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이란·이스라엘·미국이 얽힌 중동 분쟁이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쥐면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자, 아시아 각국이 출근과 등교 자체를 줄이는 초유의 석유 절약 모드에 돌입했다.
nytimes, cnbctv18, greencentralbanking, moneycontrol, vnexpress, asiaone에 따르면,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고 비축 여력이 제한적인 국가일수록 ‘재택근무+휴교+근무일 단축’이라는 고강도 수요 억제 카드가 동시에 가동되는 양상이다.
태국·필리핀, ‘출근 없는 관가’로 연료 끊는다
태국 내각은 3월 10일 모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전면 재택근무를 즉시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국민을 직접 대면하는 민원·치안·의료 등 필수 서비스 인력만 예외로 남기고, 나머지 행정은 원격으로 돌리라는 게 총리실의 공식 지침이다. 동시에 중앙·지방 관공서의 냉방 온도는 섭씨 26도로 고정하고, 공무원 해외출장 전면 중단,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 권고 등 세부 절전 조치도 묶어 발표했다.
에너지 당국은 태국의 에너지 비축분이 약 95일 수준에 불과하다고 공개했다. 태국은 이미 라오스·미얀마를 제외한 주변국으로의 에너지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고 미국·호주·남아공으로부터 LNG를 추가 도입하는 등 ‘수입 다변화+내수 절약’ 투트랙에 나선 상태다. 중동발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광고조명 조기 소등이나 주유소 영업시간 제한 등 추가 강제조치까지 검토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필리핀은 더 노골적으로 ‘근무일 자체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3월 9일부터 행정부 산하 상당수 부처에 주 4일 근무제를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각 부처는 주당 총 근무시간은 유지하되, 사무실 오프라인 운영일을 줄여 출퇴근 연료와 사무실 전력 사용을 한꺼번에 줄이는 구조로 설계하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모든 정부 기관에 연료·전력 사용을 10~20% 감축하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연수·워크숍·팀빌딩 등 비필수 행사를 전면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되면 휘발유는 리터당 7.48페소, 디젤은 17.28페소, 등유는 32.35페소까지 급등할 수 있다”며, 국내 유가의 ‘더블디짓’ 인상을 공개 경고했다. 정부는 저소득층·운수업종을 겨냥한 연료보조금과 현금지원 패키지를 병행 준비 중이며, 의회에 석유제품 소비세 인하 권한 부여를 촉구하고 있다.
베트남 역시 산업무역부를 중심으로 ‘가능한 한 재택’을 공식 권고했다. 산업무역부는 기업들에게 교통·물류에 쓰이는 연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원들의 재택근무 비중을 높이고, 원격회의 확대, 통근 차량 공동이용 등을 주문했다. 동시에 특정 유종에 대해 수입관세를 낮추거나 철폐해 공급 불안을 상쇄하려는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교 중단’으로 연료·전력 동시 절감
남아시아에서는 학교와 대학을 묶어 세우는 방식으로 연료와 전력 수요를 동시에 덜어내는 ‘교육부 타깃’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파키스탄 최대 인구 지역인 펀자브주는 3월 10일부터 31일까지 주 내 모든 공립·사립 학교, 칼리지,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하되, 이미 공지된 각종 시험은 일정대로 치르도록 해 학사 차질을 최소화하겠다는 절충안이다.
연료 사정은 훨씬 더 절박하다. 파키스탄 언론과 당국 발표를 종합하면 정부가 보유한 연료 비축분은 약 28일치 수준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 차질과 주요 산유국 감산이 이어질 경우 한 달 안에 공급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휘발유·경유 가격을 약 20% 인상했으며, 일부 보도에서는 리터당 55루피 수준의 누적 인상 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전한다.
메리암 나와즈 펀자브 주총리는 각료들에게 지급되던 공식 연료 할당을 전면 중단하고, 모든 정부 차량의 휘발유·경유 수당을 즉시 50% 삭감하는 긴축 패키지를 발표했다. 장관·고위 공직자에게 붙는 의전 차량 행렬도 최소 1대로 줄이고, 야외 공식행사와 대형 문화 이벤트를 연기하는 등 상징적 소비 억제에 나섰다.
방글라데시는 ‘대학교 셧다운+연료 배급’이라는 더 직접적인 수단을 선택했다. 정부는 3월 9일부터 모든 국·공립 및 사립 대학의 운영을 중단하고, 이드 알피트르 연휴를 앞당겨 적용하기로 했다. 기숙사·강의동·연구실·냉방시설이 집중된 대학 캠퍼스는 국가 전력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정부는 “대학 조기 휴교가 전력수요와 교통체증을 동시에 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방글라데시는 3월 6일부터 연료 사재기가 발생하자 전국 주유소에 일일 판매상한제를 도입했다. 수입 의존도가 에너지 수요의 약 95%에 달하는 이 나라는 중동발 공급 차질 이후 가스 부족이 심화되면서 5개 국영 비료 공장 중 4곳이 생산을 중단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이는 향후 농업 생산성과 비료 가격, 더 나아가 식량 물가까지 연쇄 충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가 100달러 시대”에 드러난 아시아의 취약한 에너지 구조
이번 조치들의 공통된 배경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과 그에 따른 유가 급등이다. 전 세계 원유 공급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운항이 제한되고,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이 생산과 선적을 줄이면서 3월 9일 브렌트유 선물은 2022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일부 유럽 매체는 아시아 시장 개장 시점 기준으로 브렌트유가 111달러 선에 안착했다고 전하며 “2022년 이후 최고가이자 단기간 60% 급등”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 주요국은 한 손으로는 수요를 억제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격 충격을 완화하는 ‘투트랙 비상경제 운용’에 들어갔다.
한국 정부는 약 208일분으로 추산되는 국내 석유 비축을 바탕으로,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 유류 가격 상한제 도입을 검토하며 가격 급등을 일정 수준에서 차단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일본은 국가 비축유 관리기관에게 원유 방출을 위한 시나리오 작업을 지시하고, 가계·중소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유류보조금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중국은 정유사들에게 신규 석유제품 수출계약 체결을 중단하고 국내 공급에 우선 배정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인도네시아 등 일부 산유·산정유국은 연료 보조금 확대와 가격 통제를 결합해 내수 물가를 방어하는 한편, 재정 부담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은 “아시아 국가들이 가계·기업의 에너지 비용을 흡수하기 위해 가격상한제, 보조금, 배급, 전략비축유 활용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택·휴교’는 방어막이 아니라 시작…에너지 전환 압박 커진다
이번 사태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확산된 재택근무·온라인 수업이, 에너지 안보 위기 국면에서는 ‘연료 수요 관리 도구’로 재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재택·휴교령은 단기적인 석유 사용량 감축에는 효과적일 수 있어도, 중장기적인 에너지 가격·공급 리스크를 해결하는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동시에 제기된다.
기후·에너지 전문가들은 “아시아가 이번에도 LNG·석유에 더 의존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기려 하면, 다음 충격 때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며 재생에너지·전기화·효율투자 확대를 ‘진짜 헤지 수단’으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이란·카타르발 LNG·원유 공급이 동시에 흔들릴 때마다 아시아 전력요금과 산업용 가스 가격이 급등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태양광·풍력·저장장치와 열효율 개선이 구조적 해법이라는 주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