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세계에서 정보는 1과 0으로 표현된다. 복잡한 현실은 이진법의 단순한 룰로 정리된다.
2025년을 맞이한 서울의 오피스 시장 역시 그렇다. ‘생존(1)’ 아니면 ‘도태(0)’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이후 서울 오피스 시장에는 연평균 약 26만 평의 신규 공급이 예정됐다. CBRE 코리아는 2031년까지 이 공급량의 83%가 CBD권역에 집중될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 과잉의 시대’다.
◆ 10년 의무보유 종료, 판교발(發) 지각변동 진행 중
주목할 만한 것은 한때 ‘IT 기업들의 성지’로 불리던 판교테크노밸리의 위상이다. 10년 전 각종 세제혜택을 받아 건물을 취득한 기업들의 의무보유 기간이 최근 만료되면서 이동이 감지되고 있다. 기업들은 강남 입성을 시도하거나, 성수, 마곡 등으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판교에 자리잡은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가격은 크게 오른데다, 예전만큼의 메리트를 주지 못한다”며 “강남 회귀나 성수, 마곡 등 새로운 거점으로의 이전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가산·구로디지털단지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때 ‘테크노밸리’라 불리며 IT기업의 메카로 자리잡았던 이들 지역은 노후화와 교통 인프라 부족으로 공실이 늘어나는 추세다. 다만 판교의 경우 용인 등 수도권 주변 지역 기업들의 수요가 잔존해 쇠퇴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하지만 제2판교 테크노밸리가 완공을 앞둔 상황에서 기존 판교가 흔들린다면 신규 공급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 신흥 강자 마곡, 4분기 연속 공실률 상승 불구 약진
이런 와중에 마곡의 부상이 두드러진다. 알스퀘어 애널리틱스(R.A)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서울 오피스 평균 공실률은 4.9%다. 전 분기 대비 2.0%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마곡 업무지구에 23만2000평 규모의 오피스 임대면적이 공급되며 전체 공실률 상승을 견인했다. 마곡 원그로브 등 신규 오피스는 우수한 입지와 시설을 무기로 대기업 계열사들의 입주를 잇달아 성사시키며 신흥 업무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업무 환경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기업 니즈가 반영된 결과다. 이처럼 오피스 시장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가운데, 공간 비전 컨설팅 전문기업 JLP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오피스 시장이 양적 팽창을 이어가고 있지만, 실질적인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공간 기획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적화되지 않은 소프트웨어처럼,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확장만으로는 사용자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지적이다.
◆ 공간의 진화: 하드웨어에서 서비스 플랫폼으로
JLP의 최근 리포트는 현대의 업무 공간이 ‘협업과 창의적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 연산을 넘어 인공지능으로 발전한 컴퓨팅의 진화와 닮았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은 개인 업무 공간을 줄이는 대신 협업과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는 추세다.
주목할 점은 어메니티 공간의 수익화 전략이다. 최근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프리미엄 어메니티 공간의 유료 이용 의사를 밝혔다. 이 중 89%는 월 10만 원 수준의 멤버십 가입에 긍정적이었다. 공간이 단순한 ‘하드웨어’를 넘어 ‘서비스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JLP 제이슨리 대표는 “전통적인 오피스 개념을 유지하는 기업과 공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기업 간의 생산성 격차는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기업과 실패한 기업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현상과 흡사하다.
결국 2025년 이후의 오피스 시장에서 살아남는 건 ▲맞춤형 공간 기획 ▲혁신적인 어메니티 전략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갖춘 공간이다. 복잡한 현실 세계가 결국 1과 0이라는 이진법으로 정리되듯, 공간의 생존 조건도 ‘차별화된 가치 제공 여부’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귀결된다.
오피스 공급자들은 선택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을 것인가(1), 아니면 도태될 것인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