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3 (일)

  • 흐림동두천 19.3℃
  • 흐림강릉 21.3℃
  • 흐림서울 21.3℃
  • 맑음대전 20.7℃
  • 구름많음대구 23.8℃
  • 맑음울산 22.8℃
  • 구름많음광주 22.3℃
  • 맑음부산 24.5℃
  • 구름많음고창 20.1℃
  • 맑음제주 24.4℃
  • 흐림강화 19.9℃
  • 맑음보은 17.9℃
  • 구름많음금산 19.6℃
  • 구름많음강진군 20.6℃
  • 맑음경주시 21.3℃
  • 맑음거제 23.5℃
기상청 제공

공간·건축

[지구칼럼] '스낫봇' 드론이 고래에 GPS 태그 부착…고래 보전 '신선한 혁명' “더 많이, 더 멀리, 더 덜 방해”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비영리 단체 오션 얼라이언스(Ocean Alliance)가 공개한 최신 영상 속에서 일명 ‘스낫봇(SnotBot)’ 드론이 바다 수면 수 미터 위를 스치듯 날아가더니, 고래의 등에 휴대폰 크기의 흡착식 GPS·카메라 태그를 정확히 떨어뜨리는 장면은 해양 포유류 연구 방식이 구조적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NOAA, Conservation International, forbes, Mongabay Environmental News, NOAAfisheries에 따르면, 고래의 콧김(분출수)을 채집하던 장비 이름에서 출발한 스낫봇은 이제 ‘공중에서 태그를 부착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며, 위험하고 느린 근접 선박 태깅 방식을 대체하는 차세대 연구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스낫봇이 떨어뜨리는 태그는 대략 스마트폰 크기의 소형 장치로, 비침습적 흡착컵으로 고래 피부에 부착되는 것이 핵심이다. 태그 내부에는 무선 카메라, GPS 수신기, 수중 청음기(하이드로폰), 가속도계, 수온 센서 등이 집적돼 있어, 부착 순간부터 분리될 때까지 잠수 깊이·유영 속도·위치 좌표·주변 수온·고래의 발성과 주변 소음 등을 동시에 기록한다.

 

일반적으로 이 태그는 몇 시간에서 최대 수일간 고래 등에 붙어 있다가 설정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분리돼 수면 위로 떠오르며, 연구팀은 위성·무선 신호를 추적해 회수한 뒤 데이터를 내려받는다. 지난 20여 년간 이 같은 흡착식 ‘바이오로깅(bio-logging)’ 태그는 대형 포유류의 행동생태 연구에 혁명을 가져왔지만, 정작 태그를 붙이는 과정은 늘 위험과 비용을 수반하는 ‘병목’으로 남아 있었다.

 

오션 얼라이언스는 2022년 세계 최초로 드론을 이용해 흡착식 태그를 고래 등에 직접 부착하는 데 성공한 이후, 6종의 수염고래에 100개 이상 태그를 드론으로 달았다고 밝힌다. 전통적 방식은 작은 보트를 고래 가까이까지 몰고 간 뒤, 연구자가 긴 장대를 이용해 태그를 ‘찍어’ 붙이는 구조여서, 고래와 사람 모두 충돌·부상 위험이 컸고, 현장 작업 속도와 기상 조건에 크게 제약을 받았다.

 

드론 태깅의 효율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오션 얼라이언스 연구진이 2025년 학회 발표자료에서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 단체는 드론을 이용해 총 406회 태깅을 시도해 235회 성공, 전체 성공률 57%를 기록했다. 적용 대상도 7종의 수염고래로 확대됐고, 사용 태그 역시 DTAG, CATS, Acousonde 등 3종으로 다변화됐다.

 

기존 보트 태깅과 비교할 때, 레이싱 스타일 1인칭 시점(FPV) 드론을 활용할 경우 한 번의 태깅 임무를 2분 이내에 끝내면서도 성공률을 55% 이상 유지해, 시간 기준으로 최소 3배 이상 효율적이라는 동료평가 연구도 보고됐다. 이 같은 정량 지표는 드론 태깅이 단순한 ‘멋진 영상’이 아니라, 연구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공학적 해법임을 뒷받침한다.

 

 

드론 태깅은 이제 특정 NGO의 실험단계를 넘어, 국가 연구기관과 군, 국제 NGO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 NOAA 수산청(NOAA Fisheries)은 2024년 멕시코만에서 오션 얼라이언스, 대학·연구기관과 공동으로 드론을 활용해 심각한 멸종위기종인 라이스고래(Rice’s whale)에 흡착식 태그를 부착하는 데 성공했다.

 

NOAA는 당시 21일간 항해하며 드론으로 7개체 라이스고래를 태깅했고, 총 65시간 분량의 잠수·이동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라이스고래는 개체수가 100마리 미만으로 추정되는 종으로, 미국 정부는 멕시코만의 수심 100~400m 수역을 이 종의 핵심 서식지로 지정하는 등 보호조치를 강화하고 있는데, 드론 태깅으로 확보되는 미세한 이동 데이터가 향후 ‘중요 서식지·항로 지정’ 등 정책 설계의 과학적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에서도 드론 태깅은 새로운 ‘고래 고속도로’를 드러내고 있다. 인도네시아 보전단체와 국제 NGO 컨소시엄은 2024년 남반구 봄철(10월)에 드론을 활용해 피그미 대왕고래(Balaenoptera musculus brevicauda)에 LIMPET 위성 태그를 최초로 부착했고, 그 결과 해당 개체가 약 2,000km를 이동하며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호주 서부 해안으로 이어지는 남하 이동 경로를 따랐다는 데이터를 얻었다고 보고했다.

 

이어 2026년에는 Mongabay와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 등이, 드론 태깅을 통해 피그미 대왕고래의 새로운 먹이터와 남극 인근까지 이어지는 미탐색 이동 루트가 확인됐다고 보도하면서, 이른바 ‘고래 하이웨이(whale highway)’ 개념이 정책·언론 담론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편 미국 해군도 해양 생물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통해 드론을 활용한 첫 태그 부착 사례를 2026년 2월에 공식 보고했다. 미국 해군과 NOAA 등은 드론+태그 기술이 잠수함·함정 운항과 해군 훈련이 고래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는 데 기여하고, 동시에 고래의 비정상 행동을 실시간 파악해 구조·구난 작업을 돕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렇게 NGO–정부–군이 같은 도구를 공유하는 구조는, 드론 태깅이 단순한 생태연구를 넘어 ‘해양 공간 이용 관리’와 직결된 공공 데이터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드론 태깅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 방식의 전환’이다. 선박이 아니라 하늘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고래와의 최소 안전 거리 확보가 훨씬 용이하고, 태그 투하 시 순간적으로만 근접하면 되므로 고래의 스트레스와 회피 행동을 줄일 수 있다. NOAA는 드론이 제공하는 속도·기동성·조류 영향에서의 자유로움 덕분에, 기존 방식보다 고래를 덜 방해하면서도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인도네시아 연구진 역시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드론은 고래에 더 윤리적이고 덜 침습적인 연구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태그를 놓쳤을 경우에도 드론 조작만으로 쉽게 회수 시도를 반복할 수 있다는 실무적 장점을 언급했다.

 

오션 얼라이언스는 드론 태깅이 “50년 넘는 조직 역사에서 가장 큰 기여 중 하나”라고까지 표현하며, 2026년 이후에도 태그 부착 종과 지역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했다. 이미 상용 드론(DJI Inspire 2, M210 등)에 3D 프린팅한 부착 장치를 달아 단일 조종자가 조종과 태그 투하를 모두 수행하는 프로토콜을 구축했으며, 드론–태그–종에 구애받지 않는 ‘플랫폼형 솔루션’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향후 상업 선사·해양풍력 사업자·국가 해양공단 등이 라이선스를 받아 자사 해역에서 고래 모니터링을 상시 수행하는 모델로도 쉽게 확장될 수 있는 구조다. 물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드론 운용은 각국 항공·해양 규제와 충돌할 소지가 있어, 시야 밖 운용(BVLOS) 허용 범위, 군·상선 항로와의 충돌 회피, 해양보호구역 내 비행 제한 등 복합 규제 이슈가 뒤따른다.

 

둘째, 고성능 드론과 태그, 회수·분석 인력까지 포함하면 초기 도입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선도 NGO·선진국 기관 위주에서 개도국 연구자들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비용·기술 지원 모델이 필요하다. 셋째, 태그에서 생산되는 대규모 고해상도 데이터(위치, 소리, 영상, 가속도)를 국제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메타데이터·표준화 작업도 아직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스낫봇으로 상징되는 드론 기반 태깅 기술은 “더 많이(tag more), 더 멀리(tag harder-to-reach species and regions), 더 덜 방해한다(disturb less)”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며, 고래 보전·해양 산업·국방 정책이 공유하는 공통 언어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멸종위기종 라이스고래의 65시간 분 단위 행동 데이터, 피그미 대왕고래가 남극 인근까지 이어가는 2,000km급 이동 기록, 400회가 넘는 드론 태깅 시도에서 축적된 57% 성공률이라는 수치는, 바다 위 작은 드론이 이미 ‘해양 빅데이터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명한 지표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한국 역시 향후 남해·동해 연안 고래 서식지와 조선·해운·해양에너지 산업이 뒤섞인 해역에서 드론 태깅을 활용한 과학적 관리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국내 고래연구·해양수산·국방 기관이 오션 얼라이언스, NOAA, 인도네시아·호주 연구진 사례를 벤치마킹해 공역 관리·선박 속도 제한·군사 훈련 조정 등 정책 설계에 접목한다면, ‘스낫봇’은 머나먼 바다의 이야기에서 한국 해역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실질적 도구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배너
배너
배너

관련기사

27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공간혁신] 간송미술관 365일 만난다…네이버랩스, 공간지능 기술로 ‘VR 투어’ 선보여

[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네이버랩스와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간송미술관(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의 전시 공간과 주요 소장품을 언제 어디서나 가상현실(VR)로 관람할 수 있는 ‘VR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11일 밝혔다. 간송미술관 VR투어는 네이버랩스가 구축한 전시공간과 ‘문화보국’ 전시 출품작들의 디지털트윈을 바탕으로 구현된 서비스다. 이용자는 실제 간송미술관의 전시 공간인 ‘보화각’을 방문한 것처럼 관람 동선을 따라 공간을 둘러보고, 원하는 전시물을 선택해 상세 설명도 확인할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그동안 봄·가을 정기 전시 기간에만 관람이 가능했으나, 이번 VR 투어 서비스를 활용하면 누구나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전시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유물을 감상해볼 수 있다는 점도 VR 투어의 매력이다. 대표적으로 오랫동안 간송미술관 정문을 지켜오다 지난 7월 중국에 기증된 ‘청대 석사자상’이 디지털 데이터로 구현됐다. 미술관 야외에 위치해 접근성이 낮았던 ‘괴산팔각당형부도’와 ‘석조팔각승탑’ 등의 유물도 VR투어로 더 쉽게 관람할 수 있게 됐다. 네이버랩스의 공간지능 기술을 활용해

[강남비자] 美대사관 비자, 이제는 강남 거주권 '데자뷔'…강남은 어떻게 ‘거주지’에서 ‘체류권’이 되었나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지금 이순간에도 강남으로의 이주를 꿈꾸며 ‘강남 환상’ 혹은 '강남의 찐가치'에 사로잡혀 있는 비강남 사람들에게 진실된 모습을 알리고자 한다. 때론 강남을 우상화하고, 때론 강남을 비하하는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강남의 가치가 급등해 비자를 받아야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강남VISA'라 명명한다. 나아가 강남과 강북간의 지역디바이드를 극복하는데 일조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 허상도 파헤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개인의 사적인 의견이니 오해없이 그냥 가볍게 즐겨주길 바란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88의 주한미국대사관은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한때 광화문 앞 대사관 비자 창구는 한국 중산층의 욕망과 불안을 압축한 장소였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사람들은 여권, 사진, 신청서, 수수료 영수증, 재직·소득·재산 증빙을 준비했고, 영사는 “당신이 미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라는 표면적이고 비공식적 명분아래 “당신은 미국에 불법 체류하지 않고 돌아올 사람인가”를 확인했다. 비자는 입국 허가서인 동시에, 신청자의 경제력·사회적 연결·귀환

[공간혁신] 새단장 ‘63빌딩’, 100일만에 30만명 핫플…퐁피두센터·250m 전망대·글로벌 맛집·편집숍 '문전성시'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서울의 랜드마크 ‘63빌딩’ 새 단장 100일 만에 30만명이 다녀갔다. 한화생명 63빌딩이 9월 11일 개장 100일을 맞는다. 지난 6월에는 문화와 예술, 미식과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글로벌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번 리뉴얼은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과 함께 전망대와 정원, 식음·라이프스타일 공간까지 63빌딩 전반을 새롭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뿐 아니라 전망과 미식, 카페와 쇼핑까지 63빌딩을 찾고 즐기는 방식도 한층 다양해졌다. 하루 7000명 찾은 「퐁피두센터 한화」… 여의도 문화명소로 「퐁피두센터 한화」는 개관 이후 하루 최대 7,000명의 관람객을 기록했다. 주요 시간대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고, 도슨트 프로그램도 매회 조기 마감되는 등 관람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개관과 함께 선보인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은 10월 4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기간 매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운영해 관람료를 50% 할인한다. 전시 외에도 하프와 클래식 기타, 스윙댄스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키즈 프로그램과 아트 살롱도 운영한다. 문화예술 경험은 미술관

[지구칼럼] "불꽃놀이는 생태계 교란행위"…10분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새 1007마리의 죽음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불꽃놀이가 인간에게 축제, 환호의 신호지만, 잠든 새들에게는 예고 없이 닥친 공습 경보와 다를 수 있다. 불가리아에서 불꽃놀이 직후 1000마리가 넘는 야생조류가 폐사한 사례가 정밀 부검을 통해 처음으로 구체화되면서, 불꽃놀이를 인간들만의 ‘짧은 오락’이 아니라 소음·빛·대기오염·화학물질을 동시에 배출하는 생태 교란 행위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꽃 아래 1007마리 2025년 1월 1일 오전, 불가리아 스레드나고라 산맥 인근의 한 소도시 등산로. 등산객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연구진은 약 0.5㎢의 숲 구역에서 무더기로 죽은 새들을 발견했다. 수거된 사체는 모두 1007마리, 생존 개체는 31마리였다. 생존 개체 중 6마리는 이후 폐사했고, 나머지는 며칠 뒤 방사됐다. 불가리아 트라키아대 수의과대학의 루스코 페트로프 교수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Diversity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집단 폐사의 가장 유력한 원인을 새해맞이 불꽃놀이로 결론지었다. 폐사 개체의 대다수는 유럽에서 보호받는 철새인 되새류(brambling·Fringilla montifringilla)였고, 일부는 되새와 가까운 되새류인 되새목 핀

[공간사회학] '한강변 권력의 최후' 한명회 ‘압구정’의 첫 주소는 여의도?…부관참시 522년, 갈매기는 어디서 권력이 되었나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서울에서 가장 비싼 주거지의 상징이 된 압구정동은 한명회(1415~1487)의 정자 이름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오늘의 동호대교 남단에 자리했던 그 정자는 처음부터 강남에 있지 않았다. 조선 전기 기록과 서울역사박물관의 여의도 조사에 따르면, 한명회의 첫 압구정은 마포 서쪽·양화진 북쪽의 ‘화도(火島)’, 곧 지금의 여의도 일대에 있었다. 이후 1476년 한명회는 정자를 동호(東湖)가 내려다보이는 강남 언덕으로 옮겼다. 한명회가 왜 여의도에서 동호로 정자를 옮겼는지를 직접 밝힌 동시대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동호 남쪽 언덕은 한강 물길과 저자도, 도성 주변 산세를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풍광과 접근성, 그리고 당대 권문세가의 한강변 별서 문화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동의 경로는 단순한 별장 이전이 아니다. 여의도에서 동호로, 조선의 권력 중심 가까이에서 한강 동부의 명승으로, 그리고 ‘갈매기와 친한다’는 은거의 언어에서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권력의 무대로 옮겨간 이야기다. 압구정은 자연 속에 숨으려 했던 정자가 아니라, 한명회가 자신의 퇴장과 영향력을 동시에 연출한 정치적 공간에 가까웠다.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