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최근 서울의 개인택시 면허 시세가 ‘억대’로 치솟았다. 2년전만 해도 8000만원대였고, 올해 초만 해도 9000만원대였는데 갑자기 몇달새 1억원을 돌파한 것.
택시·화물 면허를 중개하는 남바원택시, 대한운수면허협회 등에 따르면 천안, 세종, 진천, 양주, 이천, 화성, 김포, 하남, 춘천, 안산 등이 개인택시 사업면허(번호판) 가격이 비싼 곳 TOP10으로 파악됐다.
6월 기준 서울 개인택시 사업면허(번호판)는 호가가 1억3000만원, 실거래가는 1억150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올 3월 첫 1억원 돌파 이후 불과 석 달 만에 다시 2000~3000만원이 오른 것이다. 택시로 운행하던 신차급 중고차를 포함한 호가는 최고 1억5000만원을 상회한다. 서울시의 2024년 1월 기준, 개인택시는 4만9087대, 법인택시 2만2603대가량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개인택시 시세 특성상 그동안 서울 평균 시세는 전국 평균 대비 낮은 편이었다. 수도권 일부 도시나 충청 지역이 연일 최고가를 갱신중이다. 경기 수원‧고양지역 개인택시 번호판 가격은 1억5000만원, 제주는 1억6000만원, 안산‧의정부 1억6500만원, 춘천 1억8000만원, 김포‧하남 1억9000만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경기 양주‧이천‧화성과 충북 진천은 2억원, 세종 2억2000만원, 충남 천안 2억2500만원을 기록했다.
반면 경기도에서 택시 면허 값이 가장 싼 곳은 광명시다. 양주시의 3분의 1 수준으로 최근 7500만원에 개인택시 번호판이 거래됐다. 즉 경기 도시별 시세는 서울과 가까울수록 싸고, 멀수록 비싸다.
택시면허 중개업계 한 관계자는 “수도원 일부도시, 세종시 경우처럼 교통인프라는 아직 미흡한데, 단기간에 인구가 급증한 곳이 대개 면허가 비싸다"면서 “대중교통이 취약해 조금만 지역을 벗어나면 시외요금 할증이 붙는 지역도 면허넘버 값이 비싼 편이다”고 설명했다.
개인택시 면허 가격이 뛴 것은 그만큼 매수 수요가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2021년 정부가 택시기사 고령화를 해결하겠다며 면허 양수 자격 기준을 낮추는 정책을 꺼낸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 셈이다. 정부는 면허 양수 자격을 ‘법인택시 5년 이상 무사고 운전’에서 ‘5년 이상 무사고 운전자’로 완화해 법인택시 운전 경력이 없는 사람도 개인택시 운전에 나설 수 있게 했다.
게다가 당시 정책과 함께 도입된 ‘개인택시 양수교육’ 유효기간이 3년인 점도 최근 매수 수요를 끌어올렸다. 당시 총 40시간(체험형 교육 30시간 포함)의 교통안전교육을 받으면 사업용 운전경력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내놨다. 이 교육수료증 유효기간인 ‘3년 만기'가 다가오자 부랴부랴 면허 양수에 나선 이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가격이 뛰었다는 분석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택시영업이 큰 타격을 입자, 기사들이 대량으로 배달업계와 다른 생계형 직종으로 이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개인택시 업계는 택시 부제(의무 휴무제) 해제, 요금인상 등의 정부 정책을 딛고 다시 살아났다.
기사 이탈로 심야택시 부족난이 극에 달하자 2021년 11월 택시 강제 휴무제(반드시 이틀 일하고, 하루는 쉬어야 하는 3부제)도 45년 만에 해제했다. 또 2022년 12월에는 심야시간 할증률을 최대 40% 인상했다. 2023년 2월에는 3800원이던 택시 기본요금을 4800원으로 26% 크게 올렸다.
면허값 상승의 결정적 이유는 택시 3부제 폐지다. 개인택시 한 기사는 “부제 해제가 택시면허 상승의 결정적인 요인"이라며 "나이들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1~2억원의 투자금으로 평생직장이자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한 만큼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매력"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분위기상 더 오를 것이란 전망에 매도시기를 저울질하는 기사들도 있어 한동안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극심한 경제불황,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기업해고의 급증, 중장년층의 일자리 부족, 초고령화로 노령인구 급증 등이 겹치며 개인택시같은 안정적인 수입원이며, 고용불안없는 평생직장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한 중장년층 인구들이 퇴직금으로 택시면허를 사서 10~20년간 운행하다가 이를 되팔아 노후 자금으로 충당하고 있어 '노후 대비 1석2조'의 효과도 있다.
서울 한 70대 택시기사는 “아직은 체력이 되어 일주일에 1~2일 정도 취미삼아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하지만 사실상 택시기사에서 은퇴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IMF같은 국가적 경제위기가 올 경우 택시면허 가격은 더 오를 것이기 때문에 미루고 있다. 면허를 팔아 노후대비 자금으로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령 택시기사의 증가는 시민의 안전권을 위협하고 있다. 서울시에 등록된 개인택시 기사의 평균 연령은 64.7세다. 전국의 택시기사 가운데 절반가량은 65세 이상이다. 또 택시는 근무시간당 수입이 2만~3만원이다. 고령 운전사도 문제지만 일부 택시기사의 경우 많이 벌기위해 무리하게 운행하다보니 사고가능성도 더 커진다.
교통전문가는 개인적인 사견을 전제로 "한정된 면허때문에 일종의 권리금이 높아지는 추세이므로 택시영업시장을 더 유연하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타다, 우버같은 다양한 모빌리티 모델이 늘어나 질적, 양적 소비자 선택을 늘려 택시시장과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모빌리티업계 관계자는 “정치권들이 서민표를 의식한 조치로 2020년 타다 금지법(여객운송사업법 개정안)으로 인해 플랫폼 택시업계가 위축됐다"며 "택시 사업자들만 프리미엄을 누리게 됐고, 결국 시민들만 교통선택권과 질높은 서비스이용권이 박탈당한 셈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