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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칼럼] "기생충, 서늘한 온대 바다에서 더 번성"…지구 생물다양성의 ‘철칙’ 뒤집혔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지구 생물다양성의 ‘철칙’으로 여겨져 온 위도 다양성 경사(latitudinal diversity gradient·LDG)가 기생성 편형동물 앞에서 예외를 드러냈다.

 

플로리다 애틀랜틱대학교(FAU) 연구진이 북·남미 연안을 따라 수행된 조간대 조사 자료를 메타분석한 결과, 특정 흡충류(trematode) 기생충의 감염률이 열대보다 서늘한 온대 해역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는 역전 패턴이 확인됐다. 수십 년간 축적된 생물다양성 연구가 예측해온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제시하면서 오랫동안 확립된 생태학 법칙을 뒤집었다.

 

Phys.org, FAU, sciencedirect, EurekAlert!, scienmag, Florida Atlantic University에 따르면, "LDG 종다양성 법칙은 적도 부근에서 최대, 양 극지역으로 갈수록 감소한다”는 생태학의 가장 기초적인 법칙 가운데 하나다. 미생물·식물·동물 등 대부분의 생물군과 숙주–기생자 관계가 이 공식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FAU Harbor Branch 해양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은 흡충류의 경우 달팽이, 게, 물고기로 이어지는 복잡한 생활사 전 단계에서 이 공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역위도 경사(inverse gradient)가 존재함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북·남미 아열대에서 온대까지 약 2,500km 해안선을 따라 수행된 29건의 조간대 생태계 조사를 취합하고, 이 가운데 유충(자유유영 세르카리아 등) 및 성체 흡충류 감염 자료를 제공하는 23편의 연구를 대상으로 메타분석을 수행했다. 전체 분석 범위는 위도 약 23도에 걸쳐 있으며, 첫 번째 중간숙주인 연체동물 단계에 국한됐던 기존 연구와 달리, 두 번째 중간숙주(게·소형 저서어류)와 최종숙주(대형 어류)에 이르는 감염 패턴을 함께 검증한 것이 특징이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게와 작은 저서성 어류 같은 중간숙주에서 흡충류 감염률(유병률)이 위도가 높아질수록 일관되게 증가했으며, 최종숙주인 대형 어류에서 성체 흡충류의 감염률 역시 같은 방향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가 다룬 각 개별 조사마다 환경·종 조성에 차이가 있음에도, 종합 분석에서는 “고위도일수록 기생충이 더 많다”는 역전된 기울기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유지된 것이다.

 

Christopher Moore 박사(당시 FAU Harbor Branch 박사후 연구원)는 “이번 연구는 기생생물의 분포가 전 지구적 생물다양성 패턴을 거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우리가 당연시해 온 생태 패턴에도 흥미로운 예외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Moore 등이 주도한 이 논문은 2026년 3월 31일자 국제학술지 ‘Journal of Biogeography’에 “Latitudinal Variation in Trematode Prevalence Across Regions in North and South America: Evidence of an Inverse Gradient in Second‐Intermediate and Final Hosts”라는 제목으로 게재됐으며, 디지털 객체 식별자(DOI)는 10.1111/jbi.70157로 제시돼 있다.

 

연구진이 제시한 핵심 설명 변수는 온도다. 열대 해역은 연중 따뜻하고 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좁은 대신, 숙주 생물에게는 생리적 스트레스가 크게 작용한다. 고온 환경에서 기생충 감염을 추가로 떠안게 된 숙주는 내성 한계에 더 빨리 도달해 폐사에 이르기 쉽고, 이로 인해 기생충 입장에서도 생활사를 완주하기 전에 숙주를 잃는 ‘자기 파괴적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반대로 온대의 서늘한 수온에서는 숙주가 감염을 더 오래 견디기 때문에, 흡충류가 숙주 안에서 성장·발달하고 이후 포식자에 의해 다음 숙주로 옮겨가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숙주의 생태적 특성 또한 역위도 경사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FAU 보도자료와 해외 과학매체 보도에 따르면, 개체수가 풍부하고 환경 교란에도 회복력이 강한 갯게류는 대표적인 2차 중간숙주로 기능하며, 조류·대형어류에 의해 정기적으로 섭식되면서 흡충류 전파 고리를 유지한다.

 

망둑어·베도라치와 같이 활동 반경이 좁은 소형 저서성 어류는 서식장을 거의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생충 유충이 집중적으로 존재하는 국지적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어 고위도일수록 감염률이 더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비해 넓은 해역을 이동하는 회유성 어류는 여러 수괴를 가로지르며 생활해 특정 위도대의 감염 압력에 장기간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위도에 따른 감염률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됐다.

 

FAU는 공식 발표문과 언론 배포자료에서 “기생충은 단순히 ‘숫자(개체수 밀도)’를 쫓는 것이 아니라 숙주를 따라간다”고 지적한다. 온도, 숙주의 이동성, 지역 환경조건(수질, 염분, 서식지 구조 등)이 맞물리며 특정 위도대에서 숙주–기생자 네트워크의 유지 가능성이 달라지고, 그 결과로 흡충류의 분포도 전통적 LDG에서 벗어난다는 설명이다. 이는 “기후가 따뜻해질수록 모든 병원체가 일률적으로 북상·확대될 것”이라는 단순화된 도식을 경계해야 함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질병생태학 논의에도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이번 연구는 기후위기 시대 해양생태계 리스크 평가의 프레임에도 수정을 요구한다. 지금까지는 적도 인근 고다양성 지역을 전염병·기생충 리스크의 ‘핫스폿’으로 전제하고 관리전략을 짜는 경우가 많았지만, 온대 해역에서도 특정 숙주–기생충 조합은 오히려 고위도에서 더 강한 감염 압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확인된 셈이다.

 

이는 온대 연안 어업·양식업에서 게·저서어류를 매개로 한 기생충 감염이 수익성·식품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재평가해야 함을 의미하며, 북미·남미를 넘어 동아시아 연안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할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한다.

 

Michael W. McCoy FAU 정량생태학 교수는 여러 매체 인터뷰에서 “기생충은 생물다양성 연구에서 종종 간과되지만, 생태계 기능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플레이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숙주–기생자 관계를 추적하면, 에너지 흐름과 종 상호작용 구조뿐 아니라 기후변화 속에서 질병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에 대해서도 더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향후 분석 범위를 더 넓은 위도대로 확대하고, 특히 이동성이 낮은 숙주군을 중심으로 장기 모니터링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번 FAU 연구는 ‘적도에 가까울수록 생물다양성이 높다’는 교과서적 문장이 기생충 생태학에서는 부분적으로 수정돼야 함을 보여준다. 숙주와 기생충이 온도·이동성·서식환경이라는 다층적 변수에 얽혀 있는 이상, 단일 위도 축으로는 실제 분포 패턴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역위도 경사를 드러낸 흡충류 사례는, 기후위기 시대의 해양질병 리스크를 읽어내는 새로운 렌즈이자, 생물다양성 법칙 자체를 재검증하게 하는 ‘불편한 예외’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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