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공상과학(SF) 영화가 그려온 ‘사막 행성의 문명’ 서사가 과학 앞에서 급제동이 걸렸다.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연구진이 발표한 최신 논문에서, 지구형 사막 행성은 액체 물이 임계치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탄소 순환이 붕괴하며 금성처럼 ‘지옥 행성’으로 치닫는다는 정량 분석 결과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4월 13일 《행성과학저널(Planetary Science Journal)》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먼 별을 공전하는 사막 세계에는 생명체가 존재하기 어렵다. 이번 연구는 지구 크기의 행성이 지질학적 탄소 순환, 즉 수백만 년에 걸쳐 표면 온도를 조절하는 자연적인 온도 조절 장치를 유지하려면 지구 해양에 담긴 물의 최소 20~50%가 필요하다는 것을 밝혔다. 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화산에서 방출된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무제한으로 축적되어 폭주 온난화를 촉발하고, 남아 있던 지표수마저 증발시켜 결국 행성을 거주 불가능한 상태로 만든다.
이번 연구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구 크기의 암석 행성이 장기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기후를 유지하려면, 지구 해양에 해당하는 물의 최소 20~50% 수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물은 지하수나 얼음이 아니라, 대기와 직접 맞닿아 탄소를 흡수·방출하며 기후를 조절하는 지표수를 의미한다.
워싱턴대 연구팀은 수천 건에 이르는 기후–탄소 순환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 임계값을 도출했다. 기존 모델이 주로 ‘물 많은 지구형 행성’을 기준으로 설계돼 태양복사에 의한 증발만 반영했던 것과 달리, 이번 연구는 건조 행성에 특화해 바람에 의한 증발, 건조 대기의 복사 특성 등 사막 환경에서 중요한 물리 변수들을 새로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연구를 이끈 하스켈 트리그 화이트‑지아넬라(Haskelle Trigue White‑Gianella) 박사과정 연구원은 “지구의 바다 하나보다 훨씬 적은 물을 가진 건조 행성은 우주 전체에 매우 흔할 수 있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이 거주 가능 임계치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제시한 결론은 직관적이면서도 냉정하다. 행성이 별의 ‘골디락스 존(생명체 거주 가능 구역)’에 위치하더라도, 표면 물의 양이 지구의 10~20%를 밑돌면 기후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10% 이하에서는 폭주 온난화로 해양과 호수가 거의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별과의 거리가 적당하다”는 조건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충분히 많은 물”이라는 추가 조건이 필수라는 점을 수치로 못 박은 셈이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얼마나 물이 부족하면 위험한가’라는 정량 기준을 처음 제시했다는 데 있다. 지구에서 지질학적 탄소 순환은 크게 세 단계로 요약된다. 첫째, 화산 활동으로 이산화탄소(CO₂)가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둘째, 대기 중 CO₂가 빗물에 녹아 탄산 형태로 암석을 화학적 풍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탄소가 용해된 상태로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셋째, 해양에 축적된 탄소가 퇴적암으로 고정됐다가, 판 구조론에 의해 다시 맨틀로 끌려 들어가고, 장구한 시간 끝에 화산 활동으로 다시 방출된다.
이 순환 고리를 작동시키는 최소 연료가 바로 물이다. 사막 행성에서는 강수량 자체가 급감하고, 지표수가 사라지면서 암석 풍화 속도가 화산 CO₂ 배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대기 중 CO₂ 농도가 계속 쌓이고, 이는 곧 표면 온도 상승으로 직결된다. 온도가 오르면 남은 물이 더 빠르게 증발하고, 습도는 오히려 낮아져 구름과 강수 형성은 더 어려워지는, 전형적인 양의 피드백(악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연구팀은 시뮬레이션에서 지표수 비율이 약 10% 아래로 떨어지는 지점부터 이 피드백이 급격히 강화되며, 일정 수준을 넘으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금성형 ‘런어웨이 그린하우스(runaway greenhouse)’ 상태로 진입한다고 보고했다. 이때 행성 표면 온도는 납을 녹일 정도인 수백 도까지 치솟을 수 있으며, 대기압 역시 현재 금성처럼 지구의 90배 이상까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연구팀은 “이 구간에서는 ‘살짝 더 물을 보탠다’고 해서 다시 거주 가능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이론 모델의 현실 사례로 태양계 이웃인 금성을 소환했다. 금성은 반지름과 질량, 내부 구조까지 지구와 매우 유사하지만, 현재 표면 온도는 450도 안팎, 대기압은 지구의 약 92배에 달하는 극단적 온실 상태다. 이번 워싱턴대 연구는 금성이 지구보다 태양에 더 가까운 탓에 형성 초기부터 물의 양이 지구보다 약간 적었고, 이 미세한 초기 조건 차이가 탄소 순환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결국 폭주 온난화를 촉발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금성이 처음부터 ‘지옥 행성’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기존 연구와도 이번 결과가 맞물린다는 점이다. 미국 연구진이 2019년 수치 모델링을 통해 “금성이 과거 약 30억 년 동안 최저 20도에서 최고 50도 사이의 온화한 기후를 유지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는데, 워싱턴대의 새 모델은 그 온화한 시기가 “탄소 순환이 겨우 균형을 유지하던 마지막 구간”이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금성은 액체 물이 존재하던 ‘거주 가능 행성’ 단계에서, 임계 수분량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현재와 같은 극단적 온실 행성으로 넘어갔다는 시나리오다.
연구의 제1저자인 화이트‑지아넬라는 “우리 생애에 외계 행성 표면에 탐사선을 착륙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금성은 실질적으로 우리가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최고의 ‘외계 행성 아날로그’”라고 강조했다. 곧 예정된 미국·유럽의 금성 탐사 임무(예: NASA VERITAS·DAVINCI, ESA EnVision)는 금성 표면의 고해상도 지형·대기 조성뿐 아니라, 과거 물의 흔적을 추적해 이번 모델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할 전망이다.
이번 연구는 외계행성 거주 가능성 평가 기준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외계행성은 6,000개를 넘어섰고, 통계적으로 우리 은하에만 최대 수백억개의 지구형 행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추정도 나와 있다. 그동안 천문학계는 별과의 거리, 행성 크기·질량, 대기 존재 여부 등 물리적 매개 변수에 기반해 ‘잠재적으로 거주 가능한 후보’를 선별해 왔다. 워싱턴대 연구진이 제시한 “지구 해양의 20~50% 수준의 물”이라는 정량 기준은, 이 필터에 ‘표면 물의 양’이라는 새로운 축을 추가한 셈이다.
실제 NASA ‘거주 가능한 세계 관측소(Habitable Worlds Observatory, HWO)’ 프로젝트와 미국 지구물리학회(AGU)에서 논의되는 최근 행성 거주가능성 연구도, “행성이 충분한 양의 표면수를 보유해야만 온도 변동을 적절히 완충하고, 우리가 아는 형태의 생명체가 요구하는 안정된 기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톰 브라운(Tom Brown)이 AGU 글에서 정리한 바에 따르면, 행성의 지표수 비율이 약 10%를 밑돌면, 설령 ‘지속적 거주 가능 영역(CHZ)’ 안에 있더라도 금성형 폭주 온난화로 전환될 위험이 커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 ‘듄(Dune)’이나 ‘스타워즈(Star Wars)’가 묘사한,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에 고도의 문명이 번성하는 행성은 과학적으로는 극히 비현실적인 설정에 가깝다. NASA 관련 해설에서도 이미 “그런 사막 행성은 설령 물이 조금 남아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생명체가 거주하기 어려워 보이며, 실제로는 더 많은 바다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이번 워싱턴대 팀의 수치 모델은 이 직관을 구체적인 수치와 역학으로 뒷받침해 준다.
이제 외계 생명체를 찾는 질문은 “어디가 적당히 따뜻한가?”에서 “어디에 충분한 물과 안정적인 탄소 순환이 가능한가?”로 한 단계 더 깊어졌다. 생명체를 품을 수 있는 ‘생태학적 행성’의 문턱은 우리가 상상해 온 것보다 훨씬 높고 좁다는 사실이, 사막보다 더 건조한 우주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