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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방구석은 우주] '러브레터' 한여름밤 꿈꾸는 겨울날의 사랑동화

AZ 임부장의 방구석 문화 체험기 (3)

 

6월이 이처럼 더운 계절이었던가요, 아니면 사무실 냉방시설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간이 선풍기를 켜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오후입니다. 기분 좋은 뉴스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실상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얘기, 기업 경영이 어렵다는 얘기, 계속되는 이혼 소송 얘기 등 땀 나고 어질어질한 소식들이 넘쳐납니다.

 

이처럼 지치는 여름날 집에 돌아오면 뭔가 상큼하고 시원한, 여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를 봐야 제격이지요. 6월 셋째 주 월요일 저녁 <러브레터> DVD를 틀었습니다.

 

<러브레터>는 대학교 2학년 때 이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1997년 가을, 학교 축제 때 영화 동아리가 강당을 빌려 이 작품을 상영했었지요. 아직 일본 영화가 공식적으로 수입되기 전이었습니다. 싼값에 낯선 나라 작품을 접한다는 생각으로 친구 네 명이 함께 강당을 향했고, 반해버렸습니다. 주연배우인 나카야마 미호에게 반한 건지, 아니면 영화에 반한 건지 아직도 헷갈리지만… 여하튼 반했습니다.

 

 

참 깨끗한 영화입니다. 흰 눈 가득한 산과 눈 오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배우가 설산에 대고 ‘오겡끼데스까’를 하도 외쳐서 그런지 작품 색깔도 하얗고 맑습니다. 선악의 대립구도 가운데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거나, 누군가 죽으며 애절하게 끝나는 여타의 영화들과는 다르지요. 모든 인물의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이 충만해지는 감성적인 작품입니다.

 

비극으로 출발한 영화가 이처럼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사실 남자 이츠키의 죽음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죽은 그였기에 살아있는 두 명의 여인이 찬찬히 기억을 정리하며 새 힘을 얻을 수 있었지요. 하얘졌던 머릿속에 맑은 추억을 되살려줬으니, 그것으로 딱 좋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데스레터: 히로코의 복수극’이란 잔혹동화가 전개됐을지도 모릅니다.)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

 

영화 속의 명대사지요. 직설적이면서도 이중적이고, 웃기는 동시에 진지합니다. 어떤 비유적 표현보다 멋진, 중학생 소년 최고 레벨의 사랑고백이다. 그 시절 그녀에겐 장난으로만 보였던 게 문제입니다. 둘의 만남이 계속됐다면 분명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책 같은 고교 스토리가 나왔을 텐데...

 

마음이 이어지기엔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너무 어렸던 데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갑작스레 그가 전학을 떠났지요. 깨뜨린 꽃병과 함께 그에 대한 마음도 치워버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게 잊힌 그는, 안타깝게도 수많은 도서 대출카드 속에서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년 아재의 사춘기 풋사랑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많은 날들을 애태우다 제대로 고백 한 번 못한 채 지나갔고, 다 쓴 연습장 버리듯 그 속에 채워진 그녀의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았을까요? 영화 속 편지가 저에게 도착한다면 몇 명의 추억의 여인 소환이 가능할 텐데, 편지 부재로 인해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기억뿐 아니라 실제도 없었던 게 아닐까… 아, 이런 쓸쓸한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시절 남자 이츠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중학생 시절 도서 대출카드 뒷면의 스케치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사족 같기도 합니다. 열병에서 깨어난 여자 이츠키는 잊었던 모든 기억을 이미 되찾은 상태였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나카야마 미호를 한 번 더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녀가 곧 <러브레터>의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이죠. ‘흰 눈 그리고 나카야마 미호’ 외에 더 말하면 괜히 다시금 여름철 더위가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1997년 가을을 되돌아 봅니다. 사실 그때 강당을 함께 방문한 친구 중 한 명이 지금 제 아내입니다. 즉 <러브레터>는 처음 경험한 일본 영화인 동시에 아내와 함께 관람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될 줄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시간 속에 여러 우연과 사연이 겹쳤고, 13년이 지나 우린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또 13여 년이 흘렀네요.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거기서 이 영화를 함께 본 건 운명이고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늘 다시 <러브레터>를 떠올린 것도 그렇지요.

 

운명은 조종하는 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히로코가 쓴 편지는 운명처럼 제대로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러브레터는 죽은 후지이 이츠키가 최적의 때를 택해 두 여인에게 선물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날은 무덥고 세상살이는 힘들지만 <러브레터>처럼 맑고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희망 어린 사건이, 우연인 듯 필연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결정적인 순간에 터지는 법이니까요~!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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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블렌딩] 나열하지 말고 구조를 세워라…MECE 전략 만들기

1. 클릭을 유도하는 '기획자',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 나의 20대 중반, 명함에는 '영화 온라인 마케터'라는 직함이 찍혀 있었다. 당시 영화 홍보의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던 시기였다. 나의 주된 업무는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온라인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배너를 클릭하게 만들까?", "어떤 경품과 카피를 걸어야 댓글이 폭발할까?" 하루하루가 아이디어 싸움이었다. 트래픽을 올리고, 조회수를 터뜨리는 일은 짜릿했다. 기자 시절 터득한 '헤드라인 뽑기' 실력 덕분에 나름 성과도 냈다. 하지만 화려한 이벤트가 끝나고 나면 허전함이 밀려왔다. 나는 조금 더 본질적이고, 단단한 무언가를 쌓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다. 2. 과거의 인연이 건넨 새로운 티켓 그때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 건, 뜻밖에도 과거의 짧은 인연이었다. 홍보사 입사 전, 외국계 광고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당시 나를 눈여겨보셨던 한 분이 브랜드 컨설팅 회사로 이직하시면서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 "래비씨가 일을 대하는 태도나 센스를 내가 기억해. 이번에 내가 가는 곳은 브랜드를 만드는 컨설팅 회사인데, 여기서 제대로 한

[콘텐츠인사이트] 진짜 ‘프로젝트’ 영화를 찍은 건가…<프로젝트 Y>를 보고

개인적으로 열렬한 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종서와 한소희 - 한소희와 전종서라는 두 배우의 만남만으로도 이 영화가 궁금해졌다. 보통 어떤 작품을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정작 그 영화는 이런저런 이유로 놓치고 엉뚱한 다른 영화를 보게 되는 징크스가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직장상사 길들이기>나 <하우스메이드>를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장모님 생신 저녁을 함께한 뒤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나니 어렵게 확보한 주말 ‘혼영’ 시간에 맞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시간대도 맞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에 걸려 있던 작품이 바로 <프로젝트 Y>였다. 결국 선택의 여지 없이 이 영화를 보게 됐다.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변명으로 한동안 극장을 찾지 않았지만, 주말에 아내의 ‘허락’을 받고 누리는 혼영의 맛은 여전히 달콤했다. ◆ 제목은 그럴싸한데 제목은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실험영화 같기도 하고 상업영화 같기도 한, 졸업 작품 전시회에서 볼 법한 느낌. 그럼에도 제목이 주는 호기심이 컸다. 더구나 개성이 뚜렷한 두 배우가 주연을 맡았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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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화면과 소개글만 보고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등반장비도, 안전 로프도 없이 그저 마찰력을 높이는 가루만 묻혀가며 타이베이 101빌딩을 오르는 주인공(알렉스). 라이브 아닌 라이브 촬영으로 구성된 영상은 보는 내내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긴장감을 줬다. 프로 스포츠 중계도 아닌데 이걸 실제로 라이브로 본 이들이라면 말 그대로 아드레날린이 폭발했을 듯하다. 신작이 없다느니, 볼 게 없다느니, 넷플릭스가 예전만 못하다느니 불평을 하다가도 결국 넷플이 위대해지는 이유는 이런 기획 때문이다. 과거 불법으로 몰래 초고층 빌딩을 타는 ‘러시아 클라이머’들이 골칫거리라는 뉴스를 본 적은 있지만, 이 정도 높이의 마천루를 맨손으로 오르는 장면은 본 기억이 없다. ◆ 무모한 도전에 감도는 경이 군대를 다녀온 필자 역시 유격훈련 당시 4층 높이 막타워에서 뛰어내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애인 있습니까? 있습니다! 애인 이름 부르고 뛰어내립니다!”, “없습니다! 그럼 ‘엄마’ 하면서 뛰어내립니다!” 조교의 광기 어린 구령을 군필자라면 선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 짧은 높이에서도 공포는 대단했다. 하물며 이 정도 높이면 고소공포증이 있

[커리어 블렌딩] 당신의 기획이 안 먹히는 진짜 이유

1. 내용은 완벽한데, 왜 설득이 안 될까? 밤새 만든 기획서가 상사의 이메일함에서 며칠째 머물러 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캠페인인데 직원들 반응은 생각보다 차갑다. 회의에서 야심 차게 설명했지만, 누구도 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용은 좋았다. 논리도 탄탄했다. 그런데 왜 안 먹혔을까? 뭐가 부족하지? 그때는 몰랐지만 경험이 쌓여가면서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이 기획들에 부족했던 건 더 나은 내용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 즉 맥락(Context)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고민이 많았던 첫 직장, 온라인 영화 마케팅 회사에서 배운 것이었다. 2. 두 세계의 충돌: 냉혹한 영화판 vs 원칙의 HR 20대 중반, 나는 온라인 영화 홍보 마케터로 일했다. 영화판은 냉혹했다. 수년을 공들여 만든 작품이라도 개봉 초반에 관객을 끌어오지 못하면 가차 없이 극장에서 내려왔다. 그래서 마케터들은 이미 입소문이 난 대작일지라도 모든 역량을 ‘매력적인 예고편’에 쏟아붓고, 흥미를 줄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예술적 메시지 보다는 관객이 “이건 봐야겠다”고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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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Hands up] 냄새는 분자이기 때문에 털어낼 수 있다

“먼지도 아니고 냄새 나는 게 턴다고 털어지니?” 중국집 홍보대사라도 된 것 마냥 온몸에 짜장 향을 휘감은 채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직장 동료가 사무실 한 구석에서 온몸을 툭툭 두드리며 털고 있었다. 이를 본 화자가 의아한 듯 물었더니 그는 제법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냄새는 분자 니까요.” 그렇다. 냄새는 분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냄새를 일으키는 것은 분자다. 우리가 냄새가 난다고 느끼는 것은, 공기 중에 떠도는 특정 분자가 우리의 코로 들어와 코 속 후각 수용체에 붙게 되고, 여기서 발생되는 전기신호를 우리의 뇌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직장 동료의 분자 털기 행동은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제법 의미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실수의 냄새] 아무리 AI급 완벽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직장인이라 할 지라도 실수의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런 실수 중 소위 ‘사고’ 급의 실수는 마치 배어버린 냄새 와도 같아 그 향이 한동안 내 주위를 머무는데, 자꾸 스멀스멀 올라오는 과거의 실수 향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은 채 또다른 실수를 유발시키는 고약한 녀석이다. 물론 우리는 실수를 통해 어떠한 부분이 잘못되었고, 앞으로는 이러한

[콘텐츠인사이트] ’가족‘의 참된 의미 보여준 명품 드라마… <러브 미> 최종화를 보고

간만에 제대로 된 명품을 만난 기분이다. 지지고 볶고 울고 웃기며 카타르시스를 주는 볼 만한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 작품은 그 이상의 것을 건드렸다. 등장인물의 독백 한 줄 한 줄이 가슴에 와 닿았고, 문화 사대주의는 아니지만 원작이 해외에 있어 그런지 완성도가 매우 높다고 느꼈다. 배경이 어떻고 연출이 어떻고 볼거리가 풍성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 드라마의 힘은 훨씬 단단한 곳에 있다. 가족의 ‘해체’가 전성시대인 지금, 가족의 ‘결합’을 담백하면서도 묵직하게 보여준 데 있다. 이게 이 작품을 명품으로 만드는 이유다. 이제는 1인 가구가 하나의 가구 형태로 당당히 인정받는 시대다. 나아가 반려견과 반려묘도 법적 구성원은 아니지만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 즉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다. 극 속 인물 구성은 그야말로 현대 가족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어느날 갑자기 맞이한 미혼부, 사회적 지위는 의사지만 그 미혼부를 사랑하게 된 외로운 여자, 백수와 취업을 오가는 여자의 답없는 동생, 그 동생을 짝사랑하다 스타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여사친,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별 후 다시 영화처럼 사랑을 만났지만 결국 알츠하이머 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