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아파트 전세 품귀와 전세의 월세화 흐름 속에서 ‘임차인 면접제’가 한국 임대차 시장의 신(新)풍속도로 부상하고 있다.
전세사기·역전세 사태 이후 임대인에 대한 정보공개가 제도화된 데 이어, 이번에는 임대인이 임차인의 신용·범죄 이력과 ‘생활 태도’까지 검증하겠다는 역(逆)요구가 맞붙으면서 전월세 계약을 둘러싼 힘의 균형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국회로 올라간 ‘임차인 면접제’…서류–면접–6개월 인턴까지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11월 12일 ‘악성 임차인으로 인한 피해 방지를 위한 임차인 면접제 도입’ 청원이 올라와 동의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청원은 요건 심사 통과 뒤 공개 하루 만에 100명의 사전 동의를 채웠고, 이후 동의자가 1000명을 넘기며 임대인 불만과 불안 심리가 적지 않음을 보여줬다. 국회법상 30일 안에 5만명 이상 동의를 확보하면 소관 상임위원회가 150일 이내에 공식 심사에 착수해야 한다.
청원인이 요구하는 ‘임차인 면접제’는 사실상 채용 절차에 준하는 3단계를 상정한다. 1차 서류전형에서는 ▲신용정보조회서(대출 연체 여부) ▲범죄기록회보서 ▲소득금액증명원(월세 납부 능력) ▲세금완납증명서(국세·지방세 체납 여부) ▲가족관계증명서(실제 거주 가족 확인) 등을 세입자에게 의무 제출하게 하고, 이후 2차 대면 면접, 3차 ‘6개월 인턴십(시범임차)’까지 거쳐 최종 입주자를 선발하자는 구상이다.
“전세 매물 20% 가까이 증발”…임대인 우위와 3+3+3법이 불안 키웠다
임차인 검증 요구의 배경에는 전세 품귀가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2025년 1월 7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1025건으로 1년 전 3만4900건에서 3875건(약 11%) 감소했다. 11월 중순에는 서울 전세 매물이 2만6335가구로 집계돼 전년 동기 3만2522가구보다 약 19% 줄어드는 등, ‘전세 씨가 말랐다’는 호소가 통계로 확인되는 수준이다.
수도권 전체로 보면 2025년 4월 기준 아파트 전세 물건은 1년 전보다 1만6252건 줄어든 6만380건에 그쳤고, 2025~2027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31만5852가구로 직전 3년(55만1170가구)의 57.3%에 그칠 전망이다. 공급 부족과 임대차 2법 이후 낮아진 전세 회전율,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한 ‘갭투자’ 위축이 맞물리며 전세 매물 잠김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현행 2+2년을 3+3+3년, 최대 9년으로 늘리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발의가 더해지면서 임대인의 ‘장기 묶임’ 불안은 커졌다. 한 다주택자는 “한 번 세를 주면 최대 9년까지 같은 세입자와 가야 할 수 있는데, 집 관리와 분쟁 가능성을 생각하면 세입자의 ‘됨됨이’를 확인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건국대 유선종 교수는 “전월세 물량의 80%가량을 민간 다주택자가 공급하는 상황에서 이들만 지속적으로 규제하면 결국 세입자도 선택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커뮤니티에 떠도는 ‘임차인 스펙 리스트’…“변호사 세입자는 사양”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최근 ‘임차인 면접 서류’ 양식이 유행처럼 확산 중이다. 일부 집주인과 중개업소는 세입자에게 ▲급여 명세서 및 회사 소개 PT ▲국세·지방세 완납 증명서 ▲나이스 신용점수(900점 미만 불가) ▲범죄사실·성범죄 경력 회보서 ▲전월세 납부 계획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사실상 금융·신상 패키지를 요구하고 있다.
강남·강동 등 인기 지역에서는 ‘실제 면접’도 등장했다. 매매가 대비 전셋값이 저렴하고 올 리모델링까지 된 ‘완벽한 전셋집’에 지원한 한 세입자는 “어린 자녀 없는 가구, 벽 못질·스티커 금지, 반려동물 금지에 더해, 면접 시 동거 가족 전원이 참석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받았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물건이 워낙 부족하고 계약 후 4년 이상 연장이 일반화되다 보니, 계약 전까지는 임대인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 세입자는 안 받는다’는 말도 나온다. 강남권 중개업소들은 “분쟁 소지가 발생하면 곧바로 소송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조인을 임차인 후보 단계에서 걸러 달라는 임대인이 적지 않다고 전한다. 임대차 분쟁 조정·소송이 늘어나는 환경에서 임대인들이 법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회피하려는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전세 때는 임대인 검증, 월세 시대엔 세입자 검증”…힘의 추는 양방 심사로
불과 2~3년 전만 해도 ‘검증의 대상’은 주로 집주인이었다. 2023년 전세사기와 역전세 사태가 터지면서 세입자들은 보증금 반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임대인의 재산 상태와 체납 여부, 대출 현황 등을 요구했고, 일부는 국세 완납 증명서와 재직 증명서까지 집주인에게 요청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정부와 지자체도 이에 호응해 임대인 정보 공개 범위를 넓혀왔다. 국토교통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를 활용해 임차인이 계약 전 ▲임대인의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 이력 ▲보증 제한 여부 ▲최근 3년간 대위변제 이력 등을 조회할 수 있는 ‘임대인 정보조회 제도’를 시행 중이다. 서울시는 전세사기 위험 분석 보고서를 통해 임대인의 신용도, 보유 주택 수, 주소 변경 빈도 등 위험 지표를 세입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특유의 전세 구조가 바뀌면서 검증의 방향도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임차인이 큰 전세보증금을 맡기고 집을 사용하는 대신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형태라 임대인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컸고, 임차인에 대한 별도 심사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세의 월세화로 보증금 비중이 낮아지고 월세·반전세 비중이 늘수록, 임대인은 “장기간 꾸준히 월세를 납부할 수 있는지”를 더 민감하게 따지게 되고, 이에 따라 임차인 신용·소득·생활 태도 검증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구조가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유럽·일본은 이미 ‘임차인 스크리닝’ 일상화…시장까지 생겼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임대인·임차인의 ‘쌍방 심사’가 일상화돼 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임대차 계약에서 세입자가 신용점수(크레딧 스코어), 고용·소득 증명, 범죄기록, 이전 집주인 추천서 등 패키지 서류를 제출하는 ‘테넌시 스크리닝(tenant screening)’이 보편화되어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PBI는 전 세계 테넌트 스크리닝 서비스 시장 규모가 2023년 약 32억7800만달러에서 2030년 53억6900만달러로 연평균 7.3%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북미가 가장 발달된 지역으로 평가된다.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보증인 지정이 보편화되어 있고, 세입자는 보증인의 1년 치 소득·세금 납부 내역, 본인의 고용계약서, 이전 주택의 월세 납부 증빙을 세트로 제출해야 경쟁에서 출발선에 설 수 있다. 독일·스페인 등에서도 상세한 개인·재정 정보와 과거 임대차 이력을 담은 서류를 통과해야 비로소 집주인과 면접 단계로 넘어가는 구조가 일반화돼 있다는 것이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일본의 경우 보증인 제도와 함께 ‘보증회사 심사’가 표준 절차로, 세입자는 재직증명서와 소득 증빙을 제출해 보증회사 심사를 통과해야 계약이 가능하다. 이런 각국의 제도화된 검증 관행은 글로벌 테넌트 스크리닝 서비스 시장 성장의 배경이기도 하다.
인권·차별 논란과 법적 한계…“법제화보다 시장 자율 확대” 전망 우세
국내 전문가들은 임차인 면접제 청원이 상징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크지만, 그대로 입법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임차인에게 전과·신용·가족관계 등 민감정보 전면 공개를 강제할 경우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평등권 침해 소지와 더불어, 빈곤층·청년·한부모·다문화 가구 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임대차 계약 구조가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는 추세 속에서 ‘임차인 검증’ 자체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도 나온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 비중이 늘수록 임대인은 월세 체납·분쟁을 피하기 위해 세입자의 신용도와 소득을 더 엄격히 보게 될 것”이라며 “법제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고액 월세를 중심으로 시장 자율에 의한 임차인 검증 절차가 점차 일반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한국 임대차 시장은 ‘임대인만 까발리는 시대’에서 ‘임대인·임차인 모두 검증받는 시대’로 옮겨가는 초입에 서 있다.
다만 그 전환 과정에서 정보 비대칭 해소와 사기 방지라는 명분이 차별과 배제라는 새로운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오지 않도록, 개인정보 보호·차별금지 원칙을 전제로 한 정교한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