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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

[우주칼럼] “달에 러시아 영토 깃발?”…우주조약 정면으로 찌른 모스크바의 위험한 승부수

 

[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가 연방 프로젝트 ‘우주 과학(Space Science)’을 통해 “달 표면에 러시아의 주권 영토를 조성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냉전기 이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돼온 국제 우주 법질서에 균열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united24media, Reuters, jaxa.jp, U.S. Department of State, china-in-space, Комсомольская правда에 따르면, 경제제재와 전쟁 장기화로 궁지에 몰린 모스크바가 ‘달 영토’ 카드를 외교·국내 정치용 레토릭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미·중 중심으로 재편 중인 달 경쟁 구도에 다시 이름을 올리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러시아 계획의 실체: 4.4조 루블 우주 프로젝트, 16기 탐사선

 

세르게이 체르니셰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부원장은 4월 7일 열린 ‘과학적 지식, 진보, 협력의 원천으로서의 우주’ 콘퍼런스에서 연방 프로젝트 ‘우주 과학’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달 탐사 연구에서 핵심 지식과 기술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달 표면에 러시아의 주권 영토를 할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 관영·친정부 매체뿐 아니라 해외 매체를 통해서도 “달을 분할(divide the Moon)해 러시아 영토를 설정하겠다는 발상”으로 소개되며 파장을 키웠다.

 

체르니셰프가 공개한 구체적 숫자는 야심차다. 러시아는 2036년까지 두 단계에 걸쳐 총 16기의 달 관련 우주선을 발사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1단계에서는 착륙 및 표면 탐사 기술 확보, 2단계에서는 달 기지 구성 요소 구축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가 포함된 러시아 국가 우주 프로그램의 규모는 4.4조 루블(대략 480억 달러 선, 환율에 따라 변동)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약 7,000억 루블(약 75억 달러)이 달 탐사에 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실행력은 여전히 의문부호다. 인터팩스·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루나-29·30·28 등 후속 달 탐사선을 각각 2032년, 2034년, 2036년으로 다시 미루었다. 2023년 8월 러시아의 첫 현대식 달 착륙선이었던 루나-25가 달 표면에 충돌하며 실패로 끝난 직후라, 달 프로그램 전반이 일정·기술·재정 측면에서 모두 ‘빨간불’ 상태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국제 우주법과 정면 충돌: 우주조약이 막아선 ‘달 영토’ 꿈


러시아의 ‘달 영토’ 발언이 즉각적인 현실 가능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과 별개로, 이번 발언이 국제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는 이유는 1967년 발효된 ‘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조약 2조는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우주 공간은 주권 주장, 사용 또는 점령, 기타 어떠한 수단으로도 국가에 의한 전유(national appropriation)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 조약의 원 서명국이자 여전히 당사국이다. 나아가 2021년 유엔 회의에서 러시아 외교관은 우주조약의 원칙이 “달 자원에도 전면적으로 적용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한 바 있다. 이런 전례를 감안하면, 과학아카데미 수뇌부가 공개 석상에서 “주권 영토”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실상 기존 입장과 배치되는 ‘정치적 시험 풍선’ 혹은 내부 정치용 레토릭으로 읽힌다.

 

우주조약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룩셈부르크 등은 ‘국가 주권’은 금지하되 민간 기업 차원의 우주 자원 이용은 허용한다는 입법을 정비했고, 이에 대해 일부 국제법 학자들은 “조약의 정신과 충돌한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어느 국가도 “달 표면 특정 구역을 자국 영토로 선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발언은 우주조약 체제의 ‘레드라인’을 의도적으로 건드린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과 벌어진 격차: ‘레토릭은 과감, 역량은 추락’


러시아의 선언이 현실의 힘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는, 동시기에 벌어진 미국과 중국의 행보와 비교하면 선명해진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을 통해 4월 6일 유인 비행선이 지구로부터 약 25만2,756마일(약 40만6,000km) 지점까지 달 근접 비행을 마쳤으며, 4월 10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앞 태평양에 귀환하는 일정이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2020년대 후반 첫 여성·비백인 우주인의 달 남극 착륙을 목표로 다국적 동맹 체제를 구축해 가고 있다.

 

중국 역시 달 남극 국제 달 연구 기지(ILRS)를 앞세워 자체적인 ‘달 블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창어(嫦娥) 7호는 2026년 발사를 목표로 달 남극에서 물 얼음 탐사와 장기체류 기술 검증을 수행할 예정이며, 이후 2030년 전후 유인 착륙까지 염두에 둔 로드맵이 제시돼 있다. ILRS는 애초 러시아와의 공동 프로젝트로 출발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제재, 예산 문제 등으로 러시아의 실질적 기여는 미미하다는 분석이 다수다.

 

표면적으로 보면 러시아는 4.4조 루블 규모의 우주 프로그램과 ‘16기 탐사선’이라는 숫자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지만, 실제 성과 측면에서는 ‘루나-25 충돌’과 ‘후속 미션 재연기’라는 실패의 연속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미국·중국은 각각 아르테미스, 창어·ILRS를 매개로 동맹과 공급망, 산업 생태계까지 결합한 ‘달 전략’을 현실화하고 있어, 러시아의 주권 영토 선언은 “기술·예산 열세를 가리기 위한 과잉 수사”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달 영토’ 발언이 여는 새로운 전선: 우주 패권·법제·산업의 삼중 충돌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논란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러시아의 과장 발언을 넘어, 향후 우주 거버넌스 재편 과정에서 ‘달 영토·자원’ 문제가 본격적인 지정학·법적 쟁점으로 부상하는 신호탄이라는 데 있다. 우주조약은 영토 주권을 금지하지만, 자원 채굴·활용 범위와 방식, 달 표면 인프라(기지·발사장·채굴지 등)를 둘러싼 ‘사실상의 구획화’는 어느 정도 허용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미국의 아르테미스 협정(Artemis Accords)은 달·소행성 자원 사용의 합법성을 전제로 ‘안전 구역(safety zone)’ 개념을 도입하려 하고, 중국·러시아는 ILRS를 통해 별도의 규범·표준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과학아카데미가 “주권 영토”라는 표현을 던진 것은, 향후 ‘달 인프라 구역’과 ‘군사·이중용도 시설’의 경계, 그리고 우주조약 개정·보완 논의 과정에서 러시아가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최대치 요구’로도 해석된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러시아가 실제로 달 남극 특정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선포하고 군사적·경찰적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 현실적인 위험은, 이 같은 레토릭이 타 국가의 ‘선점 경쟁’을 자극하고, 기존 우주조약의 해석을 둘러싼 법적 회색지대를 더욱 확대시켜 달과 지구-달 공간(cislunar space)이 또 하나의 지정학적 충돌 무대로 변모하는 데 기름을 붓는다는 점이다.

 

당장 한국을 포함한 중견 우주 국가들에게도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미국 중심의 아르테미스 체제,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려는 ILRS 구상, 그리고 우주조약 체제 보완 논의 사이에서 어떤 조합과 포지셔닝으로 ‘달 시대’에 참여할지에 따라, 향후 수십 년간의 기술·산업·안보 지형이 크게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기사를 쓴다면, 러시아의 ‘주권 영토’ 발언을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우주법·우주산업·우주패권 3박자가 뒤엉키기 시작한 ‘경계선 사건’으로 다룰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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