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중국 AI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으로 하루밤 새 빅테크 기업들의 시가총액에서 약 1조 달러(약 1400조원)가 증발했지만 월가에서는 인공지능(AI) 거품론을 둘러싼 우려가 지나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이번의 거대 낙폭이 저가매수의 좋은 기회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전장 대비 17% 가까이 폭락하며 시가총액에서 5890억 달러가 사라졌다. 이는 미국 증시 역사상 단일 종목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손실액이다. 게다가 브로드컴 17%, TSMC 13%,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11% 이상 폭락하며 AI 거품론, 미국 빅테크주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다만 이번 빅테크 폭락, AI관련주들의 투매 사태는 지나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딥시크의 많은 주장에 대한 진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더러 美 AI 거물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진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팽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투매가 과도하다. 딥시크의 주장에 대한 많은 부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특히 딥시크가 제재로부터 영향받으면서도 어떤 종류의 칩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월가 베테랑으로 알려진 낸시 텡글러 라퍼 텡글러 인베스트먼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여전히 막대한 자금력과 인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력이 단기간에 뒤집히진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딥시크에 대응하기 위해 메타 플랫폼즈가 이미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했다는 보도를 언급하며 "딥시크의 주장이 사실인지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미국 기업들이 얼마나 빨리 적응하는지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중국 AI도 엔비디아의 칩으로 구축된 생태계에서 탄생한 만큼 지금이 저가 매수 기회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대표적인 증시 강세론자이자 시장조사업체 펀드스트랫의 이사인 톰 리는 경제 전문 매체 CNBC의 프로그램 ‘클로징벨’에 출연해 "엔비디아가 이날 2020년 3월 이후 하루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으나 투매가 과도한 반응"이라면서 "이는 되레 투자자들에게 좋은 매수 기회"라고 강조했다. 과거에 이런 대규모 하락은 장기 투자자들에게 거대한 기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조슈아 부칼터 TD 코웬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이번 빅테크 폭락 사태의 규모를 감안했을 때 지나친 면이 있었다"면서 "어떻게 보면 그동안 AI 주식에 진입하고 싶었던 투자자들에게는 훌륭한 저가 매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딥시크 모멘트는 시장이 걱정하는 만큼 부정적이지 않다"면서 "엔비디아는 여전히 AI 칩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최근의 주가 하락세로 장기적인 성장 스토리가 훼손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도 "딥시크 같은 저렴한 모델은 AI 생태계와 시장을 전반적으로 확장시키고 기술 채택 속도도 가속화 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AI의 효율성과 접근성이 강해질수록 일상 생활에서 AI 사용량이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AI 시장 전반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같은 경쟁력 있는 기업의 등장으로 AI업계가 거품이 빠지면서 기술고도화로 상향평준화될 것이란 의견이 대두되는 분위기다.
게다가 AI기업들이 훈련에 사용되며 투자한 막대한 비용이 알려지면서 엔비디아, 브로드컴, 마블 테크놀로지 같은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소식이었다. AI 칩과 서비스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로 이들 기업의 시장가치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오픈AI가 2023년 말 출시된 GPT4 모델의 훈련 비용은 1억달러를 초과했으며, 오픈AI 대항마 앤스로픽의 다리오 애머데이 CEO는 지난해 일부 모델 훈련 비용이 10억달러에 육박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TD코웬 애널리스트 조슈아 부칼터는 분석 노트에서 이른바 ‘제본스 역설’에 따라 엔비디아 반도체 수요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본스 역설(Jevon’s Paradox)은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가 1865년에 제시한 이론이다. 어떤 자원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이 자원의 사용이 줄어드는 대신 외려 효율성 높은 이 자원 사용이 증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미국증시에 투자중인 한국의 동학개미(한국 주식 개인 투자자)도 이번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마침 설연휴 휴장으로 한국증시는 열리지 않지만, 31일 한국증시가 개장할 경우 이번 이슈의 영향권에 들어갈 것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엔비디아의 독주체제 분위기에서 대체제인 중국 딥시크의 등장으로 AI 생태계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넓어질 수 있어 한국 반도체 업계의 시장확대에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고성능 AI 반도체 칩 열풍에서 소외됐던 삼성전자에게는 오히려 호재라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와 기술 격차를 줄일 시간을 벌었을뿐더러, 엔비디아 H800과 같은 저성능 칩에 공급되는 HBM3에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민감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단기적으로 가격 변동폭이 커질 수는 있겠지만, 결국 진입 장벽이 높았던 AI 시장에 저비용 구조의 AI 모델이 확대되면 AI 생태계에도 새로운 물결이 몰아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첨단산업에 대한 대중국 규제 강화조치가 국내 반도체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봐야 할 포인트다.
이번 사건도 빅테크업계 역시 영원한 강자, 영원한 우군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앞선 기술과 탁월한 실력을 가진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