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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지구칼럼] ‘지구의 폐’ 이탄지, '탄소 금고’에서 ‘탄소 시한폭탄’?…이탄지 보호 위한 연구 과제 50가지 선정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국제 연구진이 전 세계 이탄지(泥炭地·peatland)를 지키기 위해 시급히 풀어야 할 연구 과제 50가지를 선정했다. 겉으로는 소박한 습지처럼 보이지만, 이탄지는 지구 육지의 약 3% 면적에 불과한 땅에 지구 토양 탄소의 최대 44%를 저장하고 있는 초대형 탄소저장고다.

 

연구진은 “전 세계 모든 숲을 합친 것보다 많은 탄소를 저장하는 이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이 지식 격차를 메우지 못하면, 인류는 기후 완충 장치 하나를 통째로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탄지(泥炭地·peatland)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습지처럼 보이지만, 기후위기 시대에는 ‘지구 최대의 탄소 금고’이자 동시에 ‘탄소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공간이다. 이탄지는 나뭇가지·잎·이끼 등 식물 잔해가 물에 잠기거나 물이 흥건한 상태에서 완전히 분해되지 못한 채 수천 년에 걸쳐 쌓이면서 형성된 토지다. 습지에 물이 고여 산소 공급이 제한되면 유기물 분해 속도가 극도로 느려지고, 이 유기물 층이 ‘이탄(peat)’으로 축적되면서 독특한 토양과 생태계를 만든다.

 

산림청은 이탄지를 “이탄이 집적되는 습지”로 정의하며, 물의 이동이 거의 없는 산성 습지는 bog, 광물질 토양과 물이 교환되는 중성·알칼리 습지는 fen 등으로 나눈다. 대표 식생은 스파그넘(Sphagnum) 이끼류로, 주변을 산성 환경으로 만들며 이탄 형성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탄지 3%가 토양 탄소 최대 44%를 쥐고 있다


국제 연구팀이 이번에 제시한 50개 우선 연구 과제는 학술지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실렸으며, 54개국 467명의 이탄지 전문가들이 참여해 전 지구 차원의 ‘연구 로드맵’을 도출했다. 핵심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이탄지가 기후 완화의 전략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장 기본적인 현황 통계조차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숫자로 보면 이탄지의 비대칭성은 극명하다. 전 세계 이탄지는 육지 면적의 약 3%를 차지하지만, 토양 탄소의 약 44%를 저장하는 것으로 국내외 연구기관은 추산한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건강한 이탄지는 일반 토양보다 탄소를 10배 이상 저장할 수 있어 ‘자연 탄소 포집 인프라’로 기능한다. 반대로 이탄지가 말라가고, 배수와 화전, 화재가 반복되면 수천 년 동안 쌓인 탄소가 한 번에 대기 중으로 풀려나 ‘탄소 시한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이탄지 개간과 황폐화로 매년 약 13억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인도네시아만 놓고 봐도 이탄지 면적이 약 2,000만 헥타르에 이르며, 이 지역에 저장된 탄소량은 46억톤 탄소로 전 세계 이탄지 저장량의 8~14%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한 국가의 특정 토양 유형이 지구 탄소 예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수준의 ‘시스템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재습지화만으론 부족”…50개 우선 과제가 던진 질문

 

이번 국제 연구에서 제시된 50개 우선 과제는 크게 네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우리가 어디에 무엇을 갖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수준의 기본 데이터 공백이다. 연구진은 특히 열대·고위도·접근이 어려운 지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이탄지의 실제 분포와 깊이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재도 위성·항공 원격탐사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글로벌 표준 지도가 나왔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다.

 

둘째는 이탄지가 ‘탄소 흡수원에서 배출원으로 돌아서는 티핑 포인트’의 위치다. 과학자들은 수위 저하, 기온 상승, 화재 빈도, 토지 이용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어느 지점에서 이탄지가 순배출원으로 전환되는지에 대한 정량 모델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일부 연구는 건조화 한계치를 넘으면 탄소 300억톤 이상이 한꺼번에 대기로 방출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이 수치를 뒷받침하는 장기 관측 데이터와 메커니즘 분석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셋째는 “재습지화(rewetting)가 만능이 아니다”라는 문제 제기다. 연구진은 단순히 물을 다시 채우는 복원 방식만으로는 지역별 생태·경제·사회 조건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코크대학교 미셸 맥케운 박사는 “이탄지 복원 과정에는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중요한 트레이드오프와 불확실성, 지역별 차이가 존재한다”며, 물관리 방식, 대체 생계 모델, 토지 소유 구조 등을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정책 저항과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넷째는 거버넌스와 지역사회, 원주민 지식이다. 엑서터대학교 앙헬라 가예고‑살라 교수는 이탄지를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경관이자 깊은 문화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라고 규정하며, 특히 열대 이탄지는 지역 주민의 유일한 생계 기반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향후 연구 의제는 탄소·생태계 분석을 넘어 토지권, 분쟁, 생계전환, 전통 생태지식 통합 등 사회과학적 질문을 필수적으로 포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의 역할과 과제…인도네시아 이탄지에서 배운다


국내에서도 이탄지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2020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칼리만탄 이탄지 보전·복원을 위해 국제임업연구센터(CIFOR)와 공동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2030년까지 매년 3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또 인도네시아 남수마트라주 페리기 마을 이탄지 10헥타르를 복원해 지역 주도형 지속가능 복원 모델을 구축하는 시범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국립산림과학원은 건조한 이탄지를 재습윤화하고, 자생 수종을 심어 약 1,200톤의 탄소를 추가로 흡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소개했다. 단일 프로젝트의 규모로만 보면 글로벌 탄소 예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어떤 수위·식생·관리조합이 탄소 저장을 극대화하는지”에 대한 정량 데이터가 축적된다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크다. 산림청은 2025년까지 이탄지 복원을 위한 국제공동연구를 본격화해 기후위기 대응 공동체 구축에 기여하겠다는 계획도 내놓고 있다.

 

다만 한국 내부의 ‘이탄지 정책 프레임’은 아직 초기 수준이다. 갯벌·블루카본 논의와 별개로, 내륙 이탄습지에 대한 체계적인 매핑·평가·복원 로드맵은 미완성 상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유럽연합(EU)이 2050년까지 훼손된 육지의 90%를 복원한다는 목표 아래 산림·갯벌·이탄지 조성을 통해 자연 저장 탄소량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이탄지 전략은 아직 ‘파일럿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탄소 시한폭탄’을 피하려면…연구·투자·정책을 동시에 키워야

 

국제 연구진은 각국 정부와 연구기관, 자금조달 기관에 세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이탄지 보호·복원은 기후·생물다양성·재난(산불·홍수)·지역경제를 동시에 건드리는 교차 의제인 만큼, 연구비와 정책 도구를 부처별·프로젝트별로 쪼개기보다 중장기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위성·드론·AI를 활용한 저비용·고주기 모니터링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 “언제 어디서 이탄지가 위험수준으로 건조해지는지”를 실시간에 가깝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복원은 수위 조절만의 문제가 아니라 토지 이용 전환과 생계 재편의 문제라는 인식 전환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대형 이탄지를 가진 국가에서 팜오일·농업 개간을 대체할 경제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면, 어떤 과학적 해법도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이번 연구는 시사한다.

 

맥케운 박사는 “이탄지는 기후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반대로 기후 변화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며 “어떤 길을 택할지는 우리가 쌓는 지식과 그 지식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속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토양 탄소의 최대 44%를 쥐고 있는 이탄지의 향배가, 향후 수십 년 인류의 탄소 예산과 기후 리스크를 좌우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 발언은 단순한 학술적 코멘트를 넘어선, 정책·투자·연구 전반을 향한 경고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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