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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칼럼] 3억년 전 ‘최고(最古) 문어 화석’의 정체는?…알고보니 '부패한 앵무조개'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3억년 동안 ‘세계 최고(最古) 문어’로 추앙받던 화석이 첨단 싱크로트론 스캔 앞에서 결국 정체를 드러냈다. 그 주인공 ‘폴세피아 마조넨시스(Pohlsepia mazonensis)’가 문어가 아니라 앵무조개 계열 연체동물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제시되면서, 문어 진화사를 2억 년 넘게 앞당겨 놓았던 학계의 통설이 원점에서 다시 쓰이게 됐다.

 

기네스에 오른 ‘세계 최고(最古) 문어’, 26년 만에 번복

 

ScienceDaily, scienmag, reading.ac, EurekAlert!, Phys.org에 따르면, 폴세피아 화석은 미국 일리노이주 메이즌 크리크(Mazon Creek) 지층에서 출토된 단 한 점의 표본이다. 2000년 처음 학술적으로 기술될 당시, 연구자들은 이 화석이 3억~3억1,100만년 전(중·후기 석탄기) 퇴적층에서 발견됐다는 연대와, 여덟 개의 팔, 두 개의 눈, 먹물주머니처럼 보이는 구조를 근거로 “현생 문어와 유사한 몸 계획을 가진 가장 오래된 문어”라고 해석했다.

 

이 해석은 곧 대중 매체와 교과서로 확산됐고, 기네스 세계기록은 ‘가장 이른 시기의 문어(Earliest known octopus)’로 폴세피아를 공식 등재했다.

 

이번 연구는 이 ‘세계 최고 문어’ 타이틀이 근본부터 잘못된 분류였음을 보여준다. 영국 레딩대학교(University of Reading) 토머스 클레멘츠(Thomas Clements) 박사팀은 폴세피아가 처음 기술된 지 약 26년 만에 최신 이미징 장비를 총동원한 재분석을 통해, 이 화석이 문어 계통이 아니라 앵무조개류(nautiloid) 계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 결과는 2026년 4월 8일자 영국 왕립학회 학술지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Synchrotron data reveal nautiloid‑characters in Pohlsepia mazonensis, refuting a Palaeozoic origin for octobrachians(싱크로트론 데이터는 P. mazonensis에서 앵무조개형 형질을 보여주며 팔완류의 고생대 기원을 부정한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클레멘츠 박사는 레딩대 보도자료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어 화석이 사실 문어가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암석에 묻히기 수 주 전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앵무조개 근연종이었고, 바로 그 부패 과정이 화석을 문어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크로트론 스캔이 밝혀낸 ‘치설(radula)’…문어가 아닌 앵무조개의 이빨 수

 

이번 번복의 핵심 증거는 “보이지 않던 부분”에 숨어 있었다. 연구진은 유럽 싱크로트론 방사광가속기 등에서 고에너지 X선을 이용한 싱크로트론 마이크로 CT 및 X선 형광(µXRF) 분석을 수행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화석 내부 구조를 3차원으로 재구성했다.

 

그 과정에서 연구진은 화석 내부에서 치설(radula), 즉 미세한 이빨이 여러 줄로 배열된 띠 모양의 섭식 구조를 확인했다. 결정적인 것은 이 치설의 ‘이빨 개수’였다. 싱크로트론 데이터에 따르면 폴세피아의 치설은 한 줄에 최소 11개의 이 모양 요소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생 및 화석 문어(octopus)의 치설은 일반적으로 한 줄당 7개 또는 9개의 이빨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반면, 앵무조개류(nautiloid)는 보통 13개에 이르는 치설 치열을 갖는다. 연구진은 폴세피아 치설의 이빨 수와 형태가 메이즌 크리크에서 이미 보고된 화석 앵무조개 ‘팔레오카드무스 폴리(Paleocadmus pohli)’의 치설과 사실상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로부터 폴세피아가 독립된 문어 종이 아니라 부패가 진행된 팔레오카드무스 개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초기 연구에서 문어의 특징으로 여겨졌던 먹물주머니 추정 구조 역시 재검토에서 힘을 잃었다. 싱크로트론 기반 원소 분석 결과, 그 부위에서는 문어 먹물에 포함돼야 할 멜라노좀(melanosome) 흔적이 거의 확인되지 않았고, 연구진은 “먹물주머니로 보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문어형 실루엣을 뒷받침했던 여러 외형적 특징이 사실은 장기간 수중 부패 과정에서 조직이 흐트러지고 퍼지면서 만들어진 ‘유령 이미지’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2억2000만년 앞당긴 ‘최고(最古) 앵무조개 연조직’…문어 기원은 다시 안갯속으로


폴세피아의 재분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록을 다시 쓴다. 우선,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된 ‘가장 오래된 문어’ 항목은 삭제되거나 수정될 수밖에 없다. 폴세피아가 더 이상 문어 계통으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최고(最古) 문어’ 타이틀은 다른 후보에게 넘어가야 한다. 현재로서는 트라이아스기 이후(약 2억4000만년 전 이후)에 등장하는 다른 화석 문어·팔완류(octobrachians)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만, 이번 연구팀 역시 “확정된 최연소 시점은 여전히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반대로, 메이즌 크리크에서 발견된 팔레오카드무스 화석은 ‘최고(最古) 앵무조개류 연조직’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손에 쥐게 됐다. 레딩대와 Phys.org 등에 따르면,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팔레오카드무스의 연조직 보존 사례는 기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앵무조개 연조직 기록을 약 2억2000만년 앞당긴다. 기존 최장 기록이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약 2억4000만년 전 전후) 연대의 표본들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확인된 석탄기(약 3억년 전) 팔레오카드무스 연조직은 그만큼 공백을 메운 셈이다.

 

더 큰 파장은 문어 진화사에 미친다. 폴세피아가 문어 계통에서 빠지면서, 팔완류(octobrachians·현생 문어 및 이들과 가까운 무리)의 ‘고생대 기원’ 가설은 근거를 잃었다. 레딩대 보도자료와 사이언스데일리 등은 “이번 연구는 문어 계통이 고생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이들의 확인된 출현 시점을 더 후대로 미루게 된다”고 전했다. 즉, 그동안 폴세피아를 근거로 문어 계통의 기원을 3억 년 전 석탄기로 끌어올렸던 ‘롱 퓨즈(long fuse)’ 시나리오는, 더 이상 유효한 증거를 갖지 못하게 됐다.

 

‘부패’가 만든 착시…연조직 화석 해석의 경고등


이번 사례는 연조직 화석 해석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고해상도 비파괴 이미징이 고생물학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잘 보여준다. 메이즌 크리크는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조직 보존 산지(Lagerstätte)로, 연체동물·절지동물·식물 등 다양한 생물의 부드러운 조직이 점토질 구형 암괴(콘크리션) 속에 정교하게 보존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가 보여주듯, 연조직이 잘 보존된다는 것은 곧 ‘부패의 흔적’도 함께 영구 기록된다는 뜻이다. 폴세피아의 경우, 연구진은 부패로 인해 근육과 내장이 퍼지면서 몸통 주변에 어두운 실루엣이 남고, 이 실루엣이 팔과 먹물주머니처럼 오인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동시에 이번 연구는 싱크로트론과 미세 CT, 원소 분포 지도 등 첨단 이미징 기술이 고생물학에서 일종의 ‘법의학’ 역할을 하기 시작했음을 상징한다. 2억~3억 년 전 화석에 대해 사실상 “콜드 케이스(미제 사건)” 재수사를 벌인 끝에, 표면이 아닌 내부 장기 구조와 미세 치설 치열이라는 결정적 증거로 오래된 학설을 뒤집은 셈이다.

 

문어 진화사만이 아니다. 연구진과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다른 연조직 화석들에도 재검증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여러 해외 매체는 “폴세피아 사례는, 부패 과정이 화석화 이전에 생물의 외형을 극적으로 왜곡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생명의 계통수 전반에 걸친 연조직 화석 해석을 어렵게 만드는 과제를 재확인시킨다”고 지적한다. 화석 한 점에 의존한 ‘획기적인 계통수 재구성’은, 싱크로트론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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