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말라리아 박멸의 판도를 바꿀 ‘모기를 죽이는 피’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널리 사용되는 항기생충제 이버멕틴(ivermectin)이 사람의 혈액을 모기를 죽이는 무기로 바꾸는 혁신적 효과를 입증했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25년 7월 23일자에 발표된 최신 임상시험 결과, 이버멕틴을 지역사회 전체에 투여하면 말라리아 신규 감염이 26%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Vax-Before-Travel, ISGlobal 등의 매체들이 보도했다.
케냐의 'BOHEMIA' 임상: 2만 명 대상, 26%의 기적
케냐 콸레(Kwale) 카운티에서 실시된 BOHEMIA(One Health Endectocide-based Malaria Intervention in Africa) 임상시험은 이버멕틴이 말라리아 예방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최초의 대규모 근거다.
2023년 우기, 84개 군집(총 2만명 이상)이 월 1회 이버멕틴(400 mcg/kg) 또는 알벤다졸(대조군)을 3개월간 투여받았다. 그 결과, 5~15세 어린이 기준 대조군 1292건 대비 이버멕틴 투여군 1048건으로 감염이 244건 감소하며 26%의 상대적 감염률 저감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약물 분포가 더 효과적이었던 지역과 군집 경계에서 멀리 떨어진 어린이들에서 효과가 더 두드러졌다. 부작용은 기존 친화적 기생충병 캠페인에서 보고된 수준인 경미하고 일시적인 증상만 재현됐을 뿐, 심각한 약물 유해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모기에겐 치명타, 사람에겐 혁신”…작동 메커니즘과 추가 혜택
이버멕틴은 원래 하천 실명증이나 사상충증 치료에 쓰이는 구충제지만, 복용한 사람을 모기가 물면 피를 통해 약물이 전달되어 며칠 내로 모기가 마비 후 사망한다. 이번 임상에선 말라리아 감염 저감 외에도 케냐 지역 주민이 “빈대가 크게 줄었다”고 증언했고, 모잠비크 현장에선 옴‧머릿니 감염도 감소하는 등 예상 밖의 긍정적 효과도 확인됐다.
이 같은 부수 효과는 지역사회에서 약물 집단복용에 참여하는 자발적 동기가 됐다. 과거 태평양 군도, 솔로몬제도, 남아프리카 등에서도 이버멕틴 군집 복용 시 옴과 머릿니가 70% 이상 급감한 예가 다수 보고되어 있다.
"돌파구 vs. 한계"…전문가, 국제기구의 반응 엇갈려
말라리아 감염 26% 감소라는 수치는 기존 살충제, 모기장(LLINs), 실내잔류분무(IRS) 등이 내성 증가‧행동 변화로 효과가 감소하는 단계에서 의미 있는 새로운 해결책으로 평가된다.
BOHEMIA 연구 책임자인 레지나 라비노비치(Regina Rabinovich)는 "특히 도구가 소진된 말라리아 풍토병 지역에선 큰 의미"라고 밝혔다.
그러나 “26% 감소라는 효과 규모가 실제 대규모 공중보건적으로 충분한지 의문”이라는 신중론도 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벡터통제 자문그룹은 이 연구를 공식 검토 후 “더 많은 후속 연구와 실증 자료가 필요하다”며 잠정적 추가 연구를 권고했다. 아직 WHO나 각국 보건당국이 공식 도입을 승인하거나 정책화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2023년 글로벌 말라리아 현황과 남은 과제
말라리아는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2억6300만명의 환자와 59만7000명의 사망자를 낸 ‘미해결’ 감염병이다. 기존 방역 방법이 지속적으로 한계에 봉착하는 상황에서, 이버멕틴과 같은 혁신신약의 공중보건 도입 여부가 앞으로 말라리아 종식과 인류 보건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ISGlobal 말라리아 박멸 이니셔티브 책임자는 “이버멕틴은 말라리아 대응의 새로운 프런티어"라며 "추가 연구와 정책적 숙의를 거쳐 ‘모기를 죽이는 피’가 실제 세계를 바꿀 무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