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프랑스 동부 디종의 조제핀 베이커(Josephine Baker) 초등학교 학생들은 이번 주 운동장 옆에서 섬뜩한 광경을 목격했다. 원형 구덩이 바닥에 똑바로 앉은 채로 발견된 놀랍도록 잘 보존된 유골이었으며, 텅 빈 눈구멍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 아래에서 최근 5구의 갈리아인 좌장(坐葬) 매장지가 추가로 발굴되면서, 기원전 3~2세기 경 갈리아 사회의 장례 관습과 권력 구조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다시금 전 세계 고고학계의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 옆 공사구역에서 발견한 ‘서쪽을 향해 똑바로 앉은 유골’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확인된 75구의 좌장 매장지 중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디종 개발의 핵심 단서로 평가된다.
프랑스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INRAP)는 2025년 10~12월 디종 도심 부지에서 13구의 갈리아 좌장 매장을 최초로 보고한 바 있으며, 2026년 3월 초 새 학기 방학 기간 동안 같은 학교 부지에서 추가로 5구를 발굴했다.
이와 함께 1992년 학교 인근 100m 지점에서 이미 2구의 유사 매장이 확인된 것을 포함하면, 디종 시내 중심부의 약 1,000㎡ 규모 구역 안에 약 20구의 좌장 갈리아 무덤이 집중 분포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전 세계에서 보고된 좌장 갈리아 매장지는 약 75구 수준인 것으로 추정되므로, 디종만으로 전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각 매장은 지름 약 1m, 깊이 2m 내외의 원형 구덩이에 등이 동쪽 벽에 기대고 앉은 자세로 배치되며, 두 다리는 교차 또는 비대칭으로 접혀 있고, 손은 골반 앞쪽이나 무릎 위에 놓인 형태가 반복된다. 매장들은 대략 25m 길이의 직선 대열을 형성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어, 단순한 개인적 장례가 아니라 계획된 공간 배치와 사회적 의미가 개입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번 매장군의 연대는 유일하게 발견된 유물인 검은 돌 팔찌(armband)를 근거로 대략 기원전 300~200년경, 즉 갈리아 시대 후기로 추정된다. 일부 해외 매체는 이 시기를 기원전 450~25년 사이로 넓게 보기도 하지만, 디종 현지 INRAP 보고서는 좌장 매장을 갈리아 시대 중기~후기로, 즉 로마가 갈리아를 장악하기 이전 시기에 위치시키고 있다.
이 범위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역의 갈리아 부족(주로 에듀이 Eduens)이 정치·종교적 중심지를 유지하던 시기와도 부합해, 유적의 사회·종교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시간적 틀을 제공한다.
INRAP이 2025년 1월 발표한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 Dijon 발굴은 학교 재구조화를 위한 예방고고학 조사(크기 약 1,000㎡)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좌장 매장 외에도 갈로-로마 시대 어린이 무덤과 중세~근대까지 이어지는 연속적 인간 거주 흔적을 함께 확인했다. 이는 디종이 단순한 성채나 요새가 아니라, 장기간 지속된 정착지와 사회적 계층이 공존했던 복합적 거점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발굴된 유골 중 일부는 명확한 폭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INRAP은 한 구에서 “날카로운 물체에 의한 두개골 타격 흔적 두 군데”를 확인했고, 다른 여러 구에서 “치유되지 않은 폭력 흔적”이 관찰돼 고의적 살해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일부 해외 매체는 "이 매장양식이 살아서 묻힌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를 제기하며, "좌장 자세가 사후 암매장이나 제의적 희생, 혹은 범죄자 처형과 연관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INRAP 고고인류학자 안나마리아 라트론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선호하는 가설이 없다”고 밝히며, "좌장이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종교적 엘리트에게 부여된 특별 매장 양식이었는지를 아직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체 매장이 도심의 과거 종교·거주지 인근에 정렬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유물이 거의 없고 장신구가 전무한 점은 “공식적·의식적 성격이 강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INRAP 연구원 레지스 라보네는 AFP와 인터뷰에서 “이번 발견의 수와 질을 고려하면, 디종에는 상당한 규모의 갈리아 정착지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번 발굴 구역에서는 방어용 해자, 동물 매장 공간, 고대 도로 흔적 등 갈리아 시대 말기(기원전 1세기)의 사회 인프라가 함께 확인되면서, 디종이 단순한 농촌 정착지가 아니라 행정·종교·경제 기능이 겹친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향후 연구 계획으로는 개인별 유전학(DNA) 분석과 안정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지리적 기원, 이동 경로, 식습관, 대략적인 사망 연령을 추정하는 작업이 예정되어 있다. 이는 “좌장 매장자들이 모두 현지 엘리트인지, 외부에서 포로나 희생물로 끌려온 집단인지, 혹은 특정 종교·군사 집단에 한정된 관습이었는지를 가릴 수 있는 핵심 데이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좌장 갈리아 매장은 프랑스, 스위스, 영국 등 일부 유럽 지역에서 흩어져 보고되지만, 디종처럼 20구가 한 도시 중심부의 소규모 부지에 집중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는 디종이 갈리아 시대의 특정 종교·정치 커뮤니티가 형성한 “의식적 토지”이거나, 혹은 특정 사건(전쟁, 내부 갈등, 대규모 희생 제의)과 연관된 장소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중국어·영어·프랑스어권 주요 매체는 모두 “디종 좌장 갈리아 매장”을 “고대 유럽의 난제”로 규정하며, 서쪽을 향한 방향성, 동일한 자세, 그리고 폭력 흔적의 공존이 갈리아의 종교관, 처벌 제도, 사회 계층 구조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학제적·연구자 간 합의가 아직 부족한 만큼, 디종의 20구 좌장 매장은 앞으로도 수년간 고고학·인류학·고대사 연구의 핵심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