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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래비의 커리어 블렌딩] '분홍소시지'와 맞바꾼 인도行 티켓이 가져온 '나비효과'

래비의 커리어 블렌딩 ⑤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서 다양한 기업의 브랜드 체계를 짜주며 나는 늘 생각했다. 멋진 슬로건과 로고, 브랜드 체계를 만들어주지만, 과연 이 기업들이 내부에서도 이 가치를 지키고 있을까? 제안서 속의 화려한 전략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작동할까?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바른먹거리’라는 철학으로 유명했던 한 식품 기업의 마케팅본부로 이직을 결심했다. 밖에서 볼 때 그곳은 브랜드 가치가 가장 잘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진짜 내부에서도 그 가치가 지켜질까? 내가 확인해 보겠어.' 호기심과 포부가 가득했다.

 

입사 며칠 후, 점심시간이었다. 반찬으로 추억의 ‘분홍 소시지’가 나왔다. 어릴 적 도시락 반찬으로 최고였던 그 맛이 반가워 리필까지 하며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선배가 말없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식품 첨가물의 유해성에 관한 책이었다.

 

“래비님, 우리 회사에서는 식품 첨가물에 대해 매우 엄격해요. 금지하고 있는 첨가물이 왜 위험한지는 알아야죠. 그거 한번 읽어보세요.”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이직해 오는 경력직 연구원이나 마케터들이 “왜 다른 회사에서는 다 쓰는 첨가물을 여기선 못 쓰게 하냐, 맛을 내기가 너무 어렵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회사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 엄격함. 불편하고 비효율적일지라도 원칙을 고수하는 태도, 그것이 차별화를 만든다.

 

그때 깨달았다.
브랜드의 가치는 벽에 걸린 액자 속 문구가 아니라, 쉽게 타협하지 않는 ‘불편한 엄격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 엄격함이 고객에게는 신뢰가 되고, 브랜드의 생명력이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많은 기업이 멋진 비전과 미션을 만든다. 액자에 넣어 사무실 벽에 걸어둔다. 하지만 의사결정 상황에서, 회의실 책상 위에서, 현장의 작은 선택들에서 그 가치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빈말이다.
진짜 브랜딩은 불편을 감수하는 매일의 실천 속에 있다.

 

그렇게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마케팅 현장을 달렸다. 당시엔 야근이 미덕이던 시절이었고, 나 역시 성과를 내고 싶어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다.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더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차가운 수술실로 이동하던 복도, 누워있는 내 시야에 천장에 달린 TV 모니터가 들어왔다. [KBS 드라마 작가 공모전 모집]

 

순간,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마취 주사가 들어가기 직전, 몽롱한 의식 속에서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글을 쓰고 싶었던 사람이잖아. 다시 눈을 뜨면, 진짜 내가 원하는 걸 하러 떠날 거야.’

 

수술은 잘 끝났고, 내 마음은 이미 회사를 떠나 있었다. 퇴원 후 나는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혔고, 인도행 비행기 표를 검색했다. 인도로 가서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지친 몸과 마음을 씻어내고 싶었다. 서른 즈음,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자아를 찾기 위한 도피’였다.

 

그때였다. 지주사에서 연락이 왔다.
“래비님, 그만두지 말고 여기 와서 일해보면 어때요? 회사의 철학과 혁신과제를 연구하는 팀이니 마케팅보다는 업무 강도가 덜할 거예요.”

 

솔직히 ‘쉬어가는 페이지’라고 생각했다. 몇 달만 일하고 인도행 비행기 티켓값을 벌면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서 일을 하다 보니,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마케팅이 ‘제품’을 고객에게 팔기 위해 컨셉을 잡고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라면, 조직문화는 ‘회사’라는 상품을 직원들에게 팔기 위해 가치를 만들고 소통하는 일이었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았다.

 

‘꼭 눈에 보이는 제품을 개발하고 팔아야만 마케팅인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는 문화를 만들어 회사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도 보이지 않는 마케팅이 아닐까?’

 

분홍 소시지를 먹으며 배웠던 ‘철학의 엄격함’은 조직문화를 설계할 때 원칙을 세우는 기준이 되었고, 마케팅본부에서 익힌 ‘고객(직원) 지향적 사고’는 딱딱한 회사의 가치를 말랑하게 전달하는 무기가 되었다.

 

인도행 티켓은 결국 예매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사람’이라는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여행지를 탐험하기로 했다.

 

그때 내가 인도로 떠났다면 지금쯤 드라마 작가가 되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도망치려 했던 그 순간조차 내 커리어는 새로운 재료를 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방향은 때로 수술실 천장의 TV 광고 하나로, 선배가 건넨 책 한 권으로, 그리고 우연히 받은 제안 하나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니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불안해하지 말자.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아무리 우회로처럼 느껴져도, 그곳에서 배우는 ‘불편한 진실’들이 당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갈 것이다.

 

[래비가 제안하는 커리어 블렌딩 2단계 질문]
그럼 래비가 제안하는 <커리어 블렌딩 2단계 질문>으로 생각의 뼈대를 세워보자.

 

STEP 1. [Alignment] 겉과 속이 일치하는가? (가치의 내재화)

 

-화려한 포장지(타이틀,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의 알맹이(철학)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나만의 원칙은 무엇인가?
-[질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 떳떳한 본질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가?

 

STEP 2. [Navigation] 도망치고 싶은가, 나아가고 싶은가? (방향의 재설정)

 

-위기는 종종 진짜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수술실 앞이나 퇴사 직전의 순간처럼,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렸을 때 비로소 보이는 ‘가슴 뛰는 일’은 무엇인가?
-[질문] 지금 내가 선택하려는 변화(이직, 유학 등)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인가, 아니면 내 안의 열정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인가?

 

[6화 예고]
인도행 비행기 표 대신 내가 탑승한 곳은 사내 조직문화 혁신 TFT, ‘C-큐빅(C-Cubic)’이었다. “조직문화가 밥 먹여줘?”라는 냉소 섞인 시선 속에서 부의장을 맡으며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건 시스템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그 오묘한 매력에 빠져 덜컥 교육대학원 원서까지 내버리고 마는데... 마케터에서 HR 전문가로, 맨땅에 헤딩하며 시작된 래비의 ‘진짜 공부’ 이야기가 펼쳐진다.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사람과 조직의 성장을 고민하는 코치이자 교육·문화 담당자입니다. 20년의 치열한 실무 경험과 워킹맘의 일상을 재료 삼아, 지나온 모든 순간이 어떻게 현재의 나로 ‘블렌딩’되는지 그 성장의 기록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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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비의 커리어 블렌딩] 회의실의 침묵을 깨는 힘, '퍼실리테이터'가 되다

리더 혼자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노트북만 두드리는 회의. 뒷자리에 앉아 속으로 되뇌던 말. '이럴 거면 그냥 메일로 보내시지.' 그 불만이 문제의식으로 바뀐 건, 내가 직접 그 회의를 이끌어야 하는 프로젝트 리더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였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던 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익숙한 책상과 묵직한 과제들이었다. '회사의 가치체계 재정립 프로젝트' 머리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손은 생각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실무를 떠나 있던 시간만큼의 공백감이 매일 아침 출근길을 조금 무겁게 했다. 그 무게감보다 더 버거웠던 건, 회의실에서 마주하는 침묵이었다. 대부분 리더가 말을 주도 했는데 어딘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들의 진짜 생각이었지만, 직급과 분위기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그건 좀처럼 꺼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저 침묵을 깰 수 있을까?' 그때 만난 것이 퍼실리테이션이었다.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기술보다 태도였다. 답을 알고 있어도, 먼저 꺼내지 않고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펼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배운 것을 회사 밖에서 먼저 써보기로 했다. 비영리 단체를 대상으로 미션과 비전을

[콘텐츠인사이트] 홍상수 감독 필모의 보고가 여기였네…<탑>을 보고

영화 외적인 부분을 떠나, 순수하게 작품 자체로만 놓고 볼 때 유독 좋아했던, 아니 강렬하게 애정했던 두 감독이 있다. 홍상수와 김기덕.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마니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저 작품관과 연출 방식,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까지도 즐겼을 뿐이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 개봉관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놓치고 있었다. (*故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은 가끔 다시 보곤 한다.)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 전, 큰아이 학원 라이딩을 앞둔 시간보다도 일찍 눈이 떠졌다. 그 틈을 타 간만에 넷플릭스가 아닌 쿠팡플레이를 뒤적였다. 고요한 일요일 새벽은 QT를 하기에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콘텐츠 몰입의 시간이기도 하다. 웬만한 작품은 이미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홍 감독의 비교적 최근작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묘한 충만함을 안은 채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시절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다만 ‘역시 홍상수지~’라고 단정하기엔 망설여졌다. 특유의 현실을 비트는 위트와 대사에서 터져 나오는 실소는 다소 옅었다. 대신 시나리오인지 독백인지 경계가 모호한

[콘텐츠인사이트] 호기심을 자극하다 놓쳤던 영화를 만나다…<신명>을 보고

<신명> 개봉 당시 김규리 배우의 열연, 그리고 대통령 내외를 둘러싼 뒷이야기를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픽션으로 기억한다. 아니나 다를까 넷플릭스 신작으로 올라오면 거의 1위를 하는 듯하다. 여느 때처럼 심신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잘 버텨낸 한 주를 마무리하며 금요일 퇴근 후 이 영화를 꺼내 들었다. 접하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명’이겠지 싶었다. 돌이켜보니 그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지는 못했던 것 같다. 찾아보니 ‘신명’은 세상의 이치를 밝히 아는 영적인 존재들, 즉 하늘과 땅의 모든 신령하고 깨어 있는 존재를 뜻한다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천지신명께 빈다’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한마디로 <신명>은 그럭저럭 볼 만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사실적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이미 탄핵된 전 대통령 부부의 행적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됐겠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이 남는다. 어쨌든 그들은 그것이 ‘맞다’고 믿었을 것이고,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

[콘텐츠인사이트] 간만에 만난 청정무구한 힐링 테라피…〈샤이닝〉 1회를 보고

심신이 한계까지 소진된 2026년 3월이다. 단순히 업무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직에 가까운 재취업 이후 반년. 긴장으로 버텨온 시간의 대가는 이제 서서히 몸과 마음의 균열로 드러나는 듯하다. 사람에게 여유가 사라지면 그 존재는 어딘가 고장 난 채 살아가는 느낌이 된다. 숨은 쉬고 있지만, 온전히 살아 있는 감각은 희미해진다. 문득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 ‘미생(未生)’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미생이지. 요즘의 나를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 없이 하루를 통과하고, 그저 버티듯 살아낸다. 어쩌면 이런 고백이 우울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는 아니다. 그저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일 뿐이다. 이제는 ‘지천명’의 나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그 나이. 순응과 수용이 삶의 방식이 되는 시기다. 그렇게 쉰 살에 다다랐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와의 만남은 작은 행운이었다. 단 한 회를 봤을 뿐인데, 가슴은 따뜻해지고 머리는 맑아지며 감정은 잔잔하게 정리됐다. 우연히 접한 작품이었지만, 이 드라마는 분명 ‘테라피(therapy)’에 가까웠다. ◆ 요즘 아이돌은, 정말 ‘idol’이다 슬

[콘텐츠인사이트] 보고 나면 기억나는 건 최지우 그리고 꽉찬 구성…<뉴노멀>을 보고

‘뉴노멀(New Normal)’ 언젠가 칼럼을 쓰며 최근 시사 용어들을 들춰보다 접했던 단어다. 한때는 비정상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태. 다르게 말하면, 이전의 기준으로는 비정상이던 상황이 새로운 정상으로 자리 잡는 현상이다. 그래서일까. ‘불확실성’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들려서인지, 오히려 확실한 것이 더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다. 이런 단어를 제목으로 내건 영화라니. 넷플릭스 신작이었고, 거기에 최지우 배우까지 등장한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의 챕터 구성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교차하며 연결되고, 각 에피소드에는 나름의 반전이 숨겨져 있다. 독립영화적인 기운과 상업영화의 장르적 장치가 적절히 섞여 있는 작품.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이니, 머리를 비우고 콘텐츠를 탐색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쯤 볼 만하다. 그것이 <뉴노멀>이었다. ◆ 예상을 깬 역할, 그녀의 반전 이문식 배우가 등장한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먼저 떠오르는 배우. 극 중 그는 검침원이다. 겉으로 보면 허술하고 어딘가 어수룩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슬쩍 짓는 미소에는 묘한 섬뜩함이 스친다. 마치 방금

[콘텐츠인사이트] 웃음도 감동도 놓쳤지만…<매드 댄스 오피스> 리뷰

그녀를 처음 인지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저 연기 잘하는 조연 배우, 외모를 뛰어넘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기억한다. 염.혜.란. 세 글자만으로도 존재감을 설명할 수 있는 배우다. 그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도 심상치 않았고, 예고편과 소개 글만 봐도 웃음과 감동이 적절히 버무려진 작품일 것 같았다. 주말, 생일 주간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와이프와 함께 극장을 찾았다. (*아내 역시 염혜란 배우를 좋아하기에 기꺼이 동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표현하기가 조금 난감하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었다. 함께 본 아내의 한마디가 가장 정확한 평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냥… 뭐… 음….” 굳이 정리하자면 죽도 밥도 아니었다는 표현이 가까울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따뜻한 결말 정도. 그 한 가지를 제외하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을 찾기 어려웠다. ◆ 현실감도, 유머 코드도, 감동 포인트도 부족 공무원 조직을 묘사하는 장면부터 다소 진부했다. 어린 시절 보던 드라마 <TV 손자병법>이 떠오를 정도로 과장된 장면들이 이어졌다. 과장님(5급)의 호통

[래비의 커리어 블렌딩] 엄마에서 '나'로 출근하는 아침, 불안을 무기로 바꾸다

월요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길은 누구에게나 괴롭다. 나 역시 지독한 월요병을 겪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역설적으로 출근이 기다려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회사 내 자리에 앉아, 따뜻한 모닝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침 메일함을 여는 그 짧은 시간이다. 주말 내내 젖병을 씻고 아이들을 안고 재우며 쌍둥이 엄마로 살다가 마침내 나만의 책상, 나만의 고요한 시간 속에 앉는 그 순간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온전한 '나'로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 작은 의식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커피 맛 때문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역할을 전환하며 사는 직장인에게 의도적으로 '나'를 켜는 스위치가 없으면 어느 순간 어떤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걸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아침 의식은 오늘도 나를 버티게 하는 소중한 동력이다. 그래서 8개월에 가까운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해서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회사에서는 나를 믿어주고 곧바로 굵직하고 큰 프로젝트들을 맡겨 주었고, 난 전속력으로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의욕과 달리 마음 한구석에서 낯선 감정이 올라왔다.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