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패션 브랜드 ‘탑텐’과 ‘지오지아’로 유명한 신성통상이 자발적 상장폐지(자진상폐)를 위해 다시 한 번 공개매수에 나서자, 9일 장 초반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 같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신성통상법(살찐 고양이법)'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5분 기준 신성통상은 전 거래일 대비 29.97% 오른 3925원에 거래됐다. 이는 1·2대 주주인 비상장사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이 이날부터 내달 9일까지 한 달간 주당 4100원에 신성통상 주식 2317만8102주(지분율 16.13%)를 공개매수한다고 밝힌 영향이다.
이번 매수가는 2024년 6월 상폐 추진 당시(2300원)보다 78.3% 인상된 수준이다. 만약 목표 지분을 모두 매수하면 최대주주 측 지분은 100%가 되어 상장폐지 요건인 95%를 넘긴다.
1년 만에 재도전…공개매수 가격 대폭 인상
신성통상은 지난해 6월에도 상장폐지를 시도했으나, 당시 공개매수가(2300원)가 주주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쳐 응모율이 5.9%에 그치며 실패했다. 이번에는 매수가를 4100원으로 크게 올려 재도전에 나섰다.
현재 염태순 회장 일가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83.87%로, 공개매수가 성공하면 100%로 늘어난다. 상장폐지 요건인 95%를 무난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신성통상은 “최대한 신속하게 상장폐지를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업계와 시장에서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 강화와 후계구조 확립이 진짜 목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탐욕적 상장폐지’ 논란…소액주주 보호는 뒷전
하지만 시장과 정치권, 투자자들은 신성통상의 이번 상장폐지 재추진을 두고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논란을 거세게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1차 공개매수 당시 제시한 가격(2300원)은 주가순자산비율(PBR)보다 낮은 수준이었고, 이번에도 기업의 실질 가치에 비해 충분한 프리미엄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소액주주들은 “이익잉여금이 사주 일가에 흘러들 가능성이 크다”며 집단행동까지 예고했다. 실제 신성통상이 쌓아온 이익잉여금은 2012년 712억원에서 올해 1분기 말 3111억 원까지 늘었다.
게다가 신성통상은 오랜 기간 저배당 정책을 유지해왔다. 2011~2012년 두 차례 5억원 배당 이후, 2023년 주당 50원(총 72억원)만을 배당했으며, 이 중 소액주주 몫은 16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반면,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 가족회사는 최근 3년간 평균 28%의 고배당을 실시했다. 상장폐지 후 신성통상의 이익잉여금이 가족회사처럼 고배당 정책으로 전환될 경우, 회사의 이익이 고스란히 대주주 일가로 흘러들어갈 우려가 크다.
공시·감시 회피, 투자자 희생
이처럼 신성통상은 저평가와 주주환원 미흡 등으로 오랜 기간 주주 불만을 샀다. 이번 상장폐지는 그간의 경영 미흡을 오너 일가의 이익으로 전환하는 ‘살찐 고양이’ 전략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살찐 고양이(Fat Cat)은 탐욕스럽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자본가 혹은 과도한 보상을 챙기는 경영진을 비꼬는 표현이다. 1928년 미국 저널리스트 프랭크 켄트가 저서 『정치적 행태(Political Behavior)』에서 처음 사용했으며, 이후 미국 정계와 경제계에서 널리 쓰이게 됐다.
권력과 부를 독점한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고, 일반인이나 소액주주, 직원 등 약자들의 몫을 빼앗거나 외면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특히 상장폐지(자진상폐) 등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오너 일가가 독식하거나, 경영진이 과도한 보수와 배당을 챙기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상장폐지 이후에는 공시 의무와 외부 감시에서 벗어나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비상장 가족회사의 돈으로 상장사 주식을 사들여 완전한 가족회사로 만든 뒤, 투자자 감시와 공시 의무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신성통상은 저평가, 주주환원 미흡 등으로 이미 투자자 불만이 컸던 기업이다.
이번 상장폐지는 오너 일가의 이익 극대화와 소액주주 희생이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전형적 사례로 지목된다.

정치권·전문가 “탐욕적 상장폐지 중단해야”
현재 구조에서는 대주주가 공개매수 가격과 시점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소액주주 보호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델(Dell)사 사례처럼 법원이 공정가치를 산정하는 제도, 집단소송권 확대,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주주활동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권에서는 신성통상의 상장폐지 시도를 “개미 투자자를 죽이는 탐욕적 행위”로 규정했다.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비상장 가족회사의 돈으로 상장사 주식을 사들여 완전한 가족회사로 만든 뒤, 손쉽게 투자금을 회수하고 상장사 의무를 피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또한 “공개매수 가격과 시점을 대주주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법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신성통상의 자진 상장폐지는 선량한 소액주주들을 죽이는 행위”라며,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에 역행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상장폐지에 따른 투자자 피해 방지와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신성통상의 자진상장폐지 재추진은 단순한 기업 구조조정이나 경영 전략 차원을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와 투자자 보호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대주주 일가의 이익 극대화와 소액주주 희생, 저배당·저환원 정책, 공시 회피 등 도덕적 해이 논란이 반복되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