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은 왜 목이 길까?”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먹어야 되잖아.”
에버랜드 로스트벨리 앞을 서성이던 두 어린이의 대화가 흥미롭다. 기린은 진정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높은 나뭇잎’이라는 자신 만의 블루오션을 독점하기 위해 긴 목의 형태로 진화한 것일까? 또 시작이냐는 듯한 와이프의 차가운 시선을 뒤로한 채 자연과학적 사고를 조심스레 이어나가 본다.
[외적응 (Exaptation)]
종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여러 문구 중 화자가 좋아하던 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기능은 기원이 될 수 없다.’
기능은 결과일 뿐이고 그 과정의 시작점에 다른 목적의 기원이 있다는 뜻이다. 높은 나뭇잎을 먹는 ‘기능’ 은 긴 목이 수행할 수 있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기에 그것이 진화의 기원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진화생물학 에서는 이를 ‘외적응(Exaptation)’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외적응이란 원래의 기능을 위해 생긴 구조가, 나중에 전혀 다른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새의 깃털이다. 원래는 체온유지용으로 진화한 깃털은 후에 비행이라는 예상치 못한 기능을 갖게 해주었다.
[김대리의 외적응]
“김대리, PPT기가막히게 만들었구만. 자넨 앞으로 이것만 해!”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김대리의 숨겨진 역량을 발견했다는 듯 박부장이 소리쳤다. 높은 잎을 먹는 기린에게 자네 목은 그걸 위해 타고난 것이라고 칭찬하듯 말이다.
기능은 결코 기원이 될 수 없다. 박부장이 진정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녔다면 김대리의 표면적 기능(PPT)이 아닌 그 기능을 가지게 된 기원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것이 ‘설명력’ 일 수도 있고 ‘체계화 능력’, 혹은 ‘시각화 능력’ 일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각했더라면 김대리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개인의 성장과 더불어 조직의 성공에 기여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리더는 잊지 말아야 한다. 기능은 현재의 모습이고 기원은 미래를 설계할 단서이다.
[맥락 중심의 인간]
AI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Vibe Coding (말로 쉽게 하는 코딩) 이 대세인데, 많은 이들이 대세에 따라 AI를 코딩의 도구로써 적극 활용 중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기능의 기원, 즉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 단어를 예측’ 이라는 본연의 특성에 집중하여 AI를 ‘전략 수립’, ‘글쓰기’ ,‘시각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기능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신 기능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의 시대에 오로지 표면적 기능에만 집중하고 편협하게 사용하는 것은 일차원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기능의 기원을 파악하고 이를 응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새로운 현상과 기술에 대한 맥락의 이해는 기원의 파악과 더불어 응용의 지혜를 가져다 줄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기능 중심의 사고는 ‘성과 중심 인간’을 만들 것이고, 기원 중심 사고는 ‘맥락 중심 인간’을 만들 것이다.
글의 마무리에 앞서 한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위에서 여러 번 강조한 기원의 파악 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보여지는 기능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다. 제대로 된 기능 파악이 되지 않으면 기원에 대한 탐색은 시작조차 의미가 없다. 그래서 여러분께 귀뜸을 드리자면 사실 기린은 높은 나뭇잎뿐 만 아니라 낮은 곳의 나뭇잎 역시 즐겨 먹는다고 한다.
* 칼럼니스트 ‘쿠자’는 소통 전문가를 꿈꾸며 신문방송학을 전공하였고, KBS 라디오 DJ를 거쳐, 외국계 대기업의 인사업무를 담당하며 역량을 키워왔습니다. 다양한 강의와 공연을 통해 소통의 경험을 쌓아온 쿠자는 현재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과 더불어 코칭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의미 있는 소통 전문가가 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