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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

[이슈&논란] “산소는 없었고 골든타임은 날아갔다”…대한항공, 美 국방부 직원 기내사망 소송에 '로키 모드'

 

[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대한항공 KE94편(비행시간 약 15시간 30분 예정)에서 30대 미국인 승객이 숨진 사건이 뒤늦게 국제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사망자는 미 국방부 소속 민간 직원 포르샤 티니샤 브라운(당시 33세)으로, 그의 유족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미국 연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기내 응급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브라운은 친구 3명과 함께 휴가차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2024년 3월 29일,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을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던 KE94편에 탑승했다. 소장에 따르면 비행 약 12시간이 지난 시점, 그는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과 함께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며 좌석에서 쓰러졌다.

 

항공기는 이후 일본 오사카로 긴급 회항했고, 현지 병원으로 이송된 브라운은 급성 심부전 진단을 받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외형상으로는 ‘기내 돌발 의료사고’지만, 유족이 제기한 구체적 주장들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의료 불운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

 

유족이 가장 강하게 문제 삼는 지점은 기내에서의 초기 대응, 특히 산소마스크와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 과정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와 미국·한국 교포 언론이 입수한 소장에 따르면, 승무원은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브라운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웠지만, 이 마스크는 산소 탱크(산소통)에 연결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유족은 주장했다.

 

산소 공급 장치가 실제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비상 착륙 이후에야 뒤늦게 확인됐고, 그 사이 브라운은 산소가 나오지 않는 마스크를 얼굴에 쓴 채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다는 것이 유족 측의 주장이다.

 

AED 사용 논란은 사건의 성격을 한층 더 무겁게 만든다. 소장에 인용된 진술에 따르면, 기내에 비치된 AED는 현장에 가져와졌고, 기기 음성 안내가 ‘충격 필요’를 여러 차례 알렸음에도 실제 전기 충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족과 동승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승무원들은 상황을 주도하기보다는 “당황하거나, 지켜보거나, 메모를 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되며, AED 사용법에 대한 명확한 안내도 제공하지 않아 결국 승객들조차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였다는 것이다. 장비는 있었지만 작동 가능한 상태로 ‘사용됐다’기보다, 실질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방치됐다는 비판이다.

 

숫자로만 보더라도 사건의 맥락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비행 15시간 30분 중 약 12시간이 경과한 시점에 증상이 발현됐고, 항공기는 남은 구간을 계속 비행하는 대신 일본 오사카로 긴급 회항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항공사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운은 회항 이후 병원에서 급성 심부전으로 숨졌고, 유족은 “골든타임 동안 최소한 매뉴얼 수준의 응급조치라도 이뤄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법적 공방의 쟁점은 ‘사망’이라는 결과 자체가 아니라, 항공사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를 다했는지 여부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며 전망했다.

 

유족은 대한항공이 산소 공급 장치를 제대로 연결하지 않은 과실, AED를 포함한 응급장비 사용에 대한 교육·훈련 부족, 위기 상황에서 승무원들이 현장을 통제하고 주도할 시스템 부재 등을 근거로 ‘항공사의 과실에 따른 부당 사망(wrongful death)’을 주장하고 있다. 소장에는 배심원 재판을 청구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 실제 인정될 수 있는 손해배상액은 배심원단 판단에 따라 상당한 규모로 확대될 여지도 있다.

 

대한항공의 공식 대응은 현재까지 ‘로키 모드’에 가깝다. 로키(로우키, low‑key) 모드란 과장하지 않고 조용하게 움직이는 태도, 존재감을 최소화하거나, 언론 노출·외부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전략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상황을 관망하며 몸을 낮추는 국면의 상황을 말한다.

 

국내외 복수 매체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현지 법적 절차에 성실히 대응하겠다”는 짧은 입장을 밝혔을 뿐, 산소마스크 미연결 여부나 AED 사용 과정, 승무원 교육 실태 등에 대해서는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세부 내용 확인은 어렵다”며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인디펜던트의 논평 요청에도 별도의 답변을 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당분간 사실 관계 공방은 법정과 언론 보도 사이를 오가며 이어질 전망이다.

 

객관적인 수치만으로 기내 의료 사고의 위험을 완전히 계량할 수는 없지만, 장거리 국제선이 사실상 ‘공중의 의료 공백지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상징성이 크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각국 규정에 따라 항공사들은 AED, 산소통, 응급키트 등을 의무 비치하고 정기적인 승무원 교육을 수행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 장비가 제대로 연결·작동하는지, 승무원들이 음성 안내에 맞춰 주저 없이 전기 충격을 시행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돼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번 사건은, 외형적으로는 한 명의 33세 승객이 장거리 비행 중 숨진 비극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장비는 있었으나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공중 안전 이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미국 국방부 직원이라는 피해자의 신분, 영국 인디펜던트와 뉴욕포스트 등 해외 유력 매체가 소장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항공이 직면한 것은 단순한 민사 소송을 넘어 글로벌 브랜드 신뢰와 항공안전 레포트에 남을 수 있는 평판 리스크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결국 법정 다툼의 결론과 무관하게 이번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기내에 응급장비가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 장비가 제대로 연결돼 있었고, 골든타임 동안 두려움 없이 사용될 수 있는 수준으로 교육·훈련·매뉴얼이 설계돼 있었는가?”라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향후 법적 절차와 별개로, 기내 응급시스템과 승무원 교육 프로세스 전반을 어떤 수준으로 재점검·공개할지에 따라, 이 사건은 하나의 불운한 사고로 남을 수도, 혹은 글로벌 항공사 안전 기준을 다시 쓰는 ‘터닝 포인트’로 기록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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