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혜주 기자, 이종화 기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미국 바이오기업 ‘그레일(Grail)’에 1억1000만 달러(약 1550억원)를 전략적으로 투자한 것은 삼성의 AI 및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사업 본격 강화와 글로벌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중대한 행보로 평가받는다.
바이오스펙테이터, 그레일 공식 홈페이지, 2025년 2분기 실적 발표, Bloomberg, 야후파이낸스, Forbes, Reuters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본사를 둔 바이오테크기업 그레일은 혈액 속 미세 DNA 조각을 인공지능(AI) 기술로 분석해 50여 종 암을 한 번의 검사로 조기 진단할 수 있는 혁신적 액체생검 ‘갤러리(Galleri)’를 개발했다.
2015년 일루미나(Illumina)에서 분사해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암 조기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유전체 기반 다중암 선별검사, 조기진단 분야에서 선두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기술과 임상 데이터를 자사 ‘삼성 헬스 플랫폼’과 연계해 혁신적인 개인 맞춤형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삼성물산은 한국 내 ‘갤러리’ 검사 독점 유통권을 확보했으며, 싱가포르와 일본 등 아시아 시장 진출도 계획 중이다. 공교롭게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와 브랜드가 유사해 향후 마케팅과 사업확장에서도 유리할 전망이다.
그레일은 혈액 속에서 암세포 DNA의 극미량 조각을 AI가 최적 선별해 분석하는 독자적 기술로 2021년 ‘갤러리’를 상용화했다. 출시 이후 40만건 이상의 누적 검사 실적을 기록했고, 영국 NHS와 미국 FDA의 임상시험 및 승인을 준비중이며 전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협력관계를 확장하고 있다.
재무적으로 그레일은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나 아직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2024년 연간 매출은 약 1억2560만 달러(약 1700억원)로 전년 대비 35% 성장했다. 2025년 2분기에는 분기 매출 355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증가하는 등 성장세가 지속 중이다. 2025년 2분기까지 매출 1343억원 가량을 냈지만, 아직 적자 지속상태다.
연구개발·임상비용 증가로 순손실 규모도 크며, 2024년 연간 순손실은 20억 달러에 달했다. 2분기에도 1억14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으나 전년 대비 93% 개선됐다. 회사는 2025년 현금 보유액이 6억 달러 이상이며, 향후 수년간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회사 역사로 보면, 2015년 일루미나가 비침습적 산전검사 과정에서 암 관련 DNA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착안해 창업됐다. 이후 유전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방대한 임상연구를 진행하며 혈액검사로 암을 탐지하는 기술 개발에 집중해왔다. 일루미나는 2020년 71억 달러에 그레일을 인수하려 했으나 반독점 문제로 유럽연합(EU) 등의 제재를 받아 2024년 6월 그레일을 분사하는 형태로 독립시켰다.
AI 및 빅테크 관계자는 "그레일은 AI와 유전체 데이터 결합을 통한 액체생검 분야 혁신 주자로 빠르게 성장 중이나, 의료기기 산업 특성상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로 당분간 적자 상태가 지속될 전망"이라면서 "매출 증대와 FDA 승인 등 규제 통과가 향후 기업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이번 투자에서 눈에 띄는 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아닌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주체라는 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주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 개발 및 판매에 초점을 맞춘 기업으로, 제조와 생산 인프라 중심의 사업 모델을 갖춘 반면 그레일 투자 주체인 삼성전자는 IT·AI 기술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헬스케어 생태계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전략적 투자와 유통 플랫폼 확보에 전문성을 발휘한다.
삼성전자가 그레일에 투자를 집중하는 배경은 AI와 헬스케어 융합에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AI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고, 건강관리·질병 예방을 위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지털 헬스 플랫폼 구축을 추진 중이다.
그레일의 유전자 기반 암 조기진단 기술은 삼성의 AI 헬스케어 서비스 고도화에 중요한 데이터와 임상 근거를 제공할 수 있어 자연스러운 시너지가 기대된다. 특히, 삼성전자가 인수한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젤스(Xealth)’와 결합해 병원과 환자를 연결하는 디지털 의료 생태계 창출도 추진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초 사법 리스크를 해소한 후, 삼성은 AI, 로봇,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에서 활발한 인수합병 및 투자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그레일 투자 역시 이 전략의 일환으로, 삼성은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내 AI 기반 데이터 플랫폼 경쟁력을 확보해 중장기 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그레일과의 협업은 삼성 헬스 사용자에게 정밀 의학 서비스와 더불어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경험 제공을 가능케 하며, 아시아 지역에서의 선도적 서비스 제공도 강화할 전망이다. 또한, 삼성물산이 독점 유통권을 획득함으로써 사업적 시너지와 시장 확장 가능성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디지털헬스케어 전문가는 "삼성전자의 그레일 투자는 AI와 유전체 분석을 결합한 차세대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삼성의 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동시에, 기존 제조 중심의 바이오 사업과는 다른 플랫폼·데이터 중심 헬스케어 생태계 확장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라며 "향후 AI, 디지털 헬스케어, 생명공학이 융합된 차세대 헬스 산업을 이끌어가려는 삼성의 혁신 의지를 보여주는 투자라고 평가받는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