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HUMINT)’.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어감만 놓고 보면 ‘휴먼(Human)’의 ‘휴’가 아닐까 싶었고, 왠지 사람과 관련된 자원, 인적 네트워크쯤으로 막연히 짐작했을 뿐이다.
홍보(PR). 우리는 흔히 이를 ‘Public Relations’라고 부른다. 뜻이 무엇이고 정의가 어떻고를 설명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단어의 핵심이 결국 ‘릴레이션즈(Relations)’, 즉 관계라는 점에 주목해 보고 싶었다.
업계에서 나름 친한 선배가 어느 날 툭 던지듯 말했다.
“너도 이 일 20년 넘게 했잖아. 휴민트 제법 있지? 아니, 넌 꽤 많을 것 같아.”
그때 비로소 ‘아, 휴민트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간만에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돌리며 베스킨라빈스 31가지 맛 중 하나를 고르듯 OTT 영화를 고르는 대신, 극장에서 제대로 즐길 만한 한국 영화 신작이 나왔다.
조금 오버하자면 〈다크 나이트〉의 OST처럼 웅장한 음악과 함께, 손에 이어 발에까지 땀이 찰 만큼의 긴장감을 머금은 채 영화는 시작된다. 근래 본 영화들이 30분, 40분, 길게는 60분이 넘어야 시동이 걸려 다소 답답했던 데 비해, 〈휴민트〉는 시작 5분 만에 시속 100km를 훌쩍 넘겨버린다.
‘저 배우, 신세경 맞아? 저렇게 근사했나?’
‘아니, <폭삭 속았수다>의 ‘무쇠’ 맞아? 연기 미쳤다.’
‘박정민은 또 왜 이렇게 멋있는 거야. 저 쌍팔년도 점퍼마저 소화하다니.’
그리고 조인성. 〈무빙〉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연기지만, 이 작품에서는 마치 〈존 윅〉의 키아누 리브스를 보는 듯한 존재감이다.
한마디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가 아니라,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투성이다’였다.
◆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가 전우가 되기까지
무쇠가 볼펜을 딸깍대는 소리, A4 용지가 넘어가는 종잇장 소리마저도 연기처럼 느껴질 만큼 디테일이 살아 있다. 다소 비슷한 호흡이 반복되는 구간이 있어 늘어질 법도 한데, 이내 폭풍 같은 연출이 두 눈과 귀를 넘어 심장까지 사로잡는다.
‘명감독, 명배우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스스로 그런 감탄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 만큼.
따끈따끈한 신작인 만큼 구체적인 스토리는 남겨두겠다. 다만 결론적으로 외나무다리에서 마주 선 남과 북, 두 브레인의 대결 구도가 매우 인상 깊다. 〈쉬리〉, 〈밀정〉, 〈교섭〉 등 과거 작품들에서 보아온 설정과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 이유는 아직도 곱씹는 중이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 구절처럼, 결국 이 작품 역시 그 무섭다는 ‘이념(이데올로기)’을 이기는 것은 ‘사랑’임을 조용히 건넨다.
◆ 내가 가진 인간관계를 돌아볼 때
얼마 전 친한 형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너 카톡 친구 몇 명이야?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은 몇 명이고? 그게 다 네 자산이야.”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렇게 믿어왔고, 그렇게 여기며 관계를 소중히 관리해왔다. 다만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속담처럼, 양이 많다고 해서 질까지 보장되지는 않는다.
휴민트를 단순한 정보망을 넘어 ‘네트워크’라는 의미로 확장해 보면, 진짜 내 편, 진짜 내 우군이 누구인지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코칭 현장에서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고객님을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떠오르시나요?”
“정말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 같은 존재가 있나요?”
“그분에게 지금이라도 터놓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회생활은 관계로 시작해 관계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휴민트〉를 보고 난 뒤, 나 역시 ‘진짜 관계, 본질적인 관계’에 대해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 다가오는 설 연휴, 여러분도 각자의 ‘휴민트’를 조용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to be continued)
P.S. 보통 남과 북이 등장하는 영화는 정치적 갈등 속 인간관계를 그려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인간관계를 전면에 배치한다.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출연한 배우들 모두가 제 몫을 훌쩍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줬다. 오늘밤은 패티김 대신 임영웅이 부른 <이별> 듣고 자야지! 휴~ 내일은 스피아민트라도 씹으면서 껌향기에 취하고 싶다.
*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식음료, 소재·화학, IT, 패션 등 다양한 업계를 거쳐온 홍보전문가입니다. 인증코치이기도 한 그는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