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혜주 기자] 나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별장을 두고 독일 베를린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지비로만 해마다 수억원이 드는 탓에 당국이 한 푼도 받지 않고 다른 주정부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 누구도 선뜻 별장을 인수하겠다고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이후부터 쓰임새 없이 25년간 방치 중이라 아예 별장을 철거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역사적 의미가 깊다는 이유로 반발이 나오면서 이조차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5일(현지 시각) AP통신과 독일 공영방송 도이치벨레(DW) 등에 따르면, 슈테판 에베르스 베를린 주정부 재무장관은 전날 의회에서 괴벨스 별장 문제와 관련해 “나는 이 부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베를린이 주는 선물로서 인수해달라고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료로 괴벨스 별장을 넘기겠다는 것.
이 별장의 주인은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나치정권의 선전장관을 역임한 요제프 괴벨스(1897∼1945)가 1939년 지은 건물이다. 괴벨스는 선전·선동의 제왕으로 불린 인물로, "히틀러가 1차 대전 패배의 굴욕으로부터 독일을 구해 다시 위대한 국가로 만들어줄 구세주"라며 교묘하게 선전해 '히틀러 무오류설' 신화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이 별장은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40㎞ 떨어진 반들리츠 마을 인근의 호숫가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부지 규모만 17㏊(헥타르)에 방이 70개인 호화 별장이다. 괴벨스는 이곳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나치 지도자와 예술가, 배우 등을 접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엔 연합군의 병원으로 쓰였다가, 동서분단 이후엔 동독 당국의 청소년 교육 장소로 사용됐다. 1999년 이후부터는 방치됐고, 매년 유지비로 연 25만유로(약 3억7000만원)가 들면서 주정부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별장 건물과 부지는 베를린주 소유지만 실제 위치는 시 경계에서 10㎞ 넘게 떨어진 브란덴부르크주 반들리츠다. 베를린 주정부는 유지비 문제로 브란덴부르크주에 무료 인수를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리모델링 예상 비용도 3억5000만유로(약 51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베를린이 건물을 아예 철거하겠다고 나서자 브란덴부르크 당국이 반대하고 나섰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건물을 베를린 맘대로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브란덴부르크주 문화재 보호 책임자인 토마스 드라헨베르크는 "두 독재정권의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활용할지 장기간 철저히 숙고해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뾰족한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별장 부지는 인근 마을과 3㎞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도 어려운 위치다. 활용 방안을 찾기도 어렵지만 방치할 경우 극우세력이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 별장을 812만유로(약 119억원)에 매입했다는 가짜뉴스가 위조된 계약서와 함께 인터넷에 유포되기도 했다.
에베르스 베를린 주정부 장관은 “지난 수십 년간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소유주가 나서지 않는다면 베를린주는 철거를 강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