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영국과 핀란드가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진 레바논 기자 아말 할릴(42)의 사망을 공개 규탄하며 ‘언론 전쟁’이 국제법의 전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aljazeera, International Press Institute, BBC, DW News, newsweek에 따르면, 두 나라는 46개국이 참여하는 미디어 자유 연합(Media Freedom Coalition) 공동 의장 자격으로 성명을 내고 “레바논에서 언론인을 겨냥한 공격은 용납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 성명은 할릴이 4월 22일 레바논 남부 알티리(al‑Tiri)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지 사흘 만에 나왔다.
‘더블탭’과 7시간 방치…전형적 전쟁범죄 패턴 논란
사건의 전개 과정은 이른바 ‘더블탭(double‑tap) 공격’의 전형적 패턴을 그대로 보여준다. 할릴과 동료 사진기자 제이납 파라즈는 헤즈볼라 관련 시설로 지목된 지점 인근에서 이스라엘 드론이 민간 차량을 타격해 민간인 2명이 사망한 직후 현장 취재에 나섰다.
두 기자가 인근 주택으로 대피하자 곧바로 같은 위치에 두 번째 공습이 이어졌고, 이 공격으로 파라즈는 중상을 입고 할릴은 건물 잔해 속에 매몰됐다. 국제 언론단체와 레바논 당국은 이 ‘2차 타격’이 구조대와 언론인을 겨냥한 의도적 공습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더블탭(double‑tap) 공격은 같은 목표 지점을 시간차를 두고 두 번 이상 연속 타격하는 전술을 뜻한다. 군사·분쟁 맥락에서는 첫 번째 공격으로 사람들을 쓰러뜨린 뒤, 구조대·의료진·기자 등이 몰려드는 시점에 다시 같은 곳을 공격해 인명 피해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원래 ‘더블탭’은 권총·소총 사격술에서 같은 표적에 매우 짧은 간격으로 두 발을 연속 사격하는 기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개념이 확장돼, 폭격·미사일·드론 공습에서 첫 타격 후 몇 분 뒤 같은 지점을 다시 치는 공격을 ‘더블탭 스트라이크(double‑tap strike)’로 부르게 됐다.
레바논 보건 당국과 국제언론인협회(IPI), 국경없는기자회(CPJ) 등의 보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구조를 시도하던 레바논 적십자 구급차에 실탄 사격과 섬광·음향 수류탄을 가해 최소 6~7시간 동안 구조팀의 접근을 막았다. IPI는 성명에서 “기자가 대피한 주택을 겨냥한 ‘더블탭’ 공습과 구급차에 대한 사격은 국제인도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행위로, 전쟁범죄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CPJ 역시 “구조 방해가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즉각적이고 독립적인 국제조사를 요구했다. 할릴이 구조될 때까지 7시간 넘게 잔해 속에 방치됐고, 최종적으로 시신으로 수습됐다는 사실은 공습의 의도성과 책임소재를 둘러싼 법적 논쟁을 더욱 키우고 있다.
모사드 살해 협박 이력…‘우발’ 아닌 ‘표적 제거’ 의혹
이번 사건이 단순한 오폭이나 ‘부수적 피해’로 보기 어렵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CPJ와 유럽·중동 언론단체들의 기록에 따르면, 할릴은 2006년부터 레바논 친헤즈볼라 성향 일간지 ‘알 아크바르(Al‑Akhbar)’ 남부 담당 특파원으로 활동해온 베테랑 기자로, 이스라엘‑헤즈볼라 분쟁과 접경지 민간인 피해를 집중 취재해왔다. 특히 2024년 9월, 이스라엘 군 혹은 정보기관으로 추정되는 발신자로부터 “남부를 떠나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는 취지의 살해 협박을 받은 사실이 CPJ에 의해 공개된 바 있다.
CPJ는 이번에도 “과거의 직접적 살해 위협과 이번 ‘더블탭’ 양상을 함께 보면, 할릴과 동료 기자들이 우발적 폭격이 아니라 사전 인지된 표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제언론인협회(IPI)는 이 공습을 “명백한 표적 공격(targeted attack)”이라고 규정하며 이스라엘의 ‘언론인 제거 작전’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이스라엘군(IDF)은 “언론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하지 않았고, 의료진의 접근을 차단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언론인들이 헤즈볼라 군사시설 인근의 방어선을 넘었다”고 해명했지만, 구체적 좌표, 영상, 교전 규칙(ROE) 등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두 해 연속 ‘언론인 최대 살해국’…숫자가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
아말 할릴의 죽음은 통계로도 드러나는 폭력의 연장선이다. AP와 알자지라 보도, CPJ 및 CNN 자료를 종합하면, 할릴은 2026년 3월 이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으로 사망한 최소 9번째 기자로 집계된다. CNN은 할릴을 “3월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레바논에서 목숨을 잃은 네 번째 언론인”이라고 보도하며, 중복·분류 기준에 따라 통계 차이가 있음을 전제했다.
다만 CPJ 2월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과 2025년 전 세계에서 살해된 언론인의 약 3분의 2가 이스라엘 군사행동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돼, 이스라엘은 2년 연속 언론인 최다 살해국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지역적으로 보면 CPJ 집계 기준 가자지구·요르단강·레바논·시리아 접경 일대에서만 수십 명의 언론인이 전투 또는 공습 중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고, 이 중 상당수가 분명한 ‘PRESS’ 표식을 부착한 상태였다는 증언이 반복되고 있다.
IPI는 “이스라엘이 지난 2년 동안 기자를 죽인 사례를 사실상 한 건도 국내에서 기소하거나 유죄 판결로 이끌지 못했다”며 “구조적 면책(structural impunity)이 추가 범죄를 부르는 악순환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개별 사건을 넘어서 ‘언론을 전쟁 도구로 취급하는 관행’이 체계화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로 이어진다.
휴전 중 벌어진 피격…국제법·외교전의 새 뇌관
사건이 더욱 논쟁적인 이유는, 할릴이 피살될 당시 이스라엘과 레바논(헤즈볼라) 사이에 10일간의 제한적 휴전이 발효 중이었기 때문이다. AP와 프랑스24 등은 이 휴전이 이후 워싱턴 협의를 거쳐 3주 추가 연장됐다고 전하면서도, “언론인 공격은 휴전 합의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휴전 중 언론인을 향한 치명적 공습이 이뤄졌다는 점은, 단순 교전 규칙 위반을 넘어 제네바협약과 국제인도법에서 규정한 ‘민간인·언론인 특별 보호 의무’를 중대하게 침해한 사안으로 해석될 여지를 넓힌다.
나와프 살람 레바논 총리는 “기자를 의도적으로 표적 삼고, 구조대 접근을 막고, 구조대 도착 후 같은 지점을 다시 타격하는 행위는 국제법상 명백한 전쟁범죄”라고 규정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와 유엔 기구를 통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또 “남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언론인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더 이상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하나의 체계적 패턴”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자위권 행사’와 ‘테러 인프라 제거’를 내세우며 군사작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어, 향후 ICC 관할권 인정 여부, 안보리 차원의 조사 메커니즘 가동 등이 중동 정세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핀란드의 이례적 결단…‘언론 자유 연합’의 시험대
영국과 핀란드의 공동 성명은 단순 규탄을 넘어, 서방 내부의 이스라엘 정책 균열과 언론 자유를 둘러싼 새로운 기준 싸움의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안보 논리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핀란드는 최근 나토 가입 이후 대러 억지와 안보 연대를 중시해온 국가다. 그런 두 나라가 미디어 자유 연합 공동 의장국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공개 비판하고, 언론인 공격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규정했다는 점은 상징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 성명이 경제 제재, 무기 수출 통제, 유엔 표결 연합 등 실질적 압박 수단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CPJ와 IPI 등은 “구체적인 수사·제재 메커니즘 없이 구두 비난에 그친다면 이스라엘의 면책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국 아말 할릴의 이름이 ‘또 하나의 숫자’로 지워질지, 아니면 전쟁 속 언론인을 보호하는 국제 규범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지는 영국·핀란드 등 서방 국가들의 후속 행동과 유엔·ICC의 제도적 대응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