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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칼럼] “지구는 25억 인구만 감당 가능”…세계 83억명 ‘생태 초과’로 경고등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지구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지탱할 수 있는 인구는 약 25억명 수준에 불과하며, 현재 83억명의 세계 인구는 이미 지구의 생태적 수용 한계를 크게 넘어서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3워 30일(현지시간)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된 연구와 Phys.org, co2news, news.flinders, whp-journals, The Vaultz News, sflorg.com, Global Issues의 보도에 따르면, 플린더스 대학교 코리 브래드쇼(Corey J.A. Bradshaw)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200년 넘는 전 세계 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뒤, 인간이 이제 ‘생물학적 전환점’을 넘어서 ‘생태 초과(overshoot)’ 상태에 진입했다고 결론지었다. 25억명 견적, 어떤 기준으로 나왔나 이번 연구는 1인당 소비량뿐 아니라 총 인구 규모가 온난화, 생태발자국, 탄소 배출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모형으로 추정한 결과, 지구의 생물생산능력 범위 안에서 ‘안정적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수용력이 약 25억명 수준이라고 제시했다. 이는 1950년대 중반 수준의 인구(약 25억명)에 가깝게 설정되며, 현재 83억명과 비교하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연구팀은 화석연료 의존과 대규모 자원 개발이 과거에는 인구 성장과 산업화를 뒷받침했지만, 이로 인해 지구의 한계가 가려졌고 결과적으로 ‘생태적 부채’가 쌓여 왔다고 분석했다. 중국 신화망(신화통신)이 소개한 요약에 따르면, 25억명 기준은 “모든 사람이 생태적 한계 내에서 편안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경우”를 가정한 최대 지속 가능 인구 규모로 제시된다. 1950년대 이후 ‘부정적 인구학적 국면’ 브래드쇼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19세기말부터 1950년대까지는 인구 증가가 더 많은 혁신과 에너지 사용,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양의 피드백’ 구조였지만, 1960년대 초 이후부터는 인구는 계속 늘어나도 전 세계 성장률이 둔화하는 ‘부정적 인구학적 국면(negative demographic phase)’이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이 국면에서 인구 증가가 더 빠른 성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그 대신 생태계 압력이 가속화되는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70년대까지 세계 인구가 117억~124억명 수준까지 정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25억명과 비교해 4~5배 수준의 격차여서, 이를 메워 온 것은 지나치게 빠른 천연자원 채굴과 화석연료 활용이라는 지적이다. 기후위기·생물다양성·불평등 악화 경고 연구는 인구 규모와 소비 패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후변화 속도, 생태발자국, 탄소 배출 증가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생물다양성 감소, 토지·수자원 고갈, 식량 안보 위협, 그리고 자원 부족과 기후 리스크에 따른 국가 간·계층 간 불평등 심화가 생태 초과의 직접적 결과로 거론된다. 영국·미국·호주 등 여러 과학·환경 매체가 인용한 요약에 따르면,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급격한 붕괴(sudden collapse)를 예측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 생명 유지 시스템(생명지지계)이 이미 스트레스 상태에 진입했다”는 현실적 경고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식량·물·에너지·토지 이용 시스템 전반에 걸친 신속한 전환이 없으면, 수십 년 내 수십억명이 기후·식량·물 불안정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추정과의 비교, ‘정치적 논쟁’ 이번 연구가 제시한 25억명 수준은 기존에도 여러 학자들이 제시했던 지속 가능 인구 추정 범위(대략 20억~40억명 구간) 안에 들어간다는 점이 주목된다. 다만 환경 전문 매체들은 이 수치가 단순한 ‘인구 억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믹스 전환, 농업·식량 시스템 혁신, 도시·토지 이용 최적화, 소비 패턴 변화 등 ‘구조적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석한다. 브래드쇼 교수는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각국이 협력해 에너지·토지·식량 시스템을 신속히 전환한다면 아직 의미 있는 변화는 가능하다”고 말하며, 경고와 함께 완전한 비관론을 피하고 정책 전환의 여지를 남긴다. 결국 이번 연구를 인용하며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메시지는, “지구가 25억명 수준의 인구만을 지속 가능하게 감당할 수 있다는 수학적·생태학적 신호가 이미 여기에 있다”는 점이다. 이제 정책·산업·개인 차원에서 얼마나 빨리 이 ‘생태 초과’를 축소하려는 선택을 할 것인가가, 향후 세기의 복합위기와 인류 삶의 안정성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전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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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인사이트] 뭔가 사유하고 싶을 땐 독립영화가 제격…고 김기덕 감독 <실제상황>을 보고

‘넷플의 법칙’. 머피의 법칙처럼, 이제는 이것도 하나의 법칙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수십, 아니 수백 편의 콘텐츠가 넘쳐나지만 막상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다 보면 건질 만한 작품 하나 찾기 어렵다. 심지어 신작마저 이미 본 작품일 때가 있다. 선택지는 넘치는데, 선택할 것은 없는 아이러니. 나는 그 상황을 ‘넷플의 법칙’이라 부른다. 이럴 때는 미련없이 ‘디즈니플러스’나 ‘쿠팡플레이’로 옮긴다. 그래도 없다면 ‘티빙’까지. 플랫폼을 옮겨 다니는 이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소비 패턴이 된 시대인 듯 하다. 주말이었다. 나른하게 흘려보내고 싶었지만 현실은 평일처럼 분주했다.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안에서는 알 수 없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사실 그 이유를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있지만, 애써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 정확힌 마인드 콘트롤 상태) 그때 티빙에서 이 영화를 만났다. <실제상황>. 이전에 언급한 적 있지만, 필자는 작품 그 자체로 놓고 볼 때 홍상수와 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정형화되지 않은 흐름, 예측을 비껴가는 장면 구성,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흔드는 연출. 그 불균질

[콘텐츠인사이트] 쿠플서 우연히 건진 독립영화…홍상수 감독 <수유천>을 보고

연달아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마주한 날이다. 말 그대로 ‘땡 잡은 날’이다. 키득거리며,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심야 극장을 찾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나도 쉰을 바라본다. 넷플릭스가 지겨우면 디즈니플러스를 켰고, 그것마저 식상하면 쿠팡플레이에 접속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 플랫폼에 독립영화가 많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솔직히 몰랐다. ㅜㅜ) 그의 작품을 거의 다 봤다고 자부했는데, 오늘따라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바로 ‘술, 담배, 음식’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일상의 결을 직조해왔다. 초창기 작품들은 작가적 색채가 강하면서도 일정한 흥행성을 동반한 상업영화의 성격을 지녔다고 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짜 ‘독립’을 택한 듯한 행보로 이어졌고, 지금은 완연한 독립영화의 길을 걷고 있다. 여전히 팬이지만, 초창기 특유의 농도 짙은 ‘맛’이 조금은 옅어진 듯해 아쉬움도 커진다. 그렇게 다시 만난 작품이 바로 <수유천>이다. (*필모그래피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제목이 있었던가 싶다.) 늘 그렇듯이 특별한 사건은 없다. 권해효가 등장하고, 김민희도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콘텐츠인사이트] 홍상수 감독 필모의 보고가 여기였네…<탑>을 보고

영화 외적인 부분을 떠나, 순수하게 작품 자체로만 놓고 볼 때 유독 좋아했던, 아니 강렬하게 애정했던 두 감독이 있다. 홍상수와 김기덕.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마니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저 작품관과 연출 방식,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까지도 즐겼을 뿐이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 개봉관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놓치고 있었다. (*故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은 가끔 다시 보곤 한다.)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 전, 큰아이 학원 라이딩을 앞둔 시간보다도 일찍 눈이 떠졌다. 그 틈을 타 간만에 넷플릭스가 아닌 쿠팡플레이를 뒤적였다. 고요한 일요일 새벽은 QT를 하기에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콘텐츠 몰입의 시간이기도 하다. 웬만한 작품은 이미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홍 감독의 비교적 최근작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묘한 충만함을 안은 채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시절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다만 ‘역시 홍상수지~’라고 단정하기엔 망설여졌다. 특유의 현실을 비트는 위트와 대사에서 터져 나오는 실소는 다소 옅었다. 대신 시나리오인지 독백인지 경계가 모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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