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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Life

[내궁내정] 미나리 경제학 “벼 베고 봄 심다"…나주 노안 7개월 프로젝트, 봄 전령사에서 지역 특산물까지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물, 미나리의 뿌리에는 농업의 시간과 계절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특히 전남 나주 노안면의 ‘노안 돌미나리’는 국내 최대 미나리 주산지로, 서울 가락시장의 겨울철 미나리 출하 물량의 약 70%를 차지할 만큼 핵심 공급지 역할을 한다. 특이한 점은 미나리 대부분이 벼농사 후작으로 태어난다는 점이다. 8월 벼 수확 뒤 논에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10월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연중 가장 손꼽히는 수익 구간을 달린다.

 

나주 노안, 미나리의 ‘지구 본부’


나주 노안면 일대는 현재 미나리 재배면적 약 430㏊, 연간 생산량이 국내 전체의 약 60%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사실상 ‘한국 미나리 지도’의 중심축이다. 이곳의 돌미나리는 1급수에 가까운 지하수를 끌어올려 재배하는 데다, 농약 사용을 거의 하지 않는 ‘청정형 재배’로 알려져 서울 가락시장을 중심으로 수도권 외식업계와 슈퍼·편의점 유통망까지 파고들고 있다. 연간 매출은 약 12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며, 조그만 마을이지만 미나리 한 품목만으로 농업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벼 뒤에 숨어 있는 ‘수익 구조’


노안 미나리는 대표적인 논 후작(後作)형 2모작 구조를 띠고 있다. 조생종 벼를 5월 전후에 모내기하고 8월 말에 수확한 뒤, 즉시 논에 물을 채우고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전국 통계에 따르면 미나리 재배 대부분이 논(논미나리)에서 이뤄지며, 노안처럼 2모작 1년 2~3회 분기 수확이 가능한 경우 벼농사보다 4배 안팎의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 한 농가가 10a(약 100평) 기준으로 미나리 10a당 소득을 약 430만원 수준, 소득율 32% 선으로 잡는 농업기술원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10월→4월, ‘봄을 빌려 파는’ 시간 전략


노안 미나리는 10월 초부터 출하되기 시작해 이듬해 4월 말까지 이어지며, 7개월 동안 가락시장으로 나가는 미나리 상자만 연간 160만 상자(4kg 상자 기준) 규모로 추정된다. 이 기간은 북부 지역의 봄 미나리가 본격 생산되기 전까지 ‘수급 공백기’에 해당해, 나주 미나리가 유통망에서 독점적인 가격 조정력을 갖는다.

 

특히 1~2월 한파 속에서도 지하수 온도 7~8℃를 유지하며 재배해, 서리 피해와 노지 대비 수확 시기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 고가 형성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런 ‘시간 벽’을 활용해 농가는 겨울 식재료 수요가 높은 시점에 안정적인 가격을 받으며, 도매시장은 연중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는 구조가 된다.

 

미나리의 철학…묻혔다가 떠오르는 삶의 비유

 

미나리 구조를 들어다 보면, 농업의 ‘계절적 윤리’와 ‘생명 순환’에 대한 작은 철학을 읽을 수 있다. 벼가 끝나자마자 논을 ‘미나리 모’가 채우고, 미나리 수확이 끝나면 다시 벼 농사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이 과정은 자원을 갈아엎지 않고, 시간을 갈아서 재사용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현대사회가 말하는 ‘순환 경제’와 다르지 않다. 땅은 사라지지 않고, 작물이 바뀌는 동안 물과 퇴비, 노동만이 쌓여 간다.

 

미나리 자체도 오래전부터 한약명으로 ‘수근(水芹)’ 또는 ‘수영(水英)’으로 불리며, 서늘하고 맵고, 알칼리성 식품으로 ‘장기복용시 혈액 순환과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비타민 A, B1, B2, C와 칼슘·철분·섬유질 등이 풍부해, 칼로리가 낮은 동시에 영양소가 빽빽한 이 식재료는 ‘현대인 건강식’ 그 자체로 읽힌다.

 

 

미나리의 문화…계절전환 알리는 봄 전령사


미나리는 단순히 채소가 아니라, 한국적 식문화에서 계절의 전환을 감지하는 감각 기관이다. 봄이면 떠오르는 ‘미나리무침’, ‘미나리탕’, ‘미나리전’ 등은 가족 모임과 회식 자리에서 “이제 계절이 바뀐다”는 신호를 전달한다. 특히 서울·수도권의 식당 메뉴판에서 노안 돌미나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단순한 식재료 선택을 넘어 지역 특산물 브랜드화와 ‘지역 이미지 소비’로 이어진다.

 

이러한 구조에서 농가는 단순히 ‘농업인’을 넘어, 계절의 시간을 컨설팅하는 생태 경영자로 재해석된다. 자신들이 키운 미나리는 겨울철 도시인의 식탁을 봄빛으로 물들이고, 그 봄빛은 다시 농업 소득과 일자리, 지역 브랜드 가치로 돌아온다.

 

미나리의 봄은 끝나지 않는다…계속되는 미나리 경제학


나주 노안의 미나리는 벼를 베어낸 뒤, 논 안에 새로운 봄을 심는 작업이다. 70%의 시장점유율, 60%의 국내 생산량, 100억원 규모의 숫자는 그저 표면에 드러난 결과일 뿐이고, 그 뒤에는 물과 땅, 계절과 노동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차 경제가 존재한다.

 

미나리는 봄을 기다리는 도시인의 식탁 위에서, 농가의 출하 일정표 위에서, 그리고 한국 농업의 다음 시즌을 놓고 쓰는 경제사 책 위에서 동시에 읽혀야만 완전한 이야기가 된다. 봄이 오기 전, 이미 땅 속에서는 봄이 수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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