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열정의 유효기한은 언제까지일까요? 평생 지속될까요?
이번 챕터는 이런 우매한 질문을 저도 모르게 던지도록 시작합니다.
뭔가를 막연하게 해볼까란 마음을 넘어 이건 반드시 일구고 싶다고 안달난 상태를 저는 ‘열정’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40대 중반이 되면 이 녀석이 나도 모르게 줄어들고 소위 조직생활을 마무리하는 나이가 되면 자의든 타의든 그때서야 이 녀석이 거의 소멸될꺼라고 봅니다.
물론 아주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느낌 상태에 대한 정의고, 조직이 아닌 오로지 나에게 적용해 평생 지속가능하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많을 듯 합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29 번째 주제는 ‘열정이 떠나갔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입니다.
쇼팬하우어 형님께선 열정이 떠난 자리를 명상이 채우게 되고, 노년기가 되면 열정은 떠난다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노년기의 평정심이야말로 오히려 열정 보다 더욱 행복의 필수요건이라 꼬집어 주셨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서로 상치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지적해 주심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다만 여긴 전제조건이 있는데 평정심을 갖춰야 가능한 것이겠죠.
“나이 들어 돈 없으면 서글퍼 아니 죽어야해”라고 내뱉는 이들 주변에 한 두 명은 계시지 않나요?
본래 알고 있던 하우어 형님의 염세주의와 일목상통하는 이 주장자들은 제 주변에도 제법 있습니다. (사실 저도 어느정도는 여기 해당된다고 볼 수 있죠)
한마디로 말해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경제력이 없다면 노년기엔 평온하기 쉽지 않고 그러다보면 평정심은 커녕 불안감만 증폭돼 열정도 명상도 둘 다 없는 아주 초라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거까진 이 형님께서도 어찌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하시네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유소년기를 지나 청년을 넘고 중장년이 된 후 노년기를 맞이할 땐 어느정도 다 (경제적으로) 일궈 지극히 평온하다는 가정하에 나온 주장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나이 든다는 자체를 겁내지 말고, 열정이 사라졌다고 슬퍼하지 말라는 명제.
그 자체로 동의하나 동의하기 위핸 숨은 가정을 필요 요건으로 충족시켜야 한다는 감춰진 사실.
그 연결고리를 부드럽게 가져가는 것이 인생의 여정일 것입니다.
젊었을 땐 어디 사우나가 럭셔리하고 좋아 더 찾아 보자라고 했다면, 이제 호텔은 아니라도 바나나우유 사먹으며 지인들과 여유있게 땜뺄 수 있을 정도의 시간과 돈을 갖췄다면 아무리 막아도 소소한 행복이 뒤따라 올 것이며, 두 눈 지그시 감고 하늘을 봐도 행복한 명상의 순간이 현실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어떻게든 주저앉지 말고 더 나이들어 열정의 공간에 명상을 두기위해서라도 오늘 하루도 더 벌고 더 고민하고 더 치열해지는 우리가 되야겠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썼는데 슬픈 느낌으로 이번 칼럼은 마무리 합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