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최동현 기자] 주요 시중은행들이 새해 들어 일제히 희망퇴직 신청 접수를 시작하면서 은행권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은행권이 인력구조 효율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연말연초부터 희망퇴직에 나서고 있는 것. 특히 올해는 대상과 범위가 더욱 확대됐다. 금융권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역미라미드형 인력구조에 변화가 올 것이란 전망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2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이로써 KB국민은행, 신한은행, NH농협은행에 이어 5대 시중은행 모두가 희망퇴직을 실시하게 됐다.
최근 은행권 희망퇴직은 대상 연령과 연차도 크게 낮아지는 추세다. 다른 업권 대비 상대적으로 고액인 은행 퇴직금을 기반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려는 젊은 연령층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달 2일부터 6일까지 만 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준정년 특별퇴직 신청을 받는다. 대상은 이달 31일 기준 만 15년 이상 근무하고 나이는 만 40세 이상인 일반직원이다. 연령에 따라 최대 24~31개월치 평균임금을 특별퇴직금으로 지급한다. 이는 지난해 초 진행된 희망퇴직과 같은 조건이다.
1969년 하반기생부터 1972년생은 자녀 학자금, 의료비, 전직 지원금 등도 받을 수 있다. 매년 상·하반기에 진행되는 임금피크 특별퇴직 역시 1969년 상반기생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퇴직금으로는 약 25개월치(생월별로 차등) 평균임금이 지급된다. 하나은행은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특별퇴직자를 최종 선정하고 오는 31일 퇴직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우리은행도 오는 7일까지 정규직 입행 후 10년 이상 재직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퇴직이 결정되면 1969년생은 19개월분, 1970년생과 1971년 이후 출생자는 31개월분의 평균 임금을 특별 퇴직금으로 각각 받게 된다. 이와 별도로 자녀 대학교 학자금, 재취업 지원금, 건강검진비 등도 받는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13~17일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전년의 경우 만 44세 이상이 대상자였으나 이번에는 만 38세 이상 직원으로 대상을 넓혔다. 부부장·부지점장 이상 직원 중 근속 15년 이상인 1966년생 이후 출생자, 4급 이하 직원 중 근속 15년 이상인 1972년생 이전 출생자, 리테일서비스(RS) 직군 중 7년6개월 이상 근무한 1986년생 이전 출생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희망퇴직 대상이 대폭 확대되면서 올해 1월 2일자로 541명이 신한은행을 떠났다. 전년(234명)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특별퇴직금은 전년도와 동일한 출생연도에 따라 월 평균임금의 7~31개월분이다.
지난달 16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국민은행은 신청 대상을 전년 1972년생까지에서 올해 1974년생까지로 확대했다. 특별퇴직금은 전년도와 동일한 수준인 18∼31개월치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자녀 학자금, 재취업 지원금 등을 별도로 지원한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11월 희망퇴직을 마무리했다. 10년 이상 근무자들 가운데 만 40~56세 직원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았다. 특별퇴직금은 연령에 따라 최대 20~28개월치를 지급한다. 이는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주목할 점은 은행들이 예년보다 희망퇴직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972년생까지였던 대상을 올해 1974년생까지 확대했고, 신한은행은 만 38세인 1986년생까지 포함해 500여 명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 보상도 파격적인 수준이다. 대부분의 은행이 평균임금의 18~31개월분을 기본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자녀 학자금과 재취업지원금, 의료비 등 부가혜택까지 더해 '실속 있는 퇴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14개 은행에서 희망퇴직한 직원 1만6236명에게 총 6조5422억원이 지급됐다. 1인당 평균 4억294만원 수준이다.
최근 몇년의 대규모 희망퇴직은 은행권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맞물려 있다. 비대면 거래 증가와 모바일뱅킹 활성화로 점포 통폐합이 가속화되면서, 전통적 은행 업무에 익숙한 중간 관리자급 인력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AI시대가 보편화되면서 대면비즈니스, 오프라인, 아날로그 방식의 업종들은 변화를 맞을 수 밖에 없다"면서 "올해 희망퇴직 대상 연령이 낮아진 것은 디지털 인재로의 세대교체를 추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승진은 힘들고, 오히려 조건 좋을 때 일찍 나가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막상 회사 밖으로 나가면 은행권 사람들이 할 일이 너무 제한적이다"면서 "마약처럼 중독된 월급을 매달 받던 직장인이 은행권 밖 정글에서 살아나가는 것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