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윤슬 기자] 지구는 약 45억6000만년 전 태양계가 형성된 지 300만년 만에 생명체가 살기엔 부적합한 건조한 암석 행성이라는 연구 결과가 베른 대학교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다. 즉 수십억년 전 지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거대한 행성 충돌 없이는 결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이는 지구가 형성되는 초기에 물, 탄소, 기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휘발성 원소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결과는 9월 18일(현지시간) Science Advances에 발표됐다.
Science Advances, Nature, 베른 대학교의 연구자료와 SciTechDaily, WIRED, Space Daily, Phys.org의 보도에 따르면, 베른 대학교의 수석 연구원 파스칼 크루타슈 박사와 동료들은 운석과 지구 암석 내 망간-53이 크롬-53으로 붕괴하는 과정을 통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을 활용해 원시 지구의 화학적 성분이 태양계 탄생 후 300만년 이내에 거의 완성됐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초기 지구는 완전히 건조한 상태였고, 지구가 현재와 같은 생명 친화적 환경이 된 것은 외부 천체, 즉 화성과 크기가 비슷했던 원시 행성 ‘테이아(Theia)’의 충돌 덕분이라는 것이다.
테이아는 태양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차갑고 수분과 휘발성 물질이 풍부한 영역에서 형성된 행성체로, 약 45억년 전에 원시 지구와 충돌했다. 이 충돌은 달의 형성 원인이기도 하며, 동시에 물과 생명에 필수적인 화학 성분들을 지구에 전달해 지구를 생명체 거주 가능 행성으로 만들었다.
크루타슈 박사는 "원시 지구가 건조한 암석 행성이었다는 사실은 오직 테이아와의 충돌만이 지구에 휘발성 원소를 공급해 생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연구는 베른 대학교의 국제적 방사성동위원소 연구 역량과 고정밀 지구화학 분석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강조된다.
공동저자인 클라우스 메츠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주에서 생명 친화적 행성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지구의 생명 가능성은 연속적인 발전이라기보다 우연한 행성 충돌에 기원한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 사우스웨스트 리서치 인스티튜트와 예일대학 공동 연구진이 최근 네이처에 발표한 검토 논문에 따르면, 태양계 내 지구형 행성들의 장기 진화에서 행성 질량의 마지막 1%를 차지하는 ‘늦은 부착(late accretion)’ 과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각 행성별로 늦은 시기의 충돌 및 물질 부착이 다르며, 이는 행성마다 고유한 지질학적, 대기적 특성과 거주 가능성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리뷰 논문의 제1저자 시모네 마르키 박사는 “행성의 충돌 연대와 질량 부착 기록을 이해하는 것이 거주 가능한 외계 행성 탐사에 핵심적”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우주 생명 가능성이 흔치 않은 우연적 사건에 의해 생겼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메츠거 교수는 “지구가 물과 생명 친화적 환경을 갖게 된 것은 외부에서 물이 풍부한 천체가 충돌한 우연한 사건 덕분이며, 이는 우주에서 생명 친화성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항성에 가까운 암석형 외계행성들도 생명 거주 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저마다 운반체 역할을 하는 별도의 ‘우주적 물질 공급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초기 지구는 약 300만년 이내에 형성된 건조한 암석 행성이었지만, 이후 화성과 크기에서 비슷한 행성 테이아의 충돌이라는 극적인 우주적 사건이 지구를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행성으로 바꿨다는 점이다. 이러한 연구는 생명의 기원과 행성 진화뿐 아니라, 우주 생명체 탐사의 방향과 기준 설정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