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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칼럼] '잠자리' 관찰·성찰·통찰…가을전령사·악마의 바늘·잠자리 눈의 교훈·비행능력 동급최강·H-13 기종·승충(勝蟲)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처서(處暑)는 입추와 백로 사이, 대체로 8월 22~23일 무렵으로 “더위가 물러난다”는 뜻이며,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다. 처서가 찾아오면 한여름의 열기는 서서히 물러나고, 들녘과 하늘에는 가을의 징후가 번진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붉은 빛으로 계절의 전환을 알리는 잠자리가 있다.

 

고추잠자리는 실제로 늦봄부터 가을까지 모습을 보이지만, 처서 무렵 무리 지어 날아드는 풍경은 오랫동안 ‘가을의 전령’으로 기억돼 왔다. 더위가 꺾이는 절기, 잠자리의 비행은 자연이 먼저 건네는 가을의 예보다.

 

가을전령사 '고추잠자리 날면 찬바람 난다'는 경북 지방의 속담이 있다. 고추잠자리가 가을철에 나타나기에 기온이 낮아져 날씨가 쌀쌀해지는 계절이 됐다는 의미다.

 

고추잠자리와 코스모스 그리고 뭉개구름은 홍어삼합처럼 최적의 환상궁합이다. 뭉개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과 무리를 지어 활짝 핀 코스모스 위를 낮게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는 시골 마을 추억을 아스라이 불러낸다.

 

입추 무렵부터 들리기 시작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왠지 더 자주, 그리고 더 처량하게 들린다. 뿐만 아니라 하늘엔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있고, 그 아래 고추잠자리들이 한가롭게 날아 다닌다. 옛말에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했다.

 

잠자리는 1년 중 가장 좋은 날씨, 햇볕은 바삭, 바람은 선선한 가을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친숙하고 고마운 곤충이다. 실제로도 곤충이지만 가장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는 부류에 속한다. 꿈틀거림, 기어다님, 지나치게 기다란 더듬이, 몸에 달라붙는 행동, 미묘한 광택, 실내 침투, 특유의 울음소리 등 무엇 하나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요소가 없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마스코트 격 곤충일 만큼 자주 접할 수 있고, 개체수도 많아 익숙하고 친근하다. 또한 모기나 파리, 나방 따위를 잡아먹는 고마운 익충인데다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고 보통 조용히 나뭇가지나 풀에 매달려 있거나 사람 머리 위 멀리 공중을 날아다니기 때문에 곤충을 싫어해도 잠자리 정도는 예외인 사람들이 많다.

 

 

영어권 일부 지역의 민속에는 잠자리를 ‘악마의 바늘(devil’s darning needle)’이라 부른다.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가 자고 있을 때 잠자리가 날아와 산채로 아이의 입이나 눈을 꿰맨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는 잠자리의 길고 가는 배를 바늘에 빗댄 민속적 상상력이다.

 

유럽에서 dragon은 악마, 사탄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양에서의 긍정적인 용의 심상과 매우 다르다. 잠자리가 영어로 dragonfly(용 + 파리)라는 점에서 한국 및 아시아의 아이들은 잠자리를 좋아한다. 우리가 '잠자리채'라 부르는 것을 유럽, 미국에서는 'Dragonfly net'이라고 안 부르고 'Butterfly net'이라고 부를 정도로 매우 꺼림을 알 수 있다.

 

잠자리는 동족포식도 한다. 그래서 잠자리를 같은 통에 넣어놓는 것은 잠자리에겐 고문이다.

 

곤충강 잠자리목에 속하는 곤충의 총칭으로 잠자리아목(불균시아목)과 실잠자리아목(균시아목)으로 나뉜다. 전세계에 약 7000여 종이 있고, 한국에는 100여종 이상이 서식한다. 한자로는 청낭자(靑娘子)·청령(蜻蛉)·청정(蜻蜓)이라고 한다. 잠자리의 애벌레는 순우리말로는 '학배기'라고 하고 한자로는 蠆(전갈 채)를 써서 '수채(水蠆)'라고 부른다.

 

잠자리는 불완전변태 곤충이라 번데기 단계가 없다. 수중 유충이 물가 식물 등을 타고 올라와 탈피해 성충이 된다. 

 

수컷은 몸이 붉어 '고추잠자리'라 부르고, 암컷은 노르스름해 ‘메밀잠자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메밀잠자리는 별도의 종명으로 쓰이는 명칭이다. 성숙 수컷은 붉고 암컷 및 미성숙 수컷은 황갈색 또는 갈색 기운을 띤다.

 

 

곤충 중에 머리를 이리저리 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물이다. 사마귀처럼 뒤를 쳐다볼 정도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고개를 조금씩 돌려 상하좌우를 살피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잠자리의 커다랗고 둥그런 겹눈은 종에 따라 1만~2만8000여 개의 낱눈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각의 벌집처럼 생긴 각각의 낱눈은 사람의 눈처럼 각막과 망막과 유리체를 가지고 있다. 시력은 낮지만 각각의 낱눈이 따로따로 빛을 감지할 수 있어서 움직이는 것을 잘 포착한다. 

 

이 겹눈으로 잠자리는 앞뒤 좌우 제 몸 20미터 뒤의 움직임까지 볼 수 있다. 일부 과학자료에 따르면, 잠자리는 뇌의 80%를 겹눈이 포착해낸 사물을 감지하는 데 사용한다. 이 엄청난 기능의 겹눈 사이에 있는 세 개의 홑눈은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빛의 밝기를 측정해 사물의 원근과 명암 정도를 구별한다.

 

잠자리 눈이 우리에게 주는 철학적 교훈은 "하나의 눈으로 바라본 하나의 정답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2만8000여 개의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그 다양함이 그대로 인정될 수 있는 그런 세상, 잠자리가 꿈꾸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잠자리는 날개를 접지를 못하고, 이동은 불가능하고 착륙만 가능한 반쪽짜리 다리를 가진 원시적인 생물이다. 하지만 비행능력만큼은 곤충 중에서 최고급 수준이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비행체도 아직 벌새와 함께 잠자리의 비행능력에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날개는 그냥 얇은 막이 아니라 가는 관이 있어서 혈액은 물론 신경도 있다. 날개 두 쌍을 움직이는 골격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날개의 속도를 따로 조절할 수 있다. 덕분에 방향전환과 속도가 자유자재다. 날개 네 개를 모두 따로 움직여 급선회·급강하·급상승·호버링·상하좌우 이동 등 비행 중에 가능한 모든 기동방식을 갖췄다.

 

게다가 웬만한 새들도 못하는 평상시 날아다니는 속도 그대로 후진비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잠자리가 날아다닐 때 나는 타다닥거리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는데, 이는 날개끼리 충돌해서 나는 소리다. 즉 급기동시 날개가 휘며 다른 날개들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일부 학자들은 "원시적인 진화인 만큼 이 비행능력은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내재하고 있다"면서 "작은 곤충이라 무사할 뿐 다른 생물에는 적용 불가능한 날개구조이다. 직선 고속비행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잠자리가 정지비행 중에 갑자기 방향을 틀어 고속으로 날아가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때 엄청난 압력을 받지만 외피가 인간보다 튼튼한 곤충이라서 멀쩡하다. 잠자리 이륙의 최대 수직가속도는 약 20m/s, 즉 약 2G로 보고됐다. 잠자리의 최고속도는 대체로 36~54km/h 범위다. 만약 인간이 비슷한 속도로 그렇게 움직이면 엄청난 압력을 받는다. 참고로 우주선이 이륙할 때 인간이 받는 압력이 10G가 조금 안된다. 

 

독일의 페스토(Festo)라는 회사에서 만든 바이오니콥터(Bionicopter)라는 잠자리 로봇도 있다. 크기는 메가네우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모양이 비슷한 500MD 헬기의 별명이 잠자리헬기다. 헬리콥터와 모양새를 연관 지으려면 H-13 기종이 가장 잠자리와 유사하다.

 

 

일본에서는 과거 승충(勝蟲)이라 부르며 무사들이 자신의 투구나 무기 등에 잠자리 모양 장식을 달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잠자리는 오직 전진만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서 전쟁에 나가서도 후퇴 없이 전진만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도 주인공이 얼어붙은 잠자리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이 일본 문구브랜드 톰보의 PPL로, 극에 잘 녹아들으면서도 거부감 없이 상표를 알린 모범적인 PPL사례다.

 

곤충 중 체급 비율까지 생각하면 거의 모든 동물 중에서도 최상위 클래스의 최상위 포식자다. 포유동물에 비유했을 때 호랑이나 사자에 비견될 정도다. 장수풍뎅이류나 사슴벌레류는 말벌이나 사마귀조차도 명함을 못 내미는 사실상 곤충의 정점이지만, 애초에 서식지가 겹치치도 않을뿐더러 이들은 대부분 초식성이다.

 

장수말벌과 사마귀의 경우 잠자리가 이기기 힘들다. 소형 사마귀들이라면 모르지만, 애초에 사마귀와 장수말벌은 잠자리의 사냥범위 안에 들어갈 만큼 비행을 오래, 높게 하는 곤충이 아니다.

 

잠자리 수컷은 배가 시작되는 부분, 즉 복부 제2마디에 부성기가 있고 배의 끝부분에 암컷의 목에 연결되는 부속기가 있다. 암컷의 배 끝에는 산란변이 존재한다. 교미(짝짓기)를 시작하면 수컷은 부속기로 암컷의 목을 휘어감고 암컷은 배 끝의 음문을 수컷의 부성기에 접촉해 정자를 받아들인다.

 

교미는 공중에서 단시간 내에 이뤄진다. 잠자리 두 마리가 하트(♡) 모양으로 연결되어 날아다니거나 앉아서 쉬는 것이 바로 교미장면이다. 특히 실잠자리의 교미는 다른 잠자리들보다 하트 모양이 잘 나온다. 꼬리가 가늘기 때문. 여담으로 러브버그도 교미하면서 비행한다.

 

교미 후 여러 가지 형태로 산란한다. 수면 위를 날면서 공중에서 알을 뿌리는 공중산란, 배 끝의 산란 변을 수면에 스치듯이 하며 산란하는 타수산란, 역시 비행하면서 진흙에 산란하는 타니산란, 물 옆에 앉아서 알을 흩뿌리는 유리성정지산란, 물에 산란변을 푹 담가 산란하는 접수정지산란, 진흙이나 모래에 산란변을 꽂아 알을 낳는 접니정지산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수컷이 암컷과 연결되어 함께 산란하는 경우도 있고, 수컷은 근처에서 감시하고 암컷이 단독 산란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잠자리 연구의 권위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활동한 이승모 박사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잠자리를 연구하는 학자는 정광수 박사가 거의 유일하다. 정광수 박사는 잠자리 도감, 한국 잠자리 도감, 잠자리 나들이 도감, 한국 잠자리 유충 도감 등 수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한국의 잠자리'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 박은옥 씨의 동요 '윙윙윙'(1978년) 

 

윙윙윙윙 고추잠자리 이리저리 놀리며 윙윙윙
윙윙윙윙 꼬마 아가씨 이리저리 쫓아가며 윙윙윙

 

◆ 조용필 씨의 '고추잠자리'(1981년)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로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니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로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니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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