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8 (수)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Opinion

[Moonshot-thinking] ‘프롭테크’는 반복되는 도시 리듬을 바꾼다

 

“이게 2025년 맞나요?”

 

서울 영등포의 한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마주한 이덕행 랜드업 대표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그는 책상 위에 엑셀 파일 수십 개를 펼쳐놓고 덧붙였다. “아직도 부동산 개발은 사람이 손으로 수치를 계산하고, 오류가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그의 옆, 모니터 속 서비스를 보며 다시 한 번 놀란다. 주소 하나만 입력하면 15페이지짜리 사업성 분석 보고서가 몇 분 만에 완성되는 시대. ‘반복’은 기계에게 넘기고, ‘판단’은 사람의 몫으로 남기는 흐름이다. 그 짧은 장면에서 글의 주제를 떠올렸다.

 

지난 3개월여간, 프롭테크 생태계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창업자 12명을 만났다.

 

랜드업, 파이퍼블릭, 디스코, 삼삼엠투(스페이스브이), 아키스케치, 포비콘, 데브올컴퍼니, 클라우드앤, 이제이엠컴퍼니(우리가), 지오그리드, 레디포스트, 컨텍터스. 세부 영역은 달랐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건드린 지점은 명확하다. 반복을 줄이고, 관계를 정비하며, 구조를 새로 짜는 기술의 등장이다.

 

주소 하나, 수작업의 끝: 반복을 바꾸는 기술들

 

“사업성 검토만 일주일, 그 사이 기회는 남의 손에 넘어갑니다.” 이덕행 대표가 내놓은 해법은 복잡하지 않았다. 주소를 입력하면 입지·수익성·시공성 등을 정량 분석한 보고서를 자동 출력해주는 시스템이다.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실무 흐름 자체를 바꾸는 워크플로우 혁신이다.

 

같은 맥락은 송중석 포비콘 대표에게서도 이어졌다. 그는 건축 도면 물량 산출에 AI를 접목해, 수작업 10시간을 20분으로 줄였다. “기술은 사람을 대체하지 않아요. 시간의 구조를 바꿀 뿐이죠.” 그의 말처럼, 혁신은 사람의 손이 아니라 판단 시점을 앞당겼다.

 

이장규 데브올컴퍼니 대표는 이를 ‘AI 부사수’라고 불렀다. 계약·청구·수납 등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기술을 “경영진이 아닌, 실무자 옆에 앉은 조용한 조력자”로 정의한다. 기술은 사람 사이에 있었다.

 

데이터의 민주화, ‘정문’을 연 사람들

 

“왜 투자 정보는 늘 기관에만 있죠?” 이호승 파이퍼블릭 대표의 질문에서 시작된 변화다. 성과 기반 수수료, AI 기반 자산 리스크 분석 플랫폼 ‘리얼리틱스’를 통해 그는 부동산 간접투자의 장을 열었다. 정보는 권력이 아닌,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부동산 정보가 소수의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투명성이 시장을 건강하게 만들죠.” 배우순 대표의 디스코는 실거래가·매물 정보를 지도 위에 올렸다. 그 위로 사람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연결하고, 설명을 붙였다. 정보는 도구를 넘어 커뮤니티의 바닥이 된다.

 

김정석 대표의 클라우드앤은 건물 내부의 온도·전력·설비 상태를 24시간 감지하는 IoT 기반 ‘디지털 닥터’를 만들었다. 건물이 살아있다면, 그 건강 상태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의사이자 관리자 역할이다. 데이터는 도시에 감각을 부여하고 있었다.

 

조합 총회를 하려면, 여전히 우편을 보내고 도장을 받아야 한다. 윤의진 이제이엠컴퍼니 대표는 “조합원 한 명이 도장을 찍지 않으면 총회 무효”라는 현실에 절망했다. 그래서 전자 총회 플랫폼을 만들었다. 도시정비 사업의 숨은 행정을 기술로 걷어낸 것이다.

 

정주 대신 체류, 관계를 다시 짓는 플랫폼들

 

프롭테크는 ‘머무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박형준 삼삼엠투 대표는 보증금 33만 원에 단기로 머무는 주거 플랫폼을 만들었다. “1인 가구, 프로젝트 워커, 청년층에게는 정주보다 유연한 체류가 필요해요.” 집은 소유가 아닌, 경험이 되고 있다.

 

이주성 대표의 아키스케치는 3D 인테리어 설계를 누구나 할 수 있게 만들며, 디자인을 깃허브처럼 공유하게 했다. “디자인도 오픈소스가 될 수 있죠.” 창작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발상 전환이다.

 

신동훈 컨텍터스 COO는 중소형 건물 운영에 ‘둥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물리적 거점과 디지털 플랫폼을 결합해 5분 내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건물은 보살핌이 필요해요. 기술은 그 돌봄을 가능하게 하죠.”

 

기술은 반복을 줄이고, 관계를 다시 짓는다

 

이들에게 늘 비슷한 말을 들었다. “기술은 사람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확장시키는 것.” 그리고 그 말이 단지 겸손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이들의 기술은 실제로 사람의 능력을 확장하고, 관계를 복원하며, 구조를 개선한다.

 

랜드업의 주소 입력 시스템은 중소 시행사에게 대기업 수준의 분석 도구를 제공했다. 파이퍼블릭과 디스코는 정보의 벽을 허물어 투자와 거래의 문턱을 낮춘다. 레디포스트(총회원스탑)과 이제이엠컴퍼니(우리가)는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바꿨다. 삼삼엠투와 아키스케치는 소유와 창작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프롭테크는 도시에 질문을 하고 있다. 반복을 견딜 것인가, 아니면 바꿀 것인가. 그 질문에 해답을 얻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의 도시 리듬은 이전과 다르다. 빠르지만 인간적이고, 효율적이지만 연결고리는 끈끈하다.

 

도시는 여전히 반복된다. 기계가 맡은 반복은 사람에게 새로운 시간을 선물하고, 사람이 만든 관계는 기계에게 목적을 부여한다. 낡은 리듬 위에 새로운 박자를 얹는 기술. 그 리듬이야말로, 다시 도시에 기대는 이유다.

배너
배너
배너

관련기사

3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마음 회복 연구실] 필코노미 시대, '나'를 코칭하는 새로운 방법

◆ 감정이 소비가 될 때,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을까 매년 이맘때면 《트렌드 코리아》를 펼친다. 조직과 내 삶을 동시에 비춰보는 습관이 된 지도 오래다. 그 중 내년의 핵심 키워드 가운데 가장 오래 시선을 붙든 것은 ‘필코노미(Feelconomy)’였다. 감정과 기분을 상품처럼 관리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기술과 효율을 말하는 거대한 메가트렌드 속에서, 감정이 소비의 한 항목으로 등장한 사실이 묘하게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 AI가 주는 위로와 그림자 요즘 직장에서 어려운 감정을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거나,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빈틈을 메우듯 AI 기반 상담과 코칭 서비스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익명으로 늦은 시간에도 인간에게 느끼는 부담감 없이 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 상당히 매력적이다. 코칭 공부할 때 코치들 사이에서 "코칭이나 상담이 AI에 대체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늘 화두였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AI 코치와 상담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전했다는 사실과 함께 반대 의견도 나왔지만, 대화 이면엔 직업적 두려움과 존재의 위협을 느끼는 듯 했다. AI가 방대한 데이터

[Moonshot-thinking] 920억 달러 베트남 시장, ‘혼자 싸우지 마라’

베트남 진출의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혼자선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 920억 달러. 한국이 베트남에 누적 투자한 금액이다. 숫자만 봐도 압도적이다. 하지만 숫자 뒤에 숨은 진실은 더욱 흥미롭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베트남 진출 열풍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우리 알스퀘어베트남에 접수된 베트남 입지 상담 문의가 전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반도체 패키징 기업 시그네틱스가 지난해 8월 베트남 북부 빈푹성에 1억 달러 규모의 공장 건립을 발표한 이후 관련 업계의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무역 갈등의 여파 그리고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외국인투자 유치 정책이 맞물리며 '베트남 2.0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었다. 다시 열리는 기회의 창, 하지만 문턱은 높아졌다 2000년대 초반 베트남이 '저임금 생산기지' 정도의 의미였다면, 지금은 '전략적 거점'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단순히 공장을 짓고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동남아 전체를 아우르는 허브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다. 당연히 진출 전략도 훨씬 정교해져야 한다. 최근 베트남을

[눈치코치] ‘아이스-메이커’ 대신 ‘아이스-브레이커’가 중요한 이유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께서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되신다면, 저는 ‘페이스메이커(pace maker)’가 되겠습니다”라는 말을 던져 딱딱한 분위기를 단번에 풀어낸 장면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재치 있는 언어유희는 자칫 ‘아재개그’로 전락할 위험도 있지만, 적절히 쓰이면 분위기를 전환하는 효과적인 촉매제가 됩니다. ◆ 어색한 순간에 필요한 작은 장치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자리, 부서가 다른 이들이 모인 회의, 낯선 바이어와의 첫 미팅. 이 모든 순간은 낯설고 불편합니다. 이직 후 첫 출근 자리에서 멀뚱히 앉아 있는 신입 직원에게도, 코칭에서 첫 대면하는 고객에게도 아이스브레이킹은 꼭 필요합니다. 작은 미소, 가벼운 대화가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서로가 함께한다는 ‘being’의 감각을 만들어 줍니다. 새로운 환경이 두렵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라면 차라리 즐기는 편이 낫습니다. ◆ 효과적인 아이스브레이킹 방법 전통적으로는 이런 대화가 흔했습니다. “오늘 날씨 좋네요.” “무엇을 좋아하세요?” “끝나고 한잔 하실래요?” 하지만 요즘 이런 말은 오히려 더 어색한 공기를 만듭니다. 한 코치님이 알려준 방법은 신선했습니다.

[Moonshot-thinking] AI가 펼치는 '디지털 안전망', 기업 산업현장에 희망 날개 달다

숙련된 안전관리자가 24시간 현장을 지키듯 인공지능(AI)이 기업의 든든한 '디지털 파수꾼'으로 나선다. 복잡한 법규와 까다로운 안전관리 업무로 고민하던 사업주들에게 AI 기술이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며 산업안전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최근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산업보건학회 하계학술대회는 이러한 변화의 현주소를 생생히 보여준 무대였다. 특히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가 선보인 AI 기반 안전관리 솔루션과 노사정이 함께한 라운드테이블은 산업안전 분야의 디지털 전환이 더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현장이 원하는 실용적 AI의 등장 중소기업 현장에서 안전관리는 딜레마였다. 법적 의무는 까다로워지는데 인력과 예산은 부족하고, 전문성은 갖추기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의 'AI 안전비서 KAPA 솔루션'은 반가운 소식이다. 이 솔루션의 핵심은 '실용성'에 있다. 위험성 평가부터 현장 점검, 법정 교육 관리까지 복잡한 업무를 자동화하되 현장 실무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근골격계 부담 조사 같은 전문적 업무를 클릭 한 번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 것은 중소기업 현장의 고충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다. 더

[눈치코치] 알아차림만 잘해도 달라집니다

“저 사람, 눈치가 참 빠르네. 누가 보면 여기 3년은 다닌 사람 같아.” 하지만 그는 이제 막 입사 3개월 차인 이직자였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쉽지 않은 시간도 있었지만, 그는 회사를 둘러싼 분위기와 동료들의 관계를 세심하게 살피며 조용히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덕분에 그는 자연스럽게 조직에 녹아들었고, 전 직장에서보다 훨씬 빠르게 온보딩에 성공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알아차림(awareness)’입니다. ◆ 눈치의 본질은 ‘알아차림’ ‘눈치’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남의 마음이나 상황을 헤아리는 감각”을 뜻합니다. 결국 핵심은 ‘알아차리는 힘’입니다. 주변의 변화를 감지하고, 맥락을 파악하며,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이죠. 코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코치는 고객을 세심히 ‘알아차리는 사람’입니다. 조직에 새로 합류한 이직자 또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알아차릴수록 더 빨리, 더 부드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 알아차림은 ‘본능’보다 ‘훈련’ 물론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감각이 뛰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알아차림은 의도적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는 역량입니다. 잘 듣고, 깊이 질문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인정하며, 피드백을

[마음 회복 연구실] 당신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진주다

◆ 어느 보석이 가장 아름답냐고? 나는 진주라 말한다 최근 결혼을 앞둔 지인이 특별한 보석으로 무엇이 좋을지 물어왔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보석을 찾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주저 없이 진주를 추천했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와는 다른 진주만이 가진 특별한 가치를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세상의 시선은 늘 가장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에 집중한다. 완벽하게 세공되어 눈부신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만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이 아니라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며 채워가는 시간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주처럼 말이다. 진주는 조개 안에 들어온 작은 상처를 오랜 시간 품고, 스스로 겹겹이 쌓아 올린 층을 통해 마침내 고유의 은은한 광채를 띠게 되는 보석을 만든다. ◆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돌멩이처럼 여긴다 오래전, 어떤 땅에서는 다이아몬드가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돌멩이처럼 버려졌다고 한다. 가치를 모르면 가장 귀한 것도 본래의 의미를 잃기 마련이다. 삶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상처와 마주한다. 타인의 오해와 편견, 끝없는 비교 속에서 점점 위축되어간다. '그냥 이 정도면 됐다'며 내 안의 가능성을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