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도 작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넷플릭스엔 꽤 많고, 신작이 별로이거나 업데이트가 뜸할 때면 리모컨을 들고 이곳저곳을 탐침하듯 둘러본다. 주말 아침 눈에 들어온 작품은 연상호 감독을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린 애니메이션 <사이비>였다.
살다 보면 자주 쓰지만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단어가 있다. ‘사이비’가 그랬다. 사전을 찾아보니 ‘닮았지만 아닌 것’, 즉 겉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상태를 의미한다.
◆ 넘쳐나는 ‘사이비’의 시대
도처가 사이비의 천국처럼 보인다. 종교 영역에서 많이 들리는 단어이지만, 짝퉁은 물론이고 원조를 자처하며 스스로를 오리지널이라 우기는 존재들이 곳곳에서 활개 친다. 유통 시장에서의 미투 상품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신앙심 깊은 목사라 믿었던 이들 중 일부가 알고 보면 허세와 사기만 앞세운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를 진짜라고 믿는 데 있다. 그럴듯한 외양과 서사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본질이 100이라면 98은 실체에 충실하지만, 2만큼의 자의적 해석으로 진짜를 부정하는 방식이다. 더 안타까운 건 종교적 믿음이라는 포장을 통해 헌금과 시간을 바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힘들었던 시기에 그들로부터 유혹 아닌 유혹을 받은 적이 있다.
◆ 진짜 코칭과 진짜 코치
이 칼럼의 중심인 코칭 이야기로 돌아오면, 주변에도 ‘코치’라는 호칭을 무작정 가져다 쓰며 자신을 전문가로 포장하는 이들이 제법 보인다.
“국가 공인 자격증도 아니잖아. 그냥 하면 되는 거고, 내가 더 잘해.”
“협회 같은 데는 결국 이익집단 아냐?”
“민간 자격증인데 취득 과정에서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것 같아.”
부인하기 어렵게도, 때로는 공인된 정규 과정을 거친 코치들보다 더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아직 초보 레벨의 공인 코치에 불과한 필자도 이런 장면을 보며 혼란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영화 속 대사처럼 “뭣이 중한디”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규 과정과 제도권의 틀이 정답인지, 그 틀을 무시한 채 ‘효용’을 기준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지. 무엇이 본질인지 생각할 때마다 쉽지 않다.
◆ 진짜와 가짜, 그리고 본질
영화는 이 과정을 정교하게 따라간다. 결국 사이비 교주를 정확히 겨냥한 주인공의 아버지는 세월이 흐른 뒤 동네의 작은 굴에서 토테미즘에 가까운 방식으로 울부짖으며 기도한다. 그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가짜가 진짜를 몰아내고, 거짓이 진실을 이긴다면 혼란이 곧 질서가 되는 역전된 사회가 된다. 영화 속 순진무구한 목사가 괴물이 되어가고, 거울 속 자신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다 끝내 정당화하는 순간은 사이비라는 현상 자체의 잘못됨을 분명히 보여준다.
복잡하고 모호한 시대일수록 일의 본질과 중심을 붙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만큼은 그 본질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to be continued)
p.s. 권해효, 오정세, 양익준이라니.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권할 만한 작품이다.
*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식음료, 소재·화학, IT, 패션 등 다양한 업계를 거쳐온 홍보전문가입니다. 인증코치이기도 한 그는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