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연구진들은 고대 이집트 장인들이 3,300년 전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 파피루스 문서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초기 형태의 수정액(화이트·팁엑스)을 사용했으며, 누군가 너무 뚱뚱하다고 판단한 자칼 그림을 날씬하게 만들기 위해 대담한 붓질로 백색 물감을 덧칠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news.artnet, theartnewspaper, artnews, gbnews, ancient-origins, dailymail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 장인들이 이미 체계적인 ‘오탈자·형상 수정 시스템’을 운영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발견은 박물관 직원들이 4월 12일까지 진행되는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된" 전시회를 위해 가장 잘 보존된 이집트 두루마리 중 하나를 준비하던 중에 이루어졌다.
무엇이 발견됐나: ‘뚱뚱한 자칼’을 손질한 흰 선
문제의 유물은 기원전 13세기 초 왕실 서기관 라모세(Ramose)를 위해 제작된 사자의 서 두루마리로, 현재 피츠윌리엄 박물관에서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된(Made in Ancient Egypt)’ 전시(2026년 4월 12일까지)와 연계해 분석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자의 서는 망자가 사후세계를 통과하도록 안내한다고 믿어진 주문들의 모음집이다.
해당 장면은 사자의 서 주문 117(Spell 117)을 그린 일부로, 라모세가 자칼 머리 신(대다수 연구진은 전쟁·사자의 수호신 웨프와웨트(Wepwawet)로 추정)의 몸 옆을 따라 서 있는 장면인데, 자칼의 몸통 양옆과 뒷다리 윗부분을 따라 유난히 두꺼운 흰색 선이 덧칠돼 있는 것이 디지털 분석 과정에서 확인됐다.
라모세가 자칼 머리를 한 신, 아마도 전쟁과 죽은 자의 보호와 관련된 신인 웨프와웨트의 몸을 따라 손을 놓고 있는 장면에서, 박물관 직원들은 자칼의 몸 양쪽과 뒷다리 윗부분을 가로지르는 짙은 흰색 선들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수석 이집트학자이자 전시회 큐레이터인 헬렌 스트러드윅은 "마치 누군가가 원래 그려진 자칼을 보고 '너무 뚱뚱하니 더 날씬하게 만들어'라고 말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대 ‘수정액’의 정체: 방해석+헌타이트+자황
연구진은 적외선 반사 촬영(IR), 3D 디지털 현미경, X선 형광분석(XRF) 등을 동원해 이 흰 안료의 조성을 추적했다.
분석 결과, 자칼 몸에 덧입힌 흰색은 방해석(calcite)과 헌타이트(huntite)라는 두 종류의 탄산염 광물을 섞은 안료였으며, 같은 장면에서 라모세의 흰 옷에 쓰인 안료가 ‘헌타이트 단일 성분’인 것과 뚜렷이 구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3D 현미경 이미지를 통해서는 ‘킹스 옐로(King’s yellow)’로도 불리는 노란색 자황(orpiment·비소 광물)의 미세한 입자가 검출됐는데, 이는 원래 연한 크림색이었을 파피루스 바탕색과 보다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색조를 조정한 의도적 배합으로 해석된다.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작업 프로세스’였다
스트러드윅 박사는 같은 유형의 흰 안료 덧칠이 런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과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Egyptian Museum)에 소장된 일부 파피루스에서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그는 “큐레이터들에게 이런 사례를 보여주면 대부분 처음엔 눈치채지 못하다가 분석 결과를 보고서야 놀란다”며, “현재까지 확인된 사례들을 보면 특정 주문이나 상징과 연관된 의례적 색채라기보다는, 그림의 형태·비율을 손질하기 위한 실무적 수정 기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번 분석은 ‘초벌 채색 → 검토 → 부분 도색 수정 → 최종 이미지 확정’이라는 일종의 품질 관리 과정이 3,000년 전 장인 집단 내부에 이미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라모세 두루마리의 스펙: 60피트짜리 프리미엄 굿즈
라모세의 사자의 서는 1922년 영국 고고학자 윌리엄 플린더스 페트리(William Flinders Petrie)가 중부 이집트 세드먼트(Sedment)의 무덤에서 발굴한 후 곧바로 피츠윌리엄 소장품이 됐다. 현재 연구자들은 이 두루마리가 제작 당시에는 길이 60피트(약 18m)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수백 개로 파편화된 조각들은 2000년대 초 전문 보존가에 의해 세척·강화·재조립 과정을 거쳐 원래의 레이아웃 상당 부분이 복원됐다.
여러 이집트학 연구자와 박물관 측은 이 파피루스를 “현존하는 사자의 서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예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부 조각은 현재 ‘Made in Ancient Egypt’ 전시에서 일반에 공개돼 있다.
무엇을 말해주나: ‘완벽주의자’ 고대 장인들의 얼굴
이번 ‘고대 수정액’ 사례는 첫째, 장인의 실수와 그에 대한 ‘숨기고 싶은’ 인간적 본능이 3,000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둘째, 안료 조성까지 달리해가며 형태를 조정한 정황은 당시 장인들이 재료 과학적 특성(피막 두께, 피복력, 바탕색과의 조화 등)을 상당 수준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고대 이집트 회화·재료 공학 연구에 새로운 비교 기준을 제공한다.
셋째, 대영·카이로 등 다른 컬렉션에서도 유사 패턴이 확인되면서, 향후 비파괴 분석을 통해 ‘고대 이집트식 편집·교열의 역사’를 계통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연구 아젠다도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