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2008년 미국 주택시장 붕괴를 정확히 예측해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헤지펀드 매니저 마이클 버리가 이번에는 테슬라를 정조준했다. 그는 11월 30일(현지시간) 자신이 운영하는 서브스택 뉴스레터 ‘Cassandra Unchained’에 올린 글에서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오늘도, 그리고 꽤 오랫동안 터무니없이(overridiculously) 고평가돼 왔다”고 주장했다.
현재 테슬라는 전기차 업체를 넘어 인공지능(AI)·로봇기업으로서 미래 성장 스토리를 인정받고 있지만, 버리는 “지나치게 장밋빛 가정 위에 세워진 판타지 가격”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1.4조달러 테슬라, PER 209배 vs S&P500 22배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최근 약 1조4,300억달러 수준으로, 글로벌 완성차를 통틀어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종목 가운데 하나다. 금융정보업체 LSEG(구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테슬라 주가는 최근 주말 종가 기준 향후 12개월 예상 순이익 대비 주가수익비율(Forward PER)이 약 209배에 달한다.
이는 지난 5년 평균치(94배)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치이며, 동일 시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PER 22배와 비교하면 9배가 넘는 ‘프리미엄’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버리가 “펀더멘털이 아니라 스토리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있다”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머스크 1조달러 보상 패키지, “주주에겐 비극적인 대수학”
버리의 공격 포인트는 단순한 밸류에이션을 넘어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최대 1조달러 규모의 주식보상안이다. 테슬라 주주들은 11월 초 이 보상안을 승인했으며, 회사가 향후 10년 동안 공격적인 매출·영업이익·시가총액 목표(예: 시총 8.5조달러, 연간 영업이익 4,000억달러, 로봇택시·휴머노이드 로봇 각각 연 100만대 생산 등)에 도달할 경우 머스크에게 최대 1조달러 상당의 주식이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다.
버리는 이 구조를 “주식 기반 보상의 비극적인 대수학(tragic algebra of stock-based compensation)”이라고 표현하며, 머스크 보상안으로 인해 테슬라가 매년 약 3.6%씩 자사주를 희석시키고 있지만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이를 상쇄하지도 않는다고 계산했다. 그는 이런 지속적 희석이 결국 기존 주주의 ‘오너 이익(owner’s earnings)’을 잠식해 장기 수익률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브스택에서 제시한 ‘현재가치 공식’…“성장이론이 현실을 압도”
버리는 이번 글에서 단순 비판을 넘어 테슬라의 현재 주가가 어떤 가정을 전제로 해야 정당화될 수 있는지 ‘현재가치(PV) 계산식’을 예시로 제시했다. 그는 테슬라가 지금의 주가를 정당화하려면
매우 낮은 할인율(자본비용), 장기간 지속되는 고성장률, 마진 하락이 거의 없다는 가정이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조합은 역사적으로 극소수 기업에서만 일시적으로 관찰된 특이 사례에 가깝고, 산업 경쟁과 경기변동을 고려하면 “현실 대신 희망에 가격을 매긴 것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투자 리포트와 학술 연구들 역시 초고성장·초고밸류 기업에 대한 장기 기대수익률이 평균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을 지적해 왔다는 점에서, 버리의 문제 제기는 자본시장 전반의 ‘AI·테슬라 트레이드’에 대한 구조적 의문과 맞닿는다.
테슬라 약세론자 버리, 2021년 공매도 후 청산…이번엔 ‘구조적 거품론’
버리는 오래전부터 테슬라 약세론자로 이름을 올려왔다. 그의 헤지펀드 사이언 애셋 매니지먼트(Scion Asset Management)는 2021년 5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서 테슬라에 대한 풋옵션(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옵션) 포지션을 공개한 바 있다.
다만 같은 해 10월 CNBC 인터뷰에서 해당 베팅을 청산했다고 밝히면서 단기 트레이딩 차원의 승부는 일단락됐고, 이후 그는 SNS에서 테슬라 언급을 자제해 왔다. 이번에는 직접적인 공매도 포지션 공개 대신, 서브스택을 통해 ‘구조적 거품론’을 제기하며 테슬라를 주식보상·성장스토리 과잉의 대표 사례로 소환한 셈이다.
엔비디아·팔란티어에 11억달러 규모 풋옵션…AI 버블 전선도 확대
버리의 테슬라 저격은 최근 그가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등 ‘AI 대장주’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공세의 연장선이다. 2025년 3분기 기준 SEC 13F 공시에 따르면 사이언 애셋 매니지먼트는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에 대해 명목가치 약 11억달러 규모의 풋옵션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엔비디아 100만주에 해당하는 풋옵션(명목 약 1억8,700만달러)과 팔란티어 수백만주 규모 풋옵션을 담았으며, 동시에 헬스케어·에너지 종목(화이자·할리버튼 등)에 대한 콜옵션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버리는 최근 글과 방송 인터뷰에서 “AI 산업의 실질 수요에 비해 자본 지출과 주가가 과열됐고, 파트너십과 회계처리를 통해 매출과 성장 스토리가 과장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번 AI 랠리를 닷컴 버블 후반부와 비교했다.
“AI·전기차 동시 거품” vs “성장 조기 선반영”…시장 논쟁 가열
테슬라와 엔비디아, 팔란티어를 동시에 겨냥하는 버리의 행보는 “AI와 전기차, 로봇까지 아우르는 초성장 서사가 자본시장에 거품을 만들고 있다”는 일관된 시각을 반영한다.
이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테슬라와 엔비디아 등은 여전히 각자의 산업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과 기술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고, 로봇택시·AI 데이터센터·국방·클라우드 등에서의 장기 성장 여지가 크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반면 일부 기관 리포트와 전략가들은 “초저금리 시대를 지나 금리가 정상화된 환경에서, PER 수백 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기업은 극히 제한적”이라며 버리의 문제 제기를 ‘불편하지만 무시하기 어려운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버리의 경고, 이번에도 맞을까…투자자에게 남는 숙제
버리는 과거 여러 차례 시장 붕괴를 경고했다가 너무 일찍 베팅을 거는 바람에 손실을 본 사례도 있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를 적중시켜 전설적인 명성을 얻은 사례도 있다. 이번 테슬라·AI 거품론이 또 하나의 ‘빅 쇼트’가 될지, 아니면 시대의 조기 경고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테슬라의 1조4,300억달러 시가총액, 209배에 달하는 PER, 머스크의 최대 1조달러 주식보상, 연간 3.6% 수준의 주식 희석이라는 숫자들이 투자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이 성장 스토리는 어느 수준까지, 얼마나 오래 현실로 이어질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각 투자자 스스로 답을 내야 할 시점이라는 점만큼은 명확하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