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7 (금)

  • 맑음동두천 6.2℃
  • 맑음강릉 8.7℃
  • 박무서울 8.9℃
  • 박무대전 12.0℃
  • 연무대구 11.7℃
  • 연무울산 15.5℃
  • 연무광주 11.5℃
  • 연무부산 15.6℃
  • 맑음고창 8.1℃
  • 흐림제주 15.6℃
  • 흐림강화 5.6℃
  • 맑음보은 8.2℃
  • 맑음금산 8.9℃
  • 맑음강진군 11.5℃
  • 맑음경주시 11.2℃
  • 맑음거제 13.7℃
기상청 제공

Opinion

[공간과 색채] 역발상 끝판왕 佛 '퐁피두 센터', 색깔도 기능적 관점으로 '해석'

컬러리스트 노정민의 ‘색채공간(Color Space)’이야기 (1)

 

예술과 문화의 도시 파리에서 제33회 하계올림픽이 화려하게 문을 열었다. 올림픽 역사 상 최초로 오픈 스타디움으로 별도의 경기장 없이 아름다운 도시 전체를 배경으로 전 세계 화합의 장이 열린다. 기존 방식과 형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와 발상의 전환이 왜 프랑스 파리에서 가능한 것일까.  

 
◆ 퐁피두 센터(Pompidou Center) 

 

남들과는 다른 역발상과 창의적인 발상이 발현된 공간 중 하나는 바로 파리에 위치한 조르주 퐁피두 센터(Georges Pompidou Center)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파리의 3대 미술관으로 프랑스의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의 이름을 따서 1977년에 완공됐다.

 

퐁피두 센터는 문화예술 복합 공간으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 시리즈와 마르크 샤갈의 작품 등 20세기 초반의 현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마르셀 뒤샹이 남성용 소변기를 몰래 전시해 당시 예술계를 발칵 뒤집은 것으로 유명한 작품 ‘샘’도 감상할 수 있다.

 

 

◆ 마르셀 뒤샹(Marcel Dushamp)

 

퐁피두 센터는 포스트모던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조형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색채를 미학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컬러는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적인 요소로 사용되지만, 퐁피두 센터의 외관 컬러는 색채를 기능적인 관점에서 사용했다는 점에서 역발상이 돋보이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퐁피두 센터의 외관은 내부에 있어야 할 파이프와 구조물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 비비드톤(Vivid Tone)의 빨강, 노랑, 파랑과 초록 등으로 배관의 색상이 이루어져 있다. 에스컬레이터와 승강기 등 관람객의 이동 수단에는 빨강, 전기 배관과 관련된 곳은 노랑, 공조 배관은 파랑 그리고 수도 배관은 초록으로 색채의 미학적 측면 뿐만 아니라 기능적 사용이 고려된 공간이다.

 

 

◆  퐁피두 센터 외관 파이프 색채의 의미

 

파리의 에펠탑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에도 부정적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퐁피두 센터 또한 개관 당시 ‘네스호의 괴물’에 비유될 만큼 비판적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도시에 활력을 주는 비비드톤의 선명한 색상과 그 기능적인 사용이 돋보여 지금은 파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를 넘어 전 세계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고 있다.

 

역발상이 돋보이는 배색 계획과 내부에 있어야 할 배관 파이프의 외관 노출 등 시대를 앞선 디자인이 바로 세계적인 건축물로 주목 받는 이유다. 세계적인 올림픽을 경기장 없이 치룰 수 있다는 발상이 나온 배경에는 색채와 공간에 대한 열린 사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 노정민 아르떼색채연구소 대표 프로필

 

-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디자인공예학부 섬유예술 전공 
- 홍익대 일반대학원 색채 전공, 석사 및 박사
- 한국산업인력공단 발행 컬러리스트 기사(1급) 자격증 


- 고양특례시 시정소식지 편집위원 
- ㈜한국색채디자인개발원 부설 C&D 연구소 팀장
- ㈜SI&G 부설 디자인연구소 책임 디자이너  
- 홍익대 색채디자인연구센터 선임연구원 
- 홍익대 조형대학, 국립강릉원주대, 세명대 등 강사 역임 

 

- 주요 저서 : COLORIST 이론편(예림출판사, 2012년), 색채론(한국색채디자인개발원, 2012년), 색채론 Work Book(한국색채디자인개발원, 2012년), 색과 생활 Color & Life Work Book(한국색채디자인개발원, 2012년)

배너
배너
배너



[래비의 커리어 블렌딩] 회의실의 침묵을 깨는 힘, '퍼실리테이터'가 되다

리더 혼자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노트북만 두드리는 회의. 뒷자리에 앉아 속으로 되뇌던 말. '이럴 거면 그냥 메일로 보내시지.' 그 불만이 문제의식으로 바뀐 건, 내가 직접 그 회의를 이끌어야 하는 프로젝트 리더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였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던 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익숙한 책상과 묵직한 과제들이었다. '회사의 가치체계 재정립 프로젝트' 머리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손은 생각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실무를 떠나 있던 시간만큼의 공백감이 매일 아침 출근길을 조금 무겁게 했다. 그 무게감보다 더 버거웠던 건, 회의실에서 마주하는 침묵이었다. 대부분 리더가 말을 주도 했는데 어딘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들의 진짜 생각이었지만, 직급과 분위기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그건 좀처럼 꺼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저 침묵을 깰 수 있을까?' 그때 만난 것이 퍼실리테이션이었다.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기술보다 태도였다. 답을 알고 있어도, 먼저 꺼내지 않고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펼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배운 것을 회사 밖에서 먼저 써보기로 했다. 비영리 단체를 대상으로 미션과 비전을

[콘텐츠인사이트] 홍상수 감독 필모의 보고가 여기였네…<탑>을 보고

영화 외적인 부분을 떠나, 순수하게 작품 자체로만 놓고 볼 때 유독 좋아했던, 아니 강렬하게 애정했던 두 감독이 있다. 홍상수와 김기덕.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마니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저 작품관과 연출 방식,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까지도 즐겼을 뿐이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 개봉관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놓치고 있었다. (*故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은 가끔 다시 보곤 한다.)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 전, 큰아이 학원 라이딩을 앞둔 시간보다도 일찍 눈이 떠졌다. 그 틈을 타 간만에 넷플릭스가 아닌 쿠팡플레이를 뒤적였다. 고요한 일요일 새벽은 QT를 하기에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콘텐츠 몰입의 시간이기도 하다. 웬만한 작품은 이미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홍 감독의 비교적 최근작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묘한 충만함을 안은 채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시절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다만 ‘역시 홍상수지~’라고 단정하기엔 망설여졌다. 특유의 현실을 비트는 위트와 대사에서 터져 나오는 실소는 다소 옅었다. 대신 시나리오인지 독백인지 경계가 모호한

[콘텐츠인사이트] 호기심을 자극하다 놓쳤던 영화를 만나다…<신명>을 보고

<신명> 개봉 당시 김규리 배우의 열연, 그리고 대통령 내외를 둘러싼 뒷이야기를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픽션으로 기억한다. 아니나 다를까 넷플릭스 신작으로 올라오면 거의 1위를 하는 듯하다. 여느 때처럼 심신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잘 버텨낸 한 주를 마무리하며 금요일 퇴근 후 이 영화를 꺼내 들었다. 접하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명’이겠지 싶었다. 돌이켜보니 그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지는 못했던 것 같다. 찾아보니 ‘신명’은 세상의 이치를 밝히 아는 영적인 존재들, 즉 하늘과 땅의 모든 신령하고 깨어 있는 존재를 뜻한다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천지신명께 빈다’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한마디로 <신명>은 그럭저럭 볼 만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사실적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이미 탄핵된 전 대통령 부부의 행적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됐겠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이 남는다. 어쨌든 그들은 그것이 ‘맞다’고 믿었을 것이고,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

[콘텐츠인사이트] 간만에 만난 청정무구한 힐링 테라피…〈샤이닝〉 1회를 보고

심신이 한계까지 소진된 2026년 3월이다. 단순히 업무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직에 가까운 재취업 이후 반년. 긴장으로 버텨온 시간의 대가는 이제 서서히 몸과 마음의 균열로 드러나는 듯하다. 사람에게 여유가 사라지면 그 존재는 어딘가 고장 난 채 살아가는 느낌이 된다. 숨은 쉬고 있지만, 온전히 살아 있는 감각은 희미해진다. 문득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 ‘미생(未生)’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미생이지. 요즘의 나를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 없이 하루를 통과하고, 그저 버티듯 살아낸다. 어쩌면 이런 고백이 우울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는 아니다. 그저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일 뿐이다. 이제는 ‘지천명’의 나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그 나이. 순응과 수용이 삶의 방식이 되는 시기다. 그렇게 쉰 살에 다다랐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와의 만남은 작은 행운이었다. 단 한 회를 봤을 뿐인데, 가슴은 따뜻해지고 머리는 맑아지며 감정은 잔잔하게 정리됐다. 우연히 접한 작품이었지만, 이 드라마는 분명 ‘테라피(therapy)’에 가까웠다. ◆ 요즘 아이돌은, 정말 ‘idol’이다 슬

[콘텐츠인사이트] 보고 나면 기억나는 건 최지우 그리고 꽉찬 구성…<뉴노멀>을 보고

‘뉴노멀(New Normal)’ 언젠가 칼럼을 쓰며 최근 시사 용어들을 들춰보다 접했던 단어다. 한때는 비정상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태. 다르게 말하면, 이전의 기준으로는 비정상이던 상황이 새로운 정상으로 자리 잡는 현상이다. 그래서일까. ‘불확실성’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들려서인지, 오히려 확실한 것이 더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다. 이런 단어를 제목으로 내건 영화라니. 넷플릭스 신작이었고, 거기에 최지우 배우까지 등장한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의 챕터 구성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교차하며 연결되고, 각 에피소드에는 나름의 반전이 숨겨져 있다. 독립영화적인 기운과 상업영화의 장르적 장치가 적절히 섞여 있는 작품.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이니, 머리를 비우고 콘텐츠를 탐색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쯤 볼 만하다. 그것이 <뉴노멀>이었다. ◆ 예상을 깬 역할, 그녀의 반전 이문식 배우가 등장한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먼저 떠오르는 배우. 극 중 그는 검침원이다. 겉으로 보면 허술하고 어딘가 어수룩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슬쩍 짓는 미소에는 묘한 섬뜩함이 스친다. 마치 방금

[콘텐츠인사이트] 웃음도 감동도 놓쳤지만…<매드 댄스 오피스> 리뷰

그녀를 처음 인지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저 연기 잘하는 조연 배우, 외모를 뛰어넘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기억한다. 염.혜.란. 세 글자만으로도 존재감을 설명할 수 있는 배우다. 그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도 심상치 않았고, 예고편과 소개 글만 봐도 웃음과 감동이 적절히 버무려진 작품일 것 같았다. 주말, 생일 주간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와이프와 함께 극장을 찾았다. (*아내 역시 염혜란 배우를 좋아하기에 기꺼이 동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표현하기가 조금 난감하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었다. 함께 본 아내의 한마디가 가장 정확한 평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냥… 뭐… 음….” 굳이 정리하자면 죽도 밥도 아니었다는 표현이 가까울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따뜻한 결말 정도. 그 한 가지를 제외하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을 찾기 어려웠다. ◆ 현실감도, 유머 코드도, 감동 포인트도 부족 공무원 조직을 묘사하는 장면부터 다소 진부했다. 어린 시절 보던 드라마 <TV 손자병법>이 떠오를 정도로 과장된 장면들이 이어졌다. 과장님(5급)의 호통

[래비의 커리어 블렌딩] 엄마에서 '나'로 출근하는 아침, 불안을 무기로 바꾸다

월요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길은 누구에게나 괴롭다. 나 역시 지독한 월요병을 겪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역설적으로 출근이 기다려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회사 내 자리에 앉아, 따뜻한 모닝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침 메일함을 여는 그 짧은 시간이다. 주말 내내 젖병을 씻고 아이들을 안고 재우며 쌍둥이 엄마로 살다가 마침내 나만의 책상, 나만의 고요한 시간 속에 앉는 그 순간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온전한 '나'로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 작은 의식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커피 맛 때문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역할을 전환하며 사는 직장인에게 의도적으로 '나'를 켜는 스위치가 없으면 어느 순간 어떤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걸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아침 의식은 오늘도 나를 버티게 하는 소중한 동력이다. 그래서 8개월에 가까운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해서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회사에서는 나를 믿어주고 곧바로 굵직하고 큰 프로젝트들을 맡겨 주었고, 난 전속력으로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의욕과 달리 마음 한구석에서 낯선 감정이 올라왔다.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