HBM 수요를 끌어올리는 주역이다. 엔비디아, AMD 등 AI 칩 업체들의 2025년 HBM 주문량은 전년 대비 23%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주문형 반도체(ASIC) 분야에서의 HBM 수요는 82%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JP모건은 ASIC 중심의 AI 반도체 시장이 2025년에만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수요 급증에 맞춰 올해 글로벌 AI 서버 출하량은 전년 대비 24~30% 증가가 점쳐진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빅테크)는 AI 인프라 재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2025년 HBM의 매출 비중이 전체 D램 시장의 24~30%로 대폭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외 전망은 엇갈려…장기전 돌입?
골드만삭스는 "내년부터 HBM 시장의 가격 주도권은 제조사에서 고객사, 즉 엔비디아 등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SK하이닉스의 독주는 끝났다”라고 단언했다. 삼성·마이크론 등 경쟁업체가 저가 공세로 엔비디아의 파트너 경쟁에 뛰어들고, 이에 대응한 SK하이닉스 역시 가격 인하로 점유율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JP모건, 맥쿼리 등 일부 투자기관은 “AI 반도체 시장의 구조적 호재와 SK하이닉스의 기술력 우위”를 들어 하이닉스의 ‘독주’가 내년에도 유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JP모건은 최근 SK하이닉스의 2027년 영업이익을 60조3070억원으로 내다봤다.
SK하이닉스가 주도하던 HBM 시장에 ‘가격 쇼크’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내년부터는 공급과잉, 빅테크 수요의 변화, 엔비디아의 협상력 변화에 따라 '가격 전쟁'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단기 조정 속에서도, AI 반도체라는 구조적 대세는 지속되고 있지만, 주도권 경쟁은 이제 본격적인 다자구도로 재편됐다.
이 시장의 향방은 ‘누가 가격과 기술, 그리고 다양한 빅테크를 고객사로 더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앞으로도 업계의 진검승부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