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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내궁내정] “코끼리 뼈 없는 상상은 몽상일 뿐"… AI 시대 新인재 조건 ‘견골상상’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상상(想象)은 언제부터인가 “아무 근거 없이 떠올리는 자유로운 공상”과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다. 하지만 한자 상상(想象)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그 본래 의미는 정반대에 가깝다. ‘견골상상(見骨想象)’이라는 고사에서 보듯, 상상이란 허공이 아니라 코끼리의 뼈라는 단단한 팩트 위에서만 비로소 작동하는 인식 능력이었다.

 

코끼리 뼈를 보고 코끼리를 그리다…‘견골상상’의 원형


중국 전국시대 법가 사상가 한비가 쓴 『한비자』에는 “견골상상(見骨想象)”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뼈를 보고 코끼리의 형상을 그린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사람들은 실제로 살아 있는 코끼리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인도에서 가져온 코끼리의 뼈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 동물의 실체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상상(想象)’이라는 낱말은 원래 생각할 想, 코끼리 象을 썼다. 직역하면 “코끼리를 생각하다”이고, 의역하면 “보이지 않는 전체를, 눈앞의 단서를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행위”에 가깝다. 한국의 여러 교양서와 칼럼들도 이 일화를 “뼈만 보고 살아 있는 코끼리의 모습을 그려본 것, 그게 상상의 기원”이라고 소개하며,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공상(空想)과 구분되는 현실 기반 상상력의 비유로 차용해 왔다.

 

이 고사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어떤 이들은 “뼈라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전체를 추론하는 인지 능력”에 방점을 찍고, 또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한 것을 믿지 않던 사람들에게, 뼈라는 증거가 갖는 설득력”을 강조한다. 공통된 메시지는 명확하다. 상상은 허공에 떠 있지 않으며, 언제나 관찰 가능한 단서와 경험의 조각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상상과 몽상 사이…철학적·문화적 의미


상상(想象)과 몽상(夢想)의 차이는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오래된 철학적 주제였다. 동양 고전에서 상상은 경험과 관찰에 기반한 사고의 확장으로, 몽상은 현실 가능성이 빈약한 허황된 생각으로 구분되는 경향이 강했다. ‘코끼리 뼈’가 있느냐 없느냐가, 상상과 몽상을 가르는 문화적 은유가 된 셈이다.

 

현대 인식론에서도 상상력은 “지성에 종속된 부차적 능력”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고 있다. 국내 번역서와 연구서들은 상상력이 지성에 대등한 인식 능력이며, 증거와 논리 위에 서 있을 때 현실 인식과 미래 예측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정신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상상은 사실의 적(敵)이 아니라, 오히려 사실을 재배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힘이다.

 

문화적으로도 상상력은 단순한 개인 능력을 넘어 사회의 집단적 미래 설계 능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교육·인문학 분야 논의에서는 “교육의 상상”을 통해 학습 체계 자체를 재디자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은 감성적 공상이나 문학적 비유만이 아니라, 제도·정책·기술 구조를 장기 관점에서 다시 그려보는 시스템적 상상력이다.

 

 

AI가 루틴을 가져간 자리, 상상이 들어왔다


AI의 급속한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 고유의 상상력을 다시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디자인·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 인사들은 “AI가 반복적·논리적 작업을 맡으면서, 인간은 잊고 있던 상상력의 근육을 다시 써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진단한다.

 

구글 디자인 부문 리더들도 인터뷰에서 “우리는 상상력이 풍부한 존재이며, 이제 AI와 공동 창작을 통해 인간의 창의성을 아직 완전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까지 확장할 기회를 갖게 됐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글로벌 경영·인사 관련 보고서들도 비슷한 흐름을 포착한다. 글로벌 설문에서는 근로자의 65%가 “호기심이 새로운 아이디어 탐색과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동시에 응답자의 약 60%는 “조직의 경직된 구조와 일상 업무가 호기심 발휘를 제약한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이 통계는 AI와 자동화가 일상 업무를 대체해도, 조직 구조가 상상력과 호기심을 억누르면 기업의 혁신 경쟁력은 제자리에 머물 수 있다는 경고다.

 

또 다른 학술·교양 서적들은 “평균적인 규격과 일반성보다 개성과 독특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상상력이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음을 짚는다. 단순히 정답에 빨리 도달하는 능력이 아니라, 아직 질문조차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영역에서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규칙,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프리미엄이 붙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이디어 노동자’의 시대…데이터 위의 상상력이 新인재


AI와 디지털 도구의 등장으로, 과거에는 상상에 불과하던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과 서비스로 구현되는 속도도 빨라졌다. 코드 없이 앱을 만드는 노코드 툴, 텍스트 한 줄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생성형 AI, 소규모 팀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 인프라는 “상상-프로토타입-시장 테스트”의 시간과 비용을 급격히 줄였다. 이 지점에서 상상력은 더 이상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업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비즈니스 자원이 되고 있다.

 

국내외 HR 리포트들은 AI 시대 인재상에서 공통 키워드로 창의성,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 호기심을 꼽는다. 그 가운데서도 ‘근거 있는 상상력’은 특히 중요하다. 데이터·리서치·현장 경험이라는 ‘코끼리 뼈’를 충분히 쌓아 올린 뒤, 그 위에서 미래의 고객 행동, 산업 구조, 규제 환경, 문화 트렌드를 가설로 그려보는 능력이다. 상상력이 없다면 데이터는 과거의 기록에 머물고, 데이터가 없다면 상상력은 설득력을 잃는다.

 

최근 출간된 상상력 관련 인문서들은 “상상력은 다양한 교육적 개입과 학습 경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훈련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상상력이 타고난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를 수집하고, 타인의 경험을 경청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일상의 훈련과 깊이 연결된 능력임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좋은 상상력”은 좋은 취재, 좋은 관찰, 좋은 통계 읽기와 분리될 수 없다.

 

결국, AI 시대의 상상력은 “코끼리 뼈 없는 공상”이 아니라, "데이터라는 뼈와 인간의 감각·언어·윤리를 함께 엮어 새로운 형상"을 빚어내는 능력이다. 고대 중국에서 인도로 건너간 사람들이 그랬듯, 우리는 먼저 낯선 세계를 보고, 그 흔적을 가져와,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뼈를 맞춰 형상을 재구성해야 한다. 상상이란 그렇게, 언제나 팩트에서 출발해 미래를 그리는 행위였고, AI 시대에 그 가치가 더욱 극적으로 부활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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