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윤슬 기자] AI의 급속한 발전과 도입이 의료진의 업무 효율과 정확도를 높이는 긍정적 효과와 달리, 장기적으로 의사들의 필수 역량을 약화시켜 환자 안전과 의료 시스템 전반에 우려를 낳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The Lancet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에 발표된 획기적인 연구 결과는 인공지능(AI)의 정기적 의료 현장 도입이 의료진의 핵심 진단 능력 저하, 즉 ‘기술 퇴화(deskilling)’를 초래할 수 있다는 최초의 임상 증거를 제시했다.
The Lancet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 (2025), STAT News (2025), TIME, Expert reactions (2025), Science Media Centre expert reactions (2025), NCBI Bookshelf Clinical AI Training (2025),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 (2024), EurekAlert, The Lancet publication summary (2025), JMIR Medical Education Review (2025), News-Medical.net on AI in Colonoscopy (2025) 등의 연구결과와 보도를 종합해 알아봤다.
폴란드 실레지아 아카데미 소속 마르친 로만치크 박사 등은 2021년 9월부터 2022년 3월까지 4개 의료기관에서 1442건의 비AI 보조 대장내시경을 포함한 2177건의 대장내시경을 대상으로 AI 도입 전후 의사들의 용종 탐지율 변화를 비교 관찰했다.
연구 결과, AI 도구 사용 후 3개월이 지나자 숙련된 내시경 전문의들의 AI 미사용 대장내시경에서 전암성 선종(adenoams) 탐지율이 28.4%에서 22.4%로 6%포인트, 상대적으로는 20%가 감소했다. 이는 AI 보조가 없을 때의 의료진 능력이 실질적으로 저하됐음을 의미하며, 각 의사가 2000건 이상의 대장내시경 경험을 가진 고도의 전문가였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이번 연구는 AI를 통한 탐지 능력 향상과 대비되는 ‘과도한 AI 의존’이 의료진의 시각적 주의력과 패턴 인식 능력, 그리고 내시경 조작 기술을 둔화시켰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실증했다.
특히 AI 지원이 갑자기 중단될 경우(시스템 장애, 사이버 공격 등) 의료진의 진단 신뢰성과 대응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음을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허트퍼드셔 대학 캐서린 메논 박사는 "AI 지원에 익숙한 의료진이 AI 없이 작업해야 할 경우 오히려 성과가 저조해질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신중한 해석을 요구한다.
런던 퀸메리 대학 베넷 오스마니 교수는 연구 기간 동안 시행된 대장내시경 검사 건수가 AI 도입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이로 인한 업무 과중과 피로도가 탐지율 저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해 기술 저화가 단 3개월 만에 발생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의료 현장에서의 AI 활용은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나, 이번 연구는 AI로 인한 ‘자동화 편향(automation bias)’이 의료진의 전문성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종을 울린다.
실제로 2024년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 연구에서도 AI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인지 능력과 결정 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보고했다. 이에 따라 의료진의 AI 활용 역량뿐 아니라 AI가 없는 상황에서도 임상 판단을 유지할 수 있는 교육과 연속적 평가 시스템 도입이 절실하다.
현재 대장내시경 분야에서 AI 사용에 관한 지침은 기관별로 엇갈린다. BMJ Rapid Recommendations는 비AI 일반 대장내시경 선별검사에서 AI의 일상적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 반면, 유럽소화기내시경학회(ESGE)는 환자 선호를 근거로 AI 도입을 권고하는 상황이다.
이는 AI 기술의 장단점을 균형 있게 평가하여 의료진의 기술 저하 방지와 환자 안전 보장을 병행해야 할 복잡한 도전 과제를 반영한다.
결국 이번 연구는 AI가 의료 현장에 제공하는 혁신적 도움 뒤에 숨겨진 잠재적 위험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AI 사용의 편리성에 안주하지 않고, 의사가 본연의 진단 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시스템적 안전망과 교육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의료 선진화와 환자 신뢰 확보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