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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래비의 커리어 블렌딩] '마케팅'이란 무기가 너무 가볍다고 느낀 날

래비의 커리어 블렌딩 ⑥

 

인도행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내가 서 있게 된 곳은 갠지스강이 아닌, 사내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변화관리 TFT 조직이었다.

 

이곳은 정식 부서가 아니었다. 본업은 따로 있고, 선발된 인원들이 별도 시간을 할애하여 회사의 문화를 바꾸는 일을 '더' 해야 하는, 일종의 '체인지 에이전트(Change Agent)' 팀이었다.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진심으로 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내가 열심히 한 건, 일종의 오기이자 호기심이었다.

 

'좋은 마케팅은 고객의 지갑을 여는데, 좋은 프로그램은 직원들의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절 나와 내 동료들은 자신만만했던 것 같다. 마케팅에서 배운 '브랜딩' 기법을 조직문화에 적용했다. 직원을 '내부 고객'으로 정의하고, 딱딱한 지시 대신 세련된 캠페인과 감각적인 이벤트를 기획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행사는 화려했고, 직원들은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화려한 이벤트가 끝나면, 직원들은 다시 냉소적인 표정으로 모니터 앞에 앉았다. "행사 때만 좋았지. 근데 변한 게 뭐야?"라는 후일담이 들려왔다.

 

그때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은 '제품'이 아니다. 예쁜 포장지로 감싼다고 해서 진정한 변화로 이어지는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마케팅은 짧은 순간의 욕망을 자극해 '구매'라는 행동을 이끌어내면 성공이다. 하지만 조직문화는 달랐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일은 화려한 이벤트나 세련된 슬로건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잠깐의 통증은 잊게 해주지만, 병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는 못하는 '진통제'와 같았다.

 

그렇게 나는 벽에 부딪혔다. 내 손에 쥐어진 '마케팅'이라는 무기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HR'의 영역에서는 너무나 가볍고 얄팍하게 느껴졌다.

 

"왜 저 팀장은 팀원들의 말을 듣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구성원들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몰입을 통해 움직이게 만들까?"

 

현장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WHY'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섰다. 그때까지 나는 커리어의 다음 단계로 MBA를 생각하고 있었다. 더 멋진 전략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1년간 몸소 부딪혀 본 조직문화 활동이 안겨준 처절한 한계는 내 나침반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기술(Skill)이 아니라, 사람(Human)을 배우자.'

 

이 한 문장을 마음에 새기기까지, 사실 꽤 오래 걸렸다. MBA라는 선택지는 당시 내 또래에게 일종의 '정답지' 같은 것이었다. 그 길을 포기하는 일은 단순히 학교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려온 커리어의 지도를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무겁고, 그래서 더 오래 고민했다.

 

2013년, 결혼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꾸리던 그해,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MBA 대신 교육대학원에 가고 싶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원리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졌어."

 

고맙게도 남편은 나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익숙한 명함을 내려놓고 낯선 '교육공학'의 길을 선택했다.

 

대학원에 가보니 동기들은 대부분 정통 HRD(인적자원개발) 담당자들이었다. 브랜드 컨설팅과 마케팅을 하다가 온 나는 그들 사이에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처음엔 그 낯설음이 두려웠다.

 

'내가 과연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다름'이 축복임을 깨달았다.

 

기존의 HRD 담당자들이 "어떻게 교육 내용을 잘 전달할까?"를 고민할 때, 나는 "어떻게 이 가치를 매력적으로 '설득'할까?"를 고민했다. 교육학의 깊이 있는 이론에 마케팅의 유연한 화법을 섞자, 딱딱했던 조직문화가 말랑말랑한 스토리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블렌딩'은 단순히 두 가지를 섞는 게 아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전혀 다른 세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일어나는 '화학 반응'과도 같다.

 

마케터로서의 '감각'이 조직문화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대학원에서 배운 '이론'은 그 안에 단단한 뼈대를 세워주었다.

 

낮에는 회사에서 실전을 경험하고, 밤에는 대학원에서 원리를 파고들었던 그 이중생활.
그것은 내 커리어에서 가장 고단했지만, 가장 밀도 높게 성장한 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느꼈던 '한계'와 '좌절'이 참 고맙다. 만약 내가 마케팅 기술만으로 조직문화를 성공시켰다고 착각했다면, 나는 평생 겉만 번지르르한 '행사 기획자'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여 다시 배우기를 선택한 순간, 내 커리어는 비로소 '깊이'를 가지게 되었다.

 

[래비가 제안하는 커리어 블렌딩 질문]

 

STEP 1. [Expansion] 본업 밖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는가?

 

-내 커리어의 결정적 기회는 종종 R&R 바깥에 있다. 나는 주어진 일만 하고 있는가, 아니면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손을 들고 있는가?
-[질문]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내 가슴을 뛰게 하거나 호기심이 생겨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TFT)'는 무엇인가?

 

STEP 2. [Connection] 낯선 영역에 내 강점을 이식했는가?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할 때, 맨땅에 헤딩할 필요는 없다. 내가 가장 잘하는 무기를 가져와 낯선 땅(HR)에 적용해 보는 시도가 곧 '블렌딩'의 시작이다.

 

-[질문] 내가 가진 핵심 역량(나의 무기)은 무엇이며, 이것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른 분야에 접목한다면 어떤 재미있는 화학 반응이 일어날까?

 

[7화 예고]HRD 전문가들 사이에서 '마케팅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때론 훈장이었고, 때론 멍에였다. 하지만 그 '다름' 덕분에 나는 조직문화를 완전히 새로운 각도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학교와 회사,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뛰어가던 어느 날, 덜컥 세 번째 토끼가 찾아왔다. 뱃속의 '쌍둥이'였다. 졸업 논문 심사를 앞두고 찾아온 임신성 고혈압. "산모님, 지금 당장 입원하셔야 해요. 공부가 문제가 아닙니다."
병원 침대 위에서 링거를 꽂은 채 고민했던, 그 처절하고도 아름다웠던 엄마이자 학생 래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사람과 조직의 성장을 고민하는 코치이자 교육·문화 담당자입니다. 20년의 치열한 실무 경험과 워킹맘의 일상을 재료 삼아, 지나온 모든 순간이 어떻게 현재의 나로 '블렌딩'되는지 그 성장의 기록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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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인사이트] 진실과 거짓, 그 경계선… <레이디 두아> 최종 리뷰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단지 ‘부두’라는 단어의 차용 때문만은 아니다. 이 노랫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심수봉의 애잔한 목소리가 영화의 OST처럼 뇌리를 스쳤다. ‘부.두.아.’ 제목만 봤을 때, 그리고 처음 접했을 때 이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은 흥미로웠다. 다만 ‘재미있겠다’보다는 ‘이게 뭐지?’에 더 가까웠다.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심리학 박사는 아니지만 인간 본연의 감정을 건드리는 가스라이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괴물이 되어가는 인물. 그녀가 바로 주인공 신혜선이 연기한 ‘두아’다. 마지막 질문은 많은 생각을 남긴다. (*사실 그녀가 거짓말을 일삼는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보는 내내 인지하게 되지만, 마지막 8화에서 그녀의 변론(?)을 듣고 나면 생각이 한순간 혼미해진다.) “이름이 뭐예요?” 무명씨도 있지만, 모든 이에게는 이름이 있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조차 그렇다. 기독교 신자로서 운명을 믿는다고 말하면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나는 태어난 팔자, 숙명(여기서는 명운까지 포함해)을 어느 정도 믿는 편이다. 매회 1시간을 넘지 않는 총 8부작. 올 설 연휴 안방을 ‘후끈’ 달

[래비의 커리어 블렌딩] '분홍소시지'와 맞바꾼 인도行 티켓이 가져온 '나비효과'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서 다양한 기업의 브랜드 체계를 짜주며 나는 늘 생각했다. 멋진 슬로건과 로고, 브랜드 체계를 만들어주지만, 과연 이 기업들이 내부에서도 이 가치를 지키고 있을까? 제안서 속의 화려한 전략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작동할까?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바른먹거리’라는 철학으로 유명했던 한 식품 기업의 마케팅본부로 이직을 결심했다. 밖에서 볼 때 그곳은 브랜드 가치가 가장 잘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진짜 내부에서도 그 가치가 지켜질까? 내가 확인해 보겠어.' 호기심과 포부가 가득했다. 입사 며칠 후, 점심시간이었다. 반찬으로 추억의 ‘분홍 소시지’가 나왔다. 어릴 적 도시락 반찬으로 최고였던 그 맛이 반가워 리필까지 하며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선배가 말없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식품 첨가물의 유해성에 관한 책이었다. “래비님, 우리 회사에서는 식품 첨가물에 대해 매우 엄격해요. 금지하고 있는 첨가물이 왜 위험한지는 알아야죠. 그거 한번 읽어보세요.”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이직해 오는 경력직 연구원이나 마케터들이 “왜 다른

[콘텐츠인사이트] 간만에 시즌2가 기대되는 디즈니플러스…<메이드 인 코리아>를 보고

“〈메이드 인 코리아〉 봤어? 어때? 재밌지?” “어, 뭐지? 어디서 볼 수 있는 거야?” 평소 신작 콘텐츠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해피 유저’인 터라, 이 한마디에 바로 귀가 솔깃해졌다. “현빈 나오고, 정우성도 나오는데 볼 만하더라고.” 사실 고백하자면, 아주 친한 누나가 대표급으로로 계신 지라 구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카지노〉 이후로는 딱히 끌리는 작품이 없어 지난해 디즈니플러스 구독을 해지했었다. “누나, 잘못했어요… 고백하며 사과드립니다.” ◆ 뭐든지 안주하면 안 되고, 참신해야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현빈이라는 배우였다. 매 작품마다 캐릭터에 걸맞은 변신을 이어온 터라 이번에도 자연스레 기대감이 생겼다. 그런데 보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누가 봐도 보디가드, 누가 봐도 중앙정보부 과장 같은 체격. 마동석급 벌크업에 수트핏까지 더해지니 캐릭터 설득력이 단번에 살아났다. 사실 2회까지는 다소 평이했다. 1화는 설경구 주연의 〈굿뉴스〉와 상당히 유사한 전개였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의 조합처럼 느껴져 실망감도 있었다. 하지만 3회부터 스토리가 착착 감기기 시작했다. 명조연들의 합류, 뻔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펀(fun)’하게 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