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만 터지면 어디든 사무실이다. 아침엔 서울 강남 카페에서 회의하고, 오후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고객사를 만난다. 다음 날, 제주 서귀포 호텔에서 갓 나온 조식 빵을 씹으며 기획서를 쓴다. 디지털 노마드에게 '집'은 고정된 좌표가 아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재택근무 혁명은 우리 삶의 방식 자체를 뒤바꿔놓았다. 맥킨지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직장인 42%가 하이브리드 근무를 선호한다. 이 중 23%는 연간 3개 이상 도시에서 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30대 1인 가구 중 12.3%가 연간 2회 이상 이사를 한다.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임대차 계약은 여전히 최소 1년을 기본으로 하고, 전월세 시장도 6개월 미만 계약은 기피한다. 기술이 메우는 제도의 빈틈 단기 거주는 거대한 사회현상이다. 에어비앤비코리아 2023년 데이터에 따르면 1-3개월 장기 숙박 예약이 전년 대비 156% 늘었다. '한 달 살기' 트렌드가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제주(203% 증가), 부산(178%), 강릉(134%) 순으로 급성장했다. 주목할 점은 에어비앤비가 더 이상 외국인 관
얼마 전 AI 관련 포럼을 양일간 다녀왔는데 상당히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었다. 바로 ‘창발적 현상’ 이라는 녀석과의 만남이었다. ‘벌목’이라는 단어를 벌의 머리아래 목 언저리 부위로 이해하는 요즘 세대의 어느 친구라면 발이 달린 창문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으나, ‘창발’이라는 단어는 기대 이상으로 심오한 뜻을 지녔다. “창발(Emergence)이란 개별 구성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부분 수준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속성, 구조, 패턴, 혹은 기능이 전체 수준에서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창발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복잡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복잡계란 ‘많은 구성요소들이 서로 비선형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전체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패턴이나 질서가 스스로 형성되는 시스템’을 뜻한다. 즉 ‘복잡계’라는 ‘과정’을 통해 ‘창발적 현상’이라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 경제의 창발적 현상 주위를 둘러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온 국민이 글로벌 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각자가 개별 경제주체로써 올바른 투자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일 텐데, 신기하게도 각 개인은 오로지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독립적으로
◆ 당신은 지금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회의실에서 팀원이 말한다. “우린 늘 이렇게 해왔는데요?.” 그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스치는가? “관행을 고집하는 완고함”? “변화를 두려워하는 저항”? 혹은 “검증된 방식에 대한 신뢰와 안전에 대한 욕구”? 같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세 개의 의미가 숨어 있다. 나는 코칭을 배우며 깨달았다.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려면 단어가 아니라 맥락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는 지난 20주 동안 한 편씩 글을 써오며 내 안에서도 일어났다. ◆ 스무 번째 글, 그리고 나를 마주한 시간 어느덧 스무 번째 칼럼이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쓴다’는 약속이 작지만 버거웠다. 주말이면 노트북을 열고 생각을 정리하려 할 때마다 피곤이 몰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글을 쓰면 쓸수록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맑아졌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 안의 흐트러진 생각을 한 줄로 세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느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되었고, 그건 셀프 코칭의 과정으로 발전했다. 이 시리즈를 써오며 나는 ‘코칭의 정의’를 머리로가 아니라 손끝으로 익혔다.
2030년 서울 강남구 한복판, 오전 7시, 스스로 움직이는 파란색 쓰레기통이 조용히 거리를 가로지른다. 센서가 감지한 용량에 따라 최적 경로를 계산해 수거 지점으로 향하는 모습을 출근길 시민들은 무십하게 받아들인다. 같은 시각 뉴욕 맨해튼에서는 AI 로봇이 24시간 가동되는 선별장에서 플라스틱과 종이를 완벽하게 분류하고 있다. 런던 금융가의 오피스 빌딩은 폐기물 데이터를 바탕으로 ESG 등급을 월단위로 평가 받고, 이것이 임대료와 투자 가치를 결정한다. 공상과학 소설 같지만, 이는 현실이 되고 있는 스마트시티의 일상이다. 화려한 자율주행차나 메타버스 행정서비스가 아닌, 가장 평범한 쓰레기통에서 도시 혁신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 자율주행 쓰레기통, 도시를 움직이는 새로운 주체 자율주행 쓰레기통(Self-Driving Bins)은 IoT 센서와 GPS,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결합한 차세대 도시 인프라다. 내장된 초음파 센서가 쓰레기 용량을 모니터링한다. 설정된 임계점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수거 신호를 발생시킨다. 동시에 바퀴 구동 시스템이 작동해 사전에 설정된 수거 지점까지 스스로 이동한다. 핵심은 경로 최적화 알고리즘이다. 교통 상황과 보행자 밀도, 다른 쓰레
스무 번째 칼럼을 앞두고 문득 저 네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함께 필진으로 참여한 두 명의 동기 코치와 ‘각자 20편씩, 도합 60편의 칼럼으로 1단원을 마무리하자’며 ‘도원결의’를 했는데, 정말 그 시간이 다가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자기계발’과 ‘자기개발’의 차이를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어학사전과 챗GPT를 찾아보니 이렇게 정의되어 있더군요. ‘자기계발’은 내면을 닦는 과정이고, ‘자기개발’은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즉, 자기계발은 사람으로서의 성장, 자기개발은 전문가로서의 성장을 뜻합니다. 코칭을 공부하며 첫 단계 인증코치(KAC)가 된 저는 여러 분야 중에서도 ‘커리어(Career)’에 천착했습니다. 5번의 이직, 성격과 업태가 모두 다른 기업들 -대기업, 외국계, 중견기업까지 - 약 20여 년 동안의 다양한 경험이 있었기에, 나름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습니다. 정작 저는 ‘자기계발’과 ‘자기개발’을 명쾌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 순간, 다시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많은 직장인은 조직 안에서 좋은 구성원(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핵심인재(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고 싶어 합
올해 2025년의 노벨 물리학상은 전자회로에서 양자역학의 터널링 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해낸 3명의 과학자 (존 클라크, 미셸 드보레, 존 마티니스) 에게 돌아갔다. 여기서 양자 터널링 이란 쉽게 말해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입자가 뚫고 지나가는 현상’을 뜻하는데, 이러한 자연적 현상을 통해 Qubit(큐비트) 가 탄생하였다. ◆ Qubit의 중첩(Superposition) Qubit(큐비트)란 양자컴퓨팅의 기본 정보 단위로써 중첩(Superposition)의 특성을 가진다. 고전의 컴퓨팅에서 사용되는 Bit(비트)가 0(꺼짐) 또는 1(켜짐) 중 하나의 선택으로 작동된다면 큐비트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의 성격을 지니며, 이로 인해 여러 개를 결합하면 병렬 계산이 가능해 훨씬 많은 경우의 수를 한 번에 계산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직장인과 매니저의 불합리한 처우에 대한 코칭 세션을 진행한 적이 있다. 세션의 초반에 필자가 알아차린 것은 매니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차별적 대우로 촉발된 원망은 골이 깊어 보였고, 이내 원망의 본질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매니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동시
◆ 설악산의 기억, 그때 나는 나를 이겼다 지금도 '산'하면 15년 전 회사 팀워크숍으로 갔던 설악산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 팀은 무려 1년을 준비했다. 각자 주말마다 작은 산을 오르며 체력을 다졌고 함께 회사 계단을 오르내렸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새벽에 한계령에서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초반엔 웃으며 사진을 찍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허벅지는 천근만근, 머릿속에는 조직장에 대한 원망과 함께 '왜 사서 고생하지?'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정상까지 가야 한다는 목표보다 지금의 고통을 그만 멈추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지금도 선명하게 남은 것들이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 장만했던 등산복이 땀에 흠뻑 젖은 느낌, 얼굴에 엉긴 소금기, 그리고 대청봉 정상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날이 내 인생에서 분명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결국 해냈다는 사실. 그 이후로 나는 가끔 마음속에서 되뇌곤 한다. "그때 내가 설악산을 올랐잖아. 그러니 이번에도 할 수 있겠지." ◆ 상처는 흉터가 아닌, 나이테가 된다 삶도 산을 오르는 일과 닮았다. 정상에 오르기 전, 누구나 몇
2004년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내 주말의 절반은 일터였다. 금요일 밤을 지새우고, 토요일 새벽 기사 마감과 교열을 마친 뒤에야 점심 해장국 한 그릇으로 토요일 업무를 마무리하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해 사이 주 5일제가 안착했고, 우려했던 ‘토요일 관공사, 병원·은행 공백’은 제도 조정과 기술 확산으로 빠르게 흡수됐다. 2025년 10월,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시간의 재구성 앞에 서 있다. 정부가 ‘주 4.5일 근무제’를 포함한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법’의 연내 제출을 공식화했다. 하위법령 66건 연내 정비와 110건 법률안의 신속 제출까지 제시했다.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정기국회 처리를 염두에 둔 구체적 로드맵이다. 나는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 알스퀘어의 일원으로서 이 변화를 ‘오피스 시장의 구조와 가치’라는 렌즈로 들여다 본다. 제도 변환은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작동하는 설계와 문화, 기술, 공간의 정교한 맞물림이 있어야 한다. ◆ 주 6일에서 주 4.5일, 그리고 우리 아이 세대의 ‘주 3일’까지 6~7년전이다. 스타트업 ‘여기어때’ 재직 시절, 금요일 오후 1시 조기퇴근을 시도했지만 잔업과 눈치 문화 탓에 체
어느덧 여섯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제 자신을 문득 살포시 돌아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전역한 바로 다음 날, 저는 말년 군인에서 다시금 ‘군기 팍 든’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고심 끝에 들어간 첫 직장은 건설회사였습니다. 23년 전 공채로 입사해 4년 남짓 다니며 대리로 특진도 했지만, 결국 제 선택은 ‘이직’이었습니다.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또 고심했습니다. 그때 불현듯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될래, 아니면 조직 안에서 제네럴리스트(Generalist)로 성장할래?” 제 선택은 ‘스페셜’이었습니다. 그래서 홍보라는 본래의 신호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과감히 업종을 바꾸며 새로운 길을 택했습니다. ◆ 이직을 해야만 스페셜리스트가 될까요? 제 대답은 단호히 “그렇다!”입니다. 한 회사에서 같은 팀, 같은 본부에 수십 년을 머무는 건 - 자의든 타의든 -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정년까지 한 조직에서 근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 의지나 조직장과의 관계, 회사 시스템의 변화, 사업 구조 개편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언젠가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결국 나만의 커리
딸아이에게 종종 동화책을 읽어줄 때면, 필자는 아이의 비판적 사고를 강화해 주겠다는 명목 하에 여러 질문을 던지곤 한다. 물론 어깨 너머로 느껴지는 아이엄마의 불편한 시선은 마치 세금과도 같다. “백설공주가 주인 없는 난쟁이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고 침대에서 자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신데렐라의 구두는 왜 12시가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발사이즈로 특정인물을 가늠하는 것이 논리적인 접근인가?” 이러한 괴짜스러운 접근방식이 ‘토끼와 거북이’의 한 구절에 닿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 노력도 가끔은 배신한다 얼마 전 매니저와의 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직원과 코칭을 진행 한 적이 있다. 그는 관계 개선을 위해 지금껏 다양한 시도를 해왔으며, 매니저에게 맞추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것이 없음을 느껴 정신적으로 위축이 되고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한 상태였다. 심지어 내면에 매니저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커진 상태였다. “제가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걸까요?” 힘겹게 꺼낸 그의 말에 나는 질문했다.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한 5년 후의 나를 상상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요?”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