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혜주 기자] 유령 법인을 통해 거액의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의약품 도매상 대표와 국내 유명 의료법인·대학병원 이사장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8월 18일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범죄조사부(조만래 부장검사 직무대리)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의약품 도매상 대표 A씨(67)가 실체 없는 유령법인을 설립해 약 50억원 규모의 불법 리베이트를 대학병원 이사장 일가에 제공한 혐의로 A씨와 대학병원 이사장 등 8명을 배임수재·의료법, 약사법 위반, 입찰방해,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유령법인 지분을 대학병원 이사장 가족에게 취득시키고 배당금 명목으로 34억원 상당을 지급하며, 이사장 가족을 허위 직원으로 등재해 급여와 법인카드, 골프장 회원권 등 16억원 상당을 사적으로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령법인의 실체는 A씨 회사 창고였으며, 유령법인 직원도 A씨 회사 직원이 겸직했다. 자금 집행과 회의록 결재는 A씨 회사 부사장이 맡았다.
특히 단국대 학교법인 이사장 장호성(71)과 그의 부친 장충식(94) 명예이사장은 총 12억5614만 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유니온약품 안병광 회장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장 이사장은 "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것뿐이며 자신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고문 계약을 통해 리베이트 4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고문활동은 없었다.
검찰은 유령법인을 통한 배당금 명목 리베이트가 기존 현금·상품권 제공 방식에서 진화한 신종 범행 수법이라며, 유령법인의 지분을 교차 취득하는 형태로 약사법상의 규제를 회피한 점도 지적했다. 또한, 리베이트 대가로 대학병원 의약품 입찰을 조작해 수십억 원대 입찰담합도 벌여 환수 조치와 엄정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입찰 담합 과정에서는 병원 구매관리팀이 낙찰업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3개 의약품 공급업체가 시나리오대로 경쟁입찰을 조작해 낙찰받았다. 이로 인해 단국대 병원만 2022년과 2025년도 입찰 전후로 총 8억5000만원이 장호성 이사장에게 건네진 것으로 드러났다.
유니온약품은 1988년 설립돼 2024년 매출 1조원을 기록한 의약품 유통 대기업으로, 주요 대학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며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유니온약품 안병광 회장은 미술품 수집과 서울미술관 운영,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회장 활동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사건은 2023년 12월 내부 제보로 시작해 2025년 1월 압수수색과 수사를 거쳐 밝혀졌으며, 검찰은 유령법인과 병원 간 새로운 유형의 리베이트 수법을 최초로 밝혀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법원이 장호성 이사장과 안병광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이들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의료 서비스 품질과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불법 리베이트 범죄에 엄정 대응하고, 범죄수익 환수를 철저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대학병원의 의약품 공급 거래에 자리 잡은 부패 관행을 드러내면서, 경쟁입찰 제도의 실질적 운영과 의료계 내부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사회적 경종으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