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이종화 기자] 폴란드 정부가 발트해 안보 강화를 위한 신형 잠수함 사업 ‘오르카(Orka)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스웨덴 사브(Saab)의 A26 블레킹급 잠수함을 공식 선정했다. 결국 한화오션을 중심으로 한 한국 측 수주 전략은 사실상 좌초됐다.
한국 정부가 우리 해군 첫 잠수함인 1,200톤급 장보고함(ROKS Jang Bogo·SS‑061)의 무상 이전까지 카드로 꺼내들며 수조원대 방산 패키지 수출을 노렸지만, 폴란드는 ‘발트해 맞춤형 5세대 잠수함’과 스웨덴·나토 네트워크를 택했다.
폴란드, 3척·최대 14조5000억원 투입…2030년 첫 인도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은 26일(현지시간) 내각 회의 직후 “신형 잠수함 사업자로 스웨덴 사브를 선정했다”며 “늦어도 내년 2분기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하고 2030년께 첫 함정을 인도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정부가 밝힌 기본 계약 규모는 약 100억 즈워티(PLN·약 4조원)지만, 무기체계 통합과 유지·정비, 수명주기 비용까지 포함한 전체 사업비는 최대 360억 즈워티(약 14조5000억원)로 추산된다.
오르카 프로젝트는 노후 소련제 킬로급 잠수함 ORP 오제우 1척에 의존하던 폴란드 해군이 3,000톤급 신형 디젤‑전기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최대 8조원 규모의 사업으로, 폴란드 국방예산 확대 기조 속에서 ‘사상 최대 해군 사업’으로 평가돼 왔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방비를 2025년 기준 1,866억 즈워티(약 510억달러)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나토(NATO) 회원국 중 최상위권 방위비 비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오르카 프로젝트는 이 중 핵심 해양전력 현대화 축으로 자리 잡았다.
‘5세대 A26’ 선택 배경…발트해 얕은 바다·나토 연계 ‘한 몸’
사브가 제안한 A26 블레킹급 잠수함은 업체 측에서 ‘세계 최초 5세대 잠수함’으로 홍보하는 디젤‑전기식 플랫폼으로, 공기불요추진(AIP) 체계를 적용해 장기간 잠항 능력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발트해처럼 수심이 얕고 해저지형이 복잡한 연안·내해 환경에서 은밀 작전이 가능하도록 저소음 설계, 대형 모듈형 임무공간(MMP) 등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폴란드 해군이 요구한 ‘발트해 최적화’ 조건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폴란드는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발트해가 사실상 서방 동맹의 ‘내해’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스웨덴 해군과의 상호운용성, 나토 통합전력 체계와의 연계를 중시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브는 폴란드 조선소에 잠수함 정비 역량을 구축하기 위한 투자, 폴란드산 무기 구매, 국영 방산그룹 PGZ와의 광범위한 산업협력 양해각서 체결 등을 패키지로 제시하며 ‘발트해 해군력 동맹’ 이미지를 강화해 왔다.
韓, 장보고함 ‘무상 이전’ 승부수…결국 빛 바랜 수주전
이번 사업에는 사브 외에도 한국 한화오션,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스페인 나반티아, 프랑스 나발그룹 등 유럽 주요 조선·방산업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국 측에서는 한화오션이 장보고‑III급(도산안창호급)을 앞세워 폴란드 현지에 상시 정비·유지(MRO) 센터 설치, 1억 달러 규모 현지 투자, 기술이전 및 현지 생산 등을 포함한 ‘토털 솔루션’을 제시하며 공세적으로 움직였다.
한국 정부도 외교·군사 채널을 총동원해 지원에 나섰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폴란드와의 K2 전차·K9 자주포·FA‑50 경공격기 등 대규모 무기 패키지 수출 이후 심화된 방산 협력을 오르카로 확장한다는 전략 아래, 장보고함 무상 이전 방안을 확정했다.
군 소식통과 한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 해군 첫 실전 잠수함인 1,200톤급 장보고함은 2025년 말 퇴역과 동시에 폴란드 해군에 무상 공여되며, 한국 측은 이를 통해 폴란드 승조원의 조기 교육·훈련, 한국형 잠수함 운용·정비 노하우 이전을 묶은 패키지 모델을 제안했다.
그러나 폴란드가 결국 스웨덴을 선택하면서 장보고함 무상 이전 카드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다만 폴란드가 기존에 추진해온 한국산 지상·공중 전력 도입, 그리고 양국 간 방산 협력 확대 기조를 감안할 때, 장보고함 공여가 향후 다른 해군·해안 방어 체계 협상에서 ‘정치·외교적 상징 자산’으로 활용될 여지는 남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발트해 ‘잠수함 블랙홀’ 메우는 폴란드…러시아 견제 수위도 상향
현재 폴란드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 전력은 1980년대 소련에서 도입한 킬로급(ORP 오제우) 1척에 불과해, 발트해에서 사실상 ‘잠수함 공백 상태’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발트해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를 대서양에 연결하는 전략 해상 회랑이자,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출, 해저 통신·에너지 케이블이 집중된 핵심 해역으로 서방과 러시아 간 ‘보이지 않는 전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서방 정보·안보 당국은 러시아가 발트해에서 해저 케이블 절단, 파이프라인 손상, 전자전·정보전 등을 포함한 각종 비대칭 공작을 수행하고 있다고 경고해 왔으며, 폴란드는 A26급 3척 도입으로 이 해역에서의 정보·정찰·대잠·특수작전 능력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발트해 연안국 대부분이 나토 회원국이 된 상황에서, 폴란드 잠수함 전력 증강은 나토 전체 ‘북방 억지력’의 한 축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유럽 군사전문가들의 중론이다.
韓 방산, ‘폴란드 효과’ 한계 노출…잠수함 수출 전략 재점검 불가피
한국은 2022년 이후 폴란드와 체결한 K2·K9·K239·FA‑50 등 대규모 패키지 계약으로 ‘폴란드발 K‑방산 붐’을 일으키며 유럽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지만, 잠수함 영역에서는 유럽 강자 및 나토 네트워크와의 경쟁이 예상보다 훨씬 치열하다는 현실을 확인했다는 평가다. 특히 폴란드가 사브와의 협력을 택한 배경에는 단순 가격·성능을 넘어 나토 표준, 장기적인 북유럽‑중동부 유럽 연계 산업생태계, 발트해 작전 경험 등 한국이 단기간에 보완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향후 잠수함 수출 전략에서 단순 플랫폼 제공을 넘어, 나토·EU 규격 통합, 현지 조선·방산 기업과의 조기 합작 구조, 해저 인프라 보호·해양에너지 방어 등 ‘해양 안보 패키지’에 초점을 맞춘 제안 구조를 정교하게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장보고함 무상 이전을 계기로 폴란드 승조원 교육, 한·폴 연합훈련, 잠수함 구조·구난 및 해양감시 분야 협력을 심화한다면, 비록 오르카 1차 사업에서는 패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유럽 해군 시장에서 한국 잠수함 기술의 신뢰 기반을 쌓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