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대한민국 첫 3000톤급 국산 잠수함 도산안창호함(SS-III)이 한국 잠수함 역사상 최초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1만4000㎞ 대장정에 올랐다. 표면적 명분은 한·캐나다 해군 연합협력훈련과 환태평양훈련(RIMPAC) 참가지만, 이면에는 최대 60조원으로 평가되는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를 둘러싼 한·독 수주전의 ‘결정타’를 노린 잠행외교가 깔려 있다.
태평양을 가르는 K-잠수함, 역대 최장 1만4000㎞ 항해
해군에 따르면 도산안창호함은 25일 경남 창원 진해 잠수함사령부에서 곽광섭 해군참모차장 주관으로 열린 환송식을 마치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에스퀴몰트(Esquimalt) 해군기지를 향해 출항했다. 진해군항에서 에스퀴몰트항까지 편도 항해 거리는 약 1만4000㎞(7700여 해리)로, 우리 해군 잠수함 역사상 최장 항해 기록이다.
도산안창호함은 항해 도중 미국령 괌과 하와이에 기항해 군수·보급을 받은 뒤, 하와이에서 캐나다 해군 잠수함 부사관 2명을 승선시켜 캐나다 서해안까지 공동 항해를 이어갈 예정이다. 총 항차는 약 두 달로 계획돼 있으며, 함정은 5월 말 에스퀴몰트항에 입항한 뒤 현지에서 한국 해군 신형 3100톤급 호위함 대전함과 합류해 양국 연합훈련 및 친선행사를 진행한다.
도산안창호함은 대한민국 기술로 독자 설계·건조한 첫 3000톤급 디젤잠수함이자 ‘장보고-III’ 배치-I의 1번함으로, 수중배수량 3700톤급, 길이 약 83.5m, 폭 9.6m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적용해 장기 잠항능력을 갖추고, 6기의 VLS(수직발사관)를 탑재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운용이 가능한 점이 특징으로 평가된다.
CPSP, 최대 60조원…한·독 ‘완성형 대 개발중’ 맞대결
도산안창호함의 태평양 횡단 시점은 캐나다의 차세대 잠수함 획득 사업인 CPSP의 사업자 선정 막바지와 정확히 겹친다. 캐나다 정부는 현재 1990년대 도입한 4척의 빅토리아급 디젤잠수함을 최대 12척의 3000톤급급 신형 잠수함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사업 규모는 획득·정비·유지·MRO(유지보수·정비)까지 포함해 최대 60조원(약 430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입찰전에는 한국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컨소시엄과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스(TKMS)가 최종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다. 한국은 이미 해군에 실전 배치돼 4년 넘게 운용 중인 도산안창호급과, 그보다 성능을 강화한 배치-II 장영실함 등 ‘완성된 3000톤급 플랫폼’을 기반으로 캐나다형 변형 모델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TKMS는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2800톤급 Type 212CD 설계를 바탕으로 입찰에 나선 상태라, 실물 검증 측면에서 한국이 ‘가시적인 완제품’이라는 비교우위를 강조하는 형국이다.
방산업계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CPSP는 단순한 함정 구매를 넘어 30년 이상 장기 정비·운용체계 구축, 기술이전, 현지 조립·생산, 북극해 작전능력까지 패키지로 요구하는 ‘국가 대 국가’ 딜에 가깝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도 통상교섭본부장, 산업부 장관, 여기에 현대자동차그룹 등 민간 대기업까지 지원사격에 나서며 사실상 국가 차원의 종합 패키지 제안을 캐나다 측에 제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완제품 들고 간다”…수중항해 자체가 ‘실물 시연’
해군과 방산업계는 이번 태평양 횡단을 “종이 제안서로는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바다 위에서 증명하는 자리”라고 규정한다. 진해에서 에스퀴몰트까지 1만4000㎞를 실제로 잠항·항해해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도산안창호급의 원해(遠海) 작전능력, 장기 잠항 능력, 신뢰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수중 시연’이라는 의미다.
특히 캐나다 해군 잠수함 부사관 2명이 하와이부터 승조원으로 편승해 북미 서부 해역까지 함께 항해하는 것은 단순한 친선 이벤트를 넘어, 캐나다 해군이 한국 잠수함의 운용 개념, 승조원 훈련수준, 실내 거주환경까지 직접 체험하는 ‘탑승 시찰’ 성격을 띤다. 지난해 12월 한·미 연합 대잠전 훈련 ‘사일런트 샤크’에서 미 해군 인원이 한국 잠수함 안무함에 탑승한 데 이어, 이번에는 캐나다 인원이 도산안창호함에 오르는 것으로, 한국 잠수함에 미·캐나다 등 서방 해군 인력이 잇따라 승선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도산안창호함은 캐나다 현지에서 한·캐 연합훈련을 마친 뒤, 6월 말부터는 미 해군이 주도하는 세계 최대 다국적 해상연합훈련인 RIMPAC 2026에 참가한다. 미 태평양함대와 미 3함대에 따르면 RIMPAC 2026에는 약 29개국, 40여 척의 수상함, 3척의 잠수함, 150여 대의 항공기, 2만5000명 이상의 병력이 참가할 예정으로, 이번이 30번째 훈련이자 미국 독립 250주년과 맞물린 상징성이 강조되고 있다.
도산안창호함이 캐나다에서 미국 하와이로 이동해 RIMPAC까지 연달아 참가하는 동선 자체가, 한국 잠수함의 ‘글로벌 작전 플랫폼’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시나리오라는 평가가 나온다.
바닷물 합수 의식, 군사·외교·산업 얽힌 상징 연출
출항 행사에서 군이 준비한 상징 퍼포먼스도 눈길을 끌었다. 해군은 3000톤급 잠수함 모형 캡슐 2개에 진해 바닷물을 담아 도산안창호함에 실었고, 에스퀴몰트항 도착 후 같은 캡슐에 캐나다 바닷물을 추가로 담는 ‘합수’ 의식을 통해 양국 해군의 우호와 연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계획이다. 환송식에는 곽광섭 해군참모차장과 필리프 라포르튠 주한 캐나다 대사 등이 참석해, 군사협력과 방산협력, 더 나아가 인도·태평양 전략 구도 속 한·캐 ‘미니 안보동맹’의 성격을 강조했다.
캐나다는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정보동맹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일원으로, 북태서양과 북극해, 태평양을 잇는 해양안보의 핵심 축이다. 한국이 이 나라의 차세대 주력 잠수함 공급국으로 자리 잡을 경우, 단순한 수출을 넘어 서방 해군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 잠수함의 입지가 한 단계 격상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방산전문 매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K-잠수함, ‘무기’ 넘어 전략외교 플랫폼으로
도산안창호함의 태평양 횡단은 한국 해군 잠수함력의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방산·외교·통상정책이 한 몸처럼 엮인 ‘입체적 수중외교’의 전형을 보여준다. 독자 설계·건조한 3000톤급 잠수함이 1만4000㎞ 태평양을 가로질러 북미 서부 해역에 진입하고, 그 과정에서 캐나다와 미국 등 동맹국·우방국 해군과 연합훈련 및 다국적 훈련에 연쇄적으로 참가하는 그림 자체가 ‘K-잠수함 브랜드’의 실전성과 신뢰도를 국제무대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CPSP 제안서는 3월 초 마감됐으며, 캐나다 정부는 이르면 6월경 우선협상대상국을 선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도산안창호함이 캐나다 해역과 하와이 인근 바다를 누빌 5~6월, 수면 위에서는 대규모 연합훈련과 친선 행사가 펼쳐지고 수면 아래에서는 60조원 잠수함 빅딜을 둘러싼 막판 평가·교섭이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항해는 단순한 ‘최초 태평양 횡단’이라는 기록을 넘어, 한국이 차세대 잠수함 강국이자 신(新)인도·태평양 안보 아키텍처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도산안창호함의 1만4000㎞ 수중 항적이 캐나다 CPSP 전량 수주라는 결과로 이어질지, 향후 몇 달간 태평양과 오대양의 잠수함 외교전이 숨 가쁘게 전개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