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건설 중인 440억 달러(약 60조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공장 완공 시점을 당초 2024년에서 2026년으로 2년가량 연기했다고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tomshardware, datacenterdynamics 등 복수의 글로벌 매체가 보도했다.
이번 연기의 핵심 배경은 고객사 확보 실패와 시장 수요 부진에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자립' 전략에 적잖은 타격을 주는 동시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2% 완공에도 '멈춘 공장'…삼성, "장비 들여와도 할 일이 없다"
삼성 테일러 팹은 이미 2024년 3월 기준으로 92% 공정률을 기록했지만, 실제 장비 반입과 생산 개시는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닛케이 아시아 등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고객이 없어 공정이 지연되고 있다. 지금 장비를 들여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현장 분위기다. 삼성은 네덜란드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등 핵심 생산설비 도입도 미루고 있으며, 주요 공급업체와의 주문 역시 연기 중이다.
투자 규모 3배 확대…그러나 '수요 미스매치'가 발목
삼성은 2021년 170억 달러로 시작한 텍사스 투자를 2024년 440억 달러로 3배 가까이 확대했다. 이는 첨단 4나노 및 2나노 공정,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위한 대규모 증설이었다.
그러나 "수년 전 계획한 공정 노드가 더 이상 현재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공급망 임원의 증언처럼, AI용 첨단 칩을 제외한 전통적 IT·자동차·가전용 칩 수요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CHIPS법' 64억 달러 보조금에도…TSMC와 격차 확대
삼성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책인 CHIPS법(과학법)에 따라 64억 달러(약 8조7000억원)의 연방 보조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생산 개시 지연으로 보조금 수령 기준 충족 여부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의 점유율은 7.7%(2025년 1분기 기준)로, 대만 TSMC(67.6%)와의 격차는 오히려 확대됐다.
글로벌 반도체 투자, 'AI 쏠림'과 공급망 리스크
이번 사태는 삼성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업계 전반의 'AI 수요 쏠림'과 전통 시장 침체라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AI·고성능 컴퓨팅용 칩을 제외한 일반 칩 수요는 팬데믹 이후 회복이 더디고, 미국·중국 간 공급망 재편, 기술 노드의 급격한 진화 등이 투자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실제로 삼성은 최근 1.4나노 파일럿 라인(평택 2공장)도 연기하며, 첨단 공정 전환에 집중하고 있다.
'기술 진화 속도'와 '고객 확보'가 좌우하는 미래
삼성은 테일러 공장 현장 인력 채용 등 기본 운영은 지속하되, "공장 전면 개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당분간 관망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의 '고객 기반'과 '기술 적합성'이 투자 성공의 핵심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닛케이 아시아의 반도체 공급망 담당 임원은 "칩 수요가 그다지 강하지 않고, 삼성이 수년 전 계획했던 공정 노드는 더 이상 현재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 공장 개조에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삼성은 관망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삼성의 텍사스 공장 연기는 단순한 기업 일정 조정이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수요·공급, 기술 진화, 정책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산업 지형 변화'의 신호탄이다.
향후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의 성공 여부는 단순한 투자 규모가 아니라, 기술 적합성과 고객 기반 확보라는 본질적 경쟁력에 달려 있음을 이번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