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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빅테크칼럼] 맥주 거품의 숨겨진 물리학…"발효 횟수가 거품 지속성 좌우한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맥주 한 잔의 매력은 청량감과 함께 올라오는 풍성한 거품에도 있다. 그런데 왜 어떤 맥주는 거품이 오래가고, 어떤 맥주는 순식간에 사라질까?

 

최근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연구팀이 7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이 의문에 과학적 해답을 내놨다. 2025년 8월 국제 학술지 'Physics of Fluids'에 발표된 이 연구는 발효 횟수가 맥주 거품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임을 밝히며, 맥주 제조는 물론 다양한 산업 분야에 새로운 통찰을 제시했다.

 

단일 발효 라거 맥주에서는 보리 맥아 속 단백질, 특히 '지질 전달 단백질 1(LTP1)'이 원형으로 거품 표면에 촘촘히 모여 점성 있는 얇은 막을 형성한다. 이 점성 막은 거품이 빨리 줄어들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돕는다.

 

반면, 벨기에의 삼중 발효 맥주(트라피스트 스타일)는 발효를 거듭할수록 LTP1 단백질이 변형돼 가느다란 그물망이나 여러 조각으로 분해된다. 이 단백질 조각들은 물과 기름을 동시에 사랑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어 계면에서 마랑고니 응력(Marangoni stresses)을 만들어내며, 거품 안의 미세한 순환 흐름을 유도해 거품이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더욱 오래 유지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삼중 발효 맥주의 거품은 단일 발효 라거보다 몇 배나 더 오래 지속된다. LTP1 단백질 이외에도 'Serpin Z4'라는 단백질도 거품 안정성에 관여하지만, 발효보다는 맥아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이야르 반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마이야르 반응은 단백질과 당이 열에 반응하여 갈색과 고소한 향을 내는 현상으로, 맥주의 맛과 향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ETH 취리히의 얀 베르망(Jan Vermant) 교수는 "거품의 안정성을 높이려면 단순히 점성을 높이는 것만으론 안 된다"며 "점성이 높아지면 오히려 마랑고니 효과가 약해져 거품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중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단백질 변형과 분해가 거품 안정성의 비밀"이라고 강조하며, 이번 연구가 맥주 산업뿐 아니라 전기차 윤활유나 친환경 계면활성제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 가능하다고 전했다.

 

 

맥주 거품을 통해 드러난 이 복잡한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현상들은, 단순히 술맛을 즐기는 차원을 넘어 산업 현장의 거품 제어나 바이오-재료 공학 등 폭넓은 분야에 혁신적 소재 개발과 기술 진보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양조업계는 발효 조건과 단백질 조성을 조절해 소비자 취향에 맞는 거품 특성을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요즘 같은 무알코올 맥주 시대에도 거품 안정성은 중요한 품질 지표다. 국내외 여러 특허들이 대두펩타이드 등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해 거품을 강화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 역시 발효 및 단백질 변형 연구와 맞닿아 있다. 맥주 한 잔의 거품 뒤에 숨겨진 과학이 맥주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맥주 거품 하나에도 자연의 물리학, 화학과 인간의 섬세한 연구의 산물이 담겨 있다. 오비맥주의 카스, 하이트진로의 테라를 한 모금 마실 때 그 풍성한 거품 속에 담긴 복잡하고 아름다운 과학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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