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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Moonshot-thinking] ‘모래성 위의 속도’인가, ‘암반 위의 완결성’인가…정비사업 전자동의의 명암

 

대한민국 정비사업의 지형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2025년 12월 도시정비법 개정안 시행은 아날로그에 머물던 재개발·재건축 현장에 ‘디지털 가속기’를 달았다. 서면 동의서 한 장을 받기 위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던 시대는 저물고,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수천 세대의 의사가 집결된다.

 

하지만 시장이 열광하는 ‘신속함’이라는 결과값 뒤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본질이 숨어 있다. 바로 ‘절차적 완결성’이라는 기반이다. 기반이 부실한 디지털 전환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일 뿐이다.

최근 강남권 최대 단지인 개포주공1단지(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5,133세대라는 거대 규모에도 불구하고 투표율 85.1%, 출석률 53%를 기록하며 관리처분계획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주목할 점은 고령층의 반응이다. 60대 이상의 전자투표 참여율이 91%에 달했다는 사실은, 기술적 문턱이 충분히 낮아졌으며 디지털 방식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 도구’로 안착했음을 의미한다.

 

목동14단지 역시 신탁업자 지정 과정에서 단 10일 만에 동의율 70%를 돌파하며 아날로그 대비 압도적인 시차를 보여주었다. 비용 측면에서도 기존 총회 대비 90% 이상의 절감 효과가 확인됐다. 이처럼 프롭테크는 단순한 편의를 넘어, 공사비와 금리 압박에 시달리는 조합원들에게 사업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실무적 병기로 자리 잡았다.

 

편리함의 함정, ‘법적 안정성’이라는 실효적 가치

 

그러나 현재의 확장세에는 우려스러운 대목이 존재한다. 일부 현장에서 채택하는 QR코드 기반의 단일 URL 접속 방식은 접근성은 뛰어나나, 개별 수신 이력과 도달 여부를 증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정비사업에서 이러한 구조적 허점은 향후 무효 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의 빌미가 된다. 실제로 절차 하자로 인해 사업이 멈춰 서는 사례가 빈번해지는 추세다.

 

진정한 프롭테크의 경쟁력은 ‘얼마나 쉬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단단한가’에서 갈린다. 의정부시가 최근 공인전자문서센터 보관을 의무화하며 검인 기준을 강화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령이 요구하는 정보처리시스템 요건을 충족하고, 공인전자문서중계자를 통한 개별 송·수신 구조를 갖춘 플랫폼만이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사업을 보호할 수 있다. ‘총회원스탑’과 같은 상위 솔루션들이 단순 UI를 넘어 공신력 있는 증거력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뢰의 구조가 사업의 완성을 결정한다

 

정비사업에서 가장 비싼 비용은 ‘지연’이다. 그리고 지연을 초래하는 큰 변수는 ‘신뢰의 붕괴’다. 전자서명동의서와 온라인 총회는 분명 혁신적인 도구이지만, 그것이 법적 정당성이라는 검증 과정을 생략한 채 ‘속도’만을 탐한다면 오히려 사업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결국 정비사업의 성패는 얼마나 빨리 동의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하자 없이 끝까지 갈 수 있는 구조적 완결성’에 달려 있다. 지자체들의 행정 기준이 고도화될수록, 시장은 단순 편의를 넘어 법적 안정성을 내재화한 기술만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화려한 포장지 속 내용물이 얼마나 견고한 신뢰의 토양 위에 서 있는지 냉정하게 복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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