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9 (월)

  • 맑음동두천 -3.6℃
  • 흐림강릉 2.5℃
  • 맑음서울 -2.3℃
  • 대전 -0.1℃
  • 흐림대구 5.3℃
  • 연무울산 6.8℃
  • 박무광주 2.4℃
  • 구름많음부산 8.3℃
  • 흐림고창 1.2℃
  • 구름많음제주 7.9℃
  • 맑음강화 -4.2℃
  • 흐림보은 -0.3℃
  • 흐림금산 0.2℃
  • 흐림강진군 3.9℃
  • 흐림경주시 5.9℃
  • -거제 6.2℃
기상청 제공

Opinion

[내궁내정] "가장 느린 줄이 항상 내가 선택한 줄" 에토레의 고찰…기다림의 가치화(Value of Waiting) 전략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대형마트에서 줄을 설 때 언제나 내가 선 줄이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고,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내가 가고 있는 차선이 가장 늦게 가는거 같고, 콜센터(고객센터) 대기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금방 연결되는 것 같은데, 내가 전화하면 유독 오래 기다려야 하는 느낌? 모두 경험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이른바 '내가 선 줄이 가장 느리다'  ‘가장 느린 줄이 항상 내 줄이다’라는 에토레의 고찰(Ettore’s Observation)이란 개념이다.

 

이는 일종의 행동 경제학적 편향(Bias)과 심리학적 오류(Psychological Fallacy)를 다룬 개념으로 실질적인 확률적 요인 뿐만 아니라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 결합한 현상으로,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패턴이다. 우리는 이 법칙을 이해함으로써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에토레의 고찰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선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부정적인 기억을 더 강하게 인식하고 이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즉, 빠르게 이동한 경험보다 줄이 느리게 움직였던 경험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이다. 우리가 줄을 선택할 때, 대개 사람들이 적은 줄을 고르지만, 의외로 해당 줄이 더 느리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하필이면 슈퍼마켓에서 내가 선 줄의 계산대 직원이 문제를 겪거나, 내 줄의 앞사람이 많은 상품을 구매하는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평균 회귀(Regress to the Mean)때문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줄은 평균적으로 비슷한 속도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느린 줄에 있을 때 더 크게 실망하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네 번째는 시간 지각 왜곡(Time Perception Distortion)이다. 우리가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지루함이나 불만으로 인해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 반면 빠르게 이동할 때는 만족감과 안도감으로 인해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에토레의 고찰과 비슷한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들은 더 있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반드시 잘못된다"는 머피의 법칙(Murphy’s Law)도 그렇다. 줄이 항상 느리다고 느끼는 것은 부정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인간의 본성과 연결된다.


또 "일은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도록 확장된다"는 개념처럼 공무원의 수는 일의 양과 관계없이 증가한다는 생태학적 법칙인 파킨슨의 법칙(Parkinsson’s Law) 역시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더욱 길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도 비슷하다. "조직 내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승진한다"는 의미다. 피터의 법칙에 따르면 자신의 직무에 유능한 사람은 보다 폭넓은 역량을 필요로 하는 상급 직위로 승진하게 된다. 만약 승진한 사람이 새 역할에 필요한 역량이 부족하다면 그 직위에서는 무능한 사람이 되어 다시 승진하기 어렵다.

 

즉 조직의 구성원은 현재의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 직책까지 승진하게 되고, 결국 무능한 상태로 고위직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직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아닌 무능력에 따라 직위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줄이 느리게 움직이는 이유 중 하나가 해당 줄을 담당하는 직원의 비효율 때문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들이 가진 인지 편향을 기업들은 역이용한 마케팅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즉 사람들이 에토레의 고찰을 경험하는 순간을 포착해 이를 마케팅 및 소비자 행동 유도에 활용한다.

 

고객이 줄을 서거나 기다릴 때, '예상 대기 시간'을 일부러 짧게 표시해 대기 불만을 줄인다. 스타벅스 모바일 오더의 경우, 실제보다 짧게 예측된 픽업 시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놀이공원에서 VIP패스(디즈니 Genie+, 유니버설 익스프레스)처럼 추가 비용을 내면 기다림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고객들은 "테마파크에서의 일반 줄은 너무 느리다"는 경험을 한 후, 기다림에 지친 고객들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높아진다는 "희소성 마케팅"을 적용한다.

 

한정판 제품(예: 한정 수량 나이키 신발, 한정판 아이폰)을 구입할 때, 주문 과정에서 일부러 대기 시간을 발생시켜 제품의 가치가 더 높아 보이도록 만드는 것도 나이키와 애플이 즐겨쓰는 전략이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예약 시 "현재 100명이 대기 중입니다"라는 문구를 띄워 사용자가 결정을 서두르게 만드는 것 역시 비슷한 마케팅 전략인 셈. 기업들은 소비자의 인지 편향을 역이용해 대기 시간을 전략적으로 조작하거나, 대기 자체를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즉 줄을 서는 경험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기업들은 이를 "기다림의 가치화(Value of Waiting)" 전략으로 활용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인다. "기다림" 자체가 희소성과 가치 상승 효과를 만들어 "더 특별한 것"이라는 인식을 만든다.

애플 신제품 런칭 줄서기,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예약, 나이키 리미티드 스니커즈 등의 사례는 줄을 서서 사는 경험 자체가 커뮤니티 경험 문화를 형성하고 줄을 서는 것이 "사회적 인증" 효과를 만든다. 줄을 서는 것이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특별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즉  애플 스토어 줄서기는 "나는 애플 마니아"라는 정체성을 SNS에 올릴 수 있고, K-pop 콘서트 티켓팅 줄은 팬들끼리 '같은 종족'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블루보틀 커피 첫 매장 오픈 줄서기는 "처음으로 맛봤다"는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 시간을 줄이거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특히 미래에는 대기 자체가 불필요한 "줄 없는 사회(Queue-less Society)"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대기 시간이 없는 세상"이 되면, 기업이 대기 시간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희소성, 브랜드 경험 등)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애플 제품을 온라인으로 즉시 구매할 수 있다면, 신제품 줄서기 문화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인기 레스토랑이 대기 없이 운영되면, "가치가 높은 곳"이라는 인식이 줄어들 수 있어 오히려 손님이 줄어 들 수 있다.


소비자는 "즉각적인 만족"을 원하지만, 반대로 "기다림의 가치"를 경험하고 싶어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기업들은 기술이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기다림이 주는 심리적 만족감을 고려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미래 사회에서는 단순히 기다리는 시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대기 자체를 가치 있는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배너
배너
배너

관련기사

3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콘텐츠인사이트] 로코를 애써 보지는 않지만… <이사랑 통역 되나요>를 보고

딱히 이유는 없지만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즐겨 보지 않는다. 잘생기고 예쁜 남녀가 등장해 알콩달콩 관계가 진전되고, 중간에 시련과 반전이 찾아왔다가 결국 사필귀정으로 귀착되는 기본 구도가 어딘가 성의 없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로맨스’ 자체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맨스 스릴러’나 ‘로맨스 드라마’는 즐겨 봤다. <갯마을 차차차>나 <우리들의 블루스>도 한 회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아마 내겐 코미디적 감각보다 감정의 결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주말이라고 해도 한가롭지 않다. 더구나 큰아이가 고3이 되는 해라 이래저래 눈치도 보고, 각자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다 보면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함께 보는 시간이야말로 귀한 여유가 된다. 이번 주말, 우리의 선택은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이하 ‘이통되’)였다. 사실 두 번째 회차 시청이었는데 이번에는 이거다 싶은 느낌이 왔다. 한동안 은퇴설까지 나돌았던 김선호 배우의 복귀와 <무빙>에서 호평받았던 히로인의 조합까지 더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설정만 보면 어처구니없다. 전직 무명 여배우가 하루아침에 글로벌 셀럽이 되

[콘텐츠인사이트] 진짜와 가짜, 그리고 본질…다시 봐도 수작 <사이비>를 보고

몇 년도 작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넷플릭스엔 꽤 많고, 신작이 별로이거나 업데이트가 뜸할 때면 리모컨을 들고 이곳저곳을 탐침하듯 둘러본다. 주말 아침 눈에 들어온 작품은 연상호 감독을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린 애니메이션 <사이비>였다. 살다 보면 자주 쓰지만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단어가 있다. ‘사이비’가 그랬다. 사전을 찾아보니 ‘닮았지만 아닌 것’, 즉 겉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상태를 의미한다. ◆ 넘쳐나는 ‘사이비’의 시대 도처가 사이비의 천국처럼 보인다. 종교 영역에서 많이 들리는 단어이지만, 짝퉁은 물론이고 원조를 자처하며 스스로를 오리지널이라 우기는 존재들이 곳곳에서 활개 친다. 유통 시장에서의 미투 상품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신앙심 깊은 목사라 믿었던 이들 중 일부가 알고 보면 허세와 사기만 앞세운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를 진짜라고 믿는 데 있다. 그럴듯한 외양과 서사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본질이 100이라면 98은 실체에 충실하지만, 2만큼의 자의적 해석으로 진짜를 부정하는 방식이다. 더 안타까운 건 종교적 믿음이라는 포장을 통해 헌금과 시간을 바치는 사람

[커리어 블렌딩] 방황이 아닌 '확장'…흩어진 점을 연결해 ‘나’라는 브랜드 만들기

내 책상 위에는 더 이상 종이 이력서가 쌓이지 않는다. 대신 듀얼 모니터 화면 속에 AI가 분석한 데이터가 촘촘히 떠 있다. 인공지능 전환(AX) 시대, 채용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AI는 지원자의 서류를 검토하고, 역량 검사를 통해 "이 지원자는 우리 조직과 적합도가 85%입니다"라며 추천 여부를 판가름한다. 심지어 대면 면접에서 무엇을 물어봐야 이 사람의 잠재력과 리스크 요인을 확인할 수 있을지 '맞춤형 질문'까지 뽑아준다. 이 냉철한 시스템을 보며 나는 문득 짓궂은 실험을 해보고 싶어졌다. "만약 10년 전, 20년 전의 내가 쓴 이력서를 이 AI 면접관에게 넣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신문사 인턴 기자, 다국적 광고 대행사(JWT) 아르바이트, 영화 홍보사 직원, 브랜드 컨설턴트, 국내 식품 대기업 마케팅본부 대리, 지주사 가치체계 기반 조직문화 담당 과장, 인권경영 센터 팀장, 그리고 오늘날 학습과 영상/미디어, 조직문화를 총괄하는 임원까지. 어쩌면 '부적합'이나 '일관성 부족'이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사람이 보기에 정신없어 보이는 이 '지그재그' 경력을, 논리적인 알고리즘이 좋게 평가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점

[콘텐츠인사이트] ‘우려’가 된 ‘반려’… <컴패니언>을 보고

‘반려견’, ‘반려묘’ 언젠가부터 일상에서 익숙하게 들리는 단어다. 예전에는 “강아지 키우세요?”, “집에 고양이 있어요?” 정도의 표현이 전부였다. 이제는 반려동물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전제하는 언어가 채택되고 있다. ‘반려(伴侶)’의 어원을 다시 찾아보니, 짝 반(伴)과 동무 려(侶). 즉 짝이 되어 함께 지내는 존재, 삶의 파트너라는 뜻이다. 1인 가구가 일반화된 시대에 ‘반려’는 사람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모든 존재를 향한 호칭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넷플릭스에서 헤매다 오랜만에 쿠팡플레이를 열었다. 여러 작품을 넘기다 눈에 들어온 영화가 <컴패니언(Companion)>. SF와 스릴러가 결합된 장르라는 설명에 호기심이 동했고, 런닝타임도 부담이 없었다. (*제가 좋아하는 120분 미만) ◆ 프로그래밍된 반려는 유익하기만 할까 영화의 설정은 철저히 인위적이다. 자신이 로봇임을 모르는 로봇, 그와 관계를 맺는 인간, 그리고 둘 사이의 정서적 착시. 처음에는 ‘반려봇’으로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듯 보였으나, 설정값의 오류와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면서 시스템은 빠르게 일탈한다. 완벽해 보였던 동

[Future Hands up] 나뭇잎은 사실 초록색을 싫어한다

“아빠, 나뭇잎은 초록색을 사랑 하나 봐. 온통 초록색 이잖아.” 방학숙제로 식물원을 탐방하던 딸아이가 문득 필자에게 화두를 던졌다. 나뭇잎은 과연 초록색을 사랑하는가. 이 어린 아이의 단순하지만 심오한 질문을 아빠는 굳이 물리학적으로 접근해 보았고, 그 결과 전혀 반대의 답을 얻게 되었다. 햇빛은 파장이 다른 여러 가지 색의 전자기파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뭇잎은 빛을 구성하는 여러 색들 중 유일하게 초록색만을 흡수하지 않고 반사 시켜 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반사된 빛인 초록색을 나뭇잎의 색으로 인지하게 되는데, 즉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뭇잎은 초록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언제나 밝아요." 세상 모든 부모가 쉽게 하는 착각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아이는 제가 제일 잘 알죠.’ 일 것이다. 만약 부모가 아이의 내면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보여지는 생활 속 모습만으로 판단하려 한다면, 마치 나뭇잎이 초록색이라서 초록을 좋아한다고 아는 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언젠가 과하리 만큼 밝은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밝은 미소를 무장한 채 만나면 언제나 웃음으로 인사하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콘텐츠인사이트] 용서와 복수 사이에서, 코치는 무엇을 묻는가…<단죄> 1-3화를 보며

새해 첫날이다. 해가 바뀐다는 사실이 예전만큼 새롭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만큼은 여전히 축복처럼 다가온다. 가슴 아픈 일도, 잊기 힘든 기억도 잠시 내려두고 출발선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바쁜 연말을 보낸 뒤, 몇 달 전부터 예약해 둔 짧은 호캉스를 다녀왔다. 하룻밤이었지만 가족과 함께 수영을 하고, 사우나를 즐기고, 룸서비스로 식사를 하며 카운트다운을 함께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찰나의 달콤함을 위해 또다시 달리고, 견디고, 버티는지도 모르겠다. 체크아웃 후 전시를 하나 보고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한 뒤 자연스럽게 넷플릭스를 켰다. <이태원 클라스>에서 인상 깊었던 배우 이주영이 주연을 맡은 <단죄>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시놉시스를 읽고 1화부터 3화까지 단숨에 봤다. 아직 전편을 보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은 나를 한 질문 앞에 세웠다. ‘용서와 복수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 진정한 용서란 무엇일까 보이스피싱은 인간의 악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범죄다. <단죄>는 그 잔혹함을 전면에 내세운다. 부모를 잃은 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

[콘텐츠인사이트] 신선한 소재와 톡톡 튀는 대사에 일단 만족… <캐셔로> 1-2회차를 보고

“아버지가 물려준 건 초능력이 아니었다. 가난이었다.” 이 대사 한 줄에 저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범상치 않은 능력, 그것도 초능력을 마치 신탁처럼 성인이 된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물려주는 아버지의 설정부터 흥미롭습니다. 얼떨결에 능력을 상속받은 주인공은 좌충우돌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하나둘 현실을 헤쳐 나갑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준호입니다. 평소 넷플릭스 신작이라면 관람평은 물론 사전 정보도 최대한 차단한 채 감상을 시작하는 편인데요, 그런 제 기준에서 <캐셔로> 1~2회차는 일단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이 시리즈는 시작과 동시에 <무빙>이 떠올랐고, 곧 <하이파이브>, 이어 <경이로운 소문>이 연상됐습니다. 카피한 듯하면서도 그대로 카피하지는 않은 느낌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제법 후한 별점을 주고 싶어진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로 돈이 있어야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설정, 그리고 현실을 비틀어 꼬집는 맛깔나는 대사들 때문입니다. 아직 남은 회차가 있습니다. 주말 동안 기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과 가사를 마친 뒤, 다시 한번 이 세계관 속으로 빠져들어 볼 생각입니다. ◆ ‘초(超)’는 무엇일까요?

[콘텐츠인사이트] 한식 정찬도 좋지만 가끔은 보리밥도…<미장센영화제 단편모음>을 보고

각종 전과 나물, 불고기, 조기구이에 식혜 후식까지. 옛날 입맛의 ‘꼰대(?)’ 같지만, 이렇게 일품 한상으로 차려 나오는 정통 한식당을 저는 꽤 좋아합니다. 물론 가격은 만만치 않지만 말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특별한 개성은 없죠. 정해진 코스에 맞춰, 때가 되면 정확히 등장하는 요리들. 마치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조연이 나오고, 주인공이 활약한 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흥행 공식을 충실히 따른 대형 상업영화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예상 가능함’이 오히려 만족 포인트가 되더라구요. 괜히 접대를 잘한 것 같은 포만감도 들고, ‘이게 격식이지’라고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일종의 강박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그 모든 형식을 내려놓고, 라면 한 그릇이나 단무지 곁들인 짜장면 한 접시가 유독 당길 때가 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차곡차곡 이어지는 코스가 아니라, 물 끓여 붓고 10여 분 만에 끝나는 단순한 포만감. 목 넘김보다 속도를 택한 만족이라고나 할까요. 넷플릭스의 매력은 바로 이런 뜻밖의 ‘수작’을 만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독립영화가 그렇고, 성탄절 휴무일 아침을 맞아 본 단편영화 모음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 지금은 유명 배우가 된, 무명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