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문균 기자] 알바니아 정부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장관 '디엘라(Diella)'를 임명하자마자 의회가 혼란에 빠졌다. 에디 라마 총리의 깜짝 발표 직후 야당 의원들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강력 항의했고, 국회의장은 단 25분 만에 정부 토론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BBC, ABC News, Hindustan Times, Channel News Asia, Global Government Forum, Transparency International, Al Jazeera 등에 따르면, 디엘라는 알바니아어로 '태양'을 의미하며, 전통 복장을 입은 여성 아바타 형태로 대형 스크린을 통해 "헌법은 봉사기관에 대해 말하지만, 염색체나 살, 피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인간 장관 못지않은 헌법적 가치를 구현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는 인간 동료들만큼, 어쩌면 더 엄격하게 이러한 가치를 실천한다"고 덧붙였다.
야당의 분노와 헌법 논쟁
야당 민주당을 이끄는 살리 베리샤 전 총리는 디엘라의 임명을 두고 "위헌적"이라고 비난하며,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할 계획임을 밝혔다. 또 "디엘라로는 결코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이 임명의 목적은 그저 관심을 끄는 쇼일 뿐"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야당은 의회 표결을 보이콧했지만, 정부 프로그램은 140석 중 82표 찬성으로 통과됐다. 의원들의 비판은 디엘라의 관리·감독주체와 의사결정 투명성, 인간책임의 대체 가능성에 집중된다.
반부패 임무와 기술적 장벽
디엘라는 공공 조달과 입찰을 '100% 부패 없는' 방식으로 관리해, 검은돈·권력형 비리에 취약했던 시스템 전반에 혁신을 예고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개발된 디엘라는 이미 e-Albania 플랫폼에서 누적 100만건의 디지털 문서와 민원서비스를 처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정부 계약 심사, 자금 흐름 감시, 불법 행위 탐지에 AI 알고리즘을 적용할 예정이다.
알바니아는 2024년 기준 투명성 국제 부패지수에서 180개국 중 80위(점수 42점)로, EU 평균(64점)에 크게 못 미친다. 최근 티라나 시장(총리의 측근)이 공공 계약 부패 혐의로 예심 구금 중일 만큼, 시스템 개선 욕구가 높다.
EU 진입 전략과 상징성
디엘라 임명은 알바니아의 2030년 유럽연합 가입 목표와 연결된다. 라마 총리가 5월 총선에서 4연속 집권에 성공하며 83석을 확보한 배경에도, EU가 요구하는 '투명성·행정혁신' 과제가 핵심으로 작용한다. 알바니아는 수년간 EU의 '법치국가 보고서'에서 조달·입찰 분야 부패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번 AI 장관 실험은 미래엔 AI가 수상직까지도 대신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라마 총리의 개혁 구상과 연결된다.
AI 장관의 한계와 우려
현재로선 디엘라의 기술적 세부 기능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민주적 통제, 오류 발생 시 책임 소재, 인간 권한과 AI 권한의 경계 설정이 과제로 남는다. 야당과 일부 사회단체는 "알고리즘도 인간이 설계한 만큼, 데이터와 시스템 편향에 의한 오류 가능성"과 "실제 감시와 감독 없이 AI에 권한을 위임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계한다.
디엘라 자신은 의회 연설에서 "나는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며, "헌법에 대한 진짜 위험은 결코 기계가 아니라 권력을 쥔 자들의 비인간적 결정임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