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윤슬 기자] 이 과일은 아침에 먹으면 '금'이라고 할 만큼 건강에 유익하기로 소문나 있다. 위액 분비를 촉진해 소화흡수를 돕고 배변기능에 도움을 준다. 장미과에 속하며, 낙엽수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효능이 많은데, 대표적인 성분이 식이섬유인 '펙틴'이다. 펙틴은 장을 약산성으로 유지하며 나쁜 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이 과일에 들어 있는 유기산은 몸 안에 쌓인 피로 물질을 제거해 준다.
이 과일은 바로 사과(apple)다. 구글 검색을 하면 부사, 국광, 홍옥, 홍로, 스타킹, 골덴, 엔비, 감홍, 선홍, 추광, 아오리, 시나노 골드 등 전세계에 분포하는 사과의 종류만 7500개가 넘을 정도다. 필자는 먹는 사과의 종류가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의미를 지닌 사과의 종류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미국 빅테크기업 '애플의 사과'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등을 판매하는 애플은 미국에서 마이크로소프크(MS)와 시총 1위자리를 다툴만큼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인 셈이다. 2024년 1월 12일 종가기준(단위 달러) 글로벌 기업 시가총액 순위는 1위 마이크로소프트 2조8870억, 2위 애플 2조8740억, 3위 사우디아람코 2조1210억, 4위 알파벳 1조7940억, 5위 아마존 1조5970억 순이다. 아이폰 신제품이 나올때마다 '중국발 아이폰 금지 태풍'을 맞을 정도로 미중갈등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부각될 정도다.
애플의 공동 창립자(스티브 잡스, 로널드 웨인, 스티브 워즈니악) 중 한명인 스티브 워즈니악에 따르면, 애플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가 사과 과수원을 방문한 뒤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하고 친숙한 이름을 원했으며, 알파벳 순으로 업체이름이 나열될때 가장 먼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소비자들의 시장 바구니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는 점등의 실용적인 이유로 애플을 브랜드로 선택했다. 또 다른 버전은 고아출신인 스티브 잡스가 가장 좋아했던 과일이 애플이었고, 매켄토시라는 상품명도 사과 품종중의 하나다.
애플이라는 이름은 단순한데, 이후 스티브 잡스의 비전과 전략이 반영되며 강력한 상상력과 상징력을 지닌 브랜드로 성장했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조사에서도 애플은 항상 1위를 차지한다. 1위는 애플, 2위 마이크로소프트(MS), 3위 아마존, 4위 구글, 5위 삼성전자, 6위 도요타, 7위 메르세데스-벤츠, 8위 코카콜라, 9위 나이키, 10위 BMW다.
두 번째 사과는 에덴 동산에서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는 '아담의 사과'다. 남자들의 목 중간에 '울대뼈'란 무른 뼈가 있는데 이를 영어로 '아담스 애플'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다가 목에 걸려서 생겼기 때문에 이런 별칭을 갖고 있다. '선악과를 먹지마라'는 하느님의 경고를 잊고 아담이 사과를 먹다가 갑자기 기억이 나자 목에 걸려버린 것이라는 의미다.
세 번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의미하는 '뉴턴의 사과'다. 과학자, 수학자, 신학자였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만유인력의 법칙뿐만 아니라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만들었고,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으며, 수학 미적분학을 발달시키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1665년 영국에 흑사병 유행으로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폐교하자 2년 동안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집 앞뜰에 있는 사과나무 아래 앉아서 졸고 있던 뉴턴은 사과가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왜 사과는 위나 옆이 아니라 항상 아래로만 떨어지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즉,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고, 이 중력은 우주에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만유인력은 뉴턴이 처음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질량을 가지고 있는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이 에피소드는 영국의 계몽 사상가인 볼테르가 뉴턴이 죽던 해에 사과나무 이야기를 했는데, 볼테르는 뉴턴의 조카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영국의 영국왕립학회가 뉴턴과 친분이 있었던 영국의 과학자 윌리엄 스터클리(William Stukeley, 1687~1765)가 쓴 문서(아이작 뉴턴 경의 삶에 대한 회고록, Memoirs of Sir Isaac Newton’s life)를 공개했는데, 그 문서의 42쪽에 뉴턴과 스터클리가 나눈 대화에서 사과 이야기가 언급되며 그 일화가 사실로 밝혀졌다.
네 번째는 '세잔의 사과'다. 폴 세잔은 사과 작품만 100점이 넘어 사과작품에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화가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예술활동은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제자인 피카소가 어릴때부터 천재로 추앙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그는 정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물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만의 시각으로 혁신적으로실험적으로 사물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즉 사과를 그릴때도 한방향이 아니라 테이블을 돌면서 보이는 사과의 다양한 모습과 그림자까지 그렸다. 그는 사람의 눈을 의심하고, 그 너머의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한 화가였다.
칸트이후 철학이 나뉜 것처럼 세잔 이후 미술계도 두갈래의 사조가 탄생한다. 그의 제자인 피카소는 세잔에게서 평면을 기학학적 담면들로 처리해 '형태의 해방'을, 마티스는 세잔에게서 풍부한 색채로 표현해 '색채의 해방'을 배웠다. 결국 피카소는 입체주의(cubism), 마티스는 야수주의(fauvism)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프랑스 작가이자 비평가인 모리스 드니는 선악과로 추정되는 에덴동산의 아담의 사과, 뉴턴의 사과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로 세잔의 사과를 꼽았다.
폴 세잔의 학교시절에 그의 곁에는 훗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학가인 에밀 졸라가 있었다. 둘은 절친이었으며 세잔의 화가 재능을 발견해 준 것도 에밀 졸라였다. 세잔에게 사과는 졸라와 우정이 담긴 특별한 사물이었던 셈. 세잔은 그때부터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섯 번째는 '빌헬름텔의 사과'다. 독일 극작가 실러의 '윌리엄 텔'(독일어로는 빌헬름 텔)이라는 작품에서 유래했다. 아들의 머리위에 얹힌 사과를 맞춘 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 맞서 스위스의 독립을 이끈다.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이외에도 죄악을 상징하는 '소돔의 사과', 유혹을 상징하는 '에리스의 사과', 불화를 상징하는 '트로이의 사과', 몰락과 타락을 상징하는 '아탈란테의 사과' 등이 있다.
인간의 오랜된 역사만큼이나 긴 예술의 역사에서 '사과' 만큼 인기 있는 소재도 드물다. 세월이 흘러도 사과는 문학, 예술, 역사, 종교 등 우리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어져왔다. 고대 신화에서 사과는 불멸과 아름다움, 사랑 등 인간의 근원적인 것을 상징했으며, 종교에선 삶과 죽음을, 문학과 시각에선 자연과 생명을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다. 정치인들의 뇌물스캔들 하면 아직까지 사과(상자)가 떠오르고, 연일 정치인들의 말실수뒤에는 형식적인 사과가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