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의 쇼크가 미국 빅테크 기업을 강타했다. 뉴욕 증시는 폭락했고, 특히 ‘AI 대장주’ 엔비디아는 하루 만에 시총 약 6000억 달러(약 863조원)를 날렸다.
27일(미국 동부시각)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나스닥종합지수는 3.07% 급락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1.46% 떨어졌다.
엔비디아는 27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거래소에서 전 거래일 종가보다 16.97%(24.20달러)나 폭락한 118.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선언됐던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또 다른 AI산업 수혜주 브로드컴도 17.40% 폭락했고, 마블테크놀로지(19.10%), 마이크론테크놀로지(11.71%) 등도 급락했다. 반도체 제조사 TSMC(13.33%)와 ASML(5.75%)도 동반 추락했다.
미국 시장분석업체 컴퍼니스마켓캡에서 이날 뉴욕증시 마감 종가를 반영한 엔비디아의 시총은 2조9000억 달러로 감소했다. 세계 시총 1위인 인공지능(AI) 칩 선두주자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 돌풍에 휘말려 하루 만에 600조원 넘게 증발했다.
세계 1위였던 시총 순위는 3위로 내려갔다. 시총 순위에서도 ‘3조 달러 클럽’을 유지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뒤로 밀렸다.
엔비디아는 하루 만에 17% 폭락으로, 시가총액 5888억 달러를 잃었는데, 이는 단일 주식이 하루 동안 잃은 시가총액 기준 미국 증시 역사상 최대치다. 3년 전 메타가 세운 이전 기록인 2400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도대체 딥시크가 뭐길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초토화 시킨 걸까.
딥시크는 지난 20일 복잡한 추론 문제에 특화한 AI 모델 ‘R1′을 선보였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벤처투자가 마크 앤드리슨은 X(옛 트위터)에 “딥시크 R1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혁신 중 하나”라며 “AI 분야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라고 평가했다.
스푸트니크 모멘트는 기술 우위를 자신하던 국가가 후발 주자의 앞선 기술에 충격을 받는 순간을 가리키는 용어로, 1957년 옛 소련이 최초의 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미국보다 먼저 발사한 것에서 기인했다.
전문가들은 딥시크의 성능도 인상적이지만, 개발 비용, 특히 '엄청난 가성비'에 더욱 충격을 받는 분위기다. 딥시크는 ‘V3′ 모델에 투입된 개발 비용이 557만6000달러(약 80억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메타가 최신 AI 모델 ‘라마3′ 모델에 쓴 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로 인해 AI 모델 개발에 필수적으로 여겨졌던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시장을 지배했다. 엔비디아는 2022년 11월 미국 기업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의 등장 이후 2년 넘게 활황을 탄 AI 강세장의 최대 수혜주다.
엔비디아는 A100과 H100 등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이어 지난해 4분기부터 신형 AI 칩 블랙웰을 출시해 세계 기업들에 공급했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60%를 넘었다.
즉 중국 AI기업들은 엔비디아에서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를 피해 중국용으로 출시된 H800 칩 등 상대적으로 저성능 모델로 자사 AI를 훈련시키면서, 결국 미국 기업들의 것과 비교해 유사하거나 능가하는 성능을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딥시크의 AI 모델에 대해 “고성능 칩과 방대한 컴퓨팅 능력, 막대한 전력에 의존해 온 현행 AI 사업 모델에 대한 혁신적 파괴자가 될 수 있다는 즉각적인 우려를 일으키게 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CNN은 “잘 알려지지 않은 AI 스타트업의 놀라운 성과는 미국이 지난 수년간 국가안보를 이유로 고성능 AI 칩의 중국 공급을 제한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충격적”이라고 평가했다.
NYT는 “미국 정부의 무역 제재가 가져온 의도치 않은 결과”라고 했다. 미국의 반도체 칩 무역 제재가 오히려 중국 기술자들이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자극했다는 것이다.
딥시크발 이날 주가폭락를 시작으로 고비용 기조인 현 AI 업계에서 가격 인하 경쟁에 신호탄을 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딥시크의 '저렴한' AI 모델 개발 방식이 확산한다면 기업들이 굳이 비싼 엔비디아 최신 AI 칩을 구입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역시 막대한 매출과 순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됐다.
골드만삭스는 “지금까지 시장은 구글이나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 AI 관련 회사에 막대한 프리미엄을 줬다”며 “딥시크가 기존 AI 기업들의 지출에 의구심을 자극하면서 더 광범위하게 투자자들의 신뢰를 흔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블룸버그는 “딥시크의 성공은 미국 AI 기업들이 선두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격을 낮춰야 하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의 막대한 지출에 대한 의문도 불러왔다”고 했다.
글로벌 투자 연구기관 야르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르데니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딥시크로부터 더 저렴한 그래픽처리장치(GPU)로 AI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엔비디아에는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진단했다.
‘딥시크’는 비기술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AI 데이터센터 구동에 막대한 전력이 들어가는 탓에 에너지 기업들의 주식도 높은 가격을 형성했다. 하지만 이날 콘스텔레이션 에너지, GE버노바 등은 21% 급락했다. 발전기에 사용되는 천연가스 선물 가격도 5.9% 하락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도 하락했다.
엔비디아는 이날 성명을 통해 “딥시크의 작업은 새로운 모델이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이는 널리 사용 가능한 모델과 완전한 수출 통제 준수를 충족하는 컴퓨팅 자원을 활용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며 “추론에는 상당수의 엔비디아 GPU와 고성능 네트워킹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